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에서 풀린 화두
황 아무개라는 이름난 여자 배우가 있다. 관상 연구가들이나 성형외과 의사들에 의하면 그녀의 얼굴은 이목구비가 거의 봔벽게 가깝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런 그녀를 두고 '조각 미인'이라는 별칭을 붙여 찬사를 보내는 이들도 있는 모양이다. 이로 미루어 짐작건대, 그녀는 세상이 공인하는 빼어난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임에 틀림이 없겠다 싶다. 하지만 사람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보니, 더러는 그녀의 조각품 같은 생김생김에서 오히려 거부감이 느껴진다며 깎아내리기도 한다.
내 글을 두고도 간혹 그녀의 경우에서와 비슷한 말을 하는 이를 본다. 어디 한 군데 흠잡을 구석이 없이 너무 완벽하여 도리어 얄미운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참 완벽한'이 아닌 '너무 완벽한'것이 탈이 되어 그들로부터 미운털이 박혔나 보다.
사실이 그렇다. 나는 글을 쓸 때 구성에서부터 문장이며 낱말 하나하나, 띄어쓰기와 맞춤법에 이르기까지 최대한 완벽을 기하려 공력을 들인다. 혹시라도 결함이 있는 곳은 없는지 들여다보고,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본다. 그러기를 적어도 수십 번, 심지어는 수백 번을 되풀이하기도 한다. 그렇게 확인에 확인을 거듭한 다음 이제 이만하면 되었을 싶을 때 그제야 비로소 세상에 선을 보인다. 이처럼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한 작품 한 작품을 완성해 내는데, 너무 빈틈이 없어서 오히려 안 좋아 보인다니…. 그런 뜻밖의 소리를 들을 때면 이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어 적잖이 의아하고 당황스럽다.
그 사람들의 말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도저히 이해하려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빈틈이 없이 완벽하면 좋은 것이지 그것이 어째서 도리어 흠으로 치부될 수 있는 일인가. 이 문제는 나로선 참으로 풀기 어려운 화두여서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를 혼란에 빠뜨렸다.
그렇게 고뇌에 고뇌를 거듭하다 어느 순간 마침내 실마리를 찾았다. 우리 문화유산에 관한 집필 관계로, 한 무형문화재 사기장을 만나 달항아리에 대해 얕은 지식이나마 습득하게 되면서이다. 어둑시니같이 캄캄했던 눈이 화광을 만난 듯 찰나에 훤해지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사람들은 항용 달항아리가 어느 한 군데도 결함이 없이 매끈해야 최고인 줄로 안다. 얼핏 맞을 것처럼 여겨지지만, 이는 달항아리를 몰라서 갖게 되는 틀린 생각이다. 전통 방식으로 빚어지는 달항아리는 결코 완전무결한 것이 나오지 않는다. 만일 그런 형태와 색감을 지닌 달항아리가 나왔다고 한다면, 그건 백이면 백 전통 기법을 따르지 않고 만들어진 사이비라고 보면 틀림없다.
달항아리는 다른 도자기들에 비해 몸집이 월등히 크다. 그 때문에 여느 항아리들과는 달리 일체형으로는 절대 제작이 불가능하다.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똑같은 형태로 만들어 음과 양을 합치시키틋 서로 이어 붙여서 빚어야만 한다. 그런 다음 가마에다 넣고 1.300도가 넘는 불로 굽는 과정을 거친다. 상상을 초월하는 그 엄청난 열에 무려 스무 시간 가까이 몸이 달구어지고서야 마침내 세상에 태어난다. 그렇게 해서 생명을 얻게 되는 도자기가 어떻게 하나의 결점도 없이 완전한 형태며 순백의 색채를 지닐 수 있을 것인가. 그러기에 달항아리에서는 어딘가 한쪽이 일그러지고 얼룩이 남은 파격의 미가 역으로 그 존재가치를 지니게 하는 요체인 셈이다.
달항아리를 보면서 오래 품어 온 화두 하나가 비로소 어렴풋이나마 풀리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들 가운데 왜 예의 황 아무개 여인이나, 내 글을 대하고서 거부감을 가지는 이들이 있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빈틈이 업는 것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어수룩해 보이는 구석이 있어야 인간적이어서 오히려 친근감이 느껴진다고 했던가. 물이 지극히 맑으면 고기가 살지 않고 사람이 지극히 살피면 따르는 무리가 없다고 한 공자가어(孔子家語)의 말씀을 되새겨 보게 된다.
그러나 저러나 참으로 어려운 것이 세상사임을 새삼 절감한다. 그 복잡 미묘한 이치를 곰곰 헤아리며 고뇌에 잠긴다. 오늘따라 더욱 머리가 무거워 온다.
- 곽흥렬 -
첫댓글 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