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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목대피소에서 백무동까지> 2015년 6월 9일(화) 맑음
새벽 03:00에 일어나 배낭을 꾸려 모포 2장을 들고 밖으로 나오며 모포 2장을 반납하고 취사장으로 향하였다. 이곳에 배낭을 모아 놓고 3:30에 랜턴을 밝히고 1.7km 지점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산행을 시작하였다.
장터목대피소에서 1.1km 지점에 일방통행에 가까운 좁은 통천문 계단길이 있었다.
이 하늘을 통하는 통천문을 통과하여 천왕봉에 올라야 해돋이를 볼 수 있다고 하여 통천문이라 불리는 것 같다.
천왕봉에 오를 즈음에 주변이 환해지기 시작하여 랜턴을 모두 끄고 정상에 올랐다.
지리산의 큰 덩치에 비해 어울리지 않는 작은 표지석 앞면에는 ‘智異山 天王峰 1915m’, 뒷면에는 ‘韓國人의 氣象 여기서 發原되다.’ 라는 표지석이 반겨주었다.
지 리산의 10경 가운데 제1경인 ‘천왕봉 일출’은 3대가 선행을 쌓아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오늘은 아쉽게도 구름에 가려 불그스름한 햇빛의 흔적만 볼 수 있었다.
1915m 천왕봉에서 주변 여기저기 사방을 내려다보니 아름답고 하얀 운해가 더럽혀진 세상을 하얗게 덮고 있어 깨끗하게 청소해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얗고 아름다운 운해와 같은 마음으로 욕심을 버리고 무소유에 가까운 마음으로 봉사하고 살리라 다짐하며 되돌아오니 장터목대피소에서 0.6km 지점에 어두워 보지 못했던 제석봉 고사목들이 황량하게 서있었다.
『제석봉 고사목 안내판에 의하면
살아 백년 죽어 천년이라고 무상의 세월을 말하는 이 고사목 군락지에 얽힌 내력은 다음과 같다.
1950년 숲이 울창하여 대낮에도 어두울 정도로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었으나 도벌꾼들이 도벌의 흔적을 없애려고 불을 질러 그 불이 제석봉을 태워 지금처럼 나무들의 공동묘지가 되었습니다. 탐욕에 눈 먼 인간이 충동적으로 저지른 어리석은 행위가 이처럼 현제까지 부끄러운 자취를 남기고 있습니다.
-환경부, 지리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황량한 제석봉 고사목지대 탐방로에는 나무 말뚝을 박고 밧줄로 휀스를 쳐놓고 자연의 생태 복원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제석봉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재촉하여 05:40분경에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하여 물병을 들고 샘터로 내려가 물을 받아 올라와 아침식사를 지어 먹고 07:30분에 동행님들과 세석대피소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장터목에서 0.8km 지점에 연하봉(1730m)은 지리산 10경 중 제5경에 속하는 세석평전과 장터목 사이 연하봉 운무를 말하는 ‘연하선경’이란다.
참고로
『지리산의 제1경은 천왕봉 정상에서 일출을 보려면 3대가 선행을 쌓아야 한다는 ‘천왕봉의 일출’
제2경은 능선을 휘감아 돌며 파도치는 구름바다가 환상적인 ‘노고단의 운해’
제3경은 해발 1,732m의 반야봉에서 바라보는 ‘반야봉의 낙조’
제4경은 밀림과 고사목 위로 떠오르는 ‘벽소령의 명월’
제5경은 세석평전과 장터목 사이 연하봉의 운무를 말하는 ‘연하선경’
제6경은 청학봉과 백학봉 사이를 떨어져 내리는 ‘불일폭포’
제7경은 ‘피아골의 단풍’
제8경은 ‘세석평전의 철쭉’
제9경은 ‘칠선계곡’
제10경은 지리산의 그림자를 담고 흐르는 ‘섬진강’이다.』
연하봉을 뒤로하고 세석평전 기점 0.7km 지점에 촛대봉이 있다. 촛대봉에는 세석평전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
『옛날 연진이라는 여인이 남편 호야와 대성계곡에서 행복하게 살았는데 자녀가 없어 고민하던 중 흑곰에게 세석고원에 있는 신비의 샘물을 마시면 자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남편과 상의 없이 산신령이 금기 시킨 영신봉 음양수를 마셨다. 평소 흑곰과 앙숙이던 호랑이가 일러바쳐 산신령의 노여움을 산 여인은 평생 남편과 생이별한 채 철쭉밭을 가꿔야 하는 벌을 받았다고 한다. 연진 여인은 촛대봉에서 촛불을 켜고 천왕봉 산신령에게 용서를 빌다가 돌로 굳어버렸다고 한다. 이후 사람들은 촛대봉 바위가 연진 여인이고 평생 손끝에서 피가 나오도록 철쭉꽃을 가꾼 여인의 슬픔과 피가 이곳의 철쭉꽃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라 믿었다고 한다.-퍼온글.』
촛대봉 안쪽에 세석 습지가 있다.
