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취급설명서
로버트 쓰치가네 지음 / 양영철 옮김
▣ 저자 로버트 쓰치가네(Robert Tsuchigne)
1933년 일본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 상학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아메리칸대학에서 석사학위, 메릴랜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프로스트버그대학에서 비즈니스학부 조교수 및 올드도미니온대학에서 정보학부 조교수를 역임했다. 미 육군 정보망구축시스템 상급담당관 및 미 해군 탄약망 데이터베이스구축시스템 분석관을 지냈다. 국제협력사업단의 일원으로서 개발도상국 인프라 정비프로젝트를 수행했고, 플로리다대학 경제학부 교수와 일본 시마네대학 종합정책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플로리다 대학 법학부 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기술대국 일본의 허와 실』『변화를 모색하는 통계학』『시스템 다이내믹스로 시뮬레이션 만드는 법』등이 있으며, 사회학과 경제학 분야의 다수의 논문이 있다.
▣ Short Summary
유엔, 올림픽, 노벨상.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일본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권위’가 있다고 여기며 그 가치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게 바로 이 세 가지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면 이것에 대한 일본인의 집착은 구제하기 힘들 정도의 망상에 가깝다. 현재의 일본을 바라보면 그 허구성이 너무나도 빤히 드러난다. 일본은 지금 거의 자괴에 가까운 상태에 빠져있다. 그런데도 정작 일본인은 자각을 하지 못한다. 일본의 금융과 교육은 완전히 붕괴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외교는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국가조직으로서의 직무를 망각하고 있다. 기능 마비상태에 있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 대학은 모두 급격한 개혁이 필요한데도 도무지 그 개혁은 제자리걸음이다. 일부 매스컴은 구태의연한 과거에 젖어 민족주의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부응한 정치가는 망발을 일삼는다. 이제 세계가 일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직시해야 하며, 일본인 스스로 무엇이 모자란지를 자각해야 한다. 주변국은 일본을 적대시하고 있다. 이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일본의 행태는 파악되고 있다.
이 책은 완전히 외국인의 입장에서 일본에 대해 서술하고 기록한 것이다. 저자는 일본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아메리칸대와 메릴랜드대에서 학위를 받은 뒤 줄곧 미국에서 활동하며 객관적으로 일본 사회를 평가해 왔다. 이 책은 원제 『미국에서는 상식이 되어버린 일본인 취급설명서』가 말해 주듯이 출간 당시 일본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과 파문을 일으켰다. 일본의 주요 언론들도 일본사회와 일본인에 대해 이토록 객관적이고도 예리하게 분석한 책은 없었다며 자조 섞인 평가를 내놓았다. 일본인들의 심기를 건드리며 지금까지 화제가 되고 있는 이 책은 일본인의 속성을 정확하게 이해시켜 줌으로써, 앞으로의 한일간의 관계 설정과 협상에 귀중한 매뉴얼이 되어줄 것이다.
▣ 차례
제1장 - 세계의 리더가 될 수 없는 일본 제2장 - 일본 기업의 경쟁력은 옛말 제3장 - 일본인의 한계와 생각의 벽 제4장 - 일본인만큼 다루기 쉬운 민족도 없다 제5장 - 일본인이 멸시당하는 이유
일본인 취급설명서
로버트 쓰치가네 지음 / 양영철 옮김
제1장 세계의 리더가 될 수 없는 일본 - 일본은 점점 고립되어 가고 있다
한심한 관료주의의 나라
일본은 ‘관존민비(官尊民卑)’의 국가다. 관료는 위대하고 일반 국민은 그 아래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국가를 ‘평등한 나라’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 보았을 때 세계 어느 나라에 가보더라도 일본보다 더한 관료주의 국가는 없을 정도로 일본에는 아직껏 관료주의가 팽배해 있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일본인들은 그다지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외국에서 볼 때는 황당하고 한심하기까지 하다.
몇 년 전의 일이다. 나는 오랜만에 일본에 돌아와 친구와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 차는 30분도 채 달리지 못하고 교통체증으로 멈춰서야 했다. 자동차 행렬의 앞쪽을 살펴보자 경찰관이 자동차를 세우고 뭔가 체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고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내 차례가 되자 경찰관이 다가와 운전면허증을 보여 달라며 불쑥 운전석 안을 들여다 보았다. “어느 나라 면허증을 보여드릴까요?” 나는 비즈니스로 외국에 나가는 경우가 많아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필리핀 그리고 미국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있었다. 경찰관은 “일본 면허증은 없습니까?“라고 물었다. 없다고 하자 몹시 기분이 언짢다는 듯이 갑자기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교통위반을 하셨습니다. 벌금으로 5천 엔을 지불하셔야 합니다.“ 경찰관의 말은 정중했지만 고압적이었다. 그저 일본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뿐인데 말이다. 나는 지난 8년간 JICA(일본 외무성의 외곽 조직인 국제협력사업단)를 통해 국제 협력에 관한 업무를 해온 증거도 보여주었지만 막무가내였다.
경찰관의 면허증 조사는 요코하마에서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 때의 경찰관은 미국 면허증을 보여주자 그나마 정중한 태도를 보였었다. 그러나 시골 현懸의 경찰관들은 흐름에 뒤쳐진 사람들로서 요즘 같은 국제화시대에도 오로지 일본의 면허증만을 고집하고 있었다. 시대착오라고나 할까. 나는 이러한 일로 벌금을 낸다는 것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경찰서장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다고 결심했다. 한 번 만들어 놓은 규칙일지라도 언제든지 시대에 맞추어 대응하고 검토하면서 바꿔야 할 것은 바꾸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이러한 대응력과 융통성의 부재는 비단 일본의 경찰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일본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기업, 교육 기관 등 모든 조직에 뿌리깊이 배어 있다.
