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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은 성령역사에 구속주의 은혜로 시련과 인내를 이겨 나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어떠한 희생이라도 하고자 하나, 그들이 해야 할 바로 그 희생, 곧 자아를 굴복시키고, 그들의 의지를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는 희생은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 여기에는 겸손에 대한 교훈이 있다. 천국을 상속받기 위하여, 우리는 모두 어린아이처럼 겸손해야 한다.(1TT 473.2)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인간의 마음을 보시며, 그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그들의 품성을 더욱 잘 아신다
그분은 올바른 길로 지도되면 그분의 사업을 진전시키는데, 도움이 되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감수성과 능력을, 어떤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아신다. 그분은 이런 사람들을 시험하시며, 그 분의 지혜로운 섭리로 그들을 각기 다른 위치와 각종 환경 아래 두셔서,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들과 그들 스스로가 깨닫지 못한, 그들의 품성의 약점들을 드러내게 하신다. 그분은 그들에게 이러한 약점들을 고치고 그들의 본성의 거친 구석들을 세련되게 하여, 하나님의 봉사에 적합하게 할 기회를 주신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봉사하도록 그들을 부르실 때 그들이 준비되고, 지상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사업에서 하늘의 천사들이 저들의 활동을 인간의 노력과 연합시킬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1TT 473.3) 책임 있는 지위에 앉히고자 계획하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써 그들에게 감추어진 결함을 드러내신다. 그리하여 그들이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복잡한 정서와 그들 자신의 마음의 동향을 세밀하게 검토하여 잘못된 점을 찾아내게 하신다.
그리고 그들은 성질을 고치고, 태도를 세련되게 한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섭리를 통하여 도덕적 힘을 시험하고, 행동의 동기를 드러낼 수 있는 환경으로 사람들을 인도하셔서, 그들 속에 있는 옳은 것은 증진하게 하시고, 그릇된 것들은 버리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도덕적 기능을 깨닫게 하신다.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해 그분은 흔히 그들을 순결하게 하시고자, 엄습(掩襲:예고 없이) 불시에 하는 환난의 불꽃을 허락하신다.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은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말3:2,3).(1TT 474.1) 하나님의 백성들을 정결하게 하는 일은, 그들의 고난 없이 성취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불순물을 불살라 버리고 무가치한 것을, 가치 있는 것에서 분리시켜 순수한 금속으로 빛나도록 하기 위해, 환난의 불꽃을 허락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불꽃을 차례로 통과하게 하심으로, 우리의 참된 가치를 시험하신다. 만일 우리가 이 시련들을 견뎌 내지 못하면, 환난의 때에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만일 번영이나 역경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거짓과 교만과 이기심을 찾아낸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행위를 마치 불꽃처럼 시험하시고, 모든 마음의 비밀을 적나나(적나라-赤裸裸:숨김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보이게)하게 드러내실 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1TT 474.2)
참된 도덕적 힘은, 기꺼이 시련을 받고자 할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살피심을 싫어한다면, 우리의 상태는 참으로 심각한 형편이다. 하나님은 영혼을 세련되게 하고, 순결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풀무의 열기는 그리스도인 품성의 참된 은과 금에서, 불순물을 영원히 분리시켜 버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시험을 지켜보신다. 그분은 귀한 금속이 그분의 거룩한 사랑의 빛을 반사하도록, 정련(精鍊:잘 다듬고 연마)될 때 무엇이 필요한지 아신다.(1TT 474.3)
