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1. 서 론
2. (1). 한국 교육의 성장 배경
(2). 학교 교육론
(3). 양 국의 교육제도 비교
1). 한국의 교육 제도
2). 일본의 교육 제도
3. 결 론
한국 교육의 반성 및 개선 방향
서 론
교육은 나라발전의 기초다. 그러기에 현대국가는 교육발전계획을 빼고 나라발전계획을 세울 수 없다고 믿고 있다. 한편 현대인들이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열의를 보이는 것 또한 당연하다.
그런데 한국인은 교육에 대한 열의가 그 어떤 나라보다 높다고 자타가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열이 교육원리에 맞게 가열되면 개인과 국가발전에 큰 힘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교육열이라면 오히려 역작용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지금 한국교육은 열기는 높지만 원리에 빗나간 열기인 경우가 더 많다.
교육이념과 목표는 사회적 변화, 시대적 요구와의 계속적 상호 작용을 통하여 미래 교육의 방향을 제시하고 현실 교육을 통제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현행 교육법 상에 규정된 우리 교육의 이념은 자율 개방 창의성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 사회에서의 교육 지표로서는 적합하지 못하다. 교육의 현실적 여건과 21세기의 교육 이상에 부합하도록 교육이념과 목표를 구체화시킬 필요성이 있다. 새로운 교육이념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녀야 할 것이다. 교육이념은 미래지향적이어야 하며, 그 내용으로 공민성보다는 시민성의 함양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나라의 교육이념은 우리의 사회 문화적인 특수성을 포용해야 한다.
이제 한국교육의 현재상황과 문제점을 간추려 보고, 일본 교육제도와의 비교 ,고찰을 통하여 한국 교육의 미래의 방향을 제안하보려 한다.
1. 한국교육의 성장배경
한국인은 5000년 역사의 긴긴 뿌리를 가지고 삶을 이어온 문화민족이다. 따라서 독특한 교육사상과 전통도 있었으니 화랑도 교육과 동학교육사상 같은 것이 그것이다. 그런가하면 19세기 말 소위 개화기시대 나라가 비운에 처하게 되자 부국강병과 국태민안의 길은 오직 합리적인 교육뿐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에 의하여 가히 세계사에 없던 교육혁명 운동을 실천하여 보인 적이 있다.
한국 민족말살을 목표로 했던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교육정책이 1945년 민족해방으로 인하여 걷우어지자 그때부터 한국교육은 빠른 속도로 질과 양의 발전을 이루며 현재에 와 있다. 그로부터 50여년이 지나고 지금도 새로운 천년 2000년대에 접어들고 있다.
그동안 한국교육이 성장하는 데는 험난한 정치·사회적 고비도 많았다. 큰 것만 해도 8.15, 6.25, 4.19, 5.16, 6.3, 10.26, 12.12, 5.17, 6.29 등 격변의 연속사였다. 그런 와중에서도 지금 한국교육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크게 성장 발전하였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제도, 내용, 방법, 학생수, 교원수, 졸업생수 어느 것 하나 획기적 변모 아닌 것이 없다.
해방후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우리의 교육을 그토록 획기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게 하였는가? 가장 중요한 요인 몇 가지를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치적으로 모처럼 자주독립국가를 형성하게 되었다. 식민지 통치시대에는 '民度에 맞는 교육'이랍시고 차별적이며 폐쇄적인 교육정책 아래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해방 후 교육은 개인의 성장과 국가의 발전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요, 인간의 소중한 권리로 인식되었다. 교육에 관한 우리 국민의 그와 같은 인식은 그대로 제도화되고 실천될 수 있게 되었다.