서장과의 약속을 확인하기까지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고 시간이 꽤 걸렸다. 첫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나는 먼저 나의 신분을 밝혔다. “저는 일본에서 운전을 할 때 일본 면허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교통법규위반이라는 사실을 딱지를 끊고서야 처음 알았습니다. 나는 자격이 없는 무면허운전을 한 것이 아닙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다른 나라의 운전면허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룰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죠.” 나는 역설했다. 그러자 서장은 말했다. “물론 룰입니다. 저는 그 룰에 따라 당신이 교통법규를 위반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한 번 만들어진 교과서는 버릴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EU에서는 국가간에 사람이나 물건, 돈, 정보가 자유롭게 오가고 있습니다. 영국의 운전면허증으로 스페인에서 드라이브를 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지금 세상은 그런 마당인데 일본은 글로벌화에 뒤떨어진 외톨이가 아닐까요?” 그러나 서장은 도무지 내 의견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다.
무조건 강하게 맞서면 꼬리를 내린다
나는 문득 일본이 과도한 ‘관료국가’라는 점을 떠올렸다. 내가 외무성을 거론하자 서장은 룰을 들먹이던 이제까지의 주장을 굽히고 결국 나에게 사과까지 했다. 일본사회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피라미드형 종적 권력구조를 엿보는 듯 했다. 이러한 풍토에서는 개혁의식으로 체제를 변화시키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못한다. 이런 사실은 이미 서구의 여러 나라에까지 알려져 그들은 일본인을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종종 상부기관의 위세를 내세우며 일본인에게 협상을 강요해 온다. 그런 면을 보면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터득했다. ‘일본인은 고압적으로 나가면 꼬리를 내린다’라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만큼 다루기 쉬운 상대도 없을 것이다.
미국에 돌아가서 마이클이라는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마이클은 여러 나라 사람들과 통상을 벌이는 바이어로서의 입장에서 일본인이 가장 다루기 수월하다고 말했다. “고압적인 태도를 일어로는 뭐라고 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어. 무조건 NO!라고 끈질기게 주장하는 거라고 말이야.” 그러자 나도 그 말이 이해가 갔다. 어떤 무역 교섭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마이클이 오직 NO라고 말하는 모습을 옆에서 본 적이 있다. 일본의 어느 상사商社와의 협상에서였다. 마이클은 조건이 맞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그 쪽에서 제시한 조건은 이전 조건들 보다 마이클에게 유리한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거래는 결국 성립되었는데, 조건은 마이클이 원하던 것보다도 훨씬 좋았다.
피해자를 지켜주지 않는 나라 (이지메가 활성화 된 나라)
일본에서는 피해자의 권리가 존중되지 않는다. 또한 일본에서는 피해자의 인권도 보호되지 않는다. 미군은 오키나와에서 일어나는 미군 범죄에 대한 조사는 미․일지위협정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일본 측 조사권의 한계를 미군도 알고 있기 때문에 입건될 때까지는 일본 측에 신병이 인도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미국 측에서 먼저 손을 쓰기도 한다. 오히려 가해자들의 가족이 미군의 상층부에 일본 측의 조사가 너무 심하지 않도록 진정서를 넣는 경우도 있다. 또한 시간을 벌면서 부당한 조사를 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매스컴에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왜 일본에서는 피해자를 보호하는 권리가 무시당하고 있는 것일까.
1990년 일본의 최고재판소는 다음과 같은 판결문을 발표했다. “범죄 조사 또는 검찰의 공소권 행사는 사회질서를 바로하기 위한 것으로, 범죄 피해자의 이익에 대한 손해의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피해자의 권리는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독일에서도 20여 년 전까지는 피해자나 그 가족이 단순한 ‘증거품’ 정도로 취급당하던 때가 있었다. 재판에도 참가할 수 없는 그들은 억울해도 참는 수밖에 없었다. 마치 일본의 에도시대(1603~1867)에 사무라이가 자신에게 거슬리는 양민을 베어 죽여도 죄가 되지 않았던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현재 독일의 사정은 다르다. 철저하게 피해자를 보호하고 배려하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2000년 5월, 늦은 감은 있으나 일본에서도 범죄 피해자보호 관련법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피해자의 권리가 여전히 배제되고 있다. 현재 사법제도개혁추진본부가 설치되어 있지만 그다지 진전은 없어 보인다.
평화에 대한 망상
2차대전에서 일본과 비슷한 입장에 있었던 독일은 전쟁으로 자신들이 상처를 입힌 주변국과 유태인에게 철저한 보상과 응분의 대책을 세워 왔다. 일본은 어떤가. 다분히 이중적인 평화에 대한 표현과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 다시 군사력을 키우면서 세계는 평화로워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망상에 가까운 이중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인의 생각이 얼마나 비현실적이며 망상에 가까운 것인지 당사자인 일본정부와 국민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냉전이 끝난 것은 미국과 소련이 50년에 걸친 싸움을 겨우 끝내고 얻어진 결과물이라는 것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들인 것이다. 그야말로 밀고 당기는 군사력의 대치를 마침내 끝내고 찾아온 평화에 일본은 무임승차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을 주도했던 국가가 냉전 시에는 주변국의 안보라인으로 상대적인 덕을 보고, 이제는 다시 군대를 키우며 유엔에서 평화 운운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대다수의 국민과 정부가 북한을 비롯한 주변국의 위험성만 부각시켰지, 그들을 기꺼이 평화의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편협한 섬나라 근성이라고 자인하는 이 딜레마에서 일본인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주변국과의 진정한 공영의 차원에서 어떻게 하면 정확한 역사의식과 진정한 평화를 쟁취해낼 수 있는지를 논의해야 한다. 말로는 평화를 외치고 안에서는 국방비를 올리는 행위는 결코 주변국의 이해를 얻어내지 못할 것이다. 일본에서는 국기 게양을 ‘군국주의’의 부활이라고 경시하는 풍조가 있다. 이는 과거 일본이 자행한 소행들에 대한 의식 있는 사람들의 우려의 표현일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과 중국이 비판을 하는 이유를 내정간섭이라고 맞서지 말고 분명하게 반성하고 처신해야 한다. 백 마디 말로 하는 반성보다 한 번의 제대로 된 평화 의지가 중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인의 말은 그야말로 말에 그치는 것이다. 이를 미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히스테리 환자처럼 보인다.
