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코스는 제주시의 도심 한복판에서부터 시작된다
보석 같은 두 오름, 사라봉과 별도봉이 멋진 전망을 선사해 준다.
4.3사태가 남긴 제주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며 걸어간다
닭머르 바당길에서는 맨도롱또똣한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걸어간다.
*맨도롱또똣하다...기분좋게 따뜻하다
제주 시내 가운데라 할 수 있는 간세 라운지에서 시작해 조천까지 가는 19km의 코스이다.
세비코지에서 닭모루로 이어지는 바당길은 숨이 탁 트이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미사 참례
제주의 첫번째 아침은 미사 참례로 시작하였다.
필립보 신부님 덕분에 우리들의 트레킹이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하신 예수님을 굳게 믿고 걸어가자"고 말씀하셨다.
간세라운지
어제 걸음을 멈추었던 간세라운지에 다시 섰다
19km를 넘게 걸어야 하는 우리들의 발걸음이 긴장됐다.
오현단(五賢壇)
김정, 송인수, 김상헌, 정온, 송시열 등 다섯 분을 배향했던 옛터이다.
이들은 조선시대 제주에 유배되었거나 방어사로 부임한 사람들이다.
오현단 자체는 아주 감동적이고 소박한 제단이다.
그러나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많이 세워져 있는 비석을 보면 실망한다.
증주벽립(曾朱壁立)
오현단에서 내력 있는 자취는 자연석에 새겨진 ‘증주벽립(曾朱壁立)’이라는 글씨다.
‘증자와 주자가 이 벽에 서 있도다’ 라는 뜻의 글자이다.
성균관에 있는 우암 송시열의 글씨를 탁본하여 철종 7년(1856)에 새겨놓은 것이다.
제주동문시장
오현단을 지난 올레길은 제주동문시장 안으로 이어진다.
해방 이후 제주 상업의 근거지를 이루었던 상설시장이다.
서문시장, 민속오일장과 함께 제주시를 대표하는 3대 전통재래시장 중 하나다.
김만덕 객주 터
김만덕 객주 터는 제주시에서 35억 원을 들여 2016년에 복원하였다.
김만복은 조선시대 제주도의 거상으로 알려져 있다.
남존여비 사고관을 극복하고 조선에서 드물게 대부호이자 대인이었던 것으로 유명했다.
사라봉 가는 길
사라봉 해송숲은 2010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수상했다.
운동하러 올라온 동네 주민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신록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사라봉(사라오름)
사라봉은 제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오름이다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해 ‘사봉낙조(紗峰落照)라 하여 영주 10경의 하나로 꼽혔다.
누군가 사온 제주 딸기를 한 웅큼 먹으니 갈증이 싸~악 가셨다.
제주칠머리당
영등신에게 풍작과 풍어를 기원하며 굿판을 벌이던 곳이다
칠머리당은 원래 제주항 부근에 있다가 제주항이 확장되면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영등굿은 제주 사람들의 독특한 정체성과 바다에 대한 존경심을 담고 있다.
별도봉 산책길
지금까지 우리가 걸었던 길 중에서 최고로 멋진 길이다.
제주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맨도롱또똣한 햇빛이 눈부시다.
제주항이 보인다
섬의 북부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제주항은제주특별자치도의 관문항구다.
제주지역의 물류중심지이며 관광지원항으로 기능하고 있다.
제주항은 1927년 7월에 개항하였으며, 제주도 화물의 약 70%를 담당한다.
애기 업은 여자바위
별도봉의 산책로 비탈 구릉에 있는 예닐곱개의 암석으로 된 돌무더기다.
외세에 항거하던 젊은 어부의 아내의 한이 서려있는 바위다.
마치 제주를 수호하는 형상의 바위는 여행객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곤을동 유적지
곤을동은 '항상 물이 고여 있는 땅이'라는 뜻인데, 유서 깊은 마을이었다
4.3 당시 마을 전체가 불타 없어졌는데 집터만 남아 당시의 아픈 상처를 말해준다.
곤을동이 불에 탄 것은 1949년 1월 4일과 5일이다.
국방경비대가 이틀에 걸쳐 곤을동 주민 24명을 학살하고 마을을 모두 불태웠다.
바람도 나그네도 쉬어가는 곳
'바람도 나그네도 쉬어가는 곳'이란 글씨가 우리를 유혹하였다.
주인장 혼자서 이런 돌공원을 조성했다는데...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출연했다는 안내판이 부끄럽지 않았다.
화북포구(禾北浦口)
조선시대에 육지와 연결되는 관문으로서 가장 중요한 포구였다.
제주로 부임하는 관리, 유배객, 장삿배들이 모두 이 항구로 드나들었다.
이제 제주의 관문은 제주 신항으로 옮겨가서 쓸쓸하기만 하다.
해신사(海神祀)
화북포구 앞에 해신사라는 자그마한 사당이 있다.
