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MC
전 광 용
경구는 양쪽 다리 사이에 머리를 틀어박고 참나무 판에 날도끼질로 뚫어놓은 타원형 구멍으로 아득한 밑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다.
보현암(普賢庵) 산문(山門) 건너 아름드리 은행나무 밑에 있는 낡은 측간(厠 間)¹에서다.
익살꾸러기 뒷집 노인의 징글맞게 털어놓던 어릴 때 이야기가 불현듯 머리에 떠올랐다. 용문산 깊은 골짜기 다래 넝쿨 속에서 찾아낸 낡은 절 뒷간엘 들어가니, 아침에 떨어뜨린 똥 덩어리가 저물녘에야 보이지 않게 까마득한 한끝 바닥에 닿는 소리가 간신히 들리더라는 이야기이다.
일터의 이권(利權)을 싸고도는 분쟁이 복잡하게 벌어진 이래 그에게는 세상이 온통 똥으로만 보였다.
그 소란한 둘레를 벗어나 모든 것을 잠시 잊으려고 하여도 이쯤 생각이 꼬리를 물고 치켜드니 허사가 되고 말았다.
무슨 영문인지 공교롭게도 경구의 아명(兒名)은 똥돌이었다.
삼대 외독자로 내려오는 집안에서 칠순에 첫 손자를 본 할아버지가 더러운 것에 연분을 걸어 명이 길라는 소원으로 일부러 천하게 불러온 이름이었다.
요즈막 그에게는 별달리 깊은 뜻도 없이 지난날에 불려졌던 젖냄새 풍기는 그 이름마저도 자기가 하는 일에 어떤 숙명적인 인과 관계라도 있는 것만 같게 생각되어지는 것이었다.
경구는 휴전 협정이 성립되기 이전에 아직 일선 지구나 다름없는 서울로 올라왔다.
그것은 그가 소속되어 있는 미군 부대가 서울 근교로 이동된 탓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멀지 않은 장래에 환도될 가능성이 엿보인다는 풍설에서 경구 자신이 품고 있는 사업욕이 그의 복귀를 더 다급하게 재촉하였던 것이다.
경구는 미군 부대의 트럭 운전수였다. 좀더 그의 이력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는 사변 나던 날까지 시청 청소차를 몰고 있었다.
말하자면 청소 작업이 그의 생활을 이어주는 일자리였고 그 청소차 덕분으로 그는 1·4 후퇴 시에도 비교적 무난히 피난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전후 관계가 그 추하고 하찮은 것 같게 보이는 일자리가 그의 생명과 연결되어 어떤 집착이나 매력 같은 것까지도 그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 이었다.
폐허가 된 서울 거리는 음산하고 쓸쓸하였다. 사람의 그림자는 드물고 군용차만이 제 속력을 다하여 가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이 속에서 경구는 고된 줄 모르고 일을 하였다.
새봄이 되자, 사람은 날로 늘어갔고, 깨끗이 씻기었던 거리는 더러워져갔다.
오백 년래 오래간만에 맑아보았던 청계천은 다시 거무튀튀하게 흐려 구린내를 내뿜기 시작하였다.
환도 얼마 후 미군 부대에서 나온 경구는 폭격에 파괴된 차대(車臺)를 이끌어다가 트럭 하나를 꾸미었다. 오랜 숙망이었던 자기 차를 처음 마련해본 것이다.
이삿짐 날라 들이는 일에 한몫 보다가 그것이 뜸하여지자 다시 돌아 붙은 일이 분뇨차(糞尿車)를 몰고 다니는 청소작업이었다.
자기 차와 소위 모찌꼬미² 차를 합쳐서 화물차 세 대가 움직였다.
그것이 올봄에 신형 GMC 다섯 대를 새로 대여(貸與)받아 사업은 한층 흥성 하여졌다.
이제야 경구는 운전대를 놓고 사업장에 붙어 있어야만 하였다. 그것뿐만 아니라, 시청이니 경찰서니 하는 관계 당국과의 외부적 접촉 관계로 하루 종일 바쁜 시간을 보내야만 하였다.
‘GMC’ 그것은 하나의 에피소드를 남긴 경구의 별명이었다.
대구 동촌 비행장 미군 부대에 소속되어 있던 때의 일이다.
경구가 몰고 있던 트럭과 미군 장교가 탄 지프차가 좁은 길을 오고 가며 스칠 때 지프차가 한쪽으로 비키다가 논두렁에 뒷바퀴가 빠져버렸다.
엔진이 얼어붙을 정도로 찬 날씨였다.