이웃 나라들에게 할 말과 배려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일본을 우리는 원했다. 그러기 위해선 과거의 일본 행적에 대한 뚜렷하고도 분명한 반성과 보상이 이루어져야 할 터였고, 그러한 실천 없이 하는 말은 어느 나라도 귀담아 들어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특기인 성의를 보여주기 위해 상대가 문제로 삼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도 허구적 사죄를 한다. 그러한 말을 항상 들어온 상대방은 ‘일본인이 그렇게 심한 짓을 했으니 지금의 사죄는 진심이겠지’라며 그 태도를 믿게 된다.
일본은 과연 정신적 독립국인가?
중국 심양에서 일본대사관으로 망명을 요구하며 진입해 들어온 탈북자를 중국 경찰관들이 강제로 끌어내는 사건이 있었다. 빈 조약에 의하면 대사관은 치외법권의 장소로서 어떤 이유에서건 해당국의 경찰관이 그곳에 온 방문자를 허가없이 강제로 퇴거시켜서는 안 된다. 그런데 중국이 그 불문율을 깨트린 것이다. 중국은 탈북자를 지원하고 있던 일본인 가토 히로시도 체포했다. 가토는 일주일에 걸쳐 중국 공안의 심문을 받고 겨우 석방될 수 있었다. 일본의 외무성은 이에 대해 항의했지만 무시당했다.
일본에는 외무장관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거나 외무 관료에 걸맞은 능력자의 부재라고 생각 되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실언만 반복할 줄 알지 진정한 의미에서 주변국과 조화를 이끌어내는 정치적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증거다. 대부분의 일본인이 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에 끼친 일본의 해악에 대해 올바른 반성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못하는 한 일본은 영원히 아시아의 정신적 속국이 될 것이다.
일본의 교육 붕괴
일본에서는 문부과학성이 지금까지 이른바 인허가권을 활용하여 해외 대학이 일본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아왔다. 그러나 인터넷의 보급으로 해외의 어떠한 대학에도 접속이 가능한 시대가 도래했다.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진 대응방법으로는 그 변화를 따라갈 수 없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일본 대학은 제3자에 의한 보다 객관적인 평가기준을 마련하고 있지 않다. 또한 학생들에 의한 교수평가와 강의평가조차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경쟁의식이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학생이 현재 어떤 강의를 원하는지, 실제 취업현장에 투입되어도 무리가 없을 만큼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등을 평가할 길이 없는 것이다. 대학의 형편에 맞춰서 일방적으로 수업을 진행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지금의 상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15년 전에는 세계 2위, 지금은 세계 최하위
일본에서는 지금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학점호환에 대해 여러 가지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학점, 학위구축에 대한 연구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스위스에 있는 IMD(국제경영연구소)는 해마다 49개국의 국제경쟁력을 평가하고 있다. 그 평가에 의하면 1990년, 일본의 국제경쟁력은 49개국 가운데 톱을 차지했었다. 그런데 2000년에는 순위가 급격히 떨어져서 17위로 하락했다. 이 국제경쟁력 평가와 함께 교육제도가 얼마나 그 나라의 국제경쟁력에 공헌하고 있는지 순위를 매기는 대학교육평가도 함께 제시되어 있었다. 1990년에는 순위가 2위였으나 47개국 가운데 최하위인 47위였다. 평가기준은 ‘국제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학이 어떤 식으로 공헌하고 있는가?’하는 것이다. 다음 세대를 짊어질 일본 젊은이들의 대학교육은 이제 땅바닥에 떨어져 있다. 현재 일본인에 대한 평가는 급속히 변하고 있다. 일본에서의 대학은 커리어로서 인정받지 못할 정도로 추락하고 말았다.
제2장 일본 기업의 경쟁력은 옛말 - 모든 분야에서 추월당하고 있다
기술 대국에서 기술 퇴국으로
한때 일본은 세계 최고의 철강 대국에 오르기 위해 고품질의 저렴한 철광석과 석탄을 수입하여 임해(臨海) 철강단지를 건설했다. 당시의 영국은 자신들의 방식에 지나치게 자신감을 갖고 있던 나머지, 19세기 방식만을 고집하여 효율 면에서 일본에 크게 뒤쳐지고 말았다. ‘기술 대국’이었던 영국이 ‘기술 퇴국’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일본이 당시의 영국처럼 기술 퇴국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현재의 일본은 예전의 기술과 제도에 얽매여 있을 뿐, 스스로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는 국가가 되었다.
호리카와는 일본의 어느 제철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며 미국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 그런데 호리카와가 회사를 그만두는 계기가 된 사건이 일어났다. 독일의 대형 자동차회사인 메르세데스벤츠 사가 미국의 크라이슬러 사와 합병하기 전, 크라이슬러 사는 호리카와가 다니던 회사에 강판 수입을 의뢰해 왔다. 조건에는 강판에 바코드를 붙여달라는 요청이 붙어 있었지만, 그 회사에는 바코드 시스템이 도입되어 있지 않았다. 당시 정보담당실장이었던 호리카와는 즉시 미국에 조사단을 보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러나 경영진은 그런 무모한 요구는 상대에게 계획을 철회하게 만드는 행위라며 진지하게 상대해 주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냈고, 결론을 내리지 못한 회사는 결국 구매 의뢰가 취소되고 말았다.
