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반원전 운동가인 고이데 히로아키 교토대 교수가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 강당에서 아이들에게 핵없는 세상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공동주최로 열린 초청 강연회에서 '공존의 과제, 탈핵-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수습은 가능한가'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이날 고이데 교수는 "원자력 이용으로 인해 방출되는 방사성 물질은 70년이 지난 지금도 인류에서 무독화할 힘이 없다"며 "100만 년에 걸쳐 생태계에서 계속 격리할 수밖에 없는 '독극물'이다. 한국과 일본에 그럴 만한 땅이 있나"고 원전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한국 인구 절반이 수도권에 몰려있는데 (후쿠시마 같은 사고가 나면) 서울도 오염 지대가 됩니다."
후쿠시마 원전을 중심으로 반경 수 백km에 걸친 일본 방사능 오염 지도와 축척이 비슷한 한국 지도가 겹쳐지자 청중들 사이에 탄식이 터져 나왔다. 전남 영광에 있는 한빛 원전에서 방사능 유출 사고가 났을 경우 그 여파가 서울까지 미치는 걸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탈핵 전문가인 고이데 히로아키가 원전 사고의 심각성을 한눈에 보여주는 '마법'이자, 한국인들에게 전하는 '경고'다.
히로아키는 원자핵공학자 출신으로 쿄토대학 원자로 실험소 조교로 일하며 40년 넘게 탈핵 운동을 펼쳐왔고 국내에도 <은폐된 원자력 핵의 진실><원자력의 진실><후쿠시마 사고 Q&A> 같은 책으로 널리 알려졌다.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첫 한국 강연회에 국내 탈핵 운동가뿐 아니라 시민 수 백명이 몰려든 이유다.
"광범위한 지역이 방사능 오염... 일본엔 가급적 놀러오지 마세요"
▲ 일본의 반원전 운동가인 고이데 히로아키 교토대 교수가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초청 강연회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방사능 오염 피해 지역 지도와 축척이 비슷한 한국 지도를 보여주며 "전남 영광에 있는 한빛 원전에서 방사능 유출 사고가 났을 경우 그 여파가 서울까지 미치는 걸로 나타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날 3시간 넘게 이어진 강연의 백미는 질의응답 시간이었다.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강의를 마친 히로아키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청중들의 질문에 모국의 치부를 드러내는 답변도 서슴지 않았다.
일본 관광을 가도 되느냐는 질문에 히로아키는 앞서 "일본 방사능 오염지도에서 보듯 광범위한 지역이 방사선 관리 구역으로 지정해야 할 수준"이라면서 "방사선 관리 구역은 나 같이 취급 인가를 받은 사람이 아니면 들어가선 안되는 지역인데 불가피하게 가야할 일이 아니면 가급적 안 갔으면 좋겠고 홋카이도나 규슈처럼 오염이 덜한 지역을 골라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대규모 방사능 유출 사태에도 일본인들이 지나치게 침착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히로아키는 "일본 사람은 바보"라면서 "일본 사람들은 권력에 약해서 국가가 안전하다고 말하면 진심으로 받아들이거나 의심은 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한다"면서 꼬집었다.
히로아키는 "일본 사람들이 더욱 더 현재 사태를 인식하고 분노하고 정부가 돌진하는 걸 멈추게 해야 하는데 바라는 대로 되지 않고 있다"면서 "지금 일본 국민 70%가 원전에 반대할 정도로 이제 깨닫기 시작했지만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 '공존의 과제, 탈핵' 고이데 히로아키 강연 제2부 일본 탈핵 전문가 고이데 히로아키(小出裕章·65) 일본 교토대 부교수가 처음 한국을 찾아 '탈핵' 강연회를 열었다. "원전 사고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보다 피해가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일본산 수산물 오염에 대한 질문엔 수입 규제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후쿠시마 사고 이전부터 이미 바닷물 방사능 오염이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지적했다.
히로아키는 "대기나 토양 오염은 세슘137만 주의하면 되지만 바다로 방출되는 오염수에 포함된 스트론튬90은 물에 녹기 쉽고 측정이 어려워 주의가 필요하다"면서 "한국에서 걱정하는 것도 당연하고 정부에서 일본 해산물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히로아키는 "미국과 옛 소련을 중심으로 대기권에 핵실험을 하면서 지구 전체가 이미 방사능에 오염된 상황"이라며 "한국과 일본도 이미 오염돼 있고 태평양에 후쿠시마가 덧칠해놓은 양은 대기권 핵실험의 몇 십 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일정 기준을 통과한 일본 식료품이 안전하다는 한국과 IAEA(국제원자력기구) 주장에 대해서도 "핵을 추진하고 싶은 사람들은 낮은 오염은 안전하다는 선전을 계속 해왔지만 피폭 양에 안전이란 건 없다"면서 "아무리 낮아도 비례해서 위험이 증가한다는 게 현재 학문의 도달점이고 원전, 방사능 관련해서 '안전', '안심', '괜찮다'는 말은 결코 사용해선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히로아키는 "일본 정부는 1kg당 100베크렐(1초에 1개 원자핵이 붕괴하며 방출하는 방사능 양)을 기준으로 삼고 있지만 90이나 50베크렐도 나름 위험하다"면서 "후쿠시마 사고 이전 일본 주식인 쌀은 대부분 0.1베크렐 밖에 오염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100베크렐 이하면 다 안전하다면서 사고 전보다 1000배나 더 위험한 걸 먹이려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핵 발전 없으면 정전 사태? 원전 모두 멈춰도 전기 부족 사태 없어"
▲ 김제남 정의당 의원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 강당에서 아이들에게 핵없는 세상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공동주최로 열린 고이데 히로아키 교토대 교수 초청 강연회에서 인사말을 마친 뒤 제자리로 향하고 있다. 김 의원은 인사말을 통해 "세계가 탈핵으로 갈 때 박근혜 정부는 원전 추가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며 "미래세대의 안전과 상관 없는 거꾸로 길을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히로아키는 일본 아베 정부가 궁극적으로 핵무기 보유를 위해 원전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한편 삼척, 영덕 등에 원전 추가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 박근혜 정부에도 쓴 소리를 잊지 않았다.
"지금 일본에 원전 1기도 안 움직이지만 전기 부족 사태는 없어요. 지금까지 핵 발전이 없으면 정전 사태가 난다는 정부 말만 믿었는데 말이죠. 지금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요. 이런 바람이 실현되면 일본은 핵에서 벗어나겠지만 전 세계 원전 430기가 멈춰도 문제가 끝나는 건 아니에요. 지금 즉각 원전 가동을 중단해도 이미 만든 히로시마 원자폭탄 1000만 개 분량의 죽음의 재가 사라지지 않아요. 앞으로 오랜 시간이 걸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탈핵을 달성할 수 없어요.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해야 해요."
'아이들에게 핵없는 세상을 위한 국회의원 연구모임(대표 김제남 의원)'과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공동대표 김영희 변호사)'에서 주최한 이날 강연은 '공존의 과제, 탈핵-후쿠시마 원전사고 수습은 가능한가'란 주제로 진행했다. 고이데 히로아키는 23일 오전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4층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어 이날 못 다한 얘기를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