둘째로,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교육의 기능이 강조되었다. 교육은 경제성장의 중요한 수단이 되었고 또 경제의 발전은 교육발전을 위한 재정능력의 증대를 수반하였다. 사실 교육, 인력, 경제 성장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으며 우리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교육이 경제성장만을 위한 수단이라고 보는 관점은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고 교육과 경제가 밀접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발전되어온 일면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
셋째로, 우리의 사회가 보다 개방화됨으로써 교육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크게 증대되었다. 특히 그 일환으로서 우리 국민의 교육에 대한 생각이 크게 변화하고 개방화 되었음을 빼놓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을 위한 교육', '평생을 위한 교육', 등의 새로운 교육이념에 관해서도 소수 정예분자만을 위한 교육의 개념은 점차 사라지고 대중화 단계를 거쳐 보편화 단계로 치닫고 있는 추세이다. 평생교육의 개념이 교육체제를 근본적으로 재인식시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러나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우리 국민의 교육열을 빼놓을 수 없다. 이것은 역사적으로도 입증되고 또 비교 교육학적으로도 충분히 입증되어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우리 민족, 우리 국민은 전세계 어느 민족, 어느 국민에게도 결코 뒤지지 않는 높은 교육열을 지니고 있다. 탁월한 자질과 저력을 바탕으로 뜨거운 교육열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어떠한 힘으로도 억누르기 어려운 힘의 원천으로 작용하였다. 우리의 이 높은 교육열은 가혹한 식민지 통치하에서도 말살할 수 없었고 지금은 가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도다.
2. 학교 교육론
학교는 가장 확실한 교육의 장이다. 그러기에 자고로 학교에는 모든 사람이 입학하고 졸업하기를 바라는 희망의 집이다. 비록 교육이념과 목적 혹은 내용과 방법을 두고 끊임없는 논의와 비판을 받아오고 있지만 현대사회의 발전을 위한 필수적 기구임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학교는 인류사회의 계속적인 변화와 지식의 발달에 따라 문화자원의 축적이 많아지고 질적으로 복잡해짐에 따라 이의 체계적 전달을 위한 사회적 필요에 의하여 오늘과 같은 규모와 내용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더구나 현대사회의 특성에 의하여 전통적인 가정, 지역사회, 교회, 사찰 등에 의한 교육적 기능이 약화됨에 따라 자연히 강력한 학교교육에 대한 기대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교육을 고유한 목적으로 하는 계획적, 형식적, 의도적 교육기관으로서의 학교는 현대 사회구조 자체의 요구와 국민국가의 형성에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개인, 가족, 사회가 자신을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되어 더욱 확충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이러한 학교교육제도를 한, 일 양 국가간의 교육제도를 비교해보고자 한다.
3. 양 국의 교육 제도 비교
양 국가의 학교 교육 제도는 미국의 교육제도와 흡사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에 의해 교육제도가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두 나라는 서로 닮은점이 너무나도 많기에 또한 그러면서도 서로 이질적인 면이 상당히 많은 국가이다. 일본의 교육제도중 유치원교육, 초등교육, 중등교육까지는 한국의 교육제도와 거의 유사하고, 일본에도 입시지옥이 있는 것은 한국과 마찬가지다. 두 나라 모두 고등학교 교육을 마친 후에는 소위 명문대학 진학을 둘러싼 과다한 입시경쟁으로 인하여 '수험전쟁’ 혹은 ‘수험지옥’이라는 말이 두 나라 모두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1). 한국의 교육 제도
가. 학교 교육 제도
해방 후에 우리 나라를 장악한 미군정은 1946년 초에 조선교육심의회의 결의에 따라 6-3-3-4를 근간으로 하는 신학제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미군정하에서 시행된 학제는 6-6-4제였다. 즉 초급중학 3년과 고급중학 3년 과정을 6년제의 중학교 또는 실업중학교에서 가르쳤고, 3년제 초급중학교가 별도로 설치된 것은 매우 예적적이었다. 1949년 12월 31일 제정 공포된 교육법에서는 중학교 수업연한을 4년, 그리고 고등학교 수업연한을 2-4년으로 정하였다.