바코드는 현재 슈퍼마켓이나 대부분의 소매업에 도입되어 있다. 이를 통해 상품별 매출과 재고정보가 컴퓨터로 관리된다. 미국에서는 바코드가 트레이서빌러티Traceability, 즉 추적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하게 여겨진다. 강판의 바코드화로 자동차의 강판이 언제 사용되었는지 그 이력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렇게까지 제품관리가 필요할까. 바로 사고가 일어날 경우에 대한 대책이다. 사고가 나면 당연히 그 제품의 이력이 문제되어 책임추궁을 해야 할 상황이 발생한다. 그때 빠르게 정보내용이 화면에 표시되지 않으면 관리시스템의 허술함이 노출된다. 최근 미국의 식품업계는 BSE(광우병) 사태를 계기로 쇠고기의 관리가 소비자들 사이에 커다란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그때 추적가능성이 문제되었다. 서구 선진국에서 바코드는 단순한 재고관리를 위한 도구가 아니다.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일본의 회사가 경쟁력을 잃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호기심을 잃어버린 일본 기업
배송으로 유명한 미국의 페덱스(FedEx)는 화물운송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다. 작은 서류에서 대형 상품까지 세계의 어느 곳이라도 배송이 가능하다. 일단 의뢰받은 서류(물품)에는 독자적인 코드가 붙여져 현재 그 서류가 어느 지점까지 운반되었는지 배송이력이 컴퓨터를 통해 읽힌다. 배송시기가 몇 시가 될 것인지에 관한 정보까지도 추적이 가능하다. 이러한 시스템은 이제 제조업과 유통업, 서비스업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침투하고 있다. 고객의 문제에 얼마나 빠르게대응할 수 있느냐에 따라 소비자의 선택이 달라지는 시대다. 정보의 글로벌화는 상상 이상의 속도로 퍼지고 있다. 일본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왕성했던 국민성을 상실한 지 오래되었다. 고정관념에 빠져 새로운 상황에 대응하지 못하는 사례는 현재 일본의 많은 분야와 기업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본사회 전체가 모든 것을 고령화의 책임으로 돌리며 활력을 잃고 퇴보하고 있는 징후이다.
일단 정해지면 바뀌지 않는 일본 방식
일본의 역대 내각이 어떠한 규제완화방침을 내놓아도 실행된 일은 없다. 일본인은 누군가에게 규제를 받으면 행동에 옮긴다. 일본 지하철역의 지나치게 자세한 안내방송은 일본에 사는 외국인에게 가장 역겨운 소음이라고 한다. 플랫폼의 가장자리에 다가가지 말라, 전철을 놓치지 말고 타라, 물건을 잊지 않도록 조심하라 등등, 어린애도 아닌데 꼬치꼬치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당연하다. 그러나 일본인에게는 무언가 규제를 받으며 사는 편이 스스로 판단을 내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이러한 시스템이 편안하다. 그런 규제나 룰이 일단 정착되면 쉽게 변경되지 않는 게 또한 일본이다.
얼마 전 싱가포르정부는 일본 세탁기의 수입을 금지시켰다. 이유는 ‘IEC(전기제품의 국제규격)’의 안전기준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EU 주도 아래 1995년 WTO(세계무역기구)는 IEC 규격을 정했다. 이는 모든 전기제품을 대상으로 내구성, 내열성, 안전성 등 다양한 항목을 대상으로 20여 개국의 전문가들이 만든 엄격한 규정이다. 일본에는 JIS(일본공업규격)라는 규격 기준이 있다. 지금까지 JIS규격에 합격한 제품의 대부분이 IEC의 규격을 통과했다. 그래서 이번 사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 중국 등에서도 IEC의 파문이 확대되어 갔다. 일본발 베스트 상품의 신화가 세계 룰의 변화로 곳곳에서 붕괴음을 내고 있다.
한국에서는 초거대기업으로 성장한 LG전자가 세계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가전제품 제조사로 세계 3위를 목전에 둔 LG전자는 전기세탁기의 수출지로서 동남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 시장도 시야에 넣고 있다. LG전자의 품질관리센터에서는 96개국으로부터 매월 100건의 이상의 정보를 입수하여 치밀하게 분석하는 마켓리서치를 통해 장래의 전략에 대비하고 있다. 예를 들어, EU에서 전자파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문제시되면 곧바로 전자파 검지기를 준비하는 정도이다. 한국에서는 국가차원에서의 백업체제도 굳건하다. 한국 대통령령 16850호에 따르면 IEC 규격에 맞지 않는 제품의 회수와 폐기까지도 의무화되어 있다.
일본 금융상품의 후진성
일본의 어느 은행에서는 예금잔고를 전화로 알려준다. 그런데 잔고 확인에는 편리하지만 다른 업무를 같이 보기 위해 은행원과의 통화를 원하는 경우에는 연결이 되지 않는다. 은행에 문의를 하고 싶어도 담당 전화번호도 가르쳐 주지 않는 등, 고객의 입장과는 거리가 먼 서비스만 형식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한국에서는 인터넷뱅킹이나 텔레뱅킹을 실시하고 있다. 등록만 하면 언제라도 자유롭게 자신의 구좌를 살펴보는 것이 가능하며, 구좌간의 자금이동도 처음에 한도금액만 설정해 두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지금 세계는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정보가 전파되는 시대이다. 세계의 고객들은 어떻게 하면 자신의 이익을 증대시키고 리스크를 줄이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즉각 대응할 수 있을지를 모색한다. 세계 각국의 관련 법령은 잘 정비되어 있고 시장 인프라는 안전한지, 유동성 리스크는 어느 정도인지에 초점을 맞춰 시장을 지켜본다. 이러한 세계적 추세에 일본의 대응은 미지근하기만 하다.
