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동지>(12회)
화생(化生)
동지의 정형화된 일상은 빠르게 허물어졌다. 그는 좀체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재희가 사고를 당한 후, 지금까지 자기 삶의 전부였던 수련과 제자들을 지도하는 일 모두에 동력을 상실한 그가 보인 가장 큰 변화는 말문을 닫은 것이었다. 동지는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장래의 진로에 대해 고민한 적이 없었다. 그의 삶의 방향은 유년기부터 스승과 함께 무극권을 수련하는 동안 저절로 굳어졌고, 그것은 그에게 자연스럽고 당연했다. 거기에는 스승의 유지를 받든다거나 스승의 꿈을 계승한다는 등의 거창한 수사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삶의 방향이 이미 설계된 채로 태어났다고 믿었으며, 그 믿음은 흔들림이 없었다.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수련하는 동안 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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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상승 확장하는 정신과 육체의 경계를 스스로 알아갈 때 마음속에 샘물처럼 솟아나는 희열은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세계였고, 동지는 그 세계에 일찍부터 깊이 몰입되어 있었다. 그런 충만한 삶에서 어느 날 지금껏 당연한 존재로만 여겼던 재희가 사라져버리자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삶의 중심이 되어왔던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빛깔을 잃고 말았다. 그가 전부라 여겼던 것들은 기실은 재희가 곁에 있을 때만이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재희가 더는 자기를 향해 상냥한 웃음을 보여주지 못하는 한은 다른 어떤 삶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비로소 명징하게 깨달아 알게 된 것이다. 동지는 하루 세 번 자기 안에 응축된 기력을 재희에게 투사했다. 그것은 십일 년 전 스승께서 자기에게 한 것과 같은 방법이었다. 초등학교 사 학년이었던 해의 어느 가을날,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저녁이었다. 스승께서는 휠체어에 앉아 제자의 몸에 마지막 한 방울의 진기까지 쏟아부은 뒤에 휠체어 아래로 무너져내렸다. 스승이 죽은 후 동지의 몸속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때 정신과 육체 양면에서 그가 경험한 변화는 타인에게 말로써 설명할 수 없는 그만의 내밀한 체험의 영역이었고, 그것이 지금 그가 재희에게 쏟는 노력의 근거이기도 했다. 인사동길과 광화문광장은 눈에 빤히 보이는 가까운 거리에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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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재희가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는 동지가 광화문광장에 관심 둘 일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광화문광장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버리고 말았다. 재희가 사고를 당하기 며칠 전에 동지는 처음으로 광화문광장에 가보았다. 그야말로 우연히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했던 것인데,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밤이면 수많은 촛불이 켜지는 현장이 궁금했는지도 몰랐다. 세종대왕 동상 앞에 꽤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그곳은 대략 스무 개쯤의 목제 거치대 위에 그림들을 올려놓은 그림 전시장이었다. 사람들이 그림 앞에 모여 서서 키득키득 웃어댔다. 구경꾼들은 교복 차림의 학생들과 젊은 남녀가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간혹 직장인으로 보이는 넥타이를 맨 사람도 섞여 있었다. 그림은 모두 사람의 몸에 쥐의 얼굴을 그렸거나, 반대로 쥐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그린 기괴하고 흉측한 모습이었는데,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의 얼굴은 당시의 최고 권력자였다. 그림의 양태는 대략 세 가지로 구분되었다. 