예수님께서 길을 인도하심- 하나님께서는 철저하게 시험하는 시련을 통하여, 그분의 백성들에게 그들 자신의 약점과 무능을 보이심으로, 그들이 그분을 유일한 도움과 보호자로 의뢰하도록 가르치심으로, 그들을 그분께로 가까이 이끄신다. 그렇게 되면, 그분의 목적이 성취된다. 그들은 어떤 긴급 사태에도 사용되고 또한, 신임 받는 요직을 감당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능력을 부여하신 그 큰 목적을 성취하게끔 준비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시련을 받게 하신다. 그분은 그들을 좌우에서 시험하여, 그들이 교육과 훈련과 연단을 받게 하신다. 인류의 대표이시며 머리이신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는, 이 시험의 과정을 견디셨다. 그분은 우리가 견디도록 요구된 시련보다, 더 큰 시련을 당하셨다. 그분은 우리의 약점을 지시고,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은 시험을 당하셨다. 그분은 그분 자신 때문에서가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에 시련을 당하셨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승리자의 공로를 의지하여, 그분의 이름으로 승리자가 될 수 있다.(1TT 475.1)
세련되고 순결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작업은, 그분의 종들이 활동적인 봉사에 부르심을 입을 때,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할 정도로 겸비해지고, 자아에 대해 죽을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런 후에 그분께서는, 그들의 노력을 가납하실 것이다. 그들은 충동에 의하여 경솔하게 움직이지 않고, 사단에 의해 불 붙여진 그들 자신의 육욕적인 마음을 따르거나, 유혹과 정욕의 노예가 되어 무모하게 행함으로, 주님의 사업을 위태롭게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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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인간의 왜곡된 의지와 제어되지 못한 성질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이 얼마나 무섭게 훼손되었는가! 인간은 자신의 고집스러운 정욕을 따름으로 얼마나 많은 고난을 스스로 초래하였는가!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겸비와 품성의 변화를 통하여, 인간이 그리스도와 하늘의 정신에 조화되어, 스스로를 정복할 때까지 압력을 가중시키시고, 인간을 거듭거듭 바닥[연단의 하급기초 시련의 사다리 밑]으로 끌어내리신다.(1TT 475.2)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각기 다른 처지에서 부르시고, 그들이 어떤 품성을 형성하는지, 또한 그들이 주님의 요새를 지킬 수 있는 인정을 받을 것인지, 그리고 그들이 이미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의 부족을 채울 수 있을 것인지, 그들이 그 곳에 있던 자들이 이미 저지른 실패를 보고 하나님의 가장 거룩한 사업에 종사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자들의 본을, 피할 수 있을 것인지 보시기 위하여 그들을 시험해 오셨다. 그분은 지도자급에 있는 사람들에게, 계속하여 경고와 책망과 충고를 하셨다.
그분은 그 곳에서 그분의 사업을 맡은 자들에게, 그들의 앞길이 평탄해지도록 큰 빛을 비추셨다. 그러나 그들이 만일 ‘사울’[무당의 점 궤 신봉] 처럼 빛을 멸시하고 자신의 지혜를 따르기를 더 좋아한다면, 그들은 반드시 곁길로 나가게 되고, 사업을 어려움 속으로 몰아넣게 될 것이다. 빛과 어두움이 그들 앞에 놓여 있었으나, 그들은 너무도 흔히 어두움을 택하였다.(1TT 475.3)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은, 현대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적용된다. 그들 중 대부분이 이름은 가졌으나 열성은 없는 뜨뜻미지근한 공언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사업의 중심부에 서 있는 자들이 그 곳에 있는 형편을 바로잡고 그들의 맡은 자리를 충실한 파수꾼처럼 지키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리셨다. 그분은 그들을 가르치고 격려하고 확신시키기 위하여, 모든 상황에 필요한 대로 모든 점에서 빛을 주셨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충실하고, 진실해야 하고, 그리스도인 열성으로 열렬해야 하고, 은혜로운 성품을 가져야 하고, 진실하게 예수님을 알고 사랑해야 할 자들이, 원수를 도와줌으로, 하나님께서 사업을 이루기 위하여 사용하고 계시는 자들을 약화시키고, 낙망케 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뜨뜻미지근하다”는 말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그들은 진리를 사랑하노라고 공언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열성과 헌신은 부족하다.
그들은 완전히 포기하고 불신자가 되는 모험을 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기꺼이 자아에 대해 죽고, 그들의 믿음의 원칙을 철저히 따르고자 하지도 않는다.(1TT 476.1)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분명히 보는 것, 곧 자기의 질병의 성격을 아는 것이다. 그들은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
그들은 중립(中立:순종과 불순종 중간- 중간지점은 결코 없음)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다 며 스스로 자부한다. 참된 증인께서는 이와 같이 미지근한 것을 싫어하신다. 그분은 이런 부류사람들이 가진, 냉담을 몹시 싫어하신다. 그분은 “네가 차든지 덥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계3:15)고 말씀하셨다.
