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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신/앙/강/좌6
'왕생론'에 대한 연구 6
--자리행(自行)으로 부터 이타행 (利他行)에로--
정희수 / 위스콘신대 블교학 박사과정, 본지편집위원
1. 머릿글
'왕생론' (往生論)은 정토신앙의 깊이와 그 구조를 이해하는데 광맥이 되는 저작이다. 본래 원명은 '수카바티뷰호파테샤(Sukhavativy'uhopadesa)로서 보디류치(菩提流志, Bodhiruu)에 의하여 529년경에 한역되었고 그 본래의 이름은 '무량수경우바제사원생게주'(無量壽經憂婆堤舍願生偈註)로 알려져 있다. 이는 본래 유식학파의 시창자인 바수반투(Vasubandhu, 世親)에 의하여 저술된 정토계의 연꽃과 같은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를 후대에는 '왕생론(往生論), 또는 '정토론'(淨土論)이라고 약칭하였으며 이는 중국, 한국 그리고 일본의 정토사상 발전사에 기둥이 되는 저작으로 대접을 받게된다. 본래의 원제목이 일컫는 바와 같이 이는 '무량수경에 대한 해석과 정토에 왕생하기를 소원하는 원(願, Vow)에 대한 해석'을 기술한 것임을 알수 있다.
정토에 이르는 길을 해석한 '왕생론'은 산스크릿의 약어인 우파뎃샤'(Upadesa) 로 불리우며 , 모든 중생과 인류가 아미타불의 지극한 평화세계인 극락정토(極樂淨土)에 태어날 수 있는 길과 가능성을 해설해 주는 안내서인 것이다. 서방에 있는 극락정토에 '태어난다'는 왕생(往生, Wang-Sheng)은 육도윤회의 악순환의 고리를 깨고 자유를 만끽하는 존재로 거듭난다는 개념으로 정토신앙의 핵심에 속한다. 이미 전장에서 진술했기에 여기서는 '왕생론'의 구조와 맥락을 중심으로하여 극락왕생하는 구원의교리를 논의해 보고자 한다.
일본 정토교는 정토학파의 조사적 전통을 칠조(七祖)로 표명하고 있는데 _용수(Nagarjuna),세친(Vasubandhu), 담론 (T'an-luan, 476-542), 도조(Tao-cho, 562-645), 선도(Shan-tao,613-681), 겐신(Genshin, 942-1017), 그리고 호넨(Honen, 1133-1212).
바수반두는 제 2조에 해당한다. 물론 이 조사적 전통에는 유명한 정토계 학승들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은 일본식의 전통이기에 앞으로 이에 대한 비판을 가해 볼 기회를 갖고자 한다. 어쨌든 바수반두의 '왕생론' (往生論)은 계속 이어지는 정토사상의 발전에 아주 중요한 역할올 갖는 다는 점을 이해하여야 한다.
소위 제3조에 해당하는 담른(曇鸞 Tan-luan)은 이 '왕생론'에 대한 발전적 주석서로 '왕생론주'(往生論註)를 저작하여 본인의 정토사상을 확립해 간다. 이는 '논주(論註-Lun-chu)로 약칭 외에 불리워진다. 불교학계에서 논의되어온 바로는 정토신앙을 용수의 중관학(中觀學,Madhyamika)과 바수반두를 중심으로 한 유식한(唯識學,Yogacara) 사상의 접맥으로 보려는 시도가 있어왔다. 이는 정토신앙의 원류를 어디에서 부터로 볼 것이냐는 논의와 관련이 있다.
수수무 야바구치 (Susumu Yamaguchi)교수는 '우파데샤'(往生論)가 유식사상을 중심으로 펼쳐진 바수반두의 저작이라고 보면서 정토신앙의 원류를 유식학의 발전과 병행하여 보려는 시도를 한다. 정토신앙의 발전을 유식학적 헝성과 함께 논의하는 불교학자로는 가수가이나 이시다와 같은 학자를 들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중관학적 근원을 통해 정토신앙의 원류를 보려는 학자들도 있다. 바수반두는 그의 생애 후반기에 정토신앙의 맥을 탐닉한 것으로 보이며 이런 연유로 후기에 많은 정토계 학자들은 유식학적 구조속에서 교리롤 진술하는 경향으로 발전된 것을 주목하게 된다.