이 교육법상 제도는 시행도 되지 못하고 1950년 3월 10일 6-4-3-4제 학제 개혁안이 국회에서 채택되었다. 이 제도 또한 전쟁으로 인해 시행되지 못하고 피난지 부산에서 1951년 3월 20일에 다시 교육법을 개정하여 현행 6-3-3-4제가 비로서 정착하게 되었다.
이 제도는 지금 현재에도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그리고 정규 대학 4년이라는 제도로서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러한 단일 학제에서 초래된 우리 교육의 국제 경쟁력 약화 현상을 극복하고자 1995년부터 추진된 「신교육 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 개혁」에서는 유치원교육의 기간 학제 편입, 중등교육의 다양화와 특성화, 대학 모형의 다양화와 특성화, 전문대학원 제도의 도입등 학제의 다양화를 위한 과감한 조치들이 구상되고 있다.
초등교육 50년사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는 초등교육의 단일화, 무상 의무교육의 실현, 그리고 적령 아동의 완전 취학이다. 일제 시대에 6년제와 8년제, 그리고 일본인 학교와 조선인 학교등으로 차별화되어 실시되던 초등 교육은 해방과 함께 곧 6년제 단일 교육 체제로 정착하게 되었다. 의무교육은 미군정에 의해 제도화되어 신학제가 처음 실시된 1946년 9월 신학기부터 형식적이나마 실시되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대한민국 헌법 제16조와 교육법 제96조에서는 초등교육이 무상 의무교육이어야 함을 명시하였다. 초등학교 취학율은 1970년부터 완전 취학을 이루었으나 1995년을 기점으로 취학율이 다시 100%이하로 낮아지고 있다. 이는 인구수의 감소보다 국민학교 학생수의 감소가 현저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중등 교육에 있어서의 민족간, 남녀간, 계통간 차별을 특징으로 하는 복선형 학제가 미군정에 의해 단선형 학제로 개편된 이후 중학교 취학율은 1970년에 50%를 넘어섰고 1995년에 완전 취학을 달성하였다.
고등학교 취학율도 1995년에 89.9%를 보이고 있어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다. 그동안 중등 학교 취학율의 상승과정에서 가장 많은 변화를 겪었던 것은 입학 제도였다. 학교별 학생 선발기(1945-1950), 국가연합고시제도(1951-1953), 유시험 무시험 병행(학교별 출제: 1954-1957), 유시험 무시험 병행(학교간 연합출제 권장, 학교별 전형:1958-1961), 국가공동출제(1962), 시 도별 공동출제(1963-1965), 공동 단독출제 병행(1966), 시 도별 공동출제(1967-1968)등을 거쳐 1969학년도부터 연차적으로 1971학년도까지 중학교 무시험 추천 진학제를 도입하였고 1974학년도부터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을 채택하여 지나친 입시경쟁의 비교육적 측면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평준화 정책의 결과에 대한 많은 비판속에 1989년부터는 평준화 조치가 부분적으로 해제되기 시작하였으며 1995년 5월 31일에 발표된 교육 개혁안은 중등 교육에서도 평준화 보다는 경쟁을 통한 다양화와 특성화를 지향하고 있다.
일제 시대에 전문학교와 대학으로 이원화되어있던 고등교육은 해방과 함께 4년제 대학으로 일원화되었다.
이후 우리 나라 고등교육 체제는 몇 단계를 거쳐 발전해 왔다. 미군정에 의한 국립서울대학교의 설립과 저항기(1945-1948), 대학자치에 대한 국가 권력의 간섭 시도기(1948-1968), 대학과 국가 권력의 갈등 및 타협기(1969-1980), 대학자치의 실종과 국가 예속기(1980-1994), 대학의 자율성 회복기(1994- 현재)등을 거치면서 많은 제도 변화와 함께 고등 교육 인구도 크게 팽창하였다.
