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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포탈 사이트에서 기독교 정보를 검색하다 보면......
제일 먼저 맞닥뜨리는 것이 기독교에 대한 비판의 글입니다.
목숨건 안티 기독교의 개티들은 사이버 군단을 이루어 첨단 무기로 무장하여
다양한 전략전술로 기독교를 향하여 맹공을 퍼붓습니다.
붉은 글씨의 개독박멸!이라는 구호는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습니다.
분노와 살의로 가득한 안티 기독교 운동은
개독교, 목사교, 개독인, 먹사 등 온갖 비어로 기독교를 조롱하며 비난합니다.
안티 기독교의 개티들은 한국 교회를 향하여
십자포환의 무차별 파상 공격을 감행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막의 잡신 야훼라고 폄하하고
성경은 공포와 광기로 가득한 엽기적 소설이라고 독설을 퍼붓습니다.
창세기와 출애굽의 역사는 팩트가 아니라
유대 학자들에 의해서 설정된 역사라고 주장하면서 성경, 그 자체를 부정합니다.
모세 오경은 엘로힘 학파와 야훼 학파의 합작품이며
엘로힘 학파의 엘 신과 야훼 학파의 야훼 신이 신학적으로 융합되어 야훼 하나님이 만들어졌고
실제 이스라엘 역사는 사사기부터라고 억지 주장을 합니다.
그러면서 교회를 성폭력과 추행, 사기와 협작, 폭력과 공갈, 등 온갖 부정과 부패의 온상이라고 매도하고
집단적 다단계 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을 찾는 길이라고 조롱합니다.
여기에 전위병으로 맹활하는 이단들의 게릴라 작전은
기독교의 위상을 완전 쑥대밭으로 만들고 지네들이 참된 성경적인 진리의 전당인 것을 주장합니다.
초토화 되고 일그러진 기독교의 위상은
포탈사이트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기진맥진한 패잔병의 몰꼴로 처참한 지경에 놓였습니다.
이러한데도 참된 기독교를 변증하고 변호할 백기사나 흑기사는 나타나지 않고 ......
블레셋의 철병거를 상대하여 보습과 괭이와 삽을 들고 공포에 질려 와들와들 떨고만 있습니다.
사이버상의 기독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꽃 피울 수 없는 척박한 토양, 그 자체의 상황을 극단적으로 맞았습니다.
한편 오프라인의 기독교는
소위 목사교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온갖 적폐의 온상으로 맘몬의 탈을 쓰고 있습니다.
소위 맘몬신을 숭배하는 목사교는
메이저와 마이너의 이전투구로 또한 앙상한 전쟁의 참상만 남았습니다.
메이저급은 기복과 무속 신앙으로 지상낙원을 이루어 탐욕의 부귀 영화를 날마다 누리고
마이너급은 극단적 세대주의 종말론으로 맘몬신을 조롱하며 축적된 부를 종교적 사기로 나누어 가졌습니다.
어느 해인가 전쟁과 땅굴로 연계된 기독교의 대사기극은
맘몬신을 섬기는 자들의 태평성세를 농락하는 치밀한 털이범의 행각이었습니다.
일당은 한국형 노아 방주를 만들어.....미국으로 도피하였고....
그 방주를 타지 못한사람은 동남아 등으로 피난 가는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종교 사기꾼에게 너무나 쉽게 농락당하는 기독교의 신도들.....
그들에게도 구원이 있을 것인가?
메이저급은 WCC에 열광하여 맘몬의 영화를 지상낙원으로 끝없이 이루어 가고....
마이너급은 WCC의 배후를 사탄의 음모라고 맹공을 퍼부으며 프리메이슨의 음모론으로
종말론적인 비밀의 계시를 퍼뜨렸습니다.
혼란.....대혼란의 양상 그 한가운데
프리메이슨의 음모론은 허구라며 나타난 백기사는 엘리야가 아니라
메이저를 대변하는 갈멜산의 바알 선지자였습니다.
힌편 이렇게 정체성을 잃고 대혼란에 빠진 기독교를 흡수 통합 할려는 천주교는 사나운 발톱을 드러내고
야수의 본능으로 쫓기는 먹이감을 향하여 마지막 점프를 시작하였습니다.
이쯤해서 기독교의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예레미야의 절망적 탄식이 쏟아집니다.