유식학은 그 중심적 논의를 내적이고 정신적인 구조에 두고 있으며 인간의 의식구조에 대한 것과 인식과 명상의 관련둥을 집요하게 논의하고 있는 전통이므로 정토사상을 이해하는 관건으로 내적인 깨달음과 해탈의 의도적 목적으로서 정토를 묘사하는 것도 하나의 이런 전통의 산물인 것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민중적인 신앙으로서 정토신앙이 자리를 굳히게 되면서 경건신앙의 내용과 구조는 상당한 대내외의 이중적 구조를 갖는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런 전반의 것을 퉁전적으로 이해하고자 할 때 특별히 이론적 불교와 실천적 불교의 전통의 통합을 가져 올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이다. '왕생론'의 구조를 통하여 이러한 통전적인 정토신앙의 원류를고찰해 보려고 한다.
Ⅱ '왕생른에 나타난 실천수행
왕생 (往生)은 신앙(信仰)올 통해 경험되어지며 획득되는 세계의 과정이다. 이는 초기 원시불교의 사상적 근원인 정관적 실천(靜觀的 實踐, Anusmrti) 을 통하여 이르는 경험이며 이는 보디(菩提, Bodhi), 즉 깨달음을 얻기 위한 필수적인 자기 훈련의 전과정을 의미한다.
바수반두는 이 전과정을 실천하기 위하여 다섯개의 문(門)을 개설하고 모든 수행자들이 이를 실천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1. 예배(禮拜, Worship)
2. 찬탄 (讚嘆, Praise)
3. 작원(作願, Vow)
4. 관찰 (觀察,Contemplation)
5. 회향(廻向, Ment Transferrence))
이들 다섯개의 가르침은 정토신앙의 구조를 함축적으로 요약해 주고 있으며 정토에 태어나는 구원의 경험을 상세하게 진술하고 있다.
이 다섯개의 항목중에서 1-4까지의 부분을 수행자가 정토에 진입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입공덕문(入功德門)이라고 하며 이는 바로 수행자 자신이 보디를 성취하기 위한 실천이며 이는 자리(自利,Sva-gartha) 라고 이름한다.
마지막 단계인 회향을 통하여 이 자리적 존재(自利的 存在) 가 남을 위하여 일하는 이타행(利他行, Para-artha)로 변혁의 경험을 하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회향문(廻向門)은 다른 이 둘의 깨달음을 위하여 헌신하는 보살행을 가르치고 있어 정토신앙이 대승신앙의 근저에 그 교리를 구축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는 출공덕문 (出功德門)이다.
이 다섯개의 구분은 어떤 문헌 전통에서 연유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용수의 반야바라밀경에 대한 주석서인 대지도론과 일반대승론소들의 구분과 유사한 체계를 갖고 있음이 주목된다.
보살의 수행을 완성하기 위하여 몸(身,Kaya), 입(口, Vac) 그리고 의식(識, Manas)의 정화를 조건으로 가르치고 있는데, 예배와 찬탄은 바로 앞의 몸과 입에 관련된 실천이며 작원과 관찰은 소위 명상인 비파사나(Vipasyana)와 병행하고 있음을 보게된다. 이와 같이 4개의 보살행은 마지막의 구경지(究境地)인 회향의 준비단계와 같은 것으로 설명될수 있는 구조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전과정에 신앙 (信仰, Faith)은 하나의 역동적 힘이 되며, 유통하고 상호관련하여 완숙한 수행을 이끌어가는 어머니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유형적 비교를 기요타 선생은 아래와 같이 도표로 설명하고 있다. 주1) Minoru Kiyota, "Buddhist Devotional Medatation", Mahayana Buddhist Meditation, ed., by Minoru Kiyota, The University press of Hawaii, 1978, pp249-296
아래의 도표는 자리행에서 이타행에로 변형되는 보살의 실천에 기초가 되는 것을 신앙으로 보고 있는 것과 , 이것이 정토신앙의 구조적 지평임을 설명해주고 있다.
