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을 하다보면 - 인수봉 아미동길.,환갑 등반기.
인수봉에는 바위길(루트)이 공식적으로는 89개.
아미동길은 인수봉 루트 중에서 중고참에 해당된다.
1973년에 개척되었으니까.,고전적인 바위길은 아니다.
'아미동길'은 인수봉 89루트 중에서
클라이머들이 가장 즐겨 많이 찾는다.
지금도 나는 산에 가는 날에 마음이 어린아이처럼 들뜬다.
특히, 인수봉을 오르기 전날 밤에는.,잠을 설칠 때가 많았다.
눈을 감아도 망막 위에 그곳의 바위길 루트가 아른거리기 때문.
잠자리에 누워서도.,'클라이밍 무브먼트.'
그러다가, 설렘 가득한 꿈 속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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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봉.,아미동길
..........................아미동길.......................
'한국 산악회'의 산하 단체였던., 아카데미산악회.
'아카데미'에서 첫자 '아'와 끝자 '미'를 따서.,아미.
'아미동길' 개척자 이동일씨 이름의 가운데 글자.,'동'.
1969년에 개설된 등산 아카데미와
1971년부터 산악오리엔티어링대회.
1973년 개척된 아미동길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과 벗이 되는 클린 등반정신이 강한 바위길이다.
암벽 입문 또는 등산학교 졸업등반 루트(난이도 5.10a).
바윗길이 적당한 고도감에 슬립과 크랙이 믹스.
밸런스를 유지하면 손쉽게 오를 수 있는., 바윗길.
개척 당시 7피치, 현재 5피치로., 인기가 높은 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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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봉.,아미동길.
한국산악회는
산림청 산하 단체로서
우리나라의 대표적 산악단체.
........................한국산악회................................
1931년을 전후하여 일본인들이 조선산악회를 조직하자
이에 자극받은 한국 산악인들은 1940년경 엄홍섭 중심으로
백령회(白嶺會)라는 등산 동호회를 결성하여 산악운동을 전개.
1946년부터 1954년까지 한라산(1946),
차령산맥학술등반(1946)·울릉도·독도(1947)
등 모두 11회에 걸쳐 전국에 학술조사단을 파견.
명승지 조사와 산맥답사 등의 자료를 정부에 제공.
'1947 & 1952∼1953' 울릉도·독도 학술등반 및 독도측량.
1955년 여름에 최초로 설악산종합학술등반을 시행하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많은 해외원정대를 파견하면서 국제교류.
1969년에 개설된 등산 아카데미.
1971년부터 산악오리엔티어링대회.
1969년에 국제산악연맹에 가입하였으며,
1973년에는 국제산악연맹 산악보호위원국.
1969년 2월 해외원정 훈련대 10명 설악산 조난.
1975년 안나푸르나 정찰에 이어 정식허가를 얻고,
1978년에는 안나푸르나 4봉(7,252m, 등정자 劉東玉),
1982년에는 마칼루봉(Makalu, 8,481m, 등정자 許永浩)
1987년 12월 에베레스트(Everest, 8,848m) 등정(허영호)
1947년 학생산악연맹, 1978년에는 전국고교산악연맹 결성.
2011년 세계 최초로 60세 이상 실버원정대 에베레스트 파견.
에베레스트 정상에 등정한 한국산악회 부회장 김성봉 대장(66)
그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최고령 한국 산악인으로 기록되었다.
한국산악회(1995년 기준)는 명예회장과 회장, 부회장,
상임이사회가 있고 이사회 산하에 사무국, 산악연수원,
산악문화연구소, 산악도서관, 시·도 및 해외지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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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 산하단체 중에 한국 대학 산악연맹은
국내 각 대학 산악회를 통한 건전한 산악운동과
등산문화를 보급할 목적으로 2009년 12월 15일 설립.
사무실은 역삼동 740-10,
한국산악문화회관 내에 있다.
산림청이 건설 추진 중에 있는., 국립등산학교.
공공성 전문성 강화를 위한., 아카데미 기관이 될듯.
2017 말~2018 초, 속초 국립산악박물관 내.,준공 예정.
2010.5.7 금., 아미동길.
필자의 후배.,김의열.
