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의 청두(성도)
중국은 러시아, 캐나다에 이어 지구상에서 세 번째로 땅덩이가 큰 나라이면서 인구는 가장 많어 14억으로 추산된다. 인구의 92%가 한족(漢族)이며 나머지는 55개 소수민족이다. 행정구역은 성급(省級), 시급(市級), 현급(縣級), 향급(鄕級)의 4계층 행정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성급행정구역은 33개로 4직할시(베이징, 텐진, 충칭, 샹하이), 22성, 5자치구, 2특별행정구(홍콩, 마카오)가 있다. 쓰촨(사천)은 중국 서부내륙지방에 있는 성(省)으로 민강, 금사강, 타강, 가릉강 등 네 개의 강물이 흘러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성으로 한반도의 2.2배나 되며 인구는 세 번째로 남북한의 인구와 비슷한 9천만 명으로 행정구역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청두(成都)는 쓰촨성(사천성)의 성도(城都)이면서 중국어로는 청두라고 한다. 중국 삼국시대에 유비가 세운 촉나라의 수도로 2천 년 가까운 오랜 역사와 수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한 도시다. 청두일대는 비옥한 청두평원이 펼쳐져 강과 산과 들녘에서 물자가 풍부하여 하늘이 내린 풍요의 땅이란 뜻에서 천부지국(天府之國)이라고 불리며 유유자적하고 한가로운 일상이 펼쳐지면서 느림의 문화가 생겨났다고 한다. 여기에 풍부한 물산은 음식문화의 발달로 이어졌다. 동쪽 양쯔강 하류의 상하이 요리, 서쪽 양쯔강 중상류의 청두 쓰촨요리, 남쪽 쭈강 지역의 광둥요리가 황허강 지역과 북방지역의 베이징 요리와 더불어 동서남북에 포진하며 중국의 4대 요리로 손꼽힌다.
청두는 서남부 지역의 중심 도시로서 이미 진대(秦代:BC 221~206)에 관개시설이 만들어졌으며 당나라를 거치면서 교통의 중심지로. 발달하였다. 티베트고원 등에 차를 공급하는 출발점이 되었고 등짐을 맨 마방의 차마고도 시발지가 되었다. 마방은 차마고도를 관장하던 상인조직이며 차와 말 그 외에 소금 금 은 동을 교역하였다. 소수민족으로 유목생활을 하는 장족은 차를 마시지 않으면 괴혈병에 시달려 절대적이었다. 낮은 구릉과 산에 둘러싸인 청두는 짙은 안개에 습도가 상당히 높다. 따라서 연중 햇빛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날이 불과 50여일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의 하늘이 얼마나 맑고 금빛 햇살이 얼마나 곱게 쏟아지는지 새삼 자랑스러우며 그리워진다. 청두는 한국보다 1시간 느린 시차가 적용되며 인구는 서울의 인구보다 오히려 많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삼국지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며, 삼국지는 중국 삼국의 실제 역사로 구분을 한다. 청두는 유비가 양자강 지류 민강 유역의 비옥한 땅에 세웠던 촉나라의 수도로 유비, 관우 장비 등의 발자취를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촉경은 촉나라의 수도인 청두로 지금도 성도의 또 다른 비공식 이름으로 쓰인다. 한나라가 위나라에게 멸망한 후에는 유비가 촉한을 세우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유비의 아들인 유선에 이르러 촉한이 위나라에 망하고 청두는 대도시의 지위를 잃었다가 당나라 때 비로소 대도시 지위를 되찾고 다시 익주에서 청두로 불린다.
청두는 낙양, 장안만큼 발달하였다. 낙양(뤄양)은 황허의 상류 허난성으로 기원전 770년에 처음 주나라의 수도로 후한과 위, 진, 조 삼국시대의 위나라, 서진과 북위, 수나라 때 양제와 무주, 오대 때의 후당 등 아홉 왕조로 이어졌다. 또한 장안(지금의 시안)은 한(漢)나라의 수도로 수나라, 당나라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특히 후한 시대부터 당나라까지는 장안이 정치 행정의 도읍지였다면, 낙양은 당시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로 번성한 국제적인 도시였다. 2010년도에 중경(충칭)은 2885만 명, 상해(상하이)는 2302만 명, 북경(베이징)은 1972만 명, 청두는 1404만 명으로 인구센서스에서 조사되었다. 인천공항에서 청두까지 2,200km로 4시간여가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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