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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림마을 입구에 약 500살 된 보호수 멀리 보이는 산이 영암의 기가 흐르는 월출산이다.
***아래 글은 조카가 쓴 여행보고서 입니다.***
금요일 아침, 부모님께서 저녁에 모임에 가신다고 했다. 오랜만에 부모님으로부터 해방된다고 생각하고 학원수업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에 ‘글수레’에 들려서 만화책 몇 권을 빌려왔다.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엄마였다. 영암군 군서면에서 아빠친구들과 가족모임을 갖는다며 나갈 채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안가겠다고 하자 엄마는 온갖 협박을 다 동원했다. ‘에구 내가 언제쯤 엄마를 이길 수 있을까...’ 우리가족은 어두운 밤길을 30여분 달려 군서면 서구림 ‘대동계’ 민박에 도착했다. 티비드라마 ‘대왕세종’에서 나올법한 커다란 대문을 지나자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우리가족을 반겼다.
벌써 다른 가족들은 도착해서 대동계 마당은 잔치집 같았다. 아빠친구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함께 온 가족들과도 인사를 했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친구도 있었고, 어린 동생들도 있었다. 시골이라 그런지 찻소리도 안 들리고 티비나 컴퓨터도 없고 조용하기만 했다. 어른들은 신나서 밤새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고 어린 아이들은 끼리끼리 어느새 친해져서 장난치며 놀고 있었지만 난 여전히 어색한 분위기가 못마땅했다. ‘어쩌라구?’ 오기싫다는 사람 데려오더니 표정관리까지 요구하는 부모님이 싫어서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왔다. 한옥냄새가 콧속으로 들락거렸고 격자무늬 창사이로 달빛이 스며들었다. ‘뭐야? 대왕세종이 창살보고 한글을 만들었나?’ 창살에 한글자음들을 그리다 스르륵 잠이 들었다.
“일어나라! 원신아.” 누군가 나를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어둠속에서 하얀 얼굴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꺄~~악!!”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하하하...원신아, 아빠야” 아빠가 놀란 나를 흔들었다. 자세히 보니 후레쉬로 비친 아빠 얼굴이었다. “왜 그래요~~. 자는 사람 놀랐잖아요.” “새벽인데, 아빠랑 산책하고 물 마시러 가자.” ‘아이고... 성가셔라. 물 안 마셔도 되는데요.’라고 입에서 나오는 말을 꾹~~참고 일어나 아빠를 따라 나섰다. “원신아, 이모임은 아빠의 고등학교 동창모임인데, 학교 졸업 후부터 지금까지 20년 동안 매년 모임을 갖고 있단다. 올해 영암 ’대동계‘에서 모임을 갖는 것은 540년이 넘도록 유지되어온 ‘대동계의 정신을 배우’는 취지란다.
“구림 대동계는 1565년(명종 20)경에 박규정 · 임호 등이 주축이 되어 만들었다고 들었단다. 구림 대동계는 명칭은 계(契)이나 설립당시의 우리나라에 있어 향약조직의 필요성에 대한 시대적요구와 대동계의 창립을 선언하는 구림동중수계서(鳩林洞中修序)에서 보여주는 설립배경, 그리고 계약(約)과 동헌(洞憲)또는 강령의 내용을 보면 향약(鄕約)이다. 즉 우리사회에 기존하였던 상부상조를 주요 목적으로한 계(契)에 중국에서 전래한 향약의 이념을 반영한 향약적 성격의 계 또는 계 명칭의 향약이다. 화민성속(化民成俗)을 위한 향약적 성격의 구림 대동계는 유일하게 설립초기의 계문서(契文書,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98호)가 보존되고 지금까지 계 운영이 지속되고 있어. 당시 임호의 구림동중수계서(鳩林洞中修序)에 의하면, 친족간의 친소관계가 약해지고 그 통제가 어려워 짐에 따라 동계가 설립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보다 150여년 전에 이미 동계의 선행 형태가 있었는데, 난포박씨 박빈(朴彬)이 구림으로 입향한 후 그 내 · 외손들을 중심으로 조직한 것으로 그 뒤 박권 · 박목조(朴木條) · 임구령 · 박휘(朴揮) 등에 의해 유지되었단다.”
새벽안개가 뽀얗게 끼인 길을 걸어 구림 중학교를 지나서 왕인 박사유적지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 일본인들이 배용준이라는 배우를 욘사마라고 부르고 한류열풍을 일으켰다고 하지만 일본에서 한류의 신이 된 사람은 백제 왕인이지. 천자문을 들고 일본에 가서 아스카문화를 일으켰어. 그래서 매년 4월 왕인박사 축제 때는 일본사람들이 이곳에 몰려와 참배를 드린단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아빠가 아니라 ‘역사길라잡이’같았다. 아빠가 많은 역사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존경스러워졌다. 약수터에 도착하자 아빠는 바가지에 물을 받아주며 “이건 왕인이 마시던 물이다. 마셔라.”라고 말씀하셨다. “아빠 이 물마시고 나도 왕인처럼 신이 되는 거 아닐까?”라고 말하자 “좋지!!”라며 껄껄 웃으셨다.
약수터에서 돌아오는 길에 대동계 뒤편에 있는 회사정에 들렸다.
회사정 안내글에 회사정은 대동계의 창설과 때를 같이하여 지어진 회원들의 집회장소인 정자. 더불어 마을을 찾은 귀빈의 영접이나 경축행사에 이용되었고, 3·1운동 때 먼저 독립만세의 기치를 올렸던 곳이기도 해서 마을의 작은 역사책이라고 쓰여 있었다.
(대동계 옆 시골방앗간 )
1박 2일 동안 아빠동창 가족들과 구림 대동계 민박에서 지내면서 전통 마을의 풍경과 구림 도기센터를 돌아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른 오후에 아빠동창가족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빠는 “원신이도 좋은 친구들 많이 사귀고 니가 20년 후에 친구들과 다시 대동계를 찾아오면 아마도 아빠친구들이랑 즐겁게 보낸 일을 기억하겠지?” “그럼요. 대동계가 약 540년도 유지되었는데, 20년 후도 분명 있을 거예요. 내 친구들이랑 엄마 아빠도 함께 모시고 올거예요.” “껄껄껄...” 아빠의 웃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창녕조씨 문중의 종가 조선 후기 대농의 집으로 5칸 집이며 현재 안채만 남아 있다.)
돌담길이 있는 구림마을...
대동계 민박을 이용하시려면 예약을 하셔야 합니다.
10인기준 6만원 1인추가시 5000원을 더 지불합니다. 대표 전화 : 010 - 5054 - 3638
***민박운영자에게 영암군청에 소개된 비용과 차이가 난다고 했더니, 군청 사이트에 올라간 내용이 오래되었다고....ㅋ 대동계 민박은 개인이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대동계에서 운영하며 매년 관리담당자가 바뀐다고 한다.
영암군 군서면 대동계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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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설이 있는 여행 원문보기 글쓴이: ─━큐ㅌ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