2010. 5. 7 필자의 환갑기념 등반 루트.,아미동길.
바위길 이름에는.,역사, 전통, 스토리 등이 담겨 있다.
아미동길은 '아카데미(academy)'에 걸맞는.,루트 이름.
1990년 不惑의 나이에 암벽등반에 입문한 후에
2010년 環甲의 나이에 사실 상으로는.,졸업등반.
그래서, 아미동길은 두고 두고 기억에 늘 새롭다.
남들은 클라이머로서 불혹(不惑)이면
환갑 진갑 다 지난 나이라고들 하지만
나는 불혹에 시작해 환갑에 마감했으니
클라이머로는 후회도 미련도 여한도 없다.
인수봉에서 '고독의 길' '설교벽' 등은
후배들과 틈나는대로 찾을 계획이지만
족보 있는 정통 루트는 힘에 벅차기 때문.
암벽등반은 기본 체력이 유지되지 않으면
기존의 모든 테크닉이 무용지물이 되기 쉽다.
그래서, 미련은 남아있지만, 멈추는게 좋을듯.
턱걸이 20개를 해야 가능한.,클라이밍 테크닉을
무의식 중에 사용하다 보면.,'위기에 빠지기 십상'.
그렇다고 60대에 '턱걸이 20개 up 유지'는 힘벅찬 일.
세상을 살다보면 모든 분야가 다 그러하듯이
나서야 할때와 물러나야 할때는., 때가 있는 법.
나의 암벽등반 인생 기로에서 마지막인.,아미동길.
2017년 2월, 일산클라이머스 후배로부터 걸려온.,호출 전화.
평소, 안부 전화는 자주 받지만, 2017년 들어와 호출 전화는 처음.
모처럼, 일산 대화역 인근에서 옛 동호인들과 함께 자리를 같이 했다.
일산클라이머스 3인 고문 중에서 1인.
'최대식(75세 : 5.13) 선배' 송별 술자리.
'현재, 국내 실버 산악인 중 최고수 아닐까?'
외국계 금융회사 정년퇴직 후.,암벽등반 입문.
60세에 5.13 클라이머로 등극한., 늦깍기 산악인.
배낭에 5끼니 식량을 넣고., 무박 지리산 태극종주.
지리산 태극종주(90.5km)는.,지리산종주의 3배 거리.
'불수도북 + 사' 5산 정상까지 오르며
모든 구간을 걸어서 10시간 반에 주파.
75세에도 5.13클라이머로.,'가로 세로' 가랑이 180도 찢기.
'그만큼 평소 꾸준하게 운동량이 많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아직도 헬스클럽에서 80kg 역기를 30회 들기로.,운동을 시작.
깡마른 체구에서 뿜어나오는
괴력. 지구력, 유연성. 스피드.
설악산에서 노후를 즐기기 위해서
아예 강릉으로 홀로 떠난다는., 전갈.
그래서, 후배들이 마련한.,송별 술자리.
두 아들은 결혼 후 독립해서 잘 살고
작년에 아내와 사별하고 홀로 된.,선배.
"이젠 홀로 노후를 만끽하고 싶은 마음 뿐."
강릉에 구입해 놓은 작은 아파트를 거점으로
평소에는 설악산에서 빙벽 암벽등반을 즐기고
히말라야, 네팔 트레킹 등도 즐길 목적으로 이사.
일산클라이머스 '3인 고문 중 1인' 최창(69세) 역시
몇년 전에 양양으로 이사해 설악산을 무대로.,노후생활.
그러다보니 '3인 고문 중에서 1인' 나 혼자 일산에 남았다.
2001년부터 셋이 함께
일산클라이머스 고문으로.,
인수봉 선인봉을 누빈.,동호인들.
셋이서 일주일에 한번 정도로
한달은 인수봉, 한달은 선인봉.
두곳 대부분의 루트를 동행했다.
원주 간현암
그외 원주 간현암.
지리산종주.,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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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환갑 기념등반으로.,"선인봉 표범길 선등." - 최창.
"환갑기념., 무박 지리산 태극종주(90.5km)."- 최 선배.
2001년부터 일산에서 셋이 함께 운동하며 평소 하던 말.
