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보령문학 제19호 시5편-[가시꽃],[못],[징검다리],[그물 벗어난 은빛 물고기],[무덤 위에서 노래하는 산까치],[대천 어항 바다]
가시꽃
김윤자
꽃은 밝음에서 피고 가시는 어둠에서 핍니다.
가시는 아무 죄 없이 잎사귀 뒤에 숨어 핍니다.
꽃은 피었다가 접는데
가시는 그리도 마음대로 못합니다.
한번 피어난 슬픔이 접히기는커녕
자꾸만 테를 더하여 굵어집니다.
가시는 슬픔의 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가시꽃을 품는 일입니다.
꽃을 사랑하기는 쉬우나
가시를 사랑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꽃은 품고 가면서
가시꽃은 떨구고 갑니다.
누군가 꽃이 되고, 누군가 가시가 되는 것을
어느 날 꽃이 되고, 어느 날 가시가 되는 것을
시를 쓴다는 것은 가시꽃을 피우는 일입니다.
시를 사랑하기는 쉬우나
시를 꽃 피우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시의 가시꽃 속엔 아픈 가시만큼
시인의 눈물고운 혼이 살아 숨 쉽니다.
참된 시를 쓴다는 것은
화려한 꽃잎과 무성한 잎사귀를 피움만이 아닙니다.
꽃잎 뒤에 숨겨진 가시 봉오리를 어루만지며
아리고 시린 삶을 가시꽃으로 피워냄까지입니다.
고향 들녘의 하얀 찔레꽃 덤불이 그립습니다.
유년 시절, 그때는 가시가 미웠습니다.
세상을 알기 전에는 꽃만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얀 찔레꽃 뒤에, 파란 잎사귀 뒤에
아픔으로 숨긴 가시꽃을
그때는 보려 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이 어려서는 꽃만 좋았는데 지금은 아닙니다.
꽃은 꽃이어서 곱고, 가시는 서러워서 곱습니다.
전설처럼 사라져버린 그 덤불 속에서
하얀 찔레꽃 뒤에 숨어 피어나던
기나긴 세월 모진 슬픔의 가시꽃이 그립습니다.
가시꽃-보령문학 2021년 제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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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김윤자
내 안에서 피는 가시 하나
강물 깊은 어머니 가슴에
못으로 박히는 줄
어미가 되어서야 알았어라
실못 대못 소나기 내리듯 꽂힐 때
포말지어 밀려오는 파동으로
피울음 멍울꽃 피는 줄
어미가 되어서야 알았어라
내 안에서 뜨는 샛별 하나
어머니 가슴 데우는 화롯불 되어
박힌 못 사그라지는 줄
어미가 되어서야 알았어라
혜성처럼 떠올라 밤하늘 빛낼 때
못 진 자리 은하수 꽃무리 되어
찬란한 보석꽃 피는 줄
어미가 되어서야 알았어라
못-조선문학 2001년 1월호,시집<별 하나 꽃불 피우다>,문학하동 2008년 제6집,보령문학 2021년 제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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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
김윤자
누군가 거친 개울 물살로 건너가는 길이 힘겨울
때
반듯한 돌이 되어 누군가의 징검다리가 되고 싶
네
돌이 작아 물속에 잠기면 건널 사람 발 젖을 테
고
돌이 커서 높이 솟으면 건널 사람 넘어질지도 몰
라
누군가 밟고 지나갈 때 믿음의 등불을 밝혀 줄거
야
개울 속에 단단히 돌부리 박아 물살에 요동침 없
이
잠기거나, 불쑥 일어섬 없이 묵묵히 자리 지킬거
야
물 건너 세상이 그리 평탄치만은 않음도 알려줘야
지
보이지않는 풀섶 깊은 곳에 더러 웅덩이도 있으니
까
징검다리-시집 <별 하나 꽃불 피우다>,시와 글사랑 2007년 8월호,보령문학 2021년 제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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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 벗어난 은빛 물고기
김윤자
어부는 날마다 깊은 물에 그물을 치는데
치어는 작아서 나가고, 성어는 날쌔서 나가고
어부는 다시 넓고 촘촘한 그물을 짜는데
망둥이까지 걸리도록, 새나가지 못하도록
그물 밑으로, 옆으로 용케 새나가는 저 물고기
아무리 넓은 그물을 던져도, 촘촘한 그물을 던져도
몇 마리쯤 빠져나가는 고기가 있음을 어부는 안다.