"내가 만든 이 게(偈, Gatha) 는 아미타불에 대한 믿음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나는 중생둘과 함께 그의 땅에 왕생하기를 간구하며 보리(菩堤)의 성취를 소원하리라 "
이 게송은 안락세계인 극락정토에 대하여 명상하며 믿음을 가지고 아미타불을 찬탄하는 수행보살의 대승성(大勝性)올 잘 묘사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다른 이웃들의 구원과 왕생이 없는 자신만의 이기적 구원은 철저하게 다른 이들의 구원을 돕는 방편적(方便的) 인 의도이며 이런 자기초월의 가르침은 이 회향의 실천을 통하여 구체화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명상하며 어떻게 신심을 얻을 수 있는가 ? 이 다섯가지 실천수행을 통하여 안락세계에 태어나고 아미타불과 연합하게 된다고 가르친 세부적인 구조는 보살의 수행의 일반적 실천구조와 같은 맥락에 있음을 본다.
아미타불을 예배하는 방법으로서 바수반두는 신업(身業)의 철저한 훈련과 수행을 동원해야 함을 가르친다. 이것은 사람이 아미타불을 예배하고자 할때 육체적인 수행이 시초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몸으로 드리는 예배라는 설명을 부칠수 있다.
아미타불을 예배하는 것으로 몸으로서의 통전적 삶의 전반올 함유한다고 보겠다. 몸으로서의 예배는 명상의 전통이 자칫하여 이론적이고 생각을 통하여 전유되는 것을 막는 실제적인 차원인 것이다. 몸으로 드리는 실사구시적인 예배를 우리는 중요시 해야 하는 것이다.
찬탄문은 아미타불을 예배할때 구업(□業)을 통하여 한다는 과정이다. 입을 통하여 표현하고 예경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는 후에 정토사상의 중요한 수행인 염불(念佛) 실천의 권장을 의미한다. 특별히 입을 통하여 아미타불의 이름을 찬탄하는 칭명염불은 중생의 구원에 이르는 길로서 칭송된 귀한 방법이다. 이미 전장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아미타불의 이름을 단 한번만이라도 찬탄하면 왕생극락 할 수 있다는 지극히 자비한 본원(本願)의 내용에 촛점을 이루는 염불인 것이다.
작원문(作願門)은 사람이 한마음으로 안락국토(安樂國土) 에 왕생하기를 전념하면서 기도(願)을 실천할 때 성취라는 과정을 지시한다. 이는 구체적으로 궁극적인 경지인 극락정토에 대하여 일심으로 전념하기를 권유하고 그 전념으로 형성한 작원(作願) 은 확실히 왕생을 약속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주2)作願心常作願一心 專念異竟 住 安樂國土
안락세계에 왕생하기 위한 원인으로서 수행자는 일심으로 그리고 특별히 구분된 마음으로 소원하고 기도하며 깊은 명상을 실천하여야 하는데 이롤 관찰문(觀察門)은 설명해 준다.
"어떻게 우리가 알 수 있는가 ? 우리는 지혜를 통하여 그를 깊이 관찰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 바른 관상을 통하여 진실하게 수행하고자 애쓰고 실천해야 한다. "
이것이 바로 인식의 바른 지점, 즉 정관(正觀)에 이를 수 있는 길이다. 이 정관은 자신에 대한 바른 이헤이며 이웃가 다른 중생들을 향하여 눈을 뜨게 되는 계기를 확보하는 통전적인 인식이며 깨달음인 것이다. 이런 바른 깨달음과 인식의 과정에 대하여 바수반두(V asubandhu) 는 세가지를 제안하고 있다.
첫번째는 아미타불의 영역과 그 땅에 대한 장엄한 공덕(功德)을 관찰하는 것을 말하며 (佛土莊嚴功德) 두번째는 아미타불 공덕의 장엄함을 관찰하는 아미타불 장엄공덕(阿彌陀佛 莊嚴功德) 이요, 세번째는 보살의 장엄한 공덕을 관찰하는 것으로 보살장엄공덕(菩薩莊嚴功德) 이다.
이 관찰문은 명상을 통하여 모든 인연과 연기의 법 뿐만 아니라 수행자의 삶의 전반적인 과정속에 침투하고 공헌하는 모든 깨달은 중생들의 높은 수행과 덕올 기리며 이러한 원형(原型)적인 모델이 아미타불임을 깨닫는 단계인 것이다. 관찰한다고 하는 말은 깊온 명상속에서 불. 보살의 장엄한 행위들을 감사하며 이를 자신의 삶과 수행에 내재화 하는 내적인 영성의 작업을 의미하는 것이다.