'평소 함께 등반을 즐기던 지인들이 해낸., 쾌거.'
당시, 나도 무엇인가 해내지 않으면 안될듯한.,중압감.
평소 농담으로 하는 말인줄 알았는데., 실행으로 옮길 줄이야.
당시, '불수도북 + 사'를 10시간 반에 주파한 후배는
2010년 5월 7일 나의 아미동길 환갑 등반에 동행하면서
'이본 취나드'에 관한 일화로 한껏 화제의 꽃을 피웠었다.
"Leave no trace(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이본 취나드는 친환경적 등반윤리를 개척한 탐험가.
'모험과 위험'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전통등반.
바위와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친환경적인 가치를 추구.
인수대슬랩 우측으로 돌아 남동면 3개 루트.
벗길(5.10d), 취나드A(5.10b), 심우길(5.10a).
하늘벽에 걸려있는 한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다.
50대 중반까지는 마지막 열정을 불사르듯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쯤은.,인수봉을 등반.
하루에 2~3루트 쯤은 올라야 직성이 풀렸다.
인수봉 오아시스에서는.,하루에 3루트.
인수봉 둘레길 루트에서는.,하루에 2루트.
하산길에서 '여정길 첫피치 볼더링'은.,기본.
그것도 모자라 홀수 달은 선인봉에서 등반
짝수 달은 인수봉에 있는 바위길을 쏘다녔고
후배들과 함께 인수봉 21야영장에도 자주 갔다.
그러다가., 55세를 넘어가면서부터
인수봉 등반은 차츰 연례 행사가 되었다.
그러나, 클라이머로서 꼭 치뤄야 할 환갑등반.
나보다 15년 연하 김의열 후배.
환갑인 선배의 나이를 감안하여
이본 취나드 이야기를 끄집어낸듯.
"선경 형님! 힘드시지요?"
"천천히 가니., 견딜만 하네."
"정상에 오르고 보면 아무 것도 없다. 그러기에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하다" - 이본 취나드
파타고니아, 취나드 이큅먼트(훗날 블랙 다이아몬드) 창업자.
이 회사는 미국의 아웃도어 브랜드로
남미 칠레와 아르헨티나 국경지역에서
'파타고니아' 지명을 회사 이름으로 명명.
파타고니아
이본 취나드가 설립한.,'파타고니아
파타고니아는 '블랙다이아몬드'의 전신.
클라이머에게 블랙다이아몬드는 친숙한 브랜드.
특히, 블랙다이아몬드 프랜드는 설치 회수가 편리.
클라이머 선등자 대다수가 믿고 목숨 맡기는 등산장비.
이 회사의 면 의류는 3년간 화학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토양에서
유기 비료를 사용해 수확한 100% 유기농 면소재을 원료로 만들었다.
아웃도어 의류 매출 세계 1위,
매출의 1%로.,환경 캠페인 실시.
프랑스계 캐나다 태생으로 15살에 학교 중퇴 후 암벽등반.
고등학교를 중퇴한 그는 미국 요세미테와 엘캐피탄 등에서
수없이 많은 초등을 비롯해 등반사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붙인 암벽과 빙벽 장비로 성공할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대장장이였던 탓에 타고난 손재주가 뛰어났기 때문.
고교 중퇴후 자신이 제작한 등산장비를 요세미티에 가서 팔았을 정도.
세계적인 클라이머들이
그가 제작한 등산장비를
구입해 사용했을 정도였다,
그는 주한미군(1963~1965) 시절에도
쌍림동 대장간에서 장비를 제작했다.
그는 한국의 인수봉에 바윗길 2개를 개척한다.
오늘날 인수봉 매니아들이 가장 사랑하는 바윗길.
'인수봉 귀바위 크랙 코스'.,<취나드A>와 <취나드B>.
이본 취나드는 서른살이 되던 1968년 그의 세 친구들과 함께
스키,서핑,등반장비를 낡은 밴에 싣고 6개월간 긴 여행을 떠난다.
Yvon Chouinard, Doug Tompkins, Diick Dorworth, Chris Jones
이 네 명은 탐험가로서.,각분야 당대 최고 고수들
Doug Tompkins 등반가이자 스키어. 노스페이스 창업자.
