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선교소식]
중동 국가로서는 드물 게 미국과 군사 동맹을 형성하고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요직에 있는 인사가 이라크 대미 항전 지지 발언을 한 것이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얼마 전 매일선교소식은 사우디의 대법원장 격인 살레 빈 무하마드 알 루하이단이 이같은 선동적인 발언을 한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매일선교소식 4월 29일자 보도) 그는 이라크에서 미국과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형제들은 알라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높이 평가하고, "가능하다면 이에 동참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이라크 국경은 미군기와 위성에 의해 감시되고 있으므로 국경을 넘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그는 국경을 넘을 자신과 용기만 있다면 가서 알라의 이름의 깃발을 들어야 하며, 이 성전에 동참하기 위해 특별히 누군가의 승인과 허락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으며, 오로지 알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서 소신껏 들어가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사우디 정부군은 국제법과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월경을 막을 수밖에 없으나, 재주껏 국경을 넘어 들어가 대미 항전에 동참하는 것은 막을 생각이 없다는 의사 표명으로 풀이된다. 루하이단의 이같은 발언은 정부가 관리하는 한 모스크의 예배에 참석하여 참석자들과 질의 응답 시간을 진행하던 중 신앙적 소신에 따라 이라크에 가서 대미 항전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젊은이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이처럼 이라크의 반미 항전 세력에 대한 사우디인의 심정적인 지지가 종교계 인사들뿐 아니라, 정관계의 요직에 있는 사람들의 공공연한 발언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것은 자칫 미-사우디 동맹 체제의 균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사우디 정부의 내무 장관인 모하메드 빈 나이프는 사우디 아라비아 내의 알카에다 세력의 소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미국과 긴밀한 협조 체제를 구축해야 할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의 알자르카위 세력과의 연대감을 공공연히 강조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실제로 작년 8월 5일에 이라크에서 체포된 한 알카에다 고위 인사는 체포되기 2개월 전에 만든 녹음 테잎 진술에서 자신이 이라크로 안전하게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모하메드 빈 나이프 덕이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종교계의 반미 현상은 더 심각하다. 지난 해 11월 26일에 26명의 이슬람 고위 성직자들(이 가운데 21명은 정부 관료직을 겸하고 있다.)은 이슬람 신자들은 이라크 정부와 미군에 대항하는 항전에 참가하라는 파트와(율법과 동등한 권위의 칙령)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누구도 정부로부터 제재를 받지 않았다.
사실,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살 폭탄이나 테러 사건의 용의자들의 대부분은 사우디 국적자들이라는 것이 International Affairs Center의 분석이다. 사우디 관리들이 공공연하게 반미의 깃발을 들고 이라크의 테러를 지원하고 있는 현상은 미국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2003년 이후 지금까지 1천 명이 넘는 미군과 이라크 경찰과 군인과 시민들이 폭탄 테러로 사망했다. 지난 12월 22일에는 사우디 아라비아 외교관의 아들이 외교 여권으로 이라크에 입국하여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해 19 명의 미군을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미국 주재 사우디 대사관을 비롯한 사우디 외교 관계자들은 항상 테러리즘을 비난하는 성명을 습관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그 때마다 단골로 입을 여는 인사가 루하이단이다. 루하이단은 이처럼 공식 석상에서는 테러리즘을 반대하지만, 사석에서의 그의 발언은 전혀 다르다. 샤이크 살레 알 루하이단은 우리 나라의 대법원이라고 할 수 있는 최고 법률 위원회의 의장이며, 고위 이슬람 성직자이며, 정부 고위 각료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만일 알카에다에 관련된 인사가 사우디에서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될 경우 이 재판의 최고 책임을 맡게 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다. 또 각국의 외교 공관으로 배포되는 책자들의 최종 검토 책임자도 그이다.
이같은 그의 위치와 비중으로 미루어 볼 때 그가 공적으로는 테러리즘을 배격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도 공공연히 테러를 지원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딜레마일 수밖에 없다. 또가 그가 누리고 있는 고위 직책의 임명권자가 국왕이며, 지금도 여전히 왕실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으로 하여금 사우디의 우방으로서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대목이어서 앞으로 미국의 선택과 대응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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