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4일 자 조선일보 칼럼에 이영작 교수가 쓴 “DJ는 개성공단 폐쇄를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논설을 보고서 고개가 갸우뚱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글에 대한 이견을 피력하기 전에 이 교수와 필자와의 관계를 먼저 얘기코자 한다. 우선 이 교수와 필자와는 중.고등학교로 부터 공과대학까지 10년 지기이다. 졸업 후 필자는 조그만 재벌 그룹에 입사하여 엔지니어링과 건설 및 이동통신 관련 CEO를 끝으로 34년간 한우물에서 일하다가 2000년 은퇴하여 현재 백수로 지내고 있으나, 이영작 교수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통계학 박사를 받은 후 미국국립보건원(NIH) 의료통계분석실장을 지냈으며, 귀국 후 서경대 석좌교수로 재직하면서 지금도 의학과 제약 관련 임상실험을 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기업가 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간에서는 그를 1997년 대선 당시 이모부인 김대중 대통령 후보를 위해‘준비된 대통령’이란 유명한 슬로건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라는 부제의 <대통령 선거전략 보고서>란 책에서 밝힌 바와 같이 자신이 전공한 통계학을 바탕으로 민심이나 국민의 요구를 통계자료로 분석하여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만든 킹 메이커의 한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요즘에는 언론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보수 정치평론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는 학창시절 유순한 성격의 예의바른 서울 양반이었고 요즘도 TV에서 시사 해설할 때 사랑방에서 친구랑 얘기 나누듯 톤을 올리지 않고 항상 미소를 머금은 채 이웃집 아저씨처럼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세상 얘기를 들려주는 그를 말주변이 없는 나로서는 부러워하며 또 존경한다.
그러나 이영작 교수가 쓴 칼럼에 대해 나는 그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생각이기에 나의 단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과연 DJ는 박지원이나 문재인과 같이 박근혜대통령의 결단을 비난하고 개성공단 복원을 주장하는 대신 이 교수의 생각처럼 개성공단 폐쇄를 지지하는 입장이었을까?
이영작 교수의 칼럼에서 몇 가지를 인용하면 “...DJ는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정치인 이었다. 예를 들어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한·일협정을 당시 윤보선 등 야당 강경파로부터 '앞잡이'라는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지지했다. ... DJ는 평화론자도 통일지상주의자도 아니다. DJ는 민주주의 신봉자였다. ...평화교류는 평화공존의 산물이다. 평화교류가 계속되면 신뢰가 구축되고 그때 가서 국민이 원하면 평화통일을 할 수 있다고 DJ는 믿었다. 그러나 평화공존이 무너지면 평화교류의 바탕이 꺼지고 평화통일은 요원해진다....사상누각이 된 개성공단은 김정은의 전쟁준비자금 조달처로 전락했고 남북관계는 준전시상태다. DJ라도 과감하게 개성공단을 버렸을 것이다. 실용적인 DJ는 붕괴된 평화공존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지 않을지 고민했을 것이고 개성공단보다 평화공존을 부활시킬 수 있는 방법을 구상했을 것이다“ 라고 결론을 지었다. 먼저 DJ가 자서전에서 “이 협정(한일협정)으로 아무런 유보 조건도 없이 일본과 관련된 모든 과거사가 통째로 증발해 버리는 셈이었다. 이는 엄하고도 중대한 문제였다. 히로시마 한국인 피폭 사건, 한국인 노동자 강제 연행 사건, '종군위안부' 문제, 사할린 교포 송환 문제 등 숱한 비극적 사건이 산재해 있는데도 이제 법적으로는 아무런 방법도 취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겨레와 역사 앞에 죄를 짓는 행위라고 생각했다.‘라고 기술 되어 있고 또 다른 자료에는 “1964년 당시 야당인 자유민주당 김준연 의원이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공화당 정권이 한일기본조약 협상 과정에서 1억3000만달러를 들여와 정치 자금으로 사용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공화당은 김준연 의원 구속 동의안을 상정했고, 이 때 김대중이 필리버스터 의사 진행 발언에 나섰다. 그는 5시간 19분 동안 원고 없이, 한일 협정의 잘못된 점, 김준연 의원 구속의 부당성 등을 조목조목 지적했고, 결국 구속동의안 처리는 무산됐다” 라고만 기술 하고 있어 한일협정 찬성에 대한 언급은 찾지 못했으나 이희호 평전에 “김대중은 현실주의자였다. 한·일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되 민족의 이익을 최대화하려 했다. 여기저기서 ‘사쿠라’라고 비난했다” 라고 이 교수가 얘기한 바와 같은 내용이 기재되어 있을 뿐이다. 나로서는 이희호 평전이 금시초문이지만 DJ가 무조건 반대 만 하는 정치인이 아니고 합리적인 판단을 했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교수는 이 점을 들어서 개성공단 폐쇄 반대를 했을 것으로 유추하였다. 그러나 나는 제일 먼저 ‘합리적인 판단’의 시공간의 문제를 제기코자 한다. 한일협정은 1965년 반세기 전의 일이고 현재 개성공단 문제는 반세기 뒤의 일이다. 