미지근한 물처럼, 그들은 그분에게 메스꺼움을 준다. 그들은 무관심하지도 않고, 이기적으로 완고하지도 않다. 그들은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사업에 전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그 사업의 유익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식은 물은 (연단) 데워야 쓸 수 있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의 사업과 상관이 없는 위치에 서서, 세속적이고 개인적인 이익이 요구할 때, 언제나 그들의 자리를 떠날 준비를 갖추고 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은혜의 내적역사가 결핍되어 있다. 그러한 자들에게 다음의 말씀이 적합하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3:17).(1TT 476.2)
하나님의 치료제- 참된 증인께서 뜨뜻미지근한 자들에게 사라고, 권고하신, 순수한 금 곧, 믿음과 사랑은 참된 부(富:재산이고 생명)이다. 우리가 지상의 보화에 있어서 아무리 부요할지라도, 우리의 모든 재물을 가지고 소위 미지근한 영적질병을 치유할, 귀중한 치료제를 살 수 없다. 지력과 지상의 부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결점을 제거하거나 그들의 비참한 형편을 치유하기에 무력하다. 그들은 눈이 멀어 있지만,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의 마음을 일깨우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스스로의 죄악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도움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1TT 477.1) 하나님의 영의 은혜가 없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그러나 영성과 그리스도가 없으면서도 우리를 위해 걱정하는 자들에게, 그들의 염려와 동정이 필요 없다고 말함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더욱 비참한 일이다. 자아 기만의 힘이 인간의 마음에, 역사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흑암을 광명으로 알고 광명을 흑암으로 아니, 이 얼마나 눈이 멀어 있는가! 참된 증인께서는 불로 연단한 금과 흰 옷과 안약을, 그분에게서 사라고 우리를 권고하신다.(1TT 477.2) 여기서 불로 연단된 것으로 추천된 금은, 믿음과 사랑이다. 그것은 마음을 부요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순결해지기까지 연단을 받았고, 연단을 받을수록 그 광채는 더욱 찬란해지기 때문이다. 흰 옷은 품성의 순결 곧, 죄인에게 나누어 주는 그리스도의 의다.
이것은 진실로 하늘의 직물로 만든 옷이며, 즐겨 순종하는 삶을 통하여 오직 그리스도에게서만 살 수 있다. 안약은 선과 악을 분별하고, 가면을 쓴 어떤 죄라도 알아낼 수 있게 하는, 지혜와 은혜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교회에 눈을 주셔서, 그 눈에 지혜의 안약을 발라 분명하게 보게 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가 밝히 드러나, 책망 받는 것을 원치 않으므로 할 수만 있으면, 교회의 눈을 뽑아 버리고자 한다. 하나님의 안약은, 이해력을 밝혀 줄 것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은혜의 보고(寶庫:보물창고 자체)이다. 그분은“내게서 사라”(계3:18)고 말씀하신다.(1TT 477.3) 어떤 이들은 흔들려 떨어져 나감- 어떤 이들은 선한 행실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하는 것이, 우리 자신의 공로를 높이는 것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우리의 선한 행실로, 단 하나의 승리도 얻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선한 행실이 없이, 우리는 승리자가 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사라고 추천하시는 것은, 오직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조건에 응하는 것뿐이다.
가치를 헤아릴 수 없고, 시련과 역경의 시험을 견딜 수 있는 참 은혜는, 믿음과 겸비하고 경건한 순종을 통하여만 얻어질 수 있다. 환난과 핍박의 시험을 견디고 그들의 견고함과 건전함을 입증하는 은혜는, 불로 연단을 받아 순수하게 된 금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귀한 보물을 사람에게 팔고자 제공하신다.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계3:18)라. 죽어서 생기 없는 의무 이행은, 우리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지 못한다.
우리는 뜨뜻미지근한 상태에서 벗어나, 참된 회심을 경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천국을 잃어버릴 것이다.(1TT 478.1) 나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섭리를 주목하게 되었는데, 그리스도인임을 공언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시련 곧, 연단케 하고 순결케 하는 과정을 통한 시련이 주어질 때마다, 어떤 사람들이 불순물로 판명되는 것을 보았다.
언제나 순금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신앙적 위기가 있을 때마다, 어떤 사람들은 유혹에 넘어진다. 하나님이 흔드시면, 많은 무리들이 낙엽처럼 불려 나간다.
번영의 때에는 믿음의 공언 자들이 크게 불어난다. 그러나 역경은 그들을, 교회 밖으로 몰아낸다. 한 부류로서, 그들의 정신은 하나님께 굳세지 못하다. 그들은 우리에게 속하지 않았으므로, 우리를 떠나간다.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면, 많은 사람들이 실족할 것이기 때문이다.(1TT 478.2) 그들은 스스로 속고 있다. 평온할 때에 그들은 참으로 확고하다는 것을 나타내지 않는가! 얼마나 그들은 용기 있는 선원(船員:항해하는 뱃사람- 믿음의 성도)인가!
