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의 등줄기 태백 산맥이 동해안을 타고 내려오다가 대관령 삽답령을 지나 두리봉(1.033m 강릉 ㅡ 정선 경계)에서 동쪽으로 뻗은 능선은 만덕봉(1.035m)을 이루고 만덕봉에서 두 가닥으로 나뉘어 그 북쪽 능선이 피래산(753.9m)으로 이어진다.
피래산에서 다시 나뉜 산자락은 북쪽으로는 괘방산(掛榜山 339.2m) 동쪽으로는 기마봉(383m)을 빚어놓았다. 특히, 기마봉을 중심으로 북동쪽 일대 100 여만평은 동해안에서는 유일하게 해안 절벽 고원지대를 이루어 동해안 해안 단구를 형성하고 있다.
그 깍아지르는 듯한 절벽 밑에 아름다운 항구 금진항과 심곡항이 있다. 심곡항은 이곳 토박이 들이 ‘집필’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6. 25 전쟁 당시 인민군들은 그곳에 마을이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쳤고, 집필 마을 사람들도 전쟁이 끝나서야 알았다고 한다.
금진항 절벽 끝에 금진 온천이 있고, 그리고 심곡항 언덕 위 봉화 마을로 이곳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내가 숨어 들었다.
작년 여름, 나는 허균에 대한 장편을 쓴다고 호언장담하고 강릉 시내에서 강동면 심곡리 봉화마을로 이사를 왔다.
사실, 표면적인 이유는 장편 소설을 쓴다는 것이었지만, 속내는 다른 곳에 있었다. 윗 문장에서 '봉화마을로 숨어 들었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 떳떳한 일은 아니었다.
일본 유학을 갔다와서 돌아와 고향에서 사업을 시작했고, 그 사업 덕분에 아버지의 반대에 부딫혀 하루라도 편할 날이 없었다.
게다가 스쿠버 강사를 취미 생활로 즐기다가 잠수 사고로 몸은 병신이 되어 다리를 제대로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글을 쓰게 되었고 그것이 그나마 허물어진 내 양심과 자존심을 어느 정도 세워 주었다.
그래서 나는 상처 받은 심신을 달래기 위해 글쓰기를 핑개 삼아 이곳 봉화 마을로 말 그대로 숨어 들었던 것이다.
더구나 자유분방한 아나키스트인 내가 생활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자연 조건이었다.
금진항은 내 할머니 고향이라 친척들도 꽤 있다. 횟집을 하는 고모와 금진항에서 배를 타는 육촌 형님과 아저씨가 있다. 심곡항에도 역시 매운탕 집을 운영하시는 육촌 형님이 살고 계시다.
또한, 나의 생업은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고 그것을 컨설팅 하는 일인데, 농수산물 쇼핑몰을 운영하는 나로서는 농산물과 수산물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이곳이 최적의 장소이다.
이렇게 나의 심신을 치료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자연 환경과 인적 인프라, 생업을 할 수 있는 더 없는 조건을 만난 것이다.
어쩌면, 숨어 들다시피 한 이곳이 내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최고의 옳은 판단일지도 모르겠다.
오십 평생을 살아 오면서 수 없이 많은 시행착오와 좌절이 이곳에서 정리가 되고, 이곳에서 내 인생을 마무리 하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운명적으로 위대한 물 금진 온천을 만나게 되었다.
운명적이라는 말은 유물론자인 내가 좀 처럼 사용하기 꺼려하는 표현인데, 왠지 금진온천과의 만남에는 나도 모르게 운명이라는 말을 쓰게 되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이곳으로 이사를 하고 술로 망가진 내 육신을 금진 온천수가 치유를 해 주었다. 아토피와 변비로 고생하던 둘째 딸도 이 물로 완치가 되었다. 내 육신의 건강은 몰라 볼 정도로 좋아졌다.
나는 그렇게 위대한 물 금진온천과 만났다. 한반도 백두대간의 한 줄기 동해안 해안 단구 1100 미터 지하에 후손에게 물려 줄 위대한 선물이 있었던 것이다.
그 동안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수 없이 파 헤쳐진 금수강산의 끝자락에서 마지막으로 자연이 인간에게 베풀어 줄 생명의 물인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금진 온천을 개발한 고집불통의 한 사내를 만났다. 그와 처음 고모네 횟집에서 만났을 때, 그는 입에 게거품을 물고 금진 온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처음 대하는 나로서는 다소 항당한 일이었지만 그때 나는 그의 말 속에서 그의 열정과 카리스마를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지금은, 위대한 물을 찾아내고 지금까지 지켜 올 수 밖에 없는 것은, 그의 육신 속에 꼿꼿이 자리 잡고 있는 대단히 강한 氣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반도의 등줄기 백두대간의 氣가 동해로 뻗어가다 바다를 만나고, 그 깊숙한 지하에 그것을 떠받치는 용솟음 금진온천이 생기고, 그래서 당연히 그것과 만난 그 또한 대단한 기운을 지닐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