용왕신을 모시는 곳으로 순조 20년(1820년)에 제주 목사였던 한상묵이 세웠다.
무속신앙이 워낙 강한 제주민을 관 체제하에 두기 위해 이런 사당을 만들었다고 한다.
삼양해수욕장
삼양해수욕장은 검은 모래로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다.
그 안에 몸을 파묻고 찜질을 하면 관절염 및 신경통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매년 여름이면 검은 모래 안에서 찜질을 하는 풍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삼화포구
섬은 숙명적으로 고립의 운명을 안는다.
제주 또한 격절의 공간 안에서 오랫동안 척박한 삶을 꾸려야 했다.
하지만 바다는 고립의 공간이면서 또한 사방으로 열린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포구는 그 경계에 있는 문이다.
제주 사람들에게 포구는 그렇게 다른 세상을 드나드는 길목이었다.
그렇기에 그곳에는 웃음과 눈물이, 슬픔과 환희가 공존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바다의 길목을 지켜온 포구는 이제 그 옛 모습을 많이 잃었다.
점심 식사
예약한 식당 <삼화포구>에 도착했지만 너무 빨리 왔기에 기다려야 했다.
생우럭매운탕과 생우럭맑은탕으로 허기를 채웠다.
코스의 중간 부근에 있는 식당이어서 골랐는데 대체로 무난하였다
샛도리물
나쁜 잡귀인 새(까마귀)를 쫒아내는 '샛도릿(새쫒음)'을 하려고 이 물을 썼다고 한다.
이곳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여름철 어른들의 피서처로 좋은 곳이다.
스페인에서 여행왔다는 호세, 사라와 함께 추억을 담았다.
불탑사 오층석탑
불탑사 경내에는 원당사의 오층석탑이 보물 제1187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유일하기도 하지만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구전에 의하면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가 황후가 된 기씨가 세워졌다고 전한다.
밀밭의 추억
풋풋한 밀밭에 일곱 여인들의 미소가 흩날린다
뒤에 배경으로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운치를 더한다.
밀밭과 나무와 바다까지...모두 우리를 위하여 준비된 풍경이었다.
풍경을 버리고 떠나서
머뭇대다
마침내 구부러지는 길처럼
저마다의 생각에만
골똘히 빠져 있는
도로 표지판처럼
문 닫은 겨울의 해수욕장
뒤늦게 떠오르는 생각에
이마 찡그린 낮달처럼
더듬더듬 몇 마디 말마저도 삼켜버리는
흐린 밤의 별들처럼
차창 가에서 서성대다, 두드리다
울다가 돌아서는 비처럼
가슴 안 컴컴하게 고여 오는 말들이 긁어대는
절망에서 노래 사이
아슬아슬 걸쳐 있는
너라는 이름의 현(絃)들처럼................................................................한국현 <첼로처럼> 전문
세비코지
우도봉 정상을 쇠머리(牛頭)로 본다면 이곳은 소의 꼬리(牛尾=쇠미)다.
‘쇠미’가 변음되어 ‘쇠비’가 되었고 ‘쇠비’가 변음되어 ‘세비’가 되었다.
요즈음도 소의 꼬리로 요리한 음식은 보신 음식으로 통용된다.
소의 꼬리가 그만치 힘이 세다는 얘기이다.
이 근처 동네에서 인물이 난다는 풍수지리적 속설이 전해 내려온다.
닭머르(닭모루)
신촌포구까지 이어지는 이 길은 '닭머르길'이라고 부른다.
닭이 흙을 파헤치고 들어앉은 모습을 닮았다 하여 ‘닭머르’라고 부른다.
바람이 그치지 않는 닭머르에는 맨도롱또똣한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대섬
섬에 조릿대가 많아 '대섬'이라 불린 이름이다.
그런데 조릿대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제주도 내에서 지질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형이다.
점성이 낮은 용암류가 흐르다가 표면만 살짝 굳어져 평평하게 만들어진 지형이다.
연북정(戀北亭)
연북(戀北)이란 ‘북쪽을 그리워 한다’는 뜻이다.
유배되어 온 사람들이 북녘의 임금에 대한 사모의 충정을 보낸다 하여 붙인 이름.
기다림 없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모두 이곳으로 올 일이다.
조천 만세동산
일제의 총칼에 맞서 싸운 순국선열의 혼이 있는 역사적인 동산이다.
1919년 3월 21일 조천 출신 14인이 시작했던 제주 최초의 만세운동의 발상지다
애국선열 추모탑은 제주 고유의 문인 '정낭'을 닮은 모양을 하고 있다.
갈치조림을 먹다
작년에도 왔던 <옛촌>에서 갈치조림을 먹었다.
제주 은갈치를 사용한 갈치조림은 기막히게 맛이 좋았다.
내일 또다시 떠날 길과 함께할 벗들이 있기에 행복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