오호! 통재라!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는 시편 기자의 절망적 탄식은 어드메고.......
"여호와여 멀리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나를 사자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락하시고 들소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는 시편 기자의 기도는 하늘을 울리는 메아리가 되었습니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열방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경배하리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열방의 주재심이로다"는 믿음의 확신으로 하나님 나라 복음의 전사가 되어
쾌도난마의 지혜로 깨었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대한 시대 분석은
강력한 진을 파하는 의의 병기로 좌우하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 그 자체입니다.
종말론적인 말세의 현상은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룰 대혼란의 역사가
더욱 혼동과 공허로 펼쳐질 것입니다.
한반도의 위기는 북한의 핵이 아니라
기독교의 대혼란입니다.
WCC를 통한 천주교와 기독교의 대연합 운동, 프리메이슨의 음모론, 알파와 신사도 운동 등의 메이저 열풍은
마침내 한국의 기독교에 하나님이 떠나고 맘몬신이 강림하였습니다.
기독교로 양의 탈을 쓴 목사교는
성경의 가르침보다 목사의 말을 더 믿고 따르도록 강요하는 종교로 변질되었습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한 분이요,
하나님의 선하신 뜻으로 나타난 기독 신앙은 하나인데
수 많은 교파와 교단의 난립은 성경의 가르침보다 어느 힘있는 목사의 말을 더 따른 증거가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목사교 변질은 성추행과 폭력, 불법과 부정의 온상이 되었고
그 적폐로 세상에 민폐를 끼쳐 바깥에서부터 성토되어
강도의 굴혈이 된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목사는 사회적으로 천주교의 신부나 불교의 스님보다 더 신용 등급이 낮을 뿐만 아니라
사기 전문의 역술인과 무속인보다 더 평판이 좋지 않는 최하등급의 종교인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인 기독 신앙은 영생의 구원, 그 자체이지만
맘몬신을 섬기는 목사교는 거짓을 일삼는 사기 전문의 종교로 타락하였습니다.
이것이 사회가 인정하는 곱지 않는 기독교의 인상이요,
온갖 죄상으로 얼룩진 일그러진 자화상입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예수의 옷을 입고 거리를 나가면.......
세상을 비추는 빛이 아니라 혐오스런 벌레 보듯 합니다.
세상뿐만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도
맘몬신을 숭배하는 목사교의 모습을 타락한 예루살렘 성전을 보듯 징그럽게 보고 있습니다.
에스겔의 환상......
예루살렘 성전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갔고......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는 투기의 우상 곧 투기를 격발케 하는 우상의 자리가 되었고
담을 헐고 한 문에 들어가니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을 그 사면 벽에 그렸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는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고
여호와의 전 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이십오 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 경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타락한 예루살렘 성전의 모습을 환상으로 보여주며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유다 족속이 여기서 행한 가증한 일을 적다 하겠느냐
그들이 강포로 이 땅에 채우고 또다시 내 노를 격동하고 심지어 나뭇가지를 그 코에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아껴 보지 아니하고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고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타락은
심판받아 파괴되고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의 타락보다 적지 않을 것입니다.
맘몬신을 섬기는 기독교의 탈을 쓴 목사교는
세상의 조롱꺼리가 되었고 만물의 찌꺼기가 되어 개티들의 비난과 마녀 사냥꾼의 좀비적 추격과
메스컴으로 난자되었습니다.
이러한데도 교회 안의 신도는
여전히 성경의 올바른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오류로 가득한 하나님의 말씀을 제조하는
사이비 이단의 불량 설교에만 귀를 귀울이고 있습니다.
이 땅에 사도의 터 위에 세워진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이 온전히 선포되는
참된 기독교는 어디로 갔는가?
모두들 우리 교회.....우리 목사님에 대한 아우성은
진정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선한 목자요, 양우리라고 맹신하고
나의 구원은 안전하다고 자기 확신하고 있습니다.
문득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고민하였습니다.
교파와 교단과 상관없이......
오류로 가득한 하나님의 말씀을 제조하는 불량 설교를 듣고 할렐루야 아멘하면......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가 됩니다.
방언 기도로 영성을 추구하고
신령한 능력을 얻고 치유의 권능을 신앙으로 추구하면 강신술의 무속 신앙에 뻐집니다.
