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강가 초막(草幕)의 꿈
-엄상익/변호사
노년이 되면
서울을 벗어나 조용한 강가에
살고 싶었다.
어느 조용한 수요일 오전
양평의
물가에 있는 집들을 구경했다.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 반짝이는 강가
여기저기에
그림에서 본 것 같은 아름다운 집들이
지어져 있었다.
그런 곳에서
살다가 죽어 강가 뜰에 있는 나무 밑에
묻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중
세월의 이끼가 낀 듯한 오래된 집 한 채가
비어 있었다.
나를 안내한 부동산 중개인이
이렇게 말했다.
“여기
강가에 살던 영감님이 나이가
아흔 살이 됐어요.
돌아가실 때가 됐는지 집을 내놓고
병원으로 갔어요.
” 당연한 사실이 새롭게 들렸다.
그 집주인은
영원히 그 집에서 살 수 없었다.
아프면
그 집을 떠나야 하고 세금 때문에
그 자식이 아버지의 집에서 계속
살 수 없었다.
그 영감은
강가의 자기 집 뜰의 나무 밑에 묻힐
수가 없는 것이다.
저녁 강가의 행복이 새어 나오는
아름다운 집은
나의 낭만인 것 같았다.
강가 한적한 동네인
그 이웃의 또 다른 집을 가 보았다.
서양식
정원에 강가를 향해 넓은 통유리창을
한 집이었다.
파란 강물이 거실을 향해 흘러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육십대 말쯤의 부부가 살고 있었다.
“참 경치가 좋으네요”
내가
창 밖으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부부는 내 말에 침묵했다.
그들의 눈에
이미 강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어떤 좋은 경치도
며칠이 지나면 없어지게 되어 있다.
아무리 좋은 그림이나 골동품도
집에 가져다 놓고 일주일이 지나면
그 존재가
의식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들의
표정에서는 어떻게든 집을 비싸게 팔고
거기를 떠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늙어서
쉴 곳을 찾느라고 전국을 다녀 보았다.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고향집
같은 곳을
만나고 싶었다.
제주도로 가서
그곳으로 이주한 부부를 만나 물어보았다.
“낮에는
주변 경치가 기가 막혀요.
그런데
밤이 되어 우리 부부가 어둠 속에
갇히면 둘이서 부둥켜 안고 떨어요.”
낮과 밤이
다른 것 같았다.
경기도 장흥 근처에 집을 샀다가 되판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산
자락 경치가 기막힌 곳 바위 위에 지어진
집을 샀어.
일제 시대 일본인 고위관료가
살던 집이래.
정말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가 있을까
하고 생각했어.
그런데
밤이 되니까 그게 아니야.
늑대 소리도 들리고 서울의 도망친
개들이 전부 북한산 속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있는 것 같았어.
그래서
당장 집을 팔고 나와버렸지.”
그래도
나는 고집을 부렸다.
강가가 아니면 조용한 어촌 포구의
잔잔한 바다가 앞에 보이는 허름한 집은
어떨까도 생각했다.
남해의
바닷가 마을에 갔었다.
마음에 드는
작은 집이 있었다.
일부러
밤이 오기를 기다려 아내와 함께
어촌마을을 걸어 보았다.
방파제 위에
드문드문 외롭게 서 있는 수은등이
콘크리트 바닥 위를 무심히 비추고
우글거리는
파도가 소리치며 방파제를 두드리고
있었다.
밤의 어촌마을은
유령만 돌아다니는 폐허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류시화 시인이 쓴
수필 한 편이 떠올랐다.
제주도
바닷가에 아파트를 한 채 얻었다고 했다.
그런데
평일의 밤이 되면 아파트의 불들이
거의 다
꺼져 있고 관리사무소와 시인이 사는
집만 사람이 살더라는 얘기였다.
바닷가에 나가도
사람이 없어 마치 진공 속에 혼자
앉아있는 기분이 더라고 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소설가 한수산의
수필에서 본 내용이었다.