그러나 시련과 유혹의 맹렬한 폭풍이 불어오면 보라, 그들의 영혼은 파선(破船:배가 침몰)한다. 사람들은 탁월한 재능, 훌륭한 능력, 놀라운 자질을 소유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의 결점, 방종 된 은밀한 하나의 죄는 벌레 먹은 판자가 배에 가져오는 결과, 즉 완전한 재해와 멸망을 품성에 가져 온다는 사실이 판명될 것이다!(1TT 479.2) 책임 있는 지위에 앉은 자들은 계속 발전해야 한다. 그들은 단지 옛 경험에 닻을 내려서는 안 되며, 과학적인 일꾼이 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인간은 세상에 나올 때 하나님의 피조물 중에서 가장 무력한 존재요, 그 본성이 가장 왜곡된 존재이기는 하지만 계속 발전할 수 있다. [영원을 사모하는 지적이고 믿음의 영적존재감을 주셨음] 그는 과학에 의해 계발되고, 덕을 쌓아 고상해지고, 정신적 도덕적 위엄에 있어서 발전하여, 마침내 지성과 품성의 순결에 있어서 천사의 완전과 순결보다, 약간 낮은 완전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
인간의 마음에 비치는 진리의 빛과, 그들의 마음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통하여, 그들이 무엇이 될 것인지 그리고, 어떤 위대한 일을 할 것인지, 우리는 이루 다 이해할 수 없다.(1TT 479.3) 나는 인간의 마음이 그 스스로의 참 형편에, 대해 눈멀어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나는 그대를 도우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버려둘 수는 없다. 우리는 그대를 사랑하며 그대가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보기를 원한다. 예수님께서 그대를 사랑하신다. 그분은 그대를 위하여 돌아가셨다.
그분은 그대가 구원받게 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그대를 그곳에 계속 머물러 있게 할 의향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대가 그대의 영혼을 철저하게 돌보고, 그 곳에 있는 모든 잘못을 바로잡고, 천국을 잃지 않기 위하여 자아를 정복하고자, 모든 노력을 기울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천국을 잃어버리는 일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마귀를 대적하라. 그러면 그는, 그대를 피할 것이다.(1TT 480.1)
우리를 천국에 적합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전지(剪枝:필요 없는 가지를 잘라내듯이 우리의 불법적 결점을 버려야)하고 정결하게 하는 작업은 우리에게 많은 고난과 시련을 가져다주는 큰 작업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의지가, 그리스도의 의지에 예속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꽃이 불순물을 살라 버리고 우리가 순결케 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반사할 때까지, 우리는 풀무 불을 통과해야 한다. 자신의 경향을 따르고 형세에 의해 지배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하고 계시는 일을 잘 판단하지 못한다.
그들은 불만으로 차게 된다. 그들은 진정한 승리를 실패로 알고, 유익을 큰 손실로 여긴다. 그들은 ‘야곱’처럼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창42: 36)라고 부르짖는다. 그러나 그들이 불평하는 바로 그것들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1TT 480.2) 십자가 없이 면류관은 없다. 시련이 없이 어떻게, 주님 안에서 강해질 수 있겠는가?[구주의 십자가를 바라보자] 힘을 얻기 위해서는 운동을 해야 한다. 강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 우리는 믿음을 발휘할 환경에 놓여 져야 한다.
사도 ‘바울’은 순교 직전에 ‘디모데’에게,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1:8)고 훈계하였다. 우리는 많은 환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간다. 우리 구주께서는 온갖 방법으로 시험을 당하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하나님 안에서 계속 승리하셨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강건해지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다.(1TT 480.3)
어떠한 형편으로든지, 주검과 접촉된 모든 사람은, 의식적으로 부정하다고 간주되었다. 이것은 ‘히브리’인들의 마음에 죽음이 죄의 결과로 왔으므로, 죄의 표상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인상지어 주기 위한 것이었다. 한 마리 붉은 암송아지, 한 척 방주, 하나의 놋 뱀[‘모세’의 광야시험 때 높이 매달린 구리 뱀은 “십자가”에 달리신 구주예수님]은 하나의 위대한 희생 곧, 그리스도의 희생을 감명 깊게 지적한다.(1TT 481.1) 암송아지는 붉은색이어야 했는데, 그 색깔이 피를 상징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점이나 흠이 없어야 했고, 결코 멍에를 메어 보지 않은 것이어야 했다. 여기서 또한 그리스도가 표상되었다. 하나님의 아들은, 속죄사업을 성취하기 위하여 자원하여 오셨다. 그분은 의무적인 멍에를 지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분은 구애되지 않고 모든 율법 위에 초월해 계셨기 때문이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지성적 사자로서, 의무적인 멍에를 메고 있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빌2:6)셨다.(1TT 481.2)
그러나 이 영광스러운 본체는 불쌍한 죄인을 사랑하시고, 인간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고 돌아가시기 위하여 스스로 종의 형체를 입으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왕관과 왕복을 입으시고, 그분의 아버지의 오른편에 남아 계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하늘의 모든 부와 명예와 영광을 인간의 궁핍과 바꾸시고, 또한 높은 사령관으로서의 지위를 ‘겟세마네’의 공포와, ‘갈바리’의 [십자가]굴욕과 고통으로 바꾸는 길을 택하셨다.
