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각 결정문이 면죄부가 될 수 없습니다.
제가 가장 황당해하고 분노한 지점은(…) 기각이 됐다고 마치 면죄부를 받기라도 한 것처럼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던 태도입니다. 형식적, 법률적 책임이 부정됐다고 책임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각 결정은 잘했다고 칭찬하는 게 아닙니다. 뭘 그리 잘했습니까.
기각되면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기각됐지만 죄송합니다. 책임지겠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안 생기게 노력하겠습니다. 우리가 부족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습니까’ 이렇게 해야 정상 아닙니까. 적반하장과 후안무치가 정도껏이어야 합니다.”
구속 영장이 기각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국민의힘 의원들이 쏟아낸 발언으로 들렸을 테지만 아닙니다.
이 말은 지난 7월 25일 헌법재판소가 민주당이 제기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심판을 기각한 직후 이 대표가 최고위원회의와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에서 한 공개 발언입니다.
‘기각’ 앞에 ‘구속영장’ 대신 ‘탄핵’이 들어가고, 주어가 민주당 아닌 현 정부란 것만 빼면 국민의힘이 이 대표를 맹공하는 내용 그대로를 이 대표 스스로 주장한 셈입니다.
탄핵 기각은 사실상 헌재의 ‘무죄 판결’에 해당하지만 영장 기각은 다르다고 합니다. 유무죄 아닌 구속의 적절성 여부만 따진 것이니 이 대표의 혐의는 사라진 게 아니라 재판 때까지 미뤄진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니 “탄핵 기각은 면죄부가 아니다”란 이 대표의 발언은 본인의 영장 기각에도 그대로, 아니 더 강도 높게 적용돼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각 이후 이 대표와 친명계의 행태를 보면 “기각으로 완전 무죄가 된 것처럼 (행동)한다”는 민주당 신경민 전 의원의 지적이 과하지 않아 보일 겁니다.
대한민국 역사에 이런 거짓말의 달인은 좀처럼 찾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의 교훈은 시효가 만료된 듯하다.
재봉사는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옷을 지어주겠다고 했다. 임금은 옷이 보이지 않았지만, 현명하단 소리를 들으려 훌륭한 옷이라고 칭찬했다. 그리고 벌거벗은 채 거리로 나선다. 신하들은 임금이 벌거숭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진실이 드러나자 대중은 임금을 조롱했다. 그런 사필귀정은 동화 속 얘기일 뿐이다. 지금 현실 정치에선 신하도 대중도 열광적인 충성을 보인다. 허위로 감싼 리더도 한둘이 아니다. 왜 진실이 정치 편향에 파묻히는 시류가 판칠까.
거짓말을 죄악시한 철학·종교전통을 정치적 현실주의로 바꾼 건 마키아벨리였다. 그는 ‘군주론’에서 “군주가 신뢰를 저버리고 파기한 언약은 허다하다”면서 “(간교한) 여우의 방법을 가장 잘 아는 군주가 1인자가 됐다. 그것을 은폐할 줄 아는 위선자가 돼야 한다”고 했다. 그런 모습을 대중은 알지 못한다. 겉으론 신실하고 정직해 보여서다. “군주의 실체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대중은 군주의 행동에 대해 결과로써 수단을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치 리더의 거짓말은 필수이고, 대중은 이를 따지지 않으며,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490년 전의 언명이 유효한 현실이다. 캐나다 토론토대 마셀 다네시(언어인류학) 교수는 최근 번역 출간된 ‘거짓말의 기술’에서 “거짓말은 인간의 타고난 능력이라고 추론하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생존에 필요한 기능적 측면이 있다는 의미다.
학자들은 이를 ‘마키아벨리적 지능(Machiavellian Intelligence)’이라고 명명했다. 이게 선을 넘으면 파괴적인 행위가 된다. 악의적인 ‘까만 거짓말’, 어둠의 기술이다. 위선, 조작, 왜곡, 사기, 편취, 속임, 농락, 호도, 현혹, 기만, 배반 등이 모두 거짓말에 해당한다.