트럭의 크레인을 풀어 간신히 지프차를 길 위까지 끌어 올렸으나 지프차의 엔진이 말을 듣지 않았다.
조금만 고장 나도 차를 모터 풀에 집어넣지 않으면 현장에 구급차가 와서 고장 차를 끌고 가게 마련인 그들은 당황하여 무전기를 가지고 본대에 연락하느라고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경구는 장교 차의 기관부 뚜껑을 열어젖혀놓고 운전대에 들어가 스위치를 넣고 액셀레이터를 밟아보았다.
꿈적 소식이 없다. 거기에다 배터리의 힘이 퍽 약해져 있었다. 금테 안경 속의 장교의 눈은 호기심에 가득 차 경구의 동작만을 유심히 바라다보고 있다.
푹 내려쓴 방한모 속에서 흰 이빨과 눈알만이 유달리 표 나는 깜둥이 운전수는 진찰실에 들어온 환자의 표정처럼 경구의 움직임에 신뢰와 의아가 뒤섞인 눈길을 던지면서 그의 옆을 지키고 있다.
드라이버, 잭, 하고 경구가 도구의 이름을 부르는 대로 깜둥이는 잽싸게 잡은 것들을 들어다 섬기고 있다.
경구는 손이 곱아서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을 억지를 써가면서 엔진 플러그를 하나씩 뽑아서 전기 접속 면을 쇠붙이로 긁어서 구리의 새 금속빛이 나오게 해가지고 입김으로 후 불어 제자리에 꽂았다.
얼마 동안을 승강이를 하다가 차는 겨우 발동이 걸려졌다.
경구는 지프차의 커다란 윗뚜껑을 닫아걸고는 차체 앞쪽을 덥석 들었다가 콱 놓으면서 “오케이!” 하고 통쾌한 웃음을 던졌다.
초조하게 떨고 있던 장교는 “뎅큐”를 계속 연발하였다.
“저스트 라이크 GMC (꼭 GMC 같군).”
장교가 악수를 하면서 남기고 간 이 마지막 말이 경구에게 주어진 GMC의 하나의 연유였다.
시청 위생과의 담당 주사로 근무하던 이헌도 이날 트럭에 같이 타고 있었다.
이헌의 입을 통하여 이 이야기는 후일 경구의 작업장까지 퍼져서 운전수, 인부 할 것 없이 모두들 경구를 GMC라고 불렀다.
이헌과의 지금 현재의 미묘한 관계도 어쩌면 경구 자신이 일부러 씨를 뿌려놓은 것 같기만도 한 일이었다.
경구는 대구 시내를 차를 몰고 가다가 우연히 이헌을 발견하였다. 그 꼴이란 말이 아니어서 경구의 알선으로 이헌은 곧 경구의 일하는 미군 부대에 근무하게 됐다.
그 후 이헌은 부산으로 내려갔다가 정부 복귀와 함께 시청의 옛자리로 돌아왔다.
이헌과 자기의 사이는 청소 작업을 통한 업무적인 연관 이상에 어떤 면에 있어서는 인간적인 정의가 상통하는 관계라고 함이 더 옳을 것이라고 경구는 지금도 생각하는 것이었다.
환도 직후의 아쉬운 살림에 경구는 이헌을 위하여 물질적인 도움은 물론, 접대의 자리마다 술상에는 거의 같이 앉았던 것이다.
그 이헌이 지금 이 청소 작업의 이권을 사이에 두고 경구와 최후의 각축을 겨루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이제는 직장에 사표까지 내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겠노라고 덤벼들고 있다.
경구는 장덩이를 먹여놓은 뱀에게 발뒤꿈치를 물린 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었던 벽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신 형, 좋도록 해봅시다. 잘되겠지요.”
그저께 저녁 술자리에 같이 앉아 잔을 주고받으면서도 이헌이 끝내 자기의 진심을 털어놓지 않고 우물쭈물하면서 경구의 속만 떠보려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얄미워져 경구는 잔을 상 위에 내던진 채 자리를 일어서고 말았다.
작달막하고 다부진 몸뚱이, 그러나 흰 얼굴에 가늘고 오뚝한 코, 탁 트인 목소리, 술 잘 마시고 계집과 농탕 잘 치는 그 이헌이 이러한 간계를 부리리라고는 정말 생각하지 못하였다.
신문에서는 몇 번이나 청소 작업이 큰 노다지나 되는 것처럼 떠들어댔기에 기자들은 매일같이 청소차의 차고로 들락거리고 있다.