그분은 그분의 수난과 피의 침례를 통하여, 죄 된 세상을 순결하게 하시고 구속하시기 위하여, 슬픔의 사람이 되시고 질고를 아는 분이 되셨다. “내가 왔나이다...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시40:7,8)라는 외침은 기쁨에 넘치는 동의였다.(1TT 481.3) 희생제물인 붉은 암송아지는 진 밖에서 드려져, 가장 인상 깊은 방법으로 죽임을 당하였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예루살렘’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는데, ‘갈바리’가 성벽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만을 위해서가 아니고, 모든 인류를 위하여 돌아가셨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그분은 타락한 세상에 그분이 그들의 구속주가 되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을 선포하시고 그분이 그들에게 제공하시는, 구원을 받아들이라고 호소하신다. 붉은 암송아지가 가장 엄숙한 방법으로 죽임을 당한 후, 흰 옷을 입은 제사장은 희생물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손에 받아, 성전을 향하여 일곱 번 뿌렸다.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21,22).(1TT 482.1) 그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그분의 고귀한 피를 흘리신 후에, 그분 자신의 흠 없는 의를 통하여 성전을 정결하게 하시고자 성소로 들어가신다. 그리고 그 곳에서 붉은 피는, 하나님을 인간과 화목하게 하는 봉사에 드려진다.
어떤 사람들은 이와 같이 붉은 암송아지를 잡는 것을 ,무의미한 의식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행해지고, 현재까지 적용되는 심오하고 중요한 의미가 있다.(1TT 482.3) 제사장은 백향목과 우슬초를, 정결하게 하는 물에 담가, 부정한 자에게 뿌리는데 사용하였다. 이것은 도덕적 부정에서 우리를 정결하게 하기 위해, 흘려진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였다. 반복해서 뿌린 것은 회개하는 죄인을 위해, 이루어져야 할 일이 철저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 그 자신의 영혼이 정결하게 씻겨 져야 될 뿐 아니라 그의 가족, 그의 가사(家事), 그의 재산, 그리고 그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께 드려지도록 노력해야 한다.(1TT 483.1)
‘시편’ 기자는 그의 기도 가운데서 이 상징적 의식을 언급하고 있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 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51:7,10,12).(1TT 483.2) 그리스도의 피는 죄인에게 효력이 있으므로 계속해서 적용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들에게 위탁하신 그 방법을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기를 원하실 뿐 아니라, 그분의 사업에 그들이 스스로를 헌신하기를 바라신다.
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이 만일, 이기적인 자가 되어 그분의 사업에, 기꺼이 드려야 할 것을 주님께 드리지 않고 있다면, 그대들은 정결케 하는 피 뿌림을 철저히 적용하고, 그대와 그대의 모든 소유를 하나님께 바칠 필요가 있다.(1TT 483.3) 우리의 믿음은 선한 행실을 낳아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한 모든 의무나 이루어진 모든 희생은 참으로 큰 보상을 가져 온다.
의무 이행, 바로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축복을 말씀하시고 또한 주신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에게 모든 능력을 완전히 바치도록 요망하신다. 마음과 정신, 온몸을 그분께 드려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한다.(1TT 485.3)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부[부요함]를 얻게 해주는 것은 무엇이나 사람에게 아끼지 않으셨다. 그분은 지구를 아름다움으로 옷 입히시고, 인간의 현세적 생애의 소용과 안락을 위하여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셨다.
그분은 그분의 아들을 주셔서 죄와 어리석음으로 타락한 세상을 구속하기 위하여 돌아가시게 하셨다. 그처럼 비할 데 없는 사랑, 무한한 희생은 우리의 가장 엄격한 순종, 가장 거룩한 사랑, 무한한 믿음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미덕들이 최대한 발휘된다 해도, 우리를 위해 제공된 그 위대한 희생에 비교될 수는 없다.(1TT 485.4) 의심 없는 순종-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율법에 신속하고 의심 없이 순종하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사람들은 잠들어 있거나 사단의 속임수에 마비되어 있는데, 사단은 변명과 핑계를 제시하며, ‘에덴동산’에서 ‘하와’에게 말한 것처럼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3:4)고 하여, 주저하는 자들을 제압한다. 불순종은 범법자의 마음과 양심을 강퍅하게 할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믿음도 타락하게 한다.