내적인 영성화 작업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자유를 창안하고 그것올 통하여 우리안에 있는 불성의 웅대함과 장엄함에 대하여 경외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작업을 통하여 우리는 자기 스스로를 위임하여 이웃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그들의 고통을 해방시키는 이타(利他) 를 실천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깨달은 자아로 설때 대사회적인 이타행의 결단에로 자신을 위임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엿보게 된다.
깨달은 자신이 이웃들의 구원에 공헌하게 되며 이는 회향의 경험이며 이는 동시적인 보살의 존재론적인 설명이라고 보여진다. 이 다섯가지 단계에 있어서 마지막 단계인 회향문(廻向門)은 사람이 깨달음을 통하여 그리고 신앙의 정견을 통하여 위대한 자비심을 갖게되는 것으로서 자기 자신의 것뿐만 아니라, 아니 자신의 구원을 차치하고라도 슬폼의 복판에서 깊이 신음하는 다른 이웃과 중생들을 향하여 자비한 마음과 사랑을 갖게 되는 보살의 긍극적인 세계를 가르쳐 주고 있다.
주의깊게 이 다섯단계를 살펴보면 처음 네 단계는 사람이 정토(淨土) 에 들어갈 수 있는 방편으로의 실천으로서 범주를 들 수 있으며 마지막 단계는 정토의 구현의 철저하게 자기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그리고 우주적인 사랑의 실천이라고 볼 수있다. 1-4까지는 회향의 전단계로서 소개됨으로써 불교의 가르침은 어디까지나 보살의 회향정신올 구현하는 살아있는 보편적 구원의 종교임올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회향(迴向, parinamana)은 대승불교의 요체로서, 다른 사람들과 전 세계의 깨달음과 구원을 위하여 회향, 즉 자기자신을 부정하고 거대한 다른 자기, 즉 모든 중생들을 향하여 방향을 돌리는 원력(願力)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바로 보살의 덕(德)이 된다. 보살은 자기 구원의 성취를 위하여 여러가지 수행의 과정을 거치지만, 종국에는 자기를 위한 자리적 구원이해를 봇어나, 다른 이웃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그들이 불법의 궁극적인 환회에 동참하도록 작원하고 스스로 그 짐을 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즉 이웃들을 향한 존재로 변신하는 것이다.
이 회향 사상은 불교사상 발전 속에서 대승불교의 특이한 점으로써 정토신앙에서는 이를 더욱 실질적으로 이해해서 타인의 고통(苦痛)이 있는 한 거기에는 어떠한 종류의 안락이 있을 수 없으며 이는 아미타불의 무한한 생명에서 기인한 자비와 지혜인 것으로 이해된다.
용수의 입장에 의하면 보살은 육파라밀 (六婆羅密)의 실행, 즉 어려운 실천들을 통과한 이들을 의미했으며, 그들은 불퇴전의 신앙을 얻게 된다고 본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바수반두의 두번째 오문(五門)온 첫번째 "오념문(五念門)의 수행올 이미 거친 보살들의 수행과정을 설명한 것으로 보는 편이 옳다.
첫번째의 "오념문"온 원인에 속하고 두번째의 "오문"은 보살이 그 경지를 통과함으로써 즐기게 되는 결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다섯 문은 근문(近門), 대회중문(大會衆門), 택문(宅門), 옥문(屋門). 그리고 원림유회지문(園林遊戲地門)이다.
이들 다섯 문에 대하여 1-4는 입공덕을 완수하며, 5는 출공덕을 이룰 수 있다. 입공덕의 첫번째를 근문(近門)이라 부르는데 이는 아미타불이 그 땅에 수행자가 태어남으로써 예배되어진다고 보기때문이다. 그래서 근문은 안락세계이 왕생함올 일컫는다. 두번째 문은 대회중문으로서 여래(如來)의 명호(名號)가 음성화되어지고 그 길을 깨달은 이름의 지혜의 광명과 함께 수해됨으로써만 보살은 많은 회중의 수중의 하나로 존재하게 되는 연합의 과정을 가르친다.