정치 리더의 거짓말은 대중을 조종하고 공포감을 조성하는 게 목표다. 정적에 대한 반감, 분노에 불을 지펴야 한다. 편견과 선입견을 자극할수록 효과는 커진다. 히틀러는 “큰 거짓말을 꾸며내라. 단순 명료하게 포장하라. 계속 말하라. 그러면 결국 사람들이 믿는다”고 했다.
온라인 미디어와 SNS가 주류가 된 세상은 역사상 거짓말로 편견과 혐오를 부추기기에 가장 좋은 시대다. 누구든 언제 어디서나 허위 정보, 가짜뉴스를 퍼뜨릴 수 있다. 19세기 황색 언론은 명함도 못 내민다. 음모론도 최전성기다. 특히, 진입장벽이 낮은 온라인 토크쇼가 위력을 발휘한다.
음모론의 전제는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다, 실상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다. 모든 일은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이는 증거보다 믿음에 기대고 있어서 논박이 통하지 않는다. 리더의 말에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인지부조화가 일어나지만, 사람들은 이를 해소하려 거짓말쟁이를 버리진 않는다. 대신 믿음을 확증해줄 정보를 찾는다.
다네시 교수가 주된 분석 대상으로 삼은 리더는 도널드 트럼프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거짓말쟁이 군주의 화신”이라고 확언했다. 트럼프가 대선 패배 후 기소된 개별 형사사건은 4건이고, 총 91건의 혐의를 받는다.
그가 인정하는 범죄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 적 없다거나, 사실과 다르다거나, 모른다거나, 다른 사람이 했다거나. 그런데도, 트럼프는 “집권 세력의 부당한 시도”라고 주장하면서, 내년 11월 대선에 나설 공화당 주자 가운데 선두를 달리고 있다.
유사한 상황이라고 해서 거짓말의 기술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단순 대입해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알 수밖에 없었던 사람을 모른다고 하고, 불법은 밑에서 한 일이라 하며, 전화로 위증해 달라 한 것도 부인하는 것을 여기서 가릴 계제는 아니다.
불체포특권 포기를 식언한 것도 ‘그런 게 정치’라고 하면 끄덕여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허위사실 공표, 대장동·성남FC 특혜에 이어 백현동·쌍방울·위증교사 건까지 기소되면 3곳 법정에 출석해야 한다.
불구속 결정을 무죄 판결이나 받은 듯이 ‘사법 리스크는 끝났다’는 사람들에게 과연 진실의 정치가 있는지 묻는 것이다. 거짓을 알면서도 대안이 없어서 굽신거리는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마키아벨리즘이다.
민주당의 ‘탈(脫)진실’은 끝나지 않았고, 진실의 심판대는 이제 시작이다.>문화일보. 오승훈 논설위원.
출처 : 문화일보. 오피니언 시론, 거짓말의 달인들
“달인(達人)”은 ‘널리 사물의 이치와 도리에 정통한 사람이나 특정 분야에 통달하여 남달리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습니다.
요즘 모 방송에서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를 제작해서 우리 사회의 숨은 달인들을 세상에 알리고 있는데 이런 달인은 많을수록 좋을 겁니다. 자기 분야에서 엄청난 노력으로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성공’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분들을 보면 존경심이 절로 일어납니다.
한 때, 개그콘서트의 ‘달인’코너에 나왔던 김병만을 보면서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매 주 방영이 되는 프로에 나오니 연습이나 훈련을 할 시간이 일주일밖에는 되지 않을 것인데 정말 놀라운 묘기들을 보여줘서입니다. 그는 정말 ‘달인’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개그맨입니다.
거짓말로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거짓말의 달인을 보면서 그의 거짓말의 끝이 어디일지 정말 궁금합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