해방 직후의 1%미만이었던 취학율이 1970년에 8.8%, 1980년에 16.0%, 그리고 1995년에는 50%를 넘게 되었다. 해방 이후 행해진 고등교육 관계 주요 제도 변화로서는 지방 국립대학의 설치 시작(1952), 대학설치기준령의 공포(1955), 사립학교법의 제정(1963), 실험대학 정책의 도입(1973), 대학의 특성화 정책(1974), 교수재임용제 도입(1976), 졸업정원제의 일시적 채택(1980), 교육 대학 및 한국방송통신대학의 4년제로의 승격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제도 변화는 대부분 대학의 양적 팽창을 유발하거나 이로 인해 초래되는 대학에 대한 국가 권력의 통제 필요성을 충족시키기 위한 조치들이었다. 1994학년도부터 학생 선발권이 부분적으로 대학의 자율적 판단에 맡겨지는 등 대학 자율권은 점차 회복되고 있다. 1995년 5.31 교육개혁안에서도 대학의 다양화, 특성화를 통한 고등교육 부문의 국제 경쟁력 강화는 가장 중요한 개혁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대학의 서열화에서 오는 지나친 입시경쟁을 완화시킬 수 있는 분야별 특성화를 가속화 시킬 수 있는 정책적 노력등이 요구되고 있다.
나. 사회교육제도
해방 이후 사회교육은 그 주체에 따라 정부 차원의 사회 교육과 민간 차원의 사회 교육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정부 차원의 사회 교육은 시기별로 그 중점 방향이 변해 왔다. 해방으로부터 1950년대 말까지는 미취학 아동 및 청소년, 그리고 문맹 성인을 대상으로 한 문맹퇴치 및 공민 교육에 역점을 두었다. 각종 공민학교와 기술학교, 고등기술학교등이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사회 교육은 주로 경제 성장에 필요한 기술교육과 지역사회 개발을 위한 교육이 주류였다. 이 시기 사회교육 운동의 대명사는 새마을운동이었다.
1971년에 시작되어 1980년대 이후에도 계속되어 온 이 운동은 농어촌 소득증대 및 환경 개선등에 긍정적 효과를 미치기도 하였으나 정치적으로 악용됨으로써 많은 비판을 받았다.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사회교육은 중등교육의 보편화와 고등교육의 대중화에 따른 보완 정책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났다. 방송통신대학의 4년제 승격(1981), 사회교육법의 제정(1982), 유아교육법의 제정(1982), 1982년부터 시작된 개방대학제도, 독학사제, 사내대학제도등은 사회교육제도의 큰 진전을 가져왔다. 이러한 대부분의 제도는 순수한 사회교육적 기능보다는 준학교교육적 기능을 주로 담당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해방 직후에도 대학생과 교원 중심의 농촌계몽운동이나 한글강습회등 민간 차원의 사회 교육운동이 행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회교육 운동이 민간주도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경제 개발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1970년대 부터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사회적 모순 해결을 표방한 다양한 사회 운동 단체가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종교인, 교육자, 그리고 여성들의 적극적 참여에 의해 확산된 이들 사회 단체들의 활동은 특히 정치적 비판의식, 민주 시민의식의 확산에 많은 영향을 미쳐왔다.
2). 일본의 교육 제도
가. 학교 교육제도
일본의 학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학제를 본받았기 때문에 한국의 학제와 일치한다. 일본에서는 문부성과 교육 위원회가 전국을 관할하고, 기본적으로는 소학교(6년제)·중학교(3년제)·고등학교(3년제)·대학교(4년제)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외에도, 단대(2년제)나 전수학교(1∼2년제) 등이 있고,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유치원이나 보육원 등도 있다.
어느 것이나 국공립과 사립의 두 종류이고, 각각 특색을 살려서 운영되고 있어, 희망하는 학교에는 학생이 자유로이 시험을 치를 수 있다. 또 수사(修士:碩士) 과정 2년, 박사과정 4년의 대학원제 및 한국의 전문대학에 해당하는 2년 과정의 단기(短期)대학제도 한국과 흡사하다.