일본에는 경쟁원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으로 건너온 미국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쏟아내는 말이 있다. 그것은 일본에서는 경쟁원리가 기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에도 경쟁원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령 일본의 스포츠 세계에서는 결과만이 판단의 기준이다. 때문에 많은 우수한 선수가 활약할 수 있는 것이다. 험한 스포츠 세계는 늘 어려운 경쟁에 이기기 위한 노력, 재능, 노하우가 요구된다. 경쟁원리는 당연히 비즈니스 세계에도 존재한다. 보다 좋은 제품을 낮은 가격에 제공하고, 보다 좋은 서비스를 구입 가능한 가격으로 제공한다. 경쟁상대를 이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그렇다면 일본의 기업사회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까? 세계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산업인 자동차, 컴퓨터, 통신, 항공운수, 하이테크 관련기업은 전 세계의 시장화를 위해 글로벌 전략을 세워 대응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경쟁원리가 작동하게 된다. 그러나 외국기업과 직접 경쟁에 처하지 않는 산업이나 기업은 규칙이라는 벽에 둘러싸여 경쟁원리를 전혀 가동하려 하지 않는다. 그 결과 가격이 비싸진다. 예를 들면, 전력요금에서 일본은 미국의 두 배다. 사실 이런 고액의 전기요금이 일본의 산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틀림없다. 전력을 대량으로 소비하는 분야인 일본의 알루미늄 산업은 지금은 망한 것이나 다름없다. 통신요금을 살펴보면, 미국에서 일본으로 거는 통화요금은 1분에 15센트(약 160원)에서 75센트 사이이다. 그런데 일본에서 미국으로 거는 통화요금은 1분에 150엔(약 1,500원)이다. 이것은 미일간 마찰의 하나로 미국의 정보산업이 일본시장으로 진출하려 할 때 커다란 NTB(비관세장벽)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인 자신에게도 지나치게 비싼 접속요금이 일본의 IT보급을 방해하기 때문에 중대한 손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고속도로는 원칙상 무료다. 유료의 경우는 특별히 다리가 걸쳐진 통로 등으로 한정되어 있다. 고속도로가 무료라는 것은 물류비용에 영향을 준다. 예전에 일본의 고도 성장기에는 일본의 국토가 좁은 점이 오히려 플러스로 작용하여 광범위한 미국과 비교해서 물류, 운송비용을 적게 부담한다는 이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너무나도 비싼 통행요금은 일본의 경쟁력을 크게 저하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서비스 요금 중에 특히 비싼 것이 ‘공증인에 의한 서류증명요금’이다. 일본에서는 한 서류 당 1만 엔(약 10만원)이상 드는 것도 있다. 이것들이 모두 법적 규제 때문이다.
제3장 일본인의 한계와 생각의 벽 - 일본 방식은 일본에서만 통한다
일본인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
스리랑카 출신으로 도쿄의 어느 에스닉 요리점에서 웨이터로 일하고 있는 크멜이라는 친구의 이야기다. 크멜은 자주 오는 손님 중 사가모토라는 사람과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은 요리점 웨이터와 손님이라는 관계지만 서로 마음이 맞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사카모토가 크멜에게 스리랑카에 대해 물었다. 사카모토의 회사가 스리랑카와 거래하게 되어 정보가 필요했던 것 같다. 크멜의 누나는 스리랑카의 수도였던 콜롬보에 살고 있고, 그 남편은 국회의원이면서 많은 종업원을 거느린 공장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크멜은 사카모토에게 누나의 주소를 가르쳐 주며 거기에 문의해 보라고 일러줬다. 사카모토가 거래를 하게 된 곳은 크멜의 매형이 경영하는 공장은 아니었지만, 거래는 잘 성사되었다. 문제가 생긴 것은 그 후의 일이었다. 크멜이 사카모토를 파티에 초대했지만 항상 거절만 할 뿐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사카모토는 한 통의 봉투를 크멜에게 건네주었는데, 그 속에는 1만 엔 짜리 지폐가 한 장 들어 있었다고 한다.