그것도 이름이 버젓한 일간 신문의 기자라면 몰라도, 그런 신문이 있는가 없는가도 모를 것이 아니면 주간이니 월간이니 하는 나부랭이 신문 광고원까지도 제법 기자입네 하고 명함을 내대는 데는 이제 견디다 못하여 구역질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연말이면 기름이니 부속품이니 하는 거래처의 대차 관계도 일단은 청산해야 하고, 관계 관청에 대한 인사치레도 차려야 하는 궁색한 시기에 엎친 데 덮쳐서 벌써 국장이니 주임이니 하는 축에 바쁜 구멍만 메우는 데도 마누라를 동원하여 곗돈을 끌어다가 겨우 땜질하는 형편이었다.
약간이라도 힘이 될 만한 고위층은 모조리 찾아다녔다. 거충³으로는 염려 없다는 시원한 대답들을 하면서도 책을 잡히지 않으려고 정확한 언질을 주지 않는다.
하룻밤을 자고 나면 상대편에서는 또 어느 큰 줄을 잡아 움직였다느니 하는 정 보가 날아들어오곤 하였다.
경구는 궁여지책으로 고향 출신의 장 의원을 찾았다. 평소 안면 정도의 인사는 있었고, 또 그가 여당으로 원내에서도 알심 있는 자리에서 활약한다기에 심정이나 마음 놓고 토로하고 싶어서였다.
아침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응접실에서 오래 순번을 기다려야만 했다.
만나서의 첫 이야기가 똥장수의 이권이고 보니 경구도 잘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 겸연쩍은 태도로 말을 시작했다.
“나는 해방 십 년에 똥차만을 끌어온 사람입니다. 실력으로 싸워왔습니다.”
장 의원은 똥차 이야기에 약간 냉소 어린 웃음을 흘렸으나 표정이 다시 가다듬어져가는 것을 보고 경구는 말을 이었다.
청소 계약 교체기를 계기로 소위 권력층을 배경으로 하여 실지 일할 수도 없는 오륙 명이 나섰고, 그중에서도 최고의 빽과 거기에 청소 계통 사무 절차의 이면을 알고 있는 이헌이, 십여 년의 경험과 제 주먹 실력만을 믿고 현재 충실히 일하고 있는 자기를 밀치려 든다는 사건의 대충 경위를, 격하는 홍분을 참아가면서 조리 있게 설명하였다.
“어떻게 해봅시다”
하는, 장 의원의 대답에 약간의 힘을 얻으면서 경구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무리 세상이 다 썩어간다 할지라도 십 년 적공의 실적은 봐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현관을 나선 경구는 이 마지막 말은 공연히 덧붙였다는 후회가 없지 않았으나 다 털어놓고 보니 가슴은 오히려 후련했다.
새벽녘 에 차고에서 인부 한 사람이 헐떡이며 찾아왔다.
분뇨차가 후미끼리⁴에서 기차와 충돌하였다는 것이었다.
경구는 홧김에 폭음한 간밤의 취기가 아직도 남아 있는 몽롱한 머리로 현장에 뛰어갔다.
다 타버린 차체 밑에 까만 고깃덩이 같은 해골이 하나 깔렸고, 좀 떨어진 곳에 반이나 타다 남은 송장이 새우처럼 꼬부린 채 뒹굴어지고 있다.
훤히 동이 터왔다. 그러나 가슴속은 까마득히 막혀버렸다. 어떻게 손을 댈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현장 검증이 끝나기를 기다려야 하겠기에 부근 목롯집⁵에 들어가 닥지는 대로 술을 들이켰다.
시체의 매장, 유가족의 처리 문제, 그 밖에 검찰국의 소환, 거의 정신을 잃은 복잡한 며칠을 보냈다.
소실된 대여 차의 보상 문제가 가장 큰 일거리로 남았고, 현장 증거에 대한 발언할 사람도 남기지 않고 죽어간 인명에 관한 문제는 자동차 문제보다 오히 려 간단하였다.
타버린 차는 그 넘버와 함께 완전히 없어진 것이니 문서상의 처리만을 치르면 될 것이 아니냐고 거듭 절충하였으나, 공용물은 기어코 원상 복구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막무가내였다.
며칠 만에 차고에 나타난 경구는 기름 냄새 풍기는 작업복을 걸치고 산소 땜질을 하고 있다. 보디〔車臺〕만은 간신히 꾸몄으나 이젠 여기에 엔진을 얹고, 타이어를 끼고 하는 부속품이 하나씩 장만되어야만 했다.
다른 운전수와 인부들도 모두 한데 얼려 차를 꾸미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춘식이는 죽어서 안 돌아오지 마는 자동차는 살아난데이.”