한국에 없는 학제로는 중학교 졸업자가 입학하는 5년제의 고등전문학교가 있는데, 중급기술자의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학교이다. 대학에서 고등학교·중학교·소학교에 이르기까지 학교간 격차가 심하여 입시 체제가 강화되어 있는 점도 한국의 경우와 흡사하다.
1> 소학교 : 만 6세에 입학하고 사회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초과목을 학습한다(초등보통학교). 같은 선생이 전 과목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2> 중학교 : 국가 및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필요한 자질을 기르고 사회에 필요한 직업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 기능을 익히고 개성에 맞춰 장래의 진로를 선택하는 능력을 기른다(중등보통학교). 중학교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외국어(영어)를 배우며 과목마다 전공한 교사가 가르친다.
소학교, 중학교를 합해 9년간이 의무교육이고, 취학률은 100%로서 부모는 어린이를 취학시킬 의무가 있으며(헌법 26조), 시, 정 , 촌은 학교를 설립할 의무가 있다.
3> 고등학교 : 중학교를 졸업한 자가 입학시험에 합격한 후에 입학한다. 국가 및 사회에 유익한 형성자로서 필요한 자질을 기르고, 해야 할 사명의 자각에 의해 개성에 맞춰 장래의 진로를 결정하기 위해 필요한 일반 교양과목 혹은 전문기능과목은 공업, 농업, 상업, 수산 등으로 나눠져, 각각 공업고등학교, 농업고등학교, 상업고등하교, 수산고등학교가 있다. 고등학교는 국립도 있으나, 주로 공립과 사립이다.
4> 대학 :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가 입학시험에 합격하여 입학한다. 대학은 기술 중심으로 넓게 지식을 익히는 곳이며 깊게 전문의 학예를 교수 연구하고 지적, 도덕적 응용능력을 발전시킨다. 즉, 대학은 교육기관임과 동시에 그 자체는 학술연구기관으로서의 역할도 지니고 있다. 수업 연한은 일반학부(대학)눈 4년이지만 의과나 치의과는 6년이며 대학원은 수사과정 2년, 박사과정3년(의과, 치의과는 석사과정이 없고 박사과정만 4년)이다. 또 대학원 과정을 5년으로 해서 박사과정 전기 2년, 후기 3년으로 하는 곳도 있다.
대학은 국, 공, 사립이 있으며 그 가운데서도 사립이 많다. 일본에서는 대학교와 대학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 대학이라고 한다. 즉 대학교 대학 학과가 아니라 대학 학부 학과 이다.
입시제도는 국·공립대학과 사립대학과는 크게 다르다. 극·공립대학은 전과목에 걸쳐 시험을 치르는 소위 센타 시험을 치른 후 전기·후기로 나눠서 본고사를 치른다.
한편 사립대학은 전과목을 공부할 필요가 없다. 자기가 지망하는 대학에서 정한 과목만 공부하면 된다. 따라서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국·공립대학으로 진학할 학생과 사립대학으로 진학할 학생은 따로 따로 공부하게 된다.
나라의 제도에 의거하여 역사가 가장 오래된 대학은 현재의 토오꾜대학이다. 이밖에도 도·도·부·현에 하나씩 있는 4년제 교육대학 등 모두 합해서 99개 국립대학이 있다.
공립대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토오꾜 도립대학·쿄오또 부립대학·오오사까 시립대학 등 모두 66개 대학이 있다. 또한 사립대학은 533개 대학이 있으며, 와세다대학, 케이오 대학은 사학의 쌍벽이라고 하고 있다. 이 밖에 학생수가 가장 많은 니혼 대학(10만명 이상)과 릭꾜 대학·호오세이 대학·메이지대학, 그리고 킹끼 지방에는 도오시샤 대학을 비롯하여 칸사이가꾸인 대학·리쯔메이깐 대학·칸사이 대학 등이 있다. 상기 604개 대학 가운데 409개 대학에는 대학원이 설치되어 있다. 이밖에 단기 대학이 국·공·사립 합해서 541개교가 있다(2000년).