크멜은 일본에 오기 전부터 불교 연구를 하고 있었다. 일본의 대학원에서 불교 연구를 완성하려고 일본에 온 것이다. 그래서 학비와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에스닉 요리점의 웨이터를 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사카모토와의 관계는 여전히 요리점의 손님과 웨이터라는 틀 속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그가 사카모토에게 도움을 준 것은 돈 때문이 아니었다. 스리랑카라면 쌍방의 지연과 혈연을 믿고 거래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한다. 단, 그런 경우는 서로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크멜의 입에서는 일본인은 겉과 속을 모르겠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일본인에게는 유머를 쓰지 마라
A씨는 3선의 일본 중의원 의원이다. 이른바 농수산 계열로 분류되는 의원으로서 지금까지 여러 번 동료 의원들과 해외에 사찰을 나가본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여름 미국을 방문하기 전에는 다른 때보다 훨씬 더 긴장했다. 미국의 농수산 단체와의 모임에서 연설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A씨는 비서들과 동료 의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조언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유일하게 그의 마음에 드는 말이 있었다. ‘외국인, 특히 미국인들은 유머를 좋아한다. 유머를 잘 구사한다면 상대방과 쉽게 친해질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드디어 A씨에게 중요한 결전의 날이 되었다. 그는 지금까지 궁리를 해두었던 유머를 멋지게 선보일 참이었다. “일본에서 쌀이 주식이라는 것은 여러분들도 잘 아시리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미국을 한문으로 쓰면 米國(일본은 미국을 한자로 쓸 때 쌀 미 자를 쓴다), 즉 쌀의 나라가 됩니다. 쌀과 쌀이 만난 셈이로군요! 그러니까 쌀 문제는 사이좋게 해결해 보도록 합시다! 하하하!” 그는 혼자서 웃었다. 순간 회의장은 침묵에 휩싸였다. 동시통역 중이긴 했지만 미국인들이 이해를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곤란해 한 사람은 다름 아닌 통역사였다! 일본어를 알고 한자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비슷한 단어로 만들어진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걸 알 수가 있다. 그러나 회의장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미국인에게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에도시대의 시조나 일본 전통예술까지 들먹이며 말장난을 해야 할까. 아메리카를 ‘米國(미국)’이라고 쓰는 나라는 한자를 사용하는 나라들 중에서도 일본뿐이다.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美國(미국)’이라고 한다. 통역사의 말을 듣던 미국인들의 표정도 제각각이었다. 회의장은 완전하게 침묵에 빠져버렸다.
조크와 개그, 유머에는 몇 가지의 종류가 있다. 미국에도 물론 말장난이 있다. 그러나 영어에는 일본어처럼 동음이의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종류가 많지 않다. 레이건 대통령은 조크의 달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재임 당시, 레이건은 저격을 당했고 신속히 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에서 수술을 할 때 레이건은 칼을 들고 곧 수술을 시작하려는 의사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수술 전에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일세! 자네는 공화당원인가?” 언제나 조크를 잊지 않으려는 미국인다운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인이 유머를 소홀하게 생각하는 인종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미국인들도 일반적으로 일본인에게는 조크를 하지 않는다. 비즈니스 석상에서 서투른 조크를 주고받으면 진실하지 못하다고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만 통하는 방식
일본인들은 미국인은 대개 솔직하기 때문에 뭐든지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관계를 중시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인과의 대화에도 금기가 있다. 하야카와는 건물을 나와서 한숨을 쉬었다. 벌써 저녁이 되어버렸다. 오전부터 시작한 비즈니스 교섭은 그런 대로 성공적이었고 계약을 체결할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해외영업에서는 상세한 부분까지 정리하고 나서 계약해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한 순간이라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일본에 있을 때 같으면 동료와 가라오케나 스낵바에 가서 서로 불평하거나 농담을 해가며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스트레스가 해소되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혼자서 축배를 드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골든 이글’이라는 품위 있는 작은 네온 간판이 빛나고 있었다. 평일인 탓인지 손님은 적었다. 하야카와는 약간 취한 기분에다 비즈니스의 성공도 있고 해서 같이 기뻐해 줄 상대를 찾고 있었다. 바텐더가 이야기를 받아주는 게 기뻐서 몇 잔을 같이 하다 보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분위기 좋은 바가 마음에 든 하야카와는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오늘은 손님이 적은 것 같은데, 어때? 장사는 잘 되는가?” 하야카와가 이런 말을 꺼내자마자 바텐더의 표정이 바뀌었다. 놀란 하야카와가 변명하듯이 말하자 바텐더는 더욱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며 말했다. “손님이라고 말을 맞춰줬더니, 알고 보니 주인이 감시하라고 보낸 놈이로군! 난 열심히 일하고 있어! 손님이 적은 건 내 탓이 아니란 말이야!” 하야카와는 겨우 빌고 빌어서 용서를 받았다. ‘장사는 잘 돼!’라는 말은 해서는 안 된다. 얼마 안 되는 주위의 손님들도 비난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문화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개인의 사업관계나 자기 회사의 경영상태(급료를 포함해서)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정보로 취급한다. 상대방이 먼저 꺼내지 않은 말은 개인의 사생활이다. 그 사생활에 관한 질문은 허락되지 않는다.
한 친구는 자신의 경험을 내게 얘기해 주었다. 그가 미국의 어느 공항에서 시내 호텔까지 택시를 탔을 때의 일이다. 그 친구는 일본에서 택시를 탈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는 말로 운전사에게 말을 걸었다. “요즘 경기는 어때요?” 그러자 택시 운전사가 도로변에 차를 세우더니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None of Your Besiness!!(너랑 상관없는 일이야!)” 그 자리에서 차 밖으로 쫓아낼 듯한 기세였다고 한다. 하야카와가 겪은 일과 거의 비슷한 경험이었다. 일본인의 방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경우는 수없이 많다. 가장 일본적인 게 가장 비세계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때다.
제4장 일본인만큼 다루기 쉬운 민족도 없다 -일본인의 약점은 이미 파악되었다
차별대우를 좋아한다(?)