전라도 출신의 인부 용팔이의 말이다. 고향에서 농사를 지었으나 비료 값도 되지 않는다고 벌써 가을 제철에 마을을 떠나 서울이라고 왔던 것이 친구 하나를 잃어버리고 거의 울상이 되어 가도 오도 못하고 있는 그였다.
“잘 죽었지, 살았어야 밤낮 똥통만 메라는 팔자에 편안하게 잘 갔지.”
옆의 인부가 말을 받았다.
“아따, 이 사람아. 젊은 색시가 불쌍하지 않아?”
장례 때 올라왔던, 아직 신혼 초인 고인의 미망인을 보았던 노총각이 슬그머니 곁들었다.
“그라문 늙은 총각이 물려받지.”
폭소가 한꺼번에 터졌다. 경구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아무튼 이번 싸움은 기어코 이겨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치밀었다. 자기가 손을 떼고 나면 인부, 운전수 할 것 없이 이 작업장의 관계자들은 거의 다 바뀌어질 것은 틀림없는 일이라 싶었다.
내일이 그믐이라는데 이들에게 지급하여야 할 임금은 전연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아침에 마누라더러 아무 급전이라도 돌려오라고 다짐을 하고 나왔으나 어 떻게 되었는지 그 결과가 궁금하였다.
경구는 산소대와 차광판(遮光板)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얼굴의 땀을 씻으면서 담배를 피워 물고선 갑째로 인부들 쪽으로 돌려주었다. 극도에 달한 이 형편에 그들의 웃음은 짜증보다 오히려 괴로웠다.
저물녘에 그들 한 패를 휘몰아가지고 차고 옆 선술집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한번 술 먹고픈 대로 먹어보아.”
쭉 둘러앉은 얼굴들을 훑어보며 허탈한 웃음으로 소리를 쳤다.
한 잔 들고 난 술잔을 차례로 돌렸다.
술이 없으면 이런 때는 속이 그대로 타버리기라도 할 것만 같았다.
마누라는 기어코 × ×˙ 대 측근의 비서나 다름없는 김 씨 집을 찾아갔었다고 한다.
김 씨의 아내와는 전부터 비교적 가까운 사이라고는 하나, 경구는 거기까지는 비굴하고 싶지 않아서 이번 일이 막고비에 들어섰으면서도 마누라의 의사를 끝까지 꺾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질식할 정도로 막혀만 가는 일의 사태를 옆에서 보고만 있던 마누라는 최후의 용기를 얻어 남편 몰래 행동했던 것이었다. 김 씨의 말이라면 어지간한 장관의 이야기보다 낫다는 것이라고 우겨가며 기어코 찾아간 모양이다.
그러나 아내는 시무룩해 풀이 죽어 돌아왔었다.
연말 인사로 사과 한 궤짝을 들고 갔더니 의외에도 예전에 경구와 함께 집에도 자주 들렀던 이헌이 문간에 앉아서 선물을 기록하여가며 접수를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몇 마디의 이야기 끝에 김씨와 이헌이 동서라는 내용을 듣고는 거의 현기증을 일으키고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글쎄, 큰 빽이란 그거지 뭐요.”
경구는 그저 콧방귀만 치며 듣고 있었다.
어떤 수단 방법도 가리지 않고 이번 일에는 꼭 이겨야만 할 것 같았다.
이것저것 뒷줄을 잡아서 끌어댄다는 것이 오히려 비굴한 시합 같이만 여겨 졌다.
이헌과 직접 만나 일대일로 최후의 담판을 하리라고 결심하였다.
평생의 사업 으로 계획 했던 꿈이 송두리째 깨뜨려지는 찰나였다.
엷은 감상 같은 것이 머릿속을 스치면서 아득한 옛 추억이 안개처럼 서려갔다.
중학교 졸업반에서의 일이었다. 일본 수학여행 출발을 사흘 앞둔 시윌 초순이었다. 졸업할 때에 입을 신사복을 미리 지어준 누님의 성의가 고마워 자랑스레 거리에 처음 입고 나섰다.
지금 같으면 아무것도 아닌 간단한 일이었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은 학교를 그만두게 되는 도화선이 되었다. 그 후에 시작된 것이 자동차 학교를 거친 운전수요, 해방과 더불어 잡아 쥔 것이 청소차와의 직업적 연분이었다.
이러한 지난날의 자신에 대한 불충실했던 자책은 그 이후의 경구의 생활 전체를 통하여 자신에게 성실을 채찍질하는 자학(自虐)으로 변하였던 것이다.
