돌아오는 6월 26일은 우리 열린사회구로시민회가 창립 된지 만 스물 두 돌이 되는 날입니다. 뜻 깊은 날을 맞아 우리 구로시민회 창립 당시의 상황을 대략적으로 소개해 드리고 더불어 구로지부 창립선언문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여 첨부해 드리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구로지부가 탄생한 80년대 후반은, 6.10 민주항쟁을 통해 직선제를 쟁취하였으나 그 해에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군부독재 종식과 민주화의 열망이 강하게 표출되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13대 대선 당시 구로구청에서는 ‘빵궤짝’으로 위장된 부정투표함이 발견되어 부정선거 논란이 일며 구로구청항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와 함께 공단밀집지역 이었던 구로는 상당수의 주민들이 정부의 비호를 받고 있는 사측의 불법적인 노동자 탄압을 목도하여 다른 어느 지역보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강했습니다. 이에 대한 열망을 담아 당시 공정선거감시단 활동을 했던 일단의 주민들과 구로구청항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뜻을 모아 민주쟁취 국민운동 서울시본부 구로지부를 창립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88년 6월 26일 창립총회 자료집 표지>
창립준비 과정에서 전투경찰대에 의해 사무실을 침탈당하는 등 여러 곡절을 겪은 후에 창립된 구로지부는 대선 당시 국민운동본부 조직국장 겸 공정선거감시단 구로지부장으로 활동하다가 구로구청항쟁으로 구속된 후 풀려난 윤두병씨를 초대 집행위원장으로 선출하였지요.
< 윤두병 집행위원장이 구속당시 아내에게 보냈던 서신 >
지공엄마에게
구정을 고비로 날씨가 풀려 징역살기가 한층 수월해졌소. 여러 가지로 고생하는 당신에게 수고한다는 말을 제대로 못했는데 지금 합시다. 주변의 여러분이 걱정해주고 격려 해준다하니 무척 고맙다는 생각이 드오. 나중에 이자 붙여 갚는다고 전해주시오.
구로에 있는 우리 식구들의 근황은 어떠한지 궁금해요. 그 당시 참으로 많은 분들이 헌신적으로 일했는데 지금도 남아있는지 모르겠소. 남아있는 구로식구들에게 전해주시오. 용기를 잃지 말라고 말이오.
나는 지난 사건 중에서 잊지 못하는 것이 있소. 구청 옥상에서 치열한 싸움중에 어둠을 뚫고 가난의 도시 숲에서 불끈 솟아올랐던 태양의 감격스러움을. 그것은 나만의 느낌이 아니었던 모양이었소. 어느 학생이 갑자기 소리쳤어요. “야, 보아라 저 태양을! 우리는 이겼다!” 모두 다 싸움을 멈추고 어둠을 가르고 솟아나는 태양의 찬란함에 넋을 잃는 표정들이었소. 그리고 그들은 환희의 표정을 감추지 않았어요. 나는 그들의 볼에 타고 흐르는 눈물이 최루탄에 의해 흐르는 눈물이라 생각하지 않소. 그래요.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는 저 태양이 있는 한 우리의 희망은 버릴 수 없을 것이오. 이 땅에 참다운 민주와 정의가 뿌리를 내리고 서로가 서로를 진정으로 신뢰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말이오.
지난 번 법정에서 지공이를 보았는데 녀석 나를 보더니 얼굴을 돌리던데 눈물이 핑 돌았나 봐요. 글쎄, 내 눈물인지는 모르지만. 아빠 대신 좀 더 신경을 써 주시고 너무 피곤하게 생각하며 살지 않기를 바라겠소. 건강 신경 쓰고 주변 이웃에 안부 전해주시오.
- 구정다음날 남편이
창립 이후 구로지부는 창립준비위 당시부터 발행해 왔던 지역신문 ‘민주구로’를 지속적으로 발행하는 한편 조직을 확대하여 활동력을 강화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당시 구로지부는 지부산하에 남부지회(시흥동, 독산동), 중부지회(구로동, 가리봉동, 신도림동), 서부지회(고척동, 개봉동, 오류동/ 89년 창립)를 두었지요.