세월은 끝없는 그물
내가 한발 나가면 두발 앞서 나가 가로막는 그물
어부는 이미 날 놓아주었는데 발목을 잡는 그물
맴을 그리던 범주, 벗어나기 힘든 그 한계 수역
촘촘하고 넓은 그물 안에서
수학자의 이지로 함수그래프를 그리며
날마다 그물을 민다.
영근 비늘을 꿈꾸며, 큰 지느러미의 유영을 꿈꾸며
더 넓은 강으로, 더 깊은 바다로
그물도 비껴가는 심연의 바다에서
내 영혼 살찌워
산호 숲 밝히는 은빛 물고기가 되리라
그물 벗어난 은빛 물고기-시집 <별 하나 꽃불 피우다>,보령문학 2021년 제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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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위에서 노래하는 산까치
김윤자
산길 돌아갈 때
나란히 무덤 두 개가 있습니다.
담장 같이 가장자리엔
개나리와 진달래로 울을 쳐 놓아
봄이면 아름다운 꽃동산인양 보입니다.
터를 그렇게 넓게 차지한 것은 아닌데
잔디를 심어 가지런히 깎아 놓은 모습이
어느 가정집 정원인양 보입니다.
그곳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참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면서도
한 번도 가까이 가 보거나
발을 들여 놓는 일이 없습니다.
행여 헛발질이라도 하여
그 곁에 들어갈까 몸을 사립니다.
산까치는 무덤 위를 넘나들며
신나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거기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면서
마냥 즐겁게 지저귑니다.
그저 빛 고운 꽃동산으로
평화로운 정원으로 보이나 봅니다.
산에서 밤낮 없이 살면서
주검이 묻힌 무덤을 모르는
산까치가 부럽습니다.
무덤 속엔 또 다른
행복한 세상이 이어지나 봅니다.
그러기에 비가 내리는 스산한 날에도
저리 고운 노래가 퍼지겠지요
내사 후일에 그곳에 갈 때
저 산까치 노래 따라 흥얼거리면
두렵지 않게 갈듯 싶습니다.
무덤 위에서 노래하는 산까치-보령문학 2021년 제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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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 어항 바다
김윤자
아늑한 해변 오붓하게 모여 사는
순박한 바다 사람들이
어선의 풍요를 불러 가득 차린 좌판에서
헛손질로 하루가 휘돌아 나가도
파도처럼 웃는 꿈 마당
그 천상을 울리는 청초한 곡조가
내 핏줄을 따라 출렁거린다.
그 곁에서 천진하게 사는
갯바닥의 아기 게들이 기어와
내 옆구리를 간질이면
그래 가자, 네가 사는 집에도 가보자
바위 틈 좁은 물목을 따라 간
그곳, 겨우 움츠린 발로 기어 들어가는
숨 막히는 바늘구멍 집 앞에서
그래도 좋아라
꼬물꼬물 흔들어대는 애절한 발가락
능쟁이 게들의 눈물고운 행복에
나는 모난 뼈를 다듬는다.
내 아버지는, 내 어머니는
속 깊은 어항 바다 갯벌에 나를 심으셨다.
순진하고 정직한 바다가
어촌을 다스리는 그 고결한 삶의 무대는
어린 자식들을 올곧게 키우기에
가장 훌륭한 광장이었다.
사슴 눈으로 달려오는 밀물과
사자 발로 뛰어가는 썰물
그 장엄한 바다의 시계 앞에서
순리를 거스르지 말자고
침착하게 때를 기다리는
어촌의 넓은 아량, 어부의 눈부신 지혜
덩달아 닮아가는
바다 생명들 게, 조개, 망둥어, 갯고동
가슴팍 내어주는 갯벌에서
등줄기 열어주는 갯바위에서
나는 그들과 하나 되어 뛰놀며
세상으로 나아가는 반듯한 지도를 찾았다.
그들은 나의 스승이었다.
살다가, 지친 언덕에서
고단한 영혼이 바람에 나부낄 때면
그 갯벌이, 그 천진한 바다 생명들이
내 쓸쓸한 가슴에
동그란 평화 가득 채워놓고
됐다, 됐다 다독이며 화사하게 웃는다.
내 몸 속에는 늘
대천 어항 바다가 샛별로 뜬다.
대천 어항 바다-2021년 보령문협 해변시인학교 전국문학작품공모 특별상 , <외할아버지의 섬>에 수록,보령문학 2021년 제1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