한 가지는, 창으로 쥐의 옆구리를 찔러 사람의 얼굴이 비명을 지르거나, 철근으로 사람의 몸을 꿰뚫어서 쥐의 얼굴이 비명을 지르는 그림이었고, 다른 한 가지는 작두로 목을 썰어 쥐의 몸에서 사람의 목이 잘리거나, 사람의 몸에서 쥐의 목이 잘려 나가는 그림이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괴물과 한 여자가 온갖 희한한 자세로 섹스하는 그림이었는데, 여자의 얼굴은 권력자의 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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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기 전부터 사람들이 하나둘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대개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들과 중고등학생이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와 유모차에 아기를 실은 젊은 주부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해가 넘어가고부터는 넥타이를 맨 젊은이들과 중년 사내들까지 쏟아져 나와서 광장은 남녀노소와 신분을 막론하고 시간이 허락하는 모든 사람으로 들끓었다. 어둠이 내리자 광장은 촛불의 물결로 넘실대기 시작했다. 촛불에 둘러싸인 백색 전등을 빼꼭히 단 임시 무대가 유난히 밝은 빛을 뿜어냈다. 흔들리는 촛불과 백색 전등과 군중의 함성이 어우러져 일렁대는 모습은 마치 대형 오케스트라 악단이 교향악을 연주하거나 종교 지도자가 종교의식을 치르는 것 같은 장엄한 분위기마저 연출했다. 무대에서는 가수들이 번갈아 나와 노래를 부르고, 무대 주위에 설치한 대형 스크린에는 몇 개의 영상이 반복하여 돌아가고 있었다. 영상은 커다란 소 한 마리가 간신히 앞발을 세워 일어나려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 뒷다리까지 세우지 못하고 주저앉는 장면과 그 모습을 설명하는 사람과 뭔가를 호소하는 평범한 시민들의 인터뷰 장면이 반복하여 재생되었다. 영상 속에서 여자가 말했다. ‘밥상을 중국산이 점령해버린 것도 불안한데, 이제는 쇠고기와 라면까지도 못 먹는다면 이 땅에서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겠어요? 이제 한국이 너무나 실망스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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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없어서 외국으로 떠나고 싶어요!’ 어떤 여배우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느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먹겠어요.’라며 악을 쓰기도 했다. 재희는 불확실한 그대로 살아있었다. 여름을 넘기고 촛불이 사라진 뒤에도 동지는 밤이면 불현듯 광화문광장으로 달려가곤 했다. 그날 재희가 쓰러져 있었던 곳, 세종문화회관 옆 화단은 건물과 나무 그늘에 가려 불빛이 닿지 않았다. 그는 어둠 속에 서서 그날 사건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생각했다. 한 여성이 쓰러져 있다는 제보가 종로경찰서 119상황실에 접수된 시간은 밤 11시 50분으로 동지가 광화문광장에서 돌아와 인사동길에 도착한 시간과 같았다. 제보자는 쓰러진 여성을 발견하기 전에 사건 현장에서 한 여성과 두세 명의 남성이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사건 현장에서는 세종문화회관 옆 화단의 경계석에 묻은 희미한 핏자국 외의 어떤 도구나 지문도 발견되지 않았다. 제보자의 말을 근거로 말다툼했다는 남자들을 범인으로 추정하더라도 그들을 찾아낼 단서는 찾지 못한 것이다. 무슨 이유에선지 119상황일지에는 제보자의 신원마저 남아 있지 않았다. 당시의 보도에 따르면, 5월 31일 밤, 재희가 사고를 당했던 시간에 촛불시위대는 경찰의 차단선을 뚫고 청와대 부근인 내자・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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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거리와 동십자 사거리까지 진출했다. 시위대는 경찰을 폭행하고 경찰 버스에 불을 질렀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처음으로 물대포를 쏘았다. 재희가 사고를 당한 몇 시간 후인 6월 1일 새벽 2시 30분경에는 동십자 사거리에서 여대생 하나가 전경의 군홧발에 밟히는 일이 벌어졌고, 그 후 며칠 동안 언론은 온통 이 문제를 다루느라 시끄러웠다. 재희가 당한 사고는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서 발생한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묻혀갔다.
세종문화회관 옆 화단, 그 장소를 노려보는 동지의 눈에 분노가 떠올랐다. 시위대에 속한 사람일까? 아니면 그들과 반대편의 사람일까? 길 교수의 말을 빌리면, 두 집단은 서로 무한히 증오하는 사이다. 무한 증오···· 그 무한 증오 사이에 연루되었다면, 그런 돌발 사고도 가능한 것일까? 경찰과 시위대는 광장에서 청와대 쪽으로 이동한 뒤라고는 하지만 세상일이란 사람의 합리적인 추리를 종종 벗어나기도 한다. 정황상 맞아떨어지지 않더라도 시위 진압 경찰에게 폭행당했을 가능성이나 시위와 관련 없는 우발적 사건일 가능성까지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생각은 거기서 한 발도 더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창수와 의논하고 싶었지만 언제부턴가 그가 안 보였다. 그가 언제부터 일묵서예에 나타나지 않았는지는 모르나, 대략 재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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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를 당한 후부터 못 본 것 같았다.