오래 전
여주의 강가에
평생 소원이던 넓은 집필실을
마련했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갑자기 포크레인이 땅을 파는 소리가
계속되면서
계속 여기저기 집이 지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4대강 개발이
박차를 가해지면서 이포보를 만드는
소란에 아침이면 들려오던 새소리도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
그는
결국 집필실 문을 닫고
다시
서울의 오피스텔을 얻어 돌아왔다고
적고 있었다.
아름다운
강가의 그림 같은 오두막은
꿈에서 그쳐야 할 것 같았다.
어떤
아름다운 경관도
그 안에 들어가 사흘이면 없어진다고 했다.
폭포
아래 마을 사람들이 물소리를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일본 작가
엔도 슈샤쿠는
아주 작은 골방에 들어가 글을 썼다.
엄마의 자궁을 연상하는
작은 방에서
안정감을 찾는다고 했다.
나도
나의 작은 골방에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꿈은 꿈으로 끝을 내야겠다.
2) "인생 잠시 잠깐일세"
재작년 오월
친구들과의 만남이 서울대공원에서
있었다.
시골에 사는 탓에 서울대공원을
처음 갔다.
얼마나 내가 촌놈인지 서울대공원을
서울대학교 공원으로 생각한 적도
있었던 나였다.
학교를
졸업한 지 사십년이 훌쩍 넘고
근처 구경을 끝내고
약속 식당에 갔더니 시골 촌놈 만나러
회장 친구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십여 년 만에
처음 만남이지만 목소리
행동 변한 게 없는 친구다.
그래도
세상 열심히 살았던 탓에 기사 딸린
자가용도 있단다.
친구는
식사를 하는 중에 이십 여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오늘 촌놈이 왔으니 내가 밥을 산다"고
했다.
공짜는 그래서 좋다고 했던가...
평소라면 불고기 20인분을 먹었다는데
40인분.
배로 먹어 치웠으니...
이 친구는
십여년 전에 여행경비 전액을 부담하고
친구들을 부부동반으로
캐나다 여행까지 시켜주고
금강산, 캄보디아
여행 갈 때
찬조금도 듬뿍 낸 친구다.
"자네,
친구들을 위해 너무 많은 돈을 찬조했어..."
"돈이 별건가...
운이 좋아 돈 좀 만진것 뿐일세"
"어이 김회장!
" 어느 친구가 재산이
얼마나 되는가 묻는다.
"재산...?"
친구는 웃으면서 하는 말이
"인생 사는 거 잠시 잠깐이야.
재산은 있다가 없는 거고.
죽을 때
뭐 가지고 갈 께 있나!
인생 사는 게 잠시 잠깐인데..."
친구는
아직도 담배를 피고 있었고 술은
맥주만 마신다고 했다.
그렇게
살았던 친구였는데 며칠 전
반창회장으로 부터 문자 메세지
한 통이 왔다.
'김xx씨 별세,
발인 26일 05시.
부의금,
조화는 정중히 사양합니다.'
뒷 이야기지만
젊어서 친구는 하는 사업마다 잘돼서
수도권에
다수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몇 천억 재산가가 됐다고 한다.
"인생 산다는 거 별건가...
잠시 잠깐일세
" 친구가 하던 그 말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당신,
2년 전만해도 머리가 반백 이었는데
이제
전부 흰머리가 됐어요
." 며칠 전 아내가 하던 말이
귓속에서 뱅뱅거린다.
친구가 하던 말이 맞다.
아니 명언이다.
"인생 사는 거 별건가... 잠시 잠깐일세"
그래도
그 말을 입으로만 맞다 맞아 하면서
나는 그래도 아껴야 한다고 이 더위에
에어컨 켜는 걸 이유 붙인다.
'에어컨 켜고 살면 면역력이 떨어져
절대 안돼.
' 입으로 하는 말이지만 속 마음은
전기료가 부담스러워서...
''인생 산다는 거 별건가"
"잠시 잠깐일세"
나도
술 한잔 하면 곧잘 그 말을 하는데
그걸 잘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친구의 삶은 역시나 대인배 삶이었고,
내 삶은 역시나
소인배 삶이라는건 부인 못할 사실일세.
내 삶이
소인배 삶인 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 소인배 그룹에서 빠져 나갈
꾀도 없으니...
- 詩庭 박태훈의
'해학이 있는 아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