몇 년 전 마이니치신문의 석간 1면에 쇼킹한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나왔다. <홍콩의 호텔들 일본인에게만 바가지요금!> “그랬었군!” 여행대리점을 운영하는 다카하시는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요즘들어 홍콩여행 고객수가 급속히 줄어들었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었기 때문이다. 그 전의 3년간은 ‘공산주의로 편입되기 전의 자유로운 홍콩의 마지막 기회’라는 이유로 일본에서 수요가 급격히 늘었었다. 이제는 반환 후라서 어느 정도 수요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홍콩은 자유롭다. 그런 점을 홍보해 보았지만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것이다. 그 원인의 하나가 상대적으로 비싼 여행단가였다. 사실 다카하시는 직업상의 경험으로 미루어 홍콩의 중국 음식점들이 일본인에 대해 상당히 바가지를 씌우고 있다는 뒷사정을 알고 있었다. 상대가 일본인 손님이라면 왕새우나 전복 등 고급요리만을 권하고 있다. 해외여행이기도 한 까닭에 기분이 들떠있는 일본인 여행객 역시 그러한 권유를 마다하지 않는다. 다카하시의 중개료(리베이트)도 그만큼 많아지니까 결국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호텔의 이중가격에 대해서는 사정이 달랐다. 그러고 보니 다카하시는 최근 홍콩 여행을 갔다 왔던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영업이 잘 안 되었다. 사람들이 이 이중가격의 시스템과 일본인만 겨냥한 바가지를 눈치채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다카하시는 나중에야 알 수 있었다. ‘일본인에게는 3배’라는 호텔요금은 해도 너무하다 싶었다(일본인 관광객은 상대가 다소의 폭리를 취해도 문제를 삼지 않으며, 말썽이 나길 원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는 이미지가 관광업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외국인들 사이에 매뉴얼처럼 정착되어 있다). 다카하시는 이런저런 고민에 빠졌다. 이중가격제가 존재하는 한, 일본의 여행대리점이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게 명백했다. ‘이중가격표’의 존재는 정말 심각한 문제였다. 하지만 어째서 감춰져 있던 ‘이중가격표’가 폭로되었을까. 기자는 일본에서 올 친구를 위해 호텔을 예약하기 위해 여행대리점을 방문했다. “당신은 광동 사람으로 보이지만 일본인의 이름이니 손해군요. 호텔요금은 일본인과 그 이외의 나라 사람이 다르게 적용되니까요.”라고 홍콩인 여직원이 말한 것이 발단이었다. 기자는 ‘비밀요금표’를 입수하여 그 기사를 썼다고 한다.
사스 소동 이후 홍콩도 일본인 관광객의 유치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일본인들은 미끼에 모여든 물고기들처럼 그대로 좋은 먹이감이 되었다. 다카하시는 또 다시 이중요금이 활개를 친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도 일본인 관광객은 모여들었다. 이렇게 차별대우를 받아도 아무 불평 없이 또 가는 게 일본인이다. 다카하시는 같은 나라 사람으로서 염증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일본인의 매춘관광은 눈에 잘 띈다
‘저팬 프리미엄’이라는 단어는 경제 분야에서 이전부터 써왔던 용어다. 일본의 거품경제가 붕괴된 후,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정체 상황이 생겨났지만 거기에는 전적으로 일본의 금융정책 및 금융회사의 무능함이 일조했다. CDS라는 경제지표가 있다. credit default swap이라는 것인데, 선물금융 등에서 처음부터 리스크를 감안하고 투자하는 신중한 상품을 일컫는 말이다. 이 CDS 금리로 마침내 일본의 도쿄 미쓰비시은행이 한국의 한국산업은행보다도 높은 프리미엄을 붙이지 않으면 융자를 받을 수 없는 사태에 직면했다. 그런데 일본경제의 정체 상황에 반비례라도 하듯이 여전히 해외 관광지에는 일본인이 모여들었고, 예전의 거품경제시대의 흥청망청했던 기억이 남아있는 일본인들은 스스로를 아직도 부자라고 생각하는 착각에 빠져있다. 하지만 최소한 지금은 아니다. 10년간의 정체로 일본인이 자유롭게 유용할 수 있는 개인적 자금은 10년 전과 동일하다. 동남아 일대에 ‘일본인 = 부자’라는 인식이 심어진 것은 그동안 잘못 처신해 온 일본인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다.
태국에선 일본인도 독일인도 매춘관광의 주요 고객이다. 태국을 방문하는 독일인 남성은 오로지 성매매가 목적인 사람도 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일본인과 다른 점이 있다. 일본인 단체관광객은 호텔에서 버스를 타고 나갈 때는 정원의 반도 채우지 못한 채로 출발해서 돌아올 때는 두 배가 된다는 것이다. 즉 가이드가 마련해 준 장소에서 여자를 데리고 호텔로 돌아오는 것이다. 독일인들의 경우 가이드에게 안내를 받는 것까지는 일본인과 똑같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단체행동을 하지 않는다.
제5장 일본인이 무시당하는 이유 - 룰이 바뀌면 힘을 못쓴다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
일본인은 종종 힘 앞에는 굴복해야 한다는 식의 발상을 하기 때문에, 힘 있는 자로부터 부당한 일을 당해도 잠자코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실은 특히 미국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다. 일본인은 불만을 제기하지 않기 때문에 다루기 쉽다는 평판이 나 있는 것이다. 또한 미국사회는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 것은 승복을 의미한다는 문화를 갖고 있다. 마쓰야마는 오랫동안 미국에서 생활한 일본인이다. 워싱턴 교외의 메릴랜드 주에 살고 있으며, 컴퓨터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가족과 함께 사적지를 돌아보는 것을 주말의 낙으로 삼고 있었다. 어느 주말, 마쓰야마 가족은 펜실베니아 주의 게티즈버그에 가기로 했다. 링컨의 연설로 널리 알려진 남북전쟁의 격전장이다. ‘모든 시민은 평등하다’는 링컨의 연설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링컨은 이 연설 마지막에 후세에 전해질 명언을 남겼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말은 민주주의 정치의 기본원리를 쉽게 표현하고 있다.