다방에서 이헌과 마주 앉은 경구는 지난 일에 대한 배신 같은 것에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이 형, 지금 그 일을 내가 하지 않고 딴 사람이 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남이 전력을 다하여 하고 있는 일을 계약의 교체기를 틈타서 제삼자의 세력을 배경으로 하여 탈취하려는 것은 얼마나 부당한 일이오?”
경구는 될 수 있는 대로 침착하려 하였으나 홍분은 목소리를 떨리게 하였다.
“이제 이 마당에서야 할 수 있어요? 일이 다 결말이 났는데.”
경구의 충혈된 눈초리 앞에 앉아 있는 이헌은 부드러운 어조로 태연한 태도를 차리나 불안한 모습이 얼굴 전면을 스치고 있다.
“다 결말이 나다니?”
“지금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오는 길이오.”
“응!”
경구는 일이 비틀어지기는 쉬우리라고 예측은 하였으나 이렇게 쉽게 거꾸러질 줄은 몰랐다.
담당 주임은 정의에 입각하여 일을 처리하겠노라고 장담을 했고, 국장도 실력 있는 경험자가 계속하겠다는데 누가 마다겠느냐고 자신 있게 언명하기에 어느 정도의 신뢰는 가졌던 것이다.
자기로서는 전력을 다한 일이지만 너무도 시시하게 승패가 결정된 것만 같았다.
“그래, 이렇게까지 친구를 삶아 먹고도 그 똥 장사를 꼭 해야 되겠어?”
노기를 띤 어조였다.
“살자니 별수 있어, 나도 심부름이야. 실권은 배후의 사람들이 쥐고 있는 거야.”
“에이, 똥 같은 자식아, 이놈아 제 쓸개로 살아야지.”
경구는 이헌의 가슴팍을 콱 질러놓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이렇게 될 것이라면 그 소실된 자동차는 보상할 것 없이 그대로 버티었을 것이라는 후회가 거센 분노와 함께 치밀었다:
“에이, 똥 같은 자식들. 똥째로 다 먹어라.”
내뱉듯이 누구에게라고 할 것 없이 외치고는 경찰서로 뛰어갔다.
현물 인계, 금전의 대차 관계까지 완전히 끝났으나 경구는 이대로 단념할 수는 없었다. 청춘을 송두리째 바친 직장이었다. 미련이 한꺼번에 북받쳐 올랐다.
지금 경구에게 남은 것은 현장 사고 이후 풍파를 겪는 동안의 적지 않은 부채와 자기 소유였던 GMC 한 대만이었다.
이헌이 새로 맡아 첫 일을 시작하는 날 아침 일찍 경구는 자기의 GMC를 몰고 현장에 나섰다.
이헌은 가죽 잠바에 방학모를 쓰고 차 배치를 하고 있었다. 경구는 차를 세우고 내려서 이헌의 앞에 바싹 다가섰다.
“내 차는 어느 쪽으로 배차되는 거야?”
억지로 부드럽게 하려는 노력이 힘 들었다.
어안이 벙벙한 이헌은 말을 못 하고 당황하여 머뭇거리고 있다.
“나도 똑같은 임금을 받고 일을 할 테다. 빨리 배치를 해줘.”
“가만……”
이헌은 사무소 쪽으로 슬금슬금 걸어가고 있다. 인부들은 구경거리나 난 듯이 주시하고 있다. 낯선 얼굴들도 있으나 아직은 그들을 다 갈아 붙이지는 못한 모양이다.
“이 자식아, 네 심장에는 철판을 둘렀니? 총알도 구멍을 뚫지 못한다던? 그러지 말고 같이 살자꾸나.”
성낸 짐승 같은 고함 소리였다. 이헌은 새파랗게 질렸다. 인부들이 비웃는 것 같은 속닥거림에 얼굴이 간지러웠다.
“아무데루나 가!”
거의 죽어가는 목소리였다.
“데데한 자식, 중앙청 변소로 간다.”
침을 탁 뱉고 경구는 차에 올라 엔진을 걸었다.
자식을 굴복시킨 것 같은 승리감이 치밀었다가 가벼운 서러움이 터져 나왔다. 누구를 대상으로 한 원망에 찬 서러움인지는 자신도 분간하지 못하였다.
경험 없는 저것들이 나자빠지면 일후에는 자기가 기어코 다시 맡아 하리라고 마음을 다져 먹는 것이었다.
광화문 네거리에 다다르자, 도심지의 분뇨는 밤에라야 푸게 되어 있는 것을 그제야 생각하고 혼자 쓴웃음을 지으면서 중앙청 앞에서 안국동 쪽으로 차를 꺾었다.
-끝-
2016년 7월 5일 읽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