『세석습지에는 노란 동의나물과 하얀색의 왜갯냉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퍼온글』
습지 앞쪽은 세석평전의 철쭉 군락지로 연분홍의 철쭉꽃은 끝물로 아름답고 화려함이 반감되어 피어있었다.
『세석평전은 잔돌이 많은 평야와 같다고 하여 세석평전이라는 이름이 붙였다고 한다.
대략 1500m 고도의 세석평전을 철쭉 사이사이로 단정한 모습의 구상나무가 보인다.
이 구상나무는 국립공원 관리 공단에서 이 지역의 생태 복원을 위해 이식한 것이라 한다.
야영이 허락되던 1990년대 중반경에는 등산객과 야영객의 무분별한 훼손과 군부대의 산악 훈련 등으로 세석평전이 완전히 황폐화되었다고 한다. 그 후 국립공원에서의 야영이 금지되고 산악인들의 자제와 국립공원관리공단 측의 적극적인 복원 사업덕분에 현제의 모습에 이르렀다고 한다.-퍼온글』
일단 세석 대피소에 들러 이른 점심을 10:30분경에 먹으려하니 남겨둔 약밥과 떡, 포도로 간단하게 해결하였다.
11:00경에 세석대피소를 출발하여 철쭉 군락지를 오르려하니 식사 후라서 더욱 힘이 들어 턱밑까지 숨이 차올랐다.
세석평전을 벗어나니 경사도가 급한 내리막길에 정리되지 않은 자연석의 돌들이 어지럽게 놓여 길을 형성하고 있었다.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내디디며 내려왔다.
세석대피소로부터 2km 지점에 내려오니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이곳이 한신계곡 조금 더 내려오다 한신계곡으로 내려가 계곡물에 발목까지 담그니 발이 시려올 정도로 계곡물이 차가웠다. 계곡에 발목을 담갔다 나왔다 하면서 15분 정도 쉬었다.
『한신계곡의 유래는 지리산의 수많은 계곡들 중 지명어원의 근거가 짐작되지 않는 곳들이 여러 곳이 있다고 한다. 한신계곡도 그 중 하나라고 한다.
한신계곡의 지명어원에 대해서 지리산을 소개하는 여타 기록물들에는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깊고 넓은 계곡’,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끼게 하는 계곡’, ‘계곡의 물이 차고 험하여 굽이치는 곳이 많아 한삼하기 때문에’, 또는 ‘옛날 한신이라는 사람이 농악대를 이끌고 세석으로 가다가 급류에 휩쓸려 몰죽음을 당했다는고 해서 한신계곡이 되었다는 사연’ 등이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신계곡이라는 지명의 근거에 대해서 확정된 것이 없는 것을 보면, 이 모든 이야기들이 무언가 좀 허술하여 설득력이 없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먼저 깊고 넓기 때문에 라는 설은 너무 막연하고, ‘한신’과 별 관련성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한여름에 한기를 느끼는 것과 물이 차고 험한 것은 사실 지리산의 모든 계곡의 공통된 현상이 아닌가.-퍼온글』
계곡에서 나와 다시 출발하여 세석대피소 기점 3.5km 내려오니 우측 계곡에 오층폭포가 보였다. 폭포가 5단계로 길게 이어져 독특한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오층폭포는 오련폭포라고도 한다. 크게 볼 것이 없는 한신계곡에 비해 다섯 개의 폭포가 연이어 있는 오층폭포는 볼만하였다.
오층폭포에서 80m쯤 내려오니 가내소폭포가 있다
가내소 폭포는 15m 높이의 폭포이며 50여평의 검푸른 비취빛 옥수를 담은 용소는 자연이 만든 걸작 천연 노천탕과 같았다.