모처럼의 드라이브는 완전한 해방감을 맛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데 순찰차가 마쓰야마의 자동차 옆으로 다가오더니 ‘차를 세우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 고속도로의 제한속도는 60마일이지만, 당신 차는 68마일로 달렸기 때문에 스피드 위반으로 벌금을 부과한다’며 경관은 딱지를 끊었다. 그러고 나서 경관은 2주 이내에 벌금을 지불하거나, 만약 속도위반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려면 그것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내 가즈에는 대학에서 교직에 있는 와타나베라는 친구에게 상담해 보자고 제안을 했다. 경찰에 정통한 와타나베는 메릴랜드 주에서도 흑인과 아시아인이 탄 차가 부당하게 표적이 된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구체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알려줬다. “우선 네가 타고 있는 차의 속도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지를 주가 인정하는 자동차 회사에서 검사를 받고, 그 증명서를 취득하는 것이 해결의 방법이야.” 즉, 스피드메타를 체크해서 메타가 정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책임을 면하게 된다.
마쓰야마는 바로 검사를 시작했다. 그러자 스피드메타가 고장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마쓰야마는 위반딱지가 무효라는 판결을 받기 위해 증거를 준비하여 드디어 교통관련 간이재판소에 갔다. 검사결과는 검사장의 사인이 있는 서류로 명백하다는 것을 마쓰야마는 재판관에게 설명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스피드메타를 2주일 이내에 고치도록 하세요. 이번 위반딱지는 무효로 처리하겠습니다.” 마쓰야마의 답답했던 기분이 한꺼번에 풀어졌다. 와타나베에게 조언을 듣지 않았다면, 150달러의 벌금을 지불했을 것이다. 일본에서도 스피드메타 오차는 허용범위 내에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일단 딱지가 끊기면 아무리 항의를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지만, 이에 비해 미국은 정부에 항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감동을 잃어버린 일본인
일본인, 특히 ‘젊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상실하고 있다’는 지적을 자주 받는다. 예를 들면, 무슨 프로젝트에서 아주 뛰어난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하자. 그래도 전혀 감동을 나타내지 않는 사람은 항상 일본인이다. 일본인은 다른 외국인들이 감동하거나 재미있어 하는 것을 아무리 보여줘도 감동하기는커녕 설명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는 관광업계에서는 이미 상식이 되어 있다. 내가 아는 오카다라는 분은 연세가 80에 달하는데, 해외여행으로 유럽, 아프리카, 쿠바, 중국을 돌아보고, 일본 국내에서는 테니스, 산행, 댄스를 즐기는 등 쉴 틈이 없다. 그녀는 항상 적극적으로 살아왔다. 자식들은 각자 독립하고, 5년 전에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 소위 편안한 독신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자유스럽다. 나는 그녀가 스페인에서 홈스테이를 했을 때의 체험을 듣게 되었다. 그녀는 스페인어 회화교실에 다니는 동안 거기서 배운 것을 시험해 보고 싶어서 스페인에서 홈스테이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회화교실에서 같은 수강생이라고 해도 한 사람만 40대 주부였고, 그 외는 손자와 같은 연령의 남녀뿐이었다. 그런데 그녀와 같이 머물게 된 일행은 일본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한 태도로 홈스테이로 머무는 집에서 그 가족들에게 인사 한마디도 못했다. 스페인어 교실에 다녔기 때문에 인사 정도는 알고 있는 게 분명하지만, 무뚝뚝하게 있을 뿐 모처럼 배운 회화를 시험해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하루는 홈스테이 가족이 신경을 써주며 가까운 주변을 안내해 주었다. 그 날 안내받은 곳은 수도원이었다. 예수회의 시조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와 인연이 있는 교회로서 참례의 명소로 되어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일본인 젊은이들은 설명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스페인을 무시하고 오로지 우월감에 젖어 있을 뿐이었다. 세계에는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이 많다. 예전에 항해시대의 스페인은 여러 나라를 지배하고 많은 인재를 파견했지만, 그러한 지역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자국이 공동화되어 이윽고 영국에게 패권을 빼앗기게 된 것이다. 일본도 당시의 스페인과 비슷할지 모른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그 후에도 조금도 스페인어를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젊은이들은 기회만 있으면 스페인과 일본을 비교하며 스페인에 대해 험담을 했다. 마침내 그녀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언어를 통해서 외국의 문화를 배우는 것이고, 그것이 세계인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젊은이들의 마음을 부추기는 말을 해보았다. 편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스페인을 보려는 마음이 그들에게는 애초부터 없었기 때문에 스페인에 온 여행 자체가 쓸데없는 낭비로 보였다. 인내심을 발휘하여 그녀는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스페인이 유럽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부터 설명을 시도했다. 예전에 스페인은 이슬람권이었다. 소위 레콩퀴스타로 국내의 이슬람교도를 지브롤터 해역의 남쪽으로 추방하고, 아라곤과 카스테리아 두 나라를 합병한 후 열렬한 그리스도교 국가로서 출발한 것이다. 그러나 이 젊은이들에게 아무리 흥미를 유발시키려 해도 결국 그 시도는 허무하게 끝났다.
스페인의 습관에 ‘시에스타’라는 것이다. 오후의 낮잠이다. 그러고 나서 회사로 돌아가 열심히 일하고 다시 집으로 달려와 샤워를 한다. 그리고 9시나 10시쯤에 다시 나와 오페라를 보거나 밖에서 외식을 하곤 한다. 이런 문화적 차이도 일본의 젊은이들에게는 조소의 대상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절망적인 기분에 빠졌다. 아무래도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호기심과 배우려는 마음을 상실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추세는 젊은이들에게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일본인에게 무엇을 제공해도 아무 반응을 나타내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많은 나라 사람들로부터 들었다. 무엇을 보여줘도 어디에 데려가도 어떤 사람을 만나도 전혀 감동하지 않는 것이다. 일본인에 대한 그런 좋지 않은 평가가 국제적으로 형성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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