모든 역사적인 사건의 결과물(event)은 연속된 사건(activity)의 산물이다. DJ가 1965년 이후 걸어온 야당시절, 대통령 집권 기간과 그 뒤의 행적, 즉 activity는 무시한 채 그 기간을 뛰어넘어 반세기 전 후 event 만을 연결하여 유추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본다. 달리 얘기하면 박정희를 반만년 역사상 보리고개를 없앤 산업화와 민주화를 무시하고 유신독재자로 평가하는 것처럼, 한일협정 건만 보고서 한마디로 합리적인 정치인으로 평가하는 것은 숲을 보지 않고 나무만 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 교수도 20세기까지는 진보주의자였지만 지금은 나이가 들어 자연적으로 보수로 변신하였다고 하는데 1997년의 진보와 중간 과정을 생략하면 2016년의 보수와의 사이의 단층은 연결이 되지 않지 않는가? 또한 이 교수는 DJ를 민주주의 신봉자라고 평하였다. 김대중씨는 1998년 대통령 취임식에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라고 선서를 하였다. 초등학생도 다 아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니 DJ는 분명 민주주의 신봉자이며 신봉자 여야 하였다. 나는 이 대목에서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 오전 10시50분 사건을 떠올린다. 남북정상회담 차 순안 공항 도착 후 사열 행사를 마친 김대중 대통령은 예상 밖으로 청와대 경호원과 이휘호 여사를 남겨두고 김정일의 링컨 콘티넨털를 타고 감으로써 이때부터 백화원 영빈관에 도착하기까지 55분간은 대한민국 군 통수권자가 북한 군 통수권자의 수중에 들어간 셈이었다. 만일 이 55분 사이에 남북 간 또는 대한민국에 무슨 일이 발생했다면 지휘자가 없는 상상할 수 없는 대혼란에 빠져버렸을 것이다. 달리 얘기하면 짧지 않는 55분간 DJ는 스스로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으로써 헌법 수호와 국가 보위를 저버린 것이다. 또 “북은 핵을 개발한 적도 없고 개발할 능력도 없다. 우리의 대북 지원금이 핵개발로 악용된다는 얘기는 터무니없는 유언비어다. 북이 핵을 개발한다면 내가 책임지겠다.” 라고 했으나 북한은 핵을 개발하였다. 국방의 기본 정신은 유비무환이건만 국군통수권자가 마치 북한의 대변인인양 김정일을 옹호했으니 순안공항 사건과 핵 관련 발언을 볼 때 DJ는 민주주의 신봉자 인가 아니면 김정일 신봉자인가? 이 교수는 “평화교류는 평화공존의 산물이다. 평화교류가 계속되면 신뢰가 구축되고 그때 가서 국민이 원하면 평화통일을 할 수 있다고 DJ는 믿었다. 그러나 평화공존이 무너지면 평화교류의 바탕이 꺼지고 평화통일은 요원해진다.”라고 DJ의 사상을 말한다. 즉 김정은의 핵실험과 로케트 발사로 평화공존이 깨어져 남북한이 준 전시 상태가 되었으니 합리적인 DJ는 개성공단 폐쇄에 찬성했을 것이다 라는 얘기다. 역시 여기서도 이 교수는 DJ의 햇볕정책에서부터 오늘날 핵 사태까지의 중간 시공간을 뛰어넘어 개성공단이 폐쇄되기 까지는 DJ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마치 그 후임자들의 잘못인 것처럼 오해할 요지가 많은 얘기처럼 들린다. DJ와 그의 상속자인 노무현이 북한에 퍼다 준 8조원이 넘는 돈은(activity) 오늘날 북한의 핵개발 (event)과는 아무 상관없는 듯 언급도 없이 넘어가면서 개성공단에서 발생한 년간 1,600억의 자금이 김정은의 전쟁준비자금 조달처로 전락하여 준 전시상태로 바뀌었다는 얘기. 8조원은 김정일 손에 들어가지 않고 3백만 이북 백성을 아사 시키는데 쓰였다는 얘기인지? 평화공존은 DJ 때는 잘 되어 평화교류의 일환으로 개성공단을 착수시켜 계속 추진한 건가요? 물어봅시다. 연평해전이 언제 일어났소? 2002년 6월 29일 북한 해군 경비정의 기습 공격으로 차단 기동이라는 교전수칙 때문에 참수리 357호는 정장을 포함한 승무원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당하는 해전이 벌어진 것은 평화공존이요 적대적 전투요? 개성공단의 역사를 살펴보면 김대중 대통령 재임기간 중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교류협력의 하나로 2000년 8월 9일 남쪽의 현대 아산과 북쪽의 아태, 민경련간 ‘개성공업지구건설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하여 2002년 6월 연평해전 발생에도 불구하고 계속 추진되어 노무현 정권 시절 2003년 6월 착공식을 거행한 것이다. 개성공단은 연평해전 책임을 물어 남북간 합의를 깨었어야 했지 않는가? 결과적으로 태어나지 말아야 할 사생아를 탄생 시킨 책임이 DJ에게 있는 것이지 오늘날 박근해 정부에서 폐쇄하는 것을 불구경 하듯 ‘옳소’ 할 입장이 아니지 않소? 6명의 아까운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것은 남북 평화공존을 위한 희생양이기에 대통령은 일본으로 월드컵 관전을 가고 장례식에 국방장관도 참석하지 않은 건가요? “DJ는 엄청난 돈을 퍼부어 ‘햇볕정책’을 추진했으나 북한의 핵개발 강행과 노동당 규약인 ‘대남적화통일‘ 정책을 변화시키지 못하였다. 이는 햇빛으로 김정일의 외투를 벗기기는커녕 오히려 핵외투를 겹으로 입게 만들었으니 실패한 것이며, 연평해전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 사업을 중지 시키지 못한 것은 DJ의 커다란 실책이었고 살아있다면 여전히 개성공단폐쇄를 반대했을 것이다’ 라고 나는 친구와는 다른 말을하고 싶다.
끝으로 이영작 교수의 글과 같은 칼럼을 실으면서도 보수 조중동이라는 소리를 듣는 조선일보로서는 억울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참고]"DJ는 개성공단 폐쇄를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문 아래를 클릭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3/03/2016030303645.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