처음에는 매우 그릇되게 보이던 것들이 계속 그들 앞에 있게 되면, 차츰 그러한 모습을 잃어버리게 되어, 마침내 그것이 정말로 죄인지 의심하게 되고, 무의식중에 동일한 잘못을 범하기까지 된다.(1TT 486.1)
지체(遲滯:고의로 때를 늦추거나 지연)하는 위험- 의무가 생길 때, 우리는 그 의무의 요구에 응하기를 지체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지체는 의심이 생길 틈을 준다. 불신이 스며들어오고, 판단이 왜곡되고, 이해력이 어두워진다. 마침내, 성령의 책망은 이 미혹된 자의 마음에까지 이르지 못하게 되고, 그는 그 책망들이 자신을 위한 것이요, 자신의 상황에 적용되는 것일 수는 전혀 없다고 생각할 만큼 눈이 어두워진다.(1TT 487.2)
귀중한 은혜의 기간이 지나가고 있으나, 그것이 영원을 위한 준비를 목적으로 주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 자는 거의 없다. 황금 같은 시간은, 세속적인 업무와 쾌락과 분명한 죄 등으로 허비된다. 하나님의 계명은, 소홀히 여겨지며 잊혀 진다.
그럴지라도 그 계명의 매 조항의 규제력(規制力:법규와 형벌과 자제의 힘)은 살아 있다. 모든 범죄마다 형벌이 따를 것이다. 세속적 이익을 좋아하면 안식일을 더럽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거룩한 날이 요구하는 바는 폐기되거나 감소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계명은 이 점에 있어서 명백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분은 안식일에 노동하는 것을 단호하게 금지하셨다. 그분은 안식일을 그분께 거룩한 날로 구별하셨다.(1TT 487.3)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들의 길에 놓여 진 방해물이다. 그들을 세상길에 묶어 놓는 강하고 교묘한 영향력이 있으나, 주님의 능력은 이 사슬을 깨뜨릴 수 있다.
그들이 그분의 도움을 열렬하게 구하면, 그분은 그분께 신실한 자들의 발 앞에 있는 모든 방해물들을 제거해 주시든지, 그렇지 않으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실 것이다.
자아에 대한 어떤 값을 치를지라도, 비록 생명자체를 희생당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열렬한 소망과 불굴의 노력 앞에는 모든 방해물(妨害物:악의 세력)이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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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과 어려움 속에서도 예수님을 그들의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분으로 바라보고 전진하는 자들에게 있는 흑암은, 하늘에서 오는 빛이 제거해 버릴 것이다.(1TT 487.4) 옛날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와 사도들의 입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오늘날 그분은, 성령의 증언들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백성들이 따르기를 바라시는 길에 대하여, 오늘날 백성들을 가르치시는 것보다 더 열렬하게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을 가르치신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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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이 그분의 가르침을 통하여, 유익을 얻을 것인가? 그들이 그분의 책망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경고에 유의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부분적 순종을 받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자아와 타협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실 것이다.(1TT 488.1) 신앙을 공언하는 자들의 품성이 그들의 공언과 일치하지 않으면, 구원하는 효력을 나타내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곳에 있는 그분의 백성들에게 은혜롭게 큰 빛을 주셨다.
사단은 성취시켜야 할 자신의 사업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사업의 중요한 중심부에서 가장 강력하게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는 이기적이고 헌신하지 않은 남녀들을 붙들어서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을 살피고, 그들의 말과 행동과 동기에 의심을 나타내고, 그들의 책망과 경고에 흠을 찾고 불평하는 파수꾼으로 만든다. 그들을 통하여 사단은 의심과 질투를 일으키고, 신실한 자들의 용기를 약화시키고, 성화되지 않은 자들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의 종들의 수고를 헛되게 하고자 노력한다.(1TT 489.3)
[여호와의 사자가 참석한] 순수한 부흥— (삿2:1,2 인용)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부복하여 통회하고 자복하였다. 그들은 희생제물을 드리고 하나님께 죄를 자복하고 서로 죄를 고백하였다. 만약 그들이 진정으로 회개하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다면, 그들이 드린 희생제물은 아무런 가치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회개는 순수하였다. 그들이 죄를 자복하고 희생제물을 드렸을 때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들의 마음에 역사 하였고,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셨다.(2BC 1001.1)
그것은 순수한 부흥이었으며, 그 결과 백성들 가운데 개혁이 일어났다. 그들은 그들이 맺은 언약에 충실하였다. 백성들은‘여호수아’가 살아있을 동안과,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목격한 장로들의 생전에는 여호와를 섬겼다. 그들은 죄를 회개하였고 용서를 받았지만, 악의 씨앗들은 계속 뿌려져 싹이 나고 열매를 맺었다. 곧고 결백한 ‘여호수아’의 생애는 끝이 났고, 그의 책망과 경고의 음성도 더 이상 들을 수 없이 되었다. ‘요단’[강]을 건넜던 신실한 선구자들은 하나씩 하나씩 갑옷을 벗었다.