말문을 닫은 후 동지의 내면은 빠르게 변해갔다. 재희가 왜 그런 불행한 일을 당했는지, 범인은 누구인지 모르는 데서 오는 분노가 고도의 정신 수련을 통해 선의만이 존재했던 내면에 들어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세상의 색깔이 변했다. 하늘과 산과 나무 같은 자연의 색깔뿐 아니라 건물이나 도로 등 온갖 인공물의 색깔까지도 전과는 달라 보였다. 마치 완성된 그림 위에 황색 계열의 물감을 옅게 타서 커다란 붓에 적셔 한 터치로 덧칠한 것 같은 차이였다. 불가에서는 중생의 태어남을 아홉 가지로 분류한다. 그중 사람과 동물의 생성은 태생, 난생, 화생 중에 있다. 태생은 태를 통해 태어나는 사람과 동물이며, 난생은 알에서 태어나는 조류를 말한다. 화생이란 알에서 나방으로, 나방에서 번데기로, 다시 번데기의 껍질을 벗고서야 태어나는 나비와 같은 부류를 이르는 말이다. 동지는 서른두 살이던 해에 화생이라 할 만큼 깊은 내면의 변화를, 그를 사랑하는 누구도 모르는 사이에, 혼자 겪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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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소설의 구성을 잠깐 설명하자면, 두 가지 줄거리가 병행하다가 마지막에 연결됩니다. 하나는 동지와 재희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 문제를 포함한 이념 대결의 장입니다. 동지는 이념 문제에는 관심이 없지만 마지막 부분에 불가피하게 끌려들어 갑니다.
동지는 표기자의 악의적인 거짓말이 발단이 되어 재희의 진심에 의문을 갖기 시작하고, 그로 인해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게되죠. 그런 작은 불씨들의 작용으로 결국 재희가 다치게 되기까지 가는 위기 단계가 현 단계입니다.
재희가 다친 후 동지는 수련을 등한시 하게되지만 어떤 계기로 다시 수련에 전념, 어느 순간 유체이탈을 하게 되고, 이를 통해 과거로 돌아가 그날 사고의 현장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죠. 그러던 중 현 영혼이 유체이탈하여 과거의 몸에 들어간다면 사고 발생 자체를 막을 수 있다고도 믿게 됩니다. 지금 일어나는 이상한 현상은 이런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결과물로서 나중에 밝혀집니다. 동지는 유체이탈을 통해 그날의 사고 현장을 보게 되고, 그 범인과 다른 몇 사람을 단죄하는 과정에서 이념 대결 가운데로 들어가고, 동지는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작가의 한 마디를 읽으니 조금 졸가리가 잡히는 듯 합니다. 광화문에 서 본지 오래되었는데, 촛불시위 현장을 실감있게 목격하게 되는군요. 무극권의 세계를 통괄한 자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나라의 수도로 자리한지 600여년이 지난 역사의 한양 서울, 그 도시의 중심이랄 수 있는 광화문 거리, 1981년부터 86년까지 5년 동안 광화문과 북한산을 바라볼 수 있늑 곳에서 일한 적이 있었지요. 당시는 개발연대의 기계장치를 작동시키는 정부의 한 부서에서 민족 중흥과 국가근대화라는 가슴 뿌듯한 행진에 참여한다는 자부심으로 광화문 광장과 거리를 걷고는 했어요. 그런데 30년 후의 광화문 광장은 미치광이와도 같은 사이비 진보, 얼굴을 가린 종북 좌빨의 무리가 광란의 촛불을 불태웠지요. 세월호 음모의 시체 장사를 하는 썩은 내음이 진동했구요.
그런 오염된 격동의 역사를 소설의 한 축으로 써가고 있군요. 어떤 내용으로 형상화될지 무척이나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쇠를 녹이고있는 단계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