세번째는 택문(宅門)이라고 일컫는데 그것은 보살이 일심으로, 그리고 다른 것들과 구분하여 아미타불의 나라에 왕생하기를 갈망하기 때문이며, 이는 깊고 정교한 삼매 (三昧, samadhi)를 운행한다. 그것을 통하여 보살은 연화세계(蓮花世界)의 집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네번째의 문은 옥문(屋門) 으로서 보살이 아미타불의 장엄한 국토를 일심(一心)으로 관찰하고, 그 수행을 통하여 안락세계에 들어갈 수 있으며 완전한 깨달음의 기쁨을 많이 누리게 된다고 보기 때문에 옥문(屋門)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섯번째의 문은 원림유회지문(園林遊戲之門)으로 이는 깨달은 보살은 위대한 자비를 통하여 모든 중생의 고통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이 그들을 생사(生死)의 정원에서 화생하게 하며 탐욕의 숲 속에서 헤매이는 중생들을 놀랄만한 능력으로 교화하게 된다고 본다. 이것은 아미타불의 원력에 기인하며 이는 자신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닌 원력에 기인한 것이므로 출공덕(出功德)이라고한 것이다. 그렇듯이 네개의 문을 통과한 보살은 자리(自利)를 완수하며 다섯째의 문은 '이익타(利益他)를 완수하게 되는데 이는 자기의 공덕을 다른 이를 위하여 회향하므로서 가능하다. 보살로 이 오문을 실행하므로서 자리와 이타를 완수하게하며 이로서 아욕다라삼막삼보리(阿褥多羅三邈三菩提), 즉 높고 높은 완전한 지혜를 성취하게 된다.
이러한 왕생론(往生論)의 내용을 고찰해 보니 또하나의 강조점온 이러한 오문의 구조적 구분보다는 일심(一心)인 것을 보게된다. 일심이란 오직 한마음으로, 또는 한가지 집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어쩌면 이 '五門'과 '五德門'온 바수반두가 일심의 실천올 전통적인 다섯 구조로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수행은 일심(一心)에서 비롯되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정토 학자들은 광문(廣門) 으로부터 구별되어진 것으로서 약문(略門)이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이는 아미타불의 원력(Vow-power)에 의하여 보충되어지며 이를 광략상입 (廣略相入)의 교리로 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일심(一心)은 정토교학에서의 신앙(信仰)이라고 요약 될 수 있다. 왕생론(往生論)에서 바수반두는 처음으로 '일심(一心)'의 사상을 강조한 폭이 된다. 이는 일념(一念) 또 일심적 신앙(一心的 信仰)으로, 후기 정토학자들의 염불신앙 이해의 종교학적 논의로 발전된다. 이는 궁극적인 신앙의 주관적인 표현이다. 만약 용수가 정토교에 대해 이행(易行, easy path) 으로서 함축하였다고 본다면 바수반두는 일념(一念, single minded)으로서 그 성과를 가녀왔다고 볼 수 있겠다. '왕생론'(upadesa)은 결른적으로 그 중심적 주제를 우주적 중새의 구원에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정토에 왕생하고저 하는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바수반두는 이를 체계화하고 있지만 정토와 아미타불은 철저하게 방편(方便)의 역할을 하며, 소위 타력이라고 볼 수 있는 절대적 신앙은 '일심으로' 집약되어 대승불교의 일반적 패러다임 '일심으로' 집약되어 대승불교의 일반적 패러다임에 부분으로 존재함을 인정하게 된다.
정토신앙은 장님과 같은 신앙이 아니다. 명상의 깊은 정관을 통하여 아미타불의 존재에 대한 주관적이며 객관적인 이해를 갖도록 요구하는 신앙이다. 이 아미타불은 여래(如來, tathagata) 이며, 구체적으로 역사적 종교의 실천이 보살의 우주적 구원 교리를 통하여 깨닫게도 되고, 획득하게 되고, 일체적 최상지도 구현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신앙은 끊임없는 회향(廻向) 을 거듭하는 동적인 신앙이벼, 끝없는 역전을 거듭하여 모든 중생이 그 울안으로 들어오도록 초대하는 무한한 생명이며 무한한 빛인 것이다. ( 계 속)
199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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