<구로지부에서 발간한 지역신문 '민주구로' 1호지. 본 신문의 제호는 86년 산화한 고 박영진 열사의 아버님이신 고 박창호님께서 직접 써주신 것입니다. 고 박창호님은 병마와 싸우다 지난 2007년 운명하셨습니다. >
많이 아시는 바, 이후 민주쟁취국민운동 서울시본부는 서울지역운동연합(서지연)으로, 이를 본부로 한 구로지부는 겨레사랑 구로·금천주민회로 명칭을 변경하게 되고 1998년 서지연은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의 서울본부였던 서울민주시민연합과 함께 열린사회시민연합을 창립하게 되고, 이를 본부로 한 구로주민회는 열린사회구로시민회로 명칭을 변경하여 지금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구로시민회에 대한 간략사를 소개해드리고 나니 가슴도 뿌듯하고 애초에 계획하고 있던 구로시민회 20년사도 빨리 정리해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군요. 짧게나마 구로시민회에 대해 소개를 드렸는데, 어떠세요, 우리 구로시민회의 회원이신 것이 자랑스럽고 가슴 뿌듯하지 않으십니까?
창 립 선 언 문
가슴 벅찬 감격을 안고 오늘 우리는 70만 구로주민의 자주, 민주, 통일에 대한 염원을 모아 민주쟁취국민운동 서울시본부 구로구지부의 창립을 선언합니다.
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이후 폭압적인 군부독재정권에 억눌려왔던 우리 국민은 지난 해 6월, 강압적인 4.13호헌조치에 대항하여 굴종과 억압을 떨치고 일어나 “호헌철폐 독재타도”의 기치를 높이 올리고 민주의 광장에서 하나가 되어 낮과 밤을 이어가며 줄기차게 싸워왔습니다. 이 역사적 장거에 이 땅에서는 투쟁광장과 유리된 공장도, 상점도, 학원도 없었고 애국과 담을 쌓고 지낸 국민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한 마음, 한 뜻으로 “민주화는 기필코 우리의 손으로 이루겠다”는 각오로 일어섰던 것입니다. 이러한 국민의 힘은 마침내 6.29 항복 선언을 받아내고 직선제를 쟁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비록 6월항쟁이 노태우 정권의 부정협잡 선거와 민주세력의 분열로 인해 결실을 맺니는 못했지만 단결하여 투쟁하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다”라는 말은 여태까지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했습니다. 소수독점 재벌과 관료, 군인들이 외세의 지원 아래 권좌에 틀어 앉아 말로는 민주화를 외치면서도 국민들 위에 군림해 왔던 것입니다.
이 땅의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국민들은 자그마한 힘일지라도 한데 모아 같이 싸워 나가길 원했지만 그런 조직은 없었습니다. 국민들은 사실상 박수치고 따라하는 구경꾼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작년 6월 대투쟁 이후 7,8월 노동자투쟁,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총선을 거치면서 국민들은 자신들의 조직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공정선거 감시활동에 참여했던 10만여 명의 국민을 바탕으로 성장해나간 국민운동본부는 이제 그 축적된 힘을 바탕으로 지부조직 건설을 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구로구에서도 공감단 활동, 구로구청 항쟁을 이어받아 “구로구 민주화는 구로주민의 손으로”이루고야 말겠다는 주민들의 열성적인 활동과 지원에 힘입어 드디어 창립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구로지부를 지난 투쟁에서 배운 바와 같이 몇 사람이 주도하는 국민운동이 아니라 지역 주민에 기반을 둔 주민스스로의 조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은 곧 구로지부를 주민들의 지향과 요구에 기초한 활동을 통해 70만 구로주민의 조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뿐만 아니라 내실있는 구지부 사업을 통해 지역자치조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지역내 민주역량과의 지원, 연대활동을 통해 각 부문운동역량을 강화하고 그 결합력을 높이려 구로 지역내에서 대동단결의 구심체를 준비해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과제는 무척 어려운 사업입니다. 그러나 주민들의 뜨거운 민주화의지가 있기에 단결과 투쟁이라는 소중한 경험을 안고 있기에 우리는 확신합니다. 기필코 우리의 뜻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구로주민 여러분!!! 인권과 지역자치, 생존권 등 민주적 권리를 누리고 의료, 교통, 공해, 주택 등 생활의 불편을 해소할 구로주민의 자치조직을 함께 가꾸어 나갑시다.
비록 지금은 힘이 약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로 굳게 뭉칠 때 그 어떤 매국 매족의 무리도 우리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민주쟁취 국민운동 구로구지부는 구로주민의 뜻을 받들어 주민들과 항상 함께 할 것이며, 서울시본부 산하 16개구 지부를 포함한 전국 각 지역의 시도본부와 더불어 단결된 힘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또한 지역주민의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힘과 지혜를 모아 완전한 민주사회실현과 조국의 자주화, 평화통일의 그 날까지 힘차게 진군해 나갈 것입니다.
분단조국 44년(1988년) 6월 26일
민주쟁취 국민운동 서울시본부 구로구지부
첫댓글 제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 제 블로그에도 많은 관심가져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