Diick Dorworth.,스키 챔피온. Chris Jones.,영국 클라이머.
이들은 여정 속에서 파타고니아에 피츠로이에서 신루트를 개척.
히말라야에 비하면 언덕에 불과한 파타고니아의 벽들은
날씨의 변화가 극심하여 등정 성공률이 매우 낮은 곳이다.
세상 끝 오지라 조난당하면 구조의 손길이 미치기 어려운 곳.
취나드를 비롯한 5명의 클라이머들은 60일에 걸쳐
남극에서 불어오는 폭풍설을 피하고 짙은 안개, 저온 속에서
화이트 스노우 등을 극복하기 위해 설동을 파고., 벽에서도 비박.
신루트를 개척하며 정상에 올랐다.
이 과정이 '마운틴 오브 스톰' 다큐 영화
전세계 모험 마니아들에게 감동을 주게 된다.
그는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훗날 '파타고니아' 회사를 창업.
2007년 기준 매출액 2억 7천만 불.
2010년 억만장자 이본 취나드는 1960년대 폭스바겐을 타고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즐겨듣는 이본 취나드는., 아날로그형 인간
그는 친구들과 함께 바닷가에 나가 끓인 조개탕을 가장 좋아한단다.
'누가 어느 산을 처음 올랐는지
그러한 기록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누가 가장 인상적인 산악인인가?'
'누가 가장 성공적인 삶과 등반을 꾸려왔는가?'
'가장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산악인은 누구인가?'
"네가 다녀간 흔적을 벽에 남기지 말라." - 게리 해밍.
'이본 취나드'에게는 '게리 해밍'이 롤 모델 이었을까?
부탄 히말라야 6000m급 산을 초등한 직후
그곳의 루트개념도를 찢어버린.,이본 취나드.
"다음에 오는 사람도 초등자의 기쁨을 맛보도록"
그는 한국의 인수봉에 바윗길 2개를 개척한 산악인.
오늘날, 취나드a, 취나드b 루트가 그가 남긴.,바윗길.
그가 명명한 것이 아니라, 그의 공적을 기리는.,루트 명.
그는 취나드 A와 취나드 B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그는 등반으로 만족했지만 훗날 이길을 등반하던 사람들에 의해,
그를 기리는 마음으로 취나드A와 취나드B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것.
..........'이본 취나드 & 인수봉 취나드B' 일화..........
주한미군 이본 취나드는 어느날 인수봉과 만나게 되고
당시 우리나라 대표적인 산꾼인 선우중옥 씨를 찾아간다.
선우중옥씨는 그 미군이 하는 말은 잘 알아 듣지 못했지만
암벽등반을 같이 하겠다는 의사를 알고 함께 인수봉으로 갔다.
취나드가 초보자인줄 알고 자일 묶는 법부터 가르쳤고
취나드는 묵묵히 그의 가르침을 따랐지만 이미 15세 때
암벽등반에 매진한 이본 취나드는 미국 정상급 클라이머.
함께 등반하며 서로가 탁월한 바위꾼 임을 확인한 두 사람은
이강오 등과 함께 의기투합하여 바윗길을 개척하기에 이른 것.
'인수봉 귀바위 크랙코스' 취나드A와 취나드B길.,1963년 9월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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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나드 a는 당시 국내 장비로서는 개척이 불가.
취나드a의 크럭스로 꼽히는 넷째 마디 오버행 구간.
정말 긴장이 되는 구간은 이 오버행 넘어서부터 시작.
휴전후 10년 밖에 되지 않은 60년대 초에는 장비가 부족.
취나드는 미국에서 로프와 카라비너 등반장비를 공수해와
그당시로서는 인수봉 최장거리 크랙 루트 <취나드a>를 개척.
그후 미국으로 돌아가 파타고니아 설립.
한국에서의 자일 파트너 선우중옥씨를 초청.
1964년 제대 후 1971년 선우중옥씨를 초청한 것.
이본 취나드는 의리 또한 깊은 인물.
선우중옥씨는 취나드 이큅먼트사 공장장.
선우중옥씨 부인도 이 회사
디자이너로 근무.
선우중옥 부부 인생이 멋지게 바뀌게 된 셈이다.