이와 같이 일본에는 많은 대학이 있으나 한국어가 과로서 실치되어 있는 대학은 국립대학인 토오꾜 외국어대학·오오사까 외국어대학·토야마 대학 그리고 사립대학인 텐리 대학등으로 아직 많지는 않으나 교양으로 최근 많은 대학에서 가르치기 시작하고 있다.
이밖에 단기대학 2년, 고등전문학교 2년(중학교 졸업한 후 공업고등하교 3년 합해서 5년 교육)이 있다.
나. 교육제도의 발전
19세기 전반까지의 봉건시대에도 백성들 사이에는 자주적 교육열이 높았다.
당시는 무사 계급이 군사 담당과 더불어 행정 담당자로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필요한 교양·도덕· 무도를 가르치는 반교가 각지에 설치되어 있다. 서민들은 생활에 필요한 읽기·쓰기·주판을 가르치는 테라고야라는 작은 학교가 전국에 2만여개나 지어져 있었다. 이 테라고야는 누구의 구속도 없이 학년도 결정되지 않은 자유로은 학교였다. 확실하지 않지만 40% 이상의 서민들이 여기서 배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메이지에 이르러서 일본의 근대화와 더불어 정부는 서양의 학문을 도입하여 산업.문화를 발달시키기 위해 소학교에서 대학까지의 교육제도를 정비하도록 하였다.
1872년, 학제가 발포되어 처음으로 의무교육제가 실시되어, 1900년에 만 6세부터 4년제 교육이 정해져 이 해에는 90%의 취학률을 보였다. 1907년에 6년제가 되면서부터 99%의 취학률을 나타냈다.
소학교· 중학교·고등여학교·실업고등학교·고등학교·전문학교·대학등이 많은 학교가 세워졌다. 그러나 소학교 이외는 희망자가 선택해서 입학하는 것으로 진학룰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1935년 당시의 중학교에의 진학률은 3%였다.
1945년에 교육제도 전면적으로 개정되어 의무교육 기간이 9년으로 연장되었다.
* 진학률
근대 일본에서는 직업을 얻기 위한 조건이 능력 중심으로 되어 있어서 출신 계급이나 가문 등은 거의 관계가 없고, 그 능력의 판단기준이 어느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가에 있었다. 따라서 집이 가난해도 좋은 학교를 졸업하여 좋은 직장을 갖고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갖는 것이 많은 사람들 의 염원이 되었다.
더욱이 근대화 이전부터 공부를 좋아하는 국민성이 있었고 교육을 좋아하는 기풍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두가 경쟁적으로 진학하였고 가능하면 대학까지 가려했기 때문에 진학률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근년에는 특히 대학 진학률이 높아졌는데 이것은 일반적으로 대학에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경제력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많은 사람이 대학에 진학하려고 하지만 대학, 대학생간의 수준차가 커서 대학을 졸업하는 것만으로는 능력의 증명이 되지 않는 것이 실정이다.
대학원의 학생은 모두해서 17만명으로 입학이 상당히 어려워서 희망자의 3분의 1밖에 들어가지 못한다. 일본의 대학원은 연구자 육성을 목적으로 하여 수준이 높고 각 기업은 이공학계 대학원 석사를 기술자로 많이 채용하고 있다.
많은 소학생들의 일요일 아침 일찍부터, 또, 학교가 끝난 저녁부터 숙에 나가, 밤 9시를 넘겨, 전철로 귀가하는 모습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비판적이어도 이러한 소·중학생 사이의 「숙붐」은 당분간 해소될 것 같지는 않다.