새로운 세대가 활동무대에 등장하였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났고 그들의 예배에는, 그릇된 원칙과 야심적 교만이 함께 섞여 있었다(2BC 1001.2)
세상과 교제함으로 받는 해로운 영향(고후6:14-18)—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아무 관계도 없이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가담하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 금지된 땅에, 발을 들여놓는 자들이 어찌 그리 많은지! 많은 사람들이 천박하고 불경한 쓸 데 없는, 친척들을 집으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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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이 신앙심이 없는 방문객들의 영향과 감화는 집안에 있는, 아이들의 마음에 오래 지속되는 인상들을 남긴다. 이런 식으로 끼쳐진 감화는 마치 ‘히브리인’들이 하나님을 부인하는 ‘가나안’ 사람들과 교제함으로 받은 것과 아주 비슷한 것이다.(2BC 1001.3) 하나님께서는 부모들이 자신과 가족들을 거룩하지 못한 감화로부터, 분리시키라는 명령을 무시한 것에 대해, 그들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우리들은 세상에 살아야 하지만, 세상에 속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세상의 관습과, 유행을 따르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불경한 사람들과의 우정은 그들을 적대시 하는 것 보다 더 위험하다. 이러한 교제는 거룩한 모본으로 잘 인도했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번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그릇 인도하여 파멸시킨다. 이리하여 청년들의 마음은 무 신앙, 허영, 불경, 교만, 부도덕 등에 익숙해지고 그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보호를 받지 못하여 점차 타락하게 된다.
거의 눈에 띄지 않게 청년들은 순결하고, 품위 있고, 고상한 것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다.(2BC 1001.4) 세상의 벗이 되겠느냐, 하나님의 은총을 받겠느냐?— 하나님 백성들 가운데 책임이 큰 지위에 있으면서도, 타락하고 냉담한 상태에 있는 것을 만족히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유혹이 접근해 올 때에 그들의 경건성은 간곳없이 되고, 그들은 세상의 벗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잃는 위험을 무릅쓸 것이다. 주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연단하시되, 은을 연단하심과 같이 하고 계시다.
살피시는 시험의 때가 가까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으며, 그때에는 결국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께 굴복되든지, 불순종과 반역으로 굳어지든지 할 것이다(2BC 1001.7)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시험하실 것이다.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이 추측했던 것처럼... 만일 그 기별(1844년의 선포)이 짧은 기간 동안 지속됐더라면, 그대들에게는 성품을 계발할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원칙과 믿음으로가 아니라 느낌으로 감동을 받았으며, 이 엄숙하고 두려운 기별은 그들을 동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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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그들의 감정을 움직이고 그들의 두려움을 일으켰으나, 하나님께서 원래 계획 하셨던 일은 이루지 못했다....(Mar 43.2)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한 걸음씩 계속 인도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 가운데 있는 것이, 나타나도록 계획된 각기 다른 경우로 인도하신다. 어떤 사람들은 한 경우에서는 견디어 내나, 다음 경우에서는 떨어져 버리고 만다. 앞으로 나가는 모든 경우에서, 마음은 더욱 철저하게 시험을 받고 시련을 당한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마음이 이 곧은 일을 반대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면, 그들은 자신들에게 극복해야 할 한 가지 일이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어떤 사람들은 어떤 경우는 기꺼이 받아들이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른 시련의 경우로 인도하실 때, 그들은 그것이 자신들이 품고 있는 어떤 우상과 정면충돌함을 발견하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여 물러선다. 그들은 여기서 예수님이 들어오시지 못하게 하는 무엇이, 저들의 마음 가운데 있음을 볼 기회를 갖는다.