선우중옥 & 이본 취나드.
이본 취나드는 주한미군 시절인 1963~1965년 무렵
자신이 사용할 장비를 쌍림동 대장간에서 손수 제작.
그러나, 자신의
노하우를 지키고 싶었던듯
그가 중요한 합금 작업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을
모두 대장간 밖으로 내보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학력이 전부인 그는 미국의 국립공원이자
전 세계 암벽등반가들의 성지와 같은 곳인 요세미테와 엘캐피탄
등에서 수없이 많은 초등을 비롯해 등반사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1938년 11월9일 카나다 출생 이본 취나드.
그는 1950년생 필자보다 12년 연상 띠동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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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봉.,'아미동길'
2010년 5월 7일 금요일.
나의 환갑 기념등반 루트.
최고난이도 5.10a.,총 7피치.
선등 김의열, 후등 필자.,2인
그해 2월 18일(음력1월2일)이 환갑이지만
봄날씨가 따듯해지기를 기다려 찾은.,인수봉.
평소 아끼는 후배와 단 둘이서.,아미동길 등반.
일산 클라이머스 등반대장이자
지하철공사 산악회.,등반대장(46세)
북한산 노적봉 아미고스 개척(2009. 가을).
"형님! 무거운 짐은 제게 주세요."
"천천히 올라가면, 짊어질 수 있어."
50 리터 배낭이 묵직.
환갑 나이., 탓일까?
등산학교 졸업등반 바위길로 인기가 높다.
그래서인지, 평일 임에도 클라이머들이 많다.
필자가 등반 중 만난.,클라이머 숫자만 30 여명.
40/50대 여성 클라이머 숫자가 압도적.
인수봉 정상까지 오르고 나니 봄바람이 찼다.
겨울옷에 윈드자켓을 껴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 클라이머 중 백발머리는 나 혼자 뿐이었다.
...............................
인수봉 아미동길.,유래.
...............................
하루재- 대슬랩 하단-아미동길-인수봉 정상
1973년 4월 12일 ~ 6월 22일 이동일 등반대장
김춘근,김병호,권성진, 고 이용민 산악인이 개척
아미동 바위길은 '아카데미'산악회., 머릿자 <아> + 끝자 <미>
등반대장 이동일 이름의 첫글자 <동>을 합쳐 명명한.,<아미동>.
아미동길은 7피치로 개척되었지만,
요즘 분위기는 이전처럼 7마디를 다 오르지 않고
인수B의 2피치 항아리크랙으로 올라붙어 4피치 5.8크랙.
그리고, 5피치 5.10a 슬랩을 주로 오르고 있는 추세라 한다.
1피치는 대슬랩하단 좌측으로 50여미터 동떨어져있는 누운크랙에서 시작되는데
2마디를 올라선후 우측으로 한참 트래버스 인수B 항아리 크랙 좌측 침니로 합류한다.
동선이 게걸음 트래버스 코스라 원래 루트를 오르는 팀은 보기 힘든 유서 깊은 옛 바위길.
고 이용민 산악인 유품인 피묻은 수첩 속., 37년전 기록
1973년 아미동길 개척 당시 일화가 고스란히 적혀있다.
고 이용민 산악인 친형은 이용대(코오롱등산학교 교장) 씨
이동일 씨가 따르던 선배 이용민은 이용대 씨 막내 동생이다.
첫댓글 아미동길 코스에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어쩜 너무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아 안스럽기도하구요...
좀더 긴 생을 살며 자연과 더불어 멋있는 삶을 살면 안될까를 생각해 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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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봉에는 공식적인 바위길은,,89 루트.
비공식적인 루트까지 다 합치면.,백여 루트.
바위길마다 소설 같은 스토리가 담겨 있어요.
아미동길은 고전에 속하지만
클라이머들이 북적거리는 루트.
그래서인지, 우회로 갓길이., 여럿.
등반 중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요.
옛날에는 20/30대 클라이머는.,환갑/진갑.
그래서, 30/40대가 지나면 클라이머는.,은퇴.
오늘날에는 40/50대 클라이머들이.,자칭 '청춘'.
60/70대 클라이머는
바위길에서.,경로 우대.
예우가 극진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