『가내소폭포의 전설은 먼 옛날 한 도인이 이곳에서 수행한 지 12년이 되던 어느 날 마지막 수행으로 가내소 양쪽에 밧줄을 묶고 눈을 가린 채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도중에 지리산 마고할매의 셋째 딸인 지리산녀가 심술을 부려 도인을 유혹하였고, 도인은 그만 유혹에 넘어가 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도인은 “에잇~~ 나의 도는 실패했다. 나는 이만 가네”하고 이곳을 떠났다 하여 이곳을 ‘가내소’라고 불리게 되었다.-퍼온글』
한신폭포, 오층폭포, 가내소폭포 바람폭포, 첫나들이폭포 등을 품고 있는 한신계곡을 걸어 내려오면서 계곡 곳곳에서 더위를 식히기 위해 바위에 앉아 세안, 세족을 하면서 피로를 풀고 있는 동행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하여 백무동 버스 주차장에 15:00시에 도착하였으나 몇 명의 인원이 도착되지 않아 20여분을 기다린 끝에 모두 승차 완료되었다.
『여기서 백무동의 유래를 소개하면 100명의 무당이 거처했다고 하여 백무동(百巫洞)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백무동(百武洞)으로 쓰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지리산 천왕봉에 살고 있었다는 산신인 여신 성모(聖母)가 남자를 끌어드려 100명의 딸을 낳아 세상에 내려 보냈는데, 그들이 팔도로 퍼저나간 출구가 백무동이었다고 한다.-퍼온글』
15:21분에 백무동을 출발하여 귀가를 서두르기 위해 이른 저녁식사를 해야만 했다.
예약된 ‘지리산 롯지’ 음식점에 16:40분에 도착하니 음식점 주인 왈 16:00에 예약되었으니 아직 준비가 덜 된 상황이라며 밖에서 잠시만 대기하고 쉬시라고 한다.
밖으로 나와 산행이야기로 담소를 나누는 동안 식사 준비가 완료되어 시골 토종닭 백숙, 녹두죽, 나물 반찬으로 메뉴가 차려졌고 반주를 곁 드려 식사를 즐겁고 맛있게 마쳤다.
17:00경에 빠른 귀가를 위해 출발하였다.
처음 출발할 때는 자신감을 갖고 참석하였으나 쉽지 않은 원정산행 코스라는 것을 느꼈다.
후기 글을 쓰면서 탐방 과정을 통하여 느낀 점, 지리산 생태 모습, 지리산에 얽힌 지명어원을 중심으로 쓰면서 인용한 글이 많은 점 이해하길 바랍니다.
쉽지 않은 원정산행을 참여하실 경우에는 본인의 체력을 고려하여 참여하여야만 하겠습니다.
평소 체력 단련이 덜 되신 동행님들이 참여하여 힘들어 하는 모습을 가끔 볼 수가 있습니다.
참여하여 체력이 모자라 힘든 경우에는 맨 뒤에서 홀로 따라올 것이 아니라 미리 같이 동행해줄 것을 산행대장님이나 동행하는 동료에게 부탁하여 일사불란하게 즐거운 산행이 같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서로서로 아름다운 미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무한정 지리산의 묘미를 즐기고 느끼며 정을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동행님들이 있어 푸르른 잎새의 정기 속에서 변하지 않을 추억을 새기며 아름다운 지리산 천왕봉의 사랑도 담고 왔네요.
1박 2일 지리산과 함께하신 아름다운 동행님들 우중산행을 곁 드린 산행 수고 많으셨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바라며 감사합니다.
첫댓글 와우~어쩌면 이렇게 세밀하게 기록을하실수 있으신지 정말 놀랐습니다~
산행을 다녀왔어도 뭐가뭔지 눈에 담아온 지리산의 경치뿐인데 출발 . 도착 .
시간까지 세밀하게 기록해주셨네요~지리산에 다시 다녀온 기분이네요~
즐거운시간이었습니다-
산행일기 감사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주영님, 몇 장의 산행선물 사진 감사했습니다.
멋지고 정성스러운 산행후기.. 감사합니다!
지리산 당일종주 하고픈데..,
기회가 오려나??
<쟈차로 힘!>
하고픈데...
꿈아 있어 훌륭해 보입니다.
가서 본것보다 더 자세히 쓰셨내요 대리만족 잘 하고 나갑니다 대단하셔요.
잔차방 손님! 반갑습니다.
너무 작은 글씨, 긴 글 눈 아프셨죠.
산행후기.정말 실감나게 쓰셨습니다. 지리산.천황봉 고향이 진주라 고등학교 감회가 새롭습니다.
참크고 웅장하고 멎진산이죠
학창시절부터 한번씩 다니던 산
잔차방 대장님도 출행하셨네요.
지리산 정기가 진주로 내려 뻗어 있지요.
지리산의 정기 품고 전국을 누비는 모습 부럽기도 하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