이 경향은 고교생이 되면 한층 확대된다. 목표하는 대학에 실패할 경우, 소위 「낭인」이라고 불려지는 무소속의 입장을 선택하는 자도 있다. 그들은 「예비교」라는 대규모 숙에 다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든 수험 대책 수업을 받는다. 더구나 귀가 후에도 밤늦게까지 공부를 계속하는 등, 정말로 잿빛 청춘 시대를 보내면서 다음의 수험을 준비하는 것이다.
결 론
1. 한국 교육 50년의 반성과 개선 방향
지금까지 간략하게나마 양 국가의 학교 교육제도와 그 발전과정을 살펴 보았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양 국가의 교육제도의 특징과 그로 인해 겪고 있는 문제점들은 정말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두 국가의 가장 대표적인 문제로는 치열한 입시 경쟁문제를 들 수 있다. 이런 입학시험의 경쟁은 학교 교육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수험생들의 민간 교육 및 사교육에의 의지 라는 문제점을 낳고 있다.
해방 이후 한국 교육은 양적인 면에서의 괄목할 만한 성장과 제도적 측면에서의 많은 개선을 이루었다. 그러나 질적인 측면에서는 아직도 많은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교육이 사회의 진보적 변화를 가져오는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측면에서의 개혁이 불가피하다. 이런 개혁은 비단 우리 나라 뿐만이 아닌 우리와 같은 교육제도의 문제점을 안고 있는 일본의 교육 개혁방향으로서도 필요하다고 감히 생각한다.
가. 교육권의 균등 배분
일제 시대 이래 지속되어 온 국가 권력에 의한 교육의 관료적 통제 풍토는 교육 발전을 저해하고 교육의 대외 경쟁력을 약화시킨 가장 큰 요인이다. 교육 자치제의 보완을 통한 문교부 권한의 과감한 지방 교육행정 기관으로의 이관, 학교 단위 교육 자치의 활성화를 위한 교사 학부모 교육행정가의 협조 체제 구축등이 요청된다.
나. 교육 여건 개선을 위한 투자의 확대
해방 이후 많은 발전을 이루었으나 아직도 각급 학교의 교육 여건은 21세기의 정보화 사회, 민주 시민사회에 적합한 인간을 양성하기에는 미비하다. 학급당 학생수의 축소, 실험 실습실, 도서관, 정산 정보 기자재등 교육 효과의 향상을 위한 시설투자등에 과감한 재정적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비에서 차지하는 공교육비의 비중 확대는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지출 경쟁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평등 교육 실현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다. 우수 교원의 양성
교육 개혁의 핵심 세력인 교사 집단의 질적 수준, 직업 의식의 철저성 여부는 교육 개혁 성패의 열쇠라고 하겠다. 따라서 우수한 인재를 교육자 세계로 끌어들일 수 있는 교사교육 프로그램의 마련과 교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근무 환경 및 조건의 개선이 필요하다.
라. 대학의 다양화
해방 이후 반세기의 한국 교육은 대학 입시에 볼모가 된 파행적 교육이었다. 획일적 기준에 의한 대학의 서열화는 하급 교육의 파행성을 초래할 수 밖에 없었다. 교육에 대한 국제 비교에서 가장 경쟁력이 약한 것이 바로 고등 교육이다. 교수 1인당 학생숫자는 해방 직후보다 개선되기는 커녕 오히려 3배 이상 악화되었다. 고등 교육 부문의 질적 향상, 특히 대학의 특성화 와 다양화를 위한 획기적인 제도적, 재정적 조처들이 요구된다.
마. 교육내용과 방법의 전근대성 극복
지난 50년간의 한국 교육은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식중심, 암기중심의 입시 준비 교육이라는 특성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생활중심의 교육, 경험중심의 교육, 대화중심의 교육등이 가능하도록 대학 입시제도등의 개혁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이상으로 부족하게나마 레포트를 마친다. 끝으로 이런 기회를 통하여 그동안 한번도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못한 우리 교육 제도와 일본 교육 제도를 살펴봄으로서 그 문제점에 대하여 생각 할수 있는 기회를 주신 교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