방언으로 하는 기도는 광란의 기도로 몰입할 때 나타나는 종교적 엑스타시 현상으로
세계적인 주술적 종교에 모두 나타나는 오컬트 현상입니다.
방언을 통역하며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는 것은
100% 사탄의 역사요, 악한 영의 미혹입니다.
방언을 통역하며 예언하는 현상은
거짓 선지자의 대표적인 몽사입니다.
직통 계시는 비성경적이요, 비복음적이며
계시로서의 방언은 사도적 은사로 종결되었습니다.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고 헌금하고 헌신하는 신앙은
미신적인 기독교 민간 신앙입니다.
천국 상급의 차등론은
이신칭의의 교의를 공덕 신앙으로 변질 시켰으며 실존적 인본주의 신앙의 모티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상급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요, 그 안에 있는 영생의 구원입니다.
실존 신앙,실존적 믿음을 강조하는 설교는
모두 비성경적이요, 비복음적인 인본주의입니다.
기복과 무속적인 인본주의 실존 신앙은
하나님을 맘몬신으로 숭배하는 기독교 신앙의 타락입니다.
보혜사를 알레고리로 적용하여 신격화한 교주를 숭배하는 신앙은
잘 못된 성경해석과 적용을 따르는 사이비 이단입니다.
신묘 막측한 구속사적 알레고리 영해 설교는
개혁주의 신앙의 올바른 성경 해석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이단은
아전인수식의 알레고리 해석의 오류에 빠졌습니다.
세대주의 종말론은
이단 사상입니다.
성령은 중보기도로 전이 되지 않으며 ....
성령의 임파테이션은 강신술의 주술적으로 현상으로 타나나지 않습니다.
성령의 임파테이션 운동은
성령의 충만을 강신술의 무속 신앙으로 변질시키는 샤마니즘입니다.
방언으로 최면을 걸어 입신시키고......
천당과 지옥을 경험케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악한 영의 역사입니다.
알파와 신사도 운동은
성령을 무속신으로 둔갑시키는 비복음적인 광신입니다.
기독교 영성 운동은 천주교의 뿌리를 두고 있으면
영성은 은혜와 대립되는 인본주의 종교의 비전 신앙입니다.
목표지향의 비전을 슬로건으로 내건 교회는
성경의 복음적인 본질에서 빗나가는 목사교의 전형입니다.
뿐만 아니라 천국과 지옥을 계시하는 간증 시리즈는 모두 다 거짓이며, 기독교 사기요,
강신술과 샤마니즘 무속 신앙의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게 하고.....
자기 백성을 듣고 믿음으로 순종하게 하며 또한 그의 마음에 인쳐 새생명의 탄생을 주도하고
그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가 계시게 합니다.
종교 다원주의에 뿌리를 둔 기독교 연합 운동은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확장하는 종말론적인 현상입니다.
소위 맘몬 교회당을 짓는 것은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아니며
중세 맘몬의 영화를 세속적인 종교로 끝없이 누리고자 하는 종교적 욕망입니다.
믿음과 성령으로 충만하였던 초대 교회는
손으로 짓는 교회당 건축을 위해서는 아무것도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도로 연결되는 성령의 전을
예수의 하나님 나라로 확장하였습니다.
교회당을 중심으로 모이는 타성에 젖은 교회를 초대 교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중심으로 지향하지 않았습니다.
역동적으로 복음을 전하였던 초대 교회는
고난과 핍박을 받는 가운데 오롯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4중 회개를 그리스도의 용서보다 더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사이비 이단이라는 양의 탈을 쓴 나꼼수의 표리부동한 술책입니다.
시한부 종말론과 극단적 세대주의 종말론자들이 강조하는 회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의 회개가 아니라 종교적 맘몬을 추구하기 위한 가식이요, 쇼입니다.
전쟁의 공포를 조성하고 회개를 강요하며 헌금을 갈취하는 것은
종교적 사기의 전형적인 패턴입니다.
생활의 조건을 감사하는 헌금 신앙은
이신칭의의 교의에 반하는 공덕 신앙이요, 하나님을 맘몬 신으로 숭배하는 단초입니다.
물질의 번영과 세속적인 성공을 기원하는 기도 신앙은
기복과 무속 신앙의 전형으로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참된 기독 신앙이 아닙니다.
등등.....
여기에 오염되지 않고 순수한 성경적인 복음 신앙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예루살렘 거리에서 의인 한 사람을 찾는 예레미야의 수고를
헛되게 할 뿐입니다.
