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자 : 2024.12.17 (화)
2. 여행지 : 고창 운곡습지. 고인돌박물관. 고창읍성.
전주 한옥마을. 경기전. 전동성당
3. 누구랑 : 나홀로
4. 명소 해설
가. 고창 운곡 습지
o 2011년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운곡습지는 국가생태관광지로 멸종 위기의 야생동물을
비롯한 희귀 동식물을 관찰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로 다양한 생명체들이
내뿜는 강인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o 운곡람사르습지 주변의 물은 다양한 물줄기로 운곡습지로 모이며,
대상지 주변 일대의 수계는 크게 고창천에서 인천강으로 흘러들어 북쪽 곰소만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o 안덕제, 운곡제 등 크고 작은 웅덩이(물웅덩이)가 위치하고 있으며,
이러한 둠벙은 주변 생태연못 등으로 흘러 습지생태 자원들의 서식처로서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
o 운곡저수지 일대에는 국화과, 벼과, 사초과, 마디풀과, 십자화과, 장미과, 콩과가 많이 분포한다.
나. 고창 고인돌 유적지
o 고인돌은 기원전 2000년~1000년, 세계 곳곳의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문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거석문화이다.
o 고인돌은 보통 거대한 덮개돌을 지탱하는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가공되지 않은 굄돌 따위로 이루어져 있다.
o 대개 고인돌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중요 인물의 시신 또는 유골 위에 세운 단순한
무덤방으로 알려져 있다.
o 고창 지역에는 가장 많은 고인돌이 분포해 무려 1500기가 넘는 고인돌이 있어,
단위면적당 밀집도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
o 그 가운데, 고창읍 죽림리, 상갑리, 도산리에 있는 447기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다. 고창 읍성
o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 원년(1453년)에 왜침을 막기 위하여
전라도민들이 유비무환의 슬기로 축성한 자연석 성곽이다.
o 일명 "모양성"이라고도 하는 이 성은 나주진관의 입암산성과 연계되어
호남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서 국난호국을 위한 국방 관련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o 1965년 4월 1일 사적으로 지정된 이 성의 둘레는 1,684m 높이가 4~6m,
면적은 50,172평으로 동, 서, 북문과 3개소의 옹성 6개의 치성을 비롯하여
성 밖의 해자 등 전략적 요충시설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o 성내에는 동헌, 객사 등 22동의 관아건물과 2지 4천이 있었으나 전화로 소진되고
성곽과 공북루만 남아있던 것을 1976년부터 옛 모습대로 복원해 오고 있다. *
o 특히 북문인 공북루의 주춧돌 높이는 제각각이라서 1m쯤 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답성(성밟기)놀이 성을 밟으면 병이 없어 오래 살고 저승길엔 극락문에 당도한다는
전설 때문에 매년 답성놀이 행사가 계속되고 있으며,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 돌면 극락 승천한다.” 고 한다.
라. 전주 경기전
o 조선시대에는 국조인 태조의 어진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 진전을 서울에는 문소전(文昭殿) 한 곳,
외방에는 전주의 경기전, 영흥의 준원전, 경주의 집경전(集慶殿), 평양의 영숭전(永崇殿),
개성의 목청전(穆淸殿) 등 다섯 곳에 두고 유지하였다.
o 조선 왕실의 관향인 전주에 있던 태조의 영전에 경기전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1442년(세종 24)의 일이다. 이듬해에는 새로 태조의 어진을 경기전에 봉안하였고
제위전을 두어 제사의 비용으로 쓸 수 있게 하였다.
o 1771년(영조 47)에는 경기전 옆에 전주 이씨 시조묘를 세우고 ‘조경묘(肇慶廟)’라 하였다.
o 1872년 마지막으로 옮겨 그려진 경기전의 "태조 이성계의 어진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마. 전주 한옥마을
o 전주 풍남동 일대에 700여 채의 한옥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전통 한옥촌이며, 전국 유일의 도심 한옥군이다.
o 1910년 조성되기 시작한 우리나라 근대 주거문화 발달과정의 중요한 공간으로,
경기전, 오목대, 향교 등 중요 문화재와 20여개의 문화시설이 산재되어 있으며,
한옥, 한식, 한지, 한소리, 한복, 한방 등 韓스타일이 집약된 대한민국 대표 여행지이다.
바. 전주 전동성당
o 조선시대의 전주는 전라감영과 진영이 있었으므로 천주교회사에서
전동은 자연 순교지의 하나가 되었으며,
이 성당은 바로 천주교인들이 처형되었던 풍남문(豊南門)이 있던 곳에 있다.
o 1891년(고종 28) 보두네(Francis Baudounet) 신부가 전주 남문 밖에 집을 매입하고 정착하였다.
그 뒤 1908년 프와넬(Poisnel) 신부의 설계로 성당 건축에 착수하여 1914년에 준공을 보았다.
벽돌로 된 완전한 격식을 갖춘 로마네스크양식의 성당 건물은 서울의 명동성당과
외양상 유사한 점이 많으나 건축양식상으로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