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총을 맞고 왈칵 거꾸러지는
돌격대 병사의 마지막 몸짓을
생각나게 하지만
물결은 한여름 밤하늘을
흘러내리는 불꽃 같이
몸의 중심부에서 터지는 것이다.
육체의 균형을 극한까지 추구하는
외줄 위에 서 있는 곡예사가
하늘 높이에서 노려보는 한계를
물결은 시시각각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까마귀가 날고 있는 더운 밀밭을
짓누르고 있는 검푸른 하늘이
오히려 고요한 것은
벌써 아슬아슬한 파국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에도
터질것 같은 고요를
안으로 견디고 있는 물결.
2.
무너지기 위하여
물결은 몸을 안으로 말아 올리며
힘껏 솟아오르나
붕괴 직전 잠시 숨을 죽이는
순간을 가진다.
높이뛰기 선수가 뛰어오른 하늘에서
잠시 머무는것과 같 다.
고갯길 정상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풍경을 전망하는 나그네 눈길을
스치는 햇빛 한 올같이
짧은 한 순간의 망설임.
살을 안으로 말아 올리는 연속동작은
수면에 떠오르는 가오리 가슴지느러미
너울거림같이 부드럽다.
절정에 이른 물결에
임의의 점을 설정하고 그 점을 이으면
물은 빠져나가고
아름답게 휘어진 곡선만이
뒤에 남는다.
3.
유적을 부는 바람처럼
물결은 몸짓으로만 있다.
아테네의 유적 같으나
붕괴의 속도에는 차이가 있다.
물결은 풍화하지 않는다.
목숨의 흔적이 없는 지구에 처음으로
연두색 바다가 태어나던
눈부신 순간부터
태어남과 사라짐을 되풀이하고 있는 물결.
처음 만나는 군청색 지중해 해안에서
어디서 한 번 본 얼굴 같은
친근감을 느끼는 것은
길에서 잃어버린 자기 얼굴을
물결의 몸짓에
비추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재생과 죽음을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있는
목숨의 쓸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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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물결에 대하여/ 허만하
시너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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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28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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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각적 이미지로
눈부신 그림
물결이 한껏 높이
치솟았다가
정지된 모습으로
담겨진 물결
제자리로 돌아가
조용해지고
태초부터 지금껏
탄생과 소멸
끊임없는 반복에
쓸쓸한 목숨
의인화를 넘어서
신격화 되어
수많은 죽음들을
기억한 물결
어느 누가 그 힘을
거역하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