성경의 언약적 복음 신앙에 께어 있으면
기독교 사기를 주도하는 그 모든 신학과 신앙의 사슬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여수룬 언약문화 공동체는
성경적인 올바른 언약적 복음 신앙을 복음의 본질로 공유하는 소통의 하나님 나라를 지향합니다.
소위 양의 탈을 쓴 기독교의 목사교는
성경의 가르침보다 사람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맘몬 신앙입니다.
이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맘몬 신앙의 목사교가 아닌 성경적인 참된 기독교는
그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종교적 현상에 있지 않고
바로 복음의 본질에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은 스데반의 죽음을 부른 이유를
하나님 나라 그 영광의 성전과 복음의 본질을 증언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의 십자가의 죽음을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맘몬 교회가 가장 싫어하는 성경의 본문이
바로 사도행전 7장입니다.
스데반의 증언 , 그리고 그의 죽음은
맘몬 교회의 탈을 벗겨내고 바로 그 정체성을 폭로하는 진정한 예수의 하나님 나라요,
영광의 성전이요, 진리의 복음을 증거합니다.
사도행전 7장의 말씀에 깨어 있다면.......
참된 독교가 맘몬 신앙의 목사교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며, 더 이상 타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스데반의 믿음과 성령의 충만은
소위 말하는 성령의 은사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영적으로 혼란하였던 고린도 교회의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었습니다.
스데반의 믿음과 성령의 충만은
예루살렘의 성전을 돌 위에 돌하나 남기지 않고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는
하나님 나라로서 예수님의 성전을 공회 앞에서 증언하였습니다.
초대형 맘모스 교회당의 맘몬 신앙의 모토인 예루살렘 성전을 하나님의 발등상으로 누르고
손으로 짖지 아니형 영원한 성전의 영광을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증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말씀과 성막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하였던 광야의 교회를
율법을 완성하고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성령의 역사로 가득한 주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교회로
구속사적 언약의 복음을 증언하였습니다.
스데반의 믿음과 성령의 충만은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계시하였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그 죄상으로
언약의 성전을 예수의 하나님 나라로 온전히 증언하면서 그리스도를 본받아
무리들에게 돌에 맞아 잠들었습니다.
스데반의 믿음과 성령의 충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았으며
광야 교회의 언약의 성전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져 가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서의 성전인 깨닫고 증언하였습니다.
믿음과 성령으로 충만하였던 스데반이 깨달았던 참된 복음의 성전은
초대형 맘모스 교회당의 맘몬 신앙이 아니라 참된 예수의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손으로 짓지 아니한 영광의 성전을 예수의 하나님 나라로 증언하다가 돌에 맞으면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았던 스데반은
참된 믿음과 성령 충만의 이정표가 되었고 바울 복음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인내의 믿음을 온전한 복음의 증거로 순교적 헌신의 본이 된 진정한 스데반을 외면하고......
왜곡되고 일그러진 긍정의 힘과 영성이라는 믿음과 성령 충만으로 획책하는
맘모스 교회당의 맘몬 신앙의 종교적 비전은사탄의 역사요, 악한 영의 유혹이며
말그대로 허당이요, 허상입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알지 못한 채.......
기독교의 타락과 변질이 낳은 목사교의 맘몬 신앙은 진리의 복음으로 반드시 개혁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귀와 영화를 안겨다 주는 바알의 맘몬신을 추방하고......
우리 주 예수 그스도를 중심하는 참된 기독 신앙을 회복해야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광채의 빛을 세상에 비출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고 증언할 것이 없는 목사교......
믿음의 구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신도를 양성하는 것은 지나 간 때가 족합니다.
이제 더 이상은 안됩니다.
기독교의 극심한 타락으로 만들어진 목사교는
하나님의 양떼를 능탈하는 삯꾼 목자요, 양의 탈을 쓴 이리입니다.
그러나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는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적폐의 온상 그 한 가운데서 길을 잃고 헤매는 "당신의 양"을 찾아
천국의 기쁨을 그의 천사와 함께 누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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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고민을 왜 저 혼자만 해야합니까?
그것은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한 흔적일 것입니다.
엘리야는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탄식으로
응답받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하니님의 남은 자 칠천 명을 그리워 하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 왕상19:13-14)
☞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왕상19: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