그들은 어떤 것을 진리보다 더 높이 평가하며, 그들의 마음은 예수님을 받아들이도록 준비되어 있지 않다. 각 개인들은 그들이 자신의 우상들을 희생할 수 있을지를 알기 위해, 한동안 시험과 시련을 당한다....모든 경우를 경험하고 모든 시험을 견디고 승리한 사람들은, 그 대가가 어떻든지 간에 참된 증인이신 분의 권면을 마음에 두었으므로, 늦은 비를 받게 되고 승천하기에 적합하게 될 것이다.(Mar 43.3)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그분의 백성을 시험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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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들의 마음에 영향을 끼치고 ,저들의 행동을 조종하는 힘이 무엇인지 보여줄 것이다. 만일 그것이 거룩한 진리의 능력이라면, 그것은 선한 일을 하도록 인도할 것이다. 그것은 받는 자들을 고상하게 하고, 거룩한 주님과 같이 고상한 마음을 갖게 하며 온유하게 할 것이다....(Mar 43.4)
하나님께서는 지금 그대들이, 청년이거나 노인이거나 간에 그대들을 시험하고 계시다. 그대는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고 있다.(Mar 43.5)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빛을 보지 못 하”(사8:20)리라. 마음에 작용하는 성령의 역사까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험해 보아야 한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성령께서 언제나 성경으로 인도하신다.(1SM 43.2) 우리가 개인적으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식별하지 않는 한 우리들은 분명히 넘어질 것이며, 사단이 파놓은 불신의 함정에 빠지게 될 것이다.
나는 우리 형제들이 충성된 목자와 보호자들로서, 신앙경험이 미숙한 사람들과 미혹적인 감화의 책략에 걸린, 사람들을 보살펴 주기를 권고하는 바이다. 하나님께서 이 때를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기별에 대한 신앙을 파괴하려고 위협하는 거치는 돌들과, 유사(流砂: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모래 수렁으로 방심할 수 없는 위험한 사태)들을 계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 책임추궁을 받게 될 영혼들을 위하여 살피라.(1SM 169.4)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은 구세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이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영의 가르침을 받아 영혼과 품성에, 성령의 역사하심이 작용하도록 해야 한다. 아,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하찮은 일들에 관심을 기울이므로 낭비되었는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 같이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다”(행3:19)(1SM 192.1)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영에 대한 상징으로 바람을 인용하셨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우리들은 말할 수 없는데, 하나님의 영의 역사도 그러하다. 우리들은 누구를 통해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날 것인지 알 수 없다.(2SM 15.4) 우리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음을 가지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성령을 교사와 안내자로 저들에게 값없이 주실 것이며, 성령의 역사에 따라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저들로 믿게 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전력을 기울여 노력하여 왔던 것이다.(2SM 328.4)
우리는 이제 셋째천사의기별의 사업이, 마쳐지려는 때에 이르렀다. 이 때에 사단은 그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므로, 더욱 능력을 증가시켜 일할 것이다. 동시에 성령의 은사를 통하여 성령이 쏟아 부어질 때에, 다양한 성령의 역사가 우리에게 이르러 오게 될 것이다. 이것이 늦은 비의 때이다.(3SM 83.2) 성령의 역사가 인간의 노력과 결합되고 있으며, 모든 하늘은 백성들로 하여금 이 마지막 날에, 서도록 준비시키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끝이 가까웠으며 우리는 장래의 세계를 주시하기를 원한다.(3SM 425.2)
시시때때로 역사가 생생한 이상 중에 펼쳐짐— 성령의 조명을 통하여 이 오래 계속된 선과 악 사이의 쟁투의 장면이, 이 쪽들의 기록자에게 열려졌다. 시시때때로 나는 서로 다른 시대에 일어난, 우리의 구원의 창시자이시며 생명의 임금이신 그리스도와, 죄의 창시자이며 악의 임금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의 최초의 범법자인 사단사이의 대쟁투를 보도록 허락되었다.(3SM 110.1)
태초부터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류를 위한 그분의 목적을 성취시키는 일에, 인간 도구들을 통하여 그분의 성령으로 역사해 오셨다. 이것은 부조들의 생애 속에서 나타났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모세’시대의 ‘광야교회’에게 그분의 “선한 신을 주사 저희를 가르치”(느9:20)셨다. 그리고 그분은 사도시대에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그분의 교회를 위하여 능력 있게 일하셨다.
부조들을 붙드시고, ‘갈렙과’ ‘여호수아’에게 믿음과 용기를 주시고, 사도시대의 교회사업을 효과 있게 만드신 동일한 능력이, 그 후의 모든 시대마다 하나님의 충실한 자녀들을 붙들어 주었다. 암흑시대 동안 ‘왈덴스’의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종교개혁의 길을 준비하였다. 그 동일한 능력으로 고상한 남녀들이 현대선교 지를 설립하고 모든 국가와 민족들의 언어와 방언으로 성경을 번역하는 개척사업에 성공하였다.(ChS 256.1)
회개는 그리스도 없이 경험될 수 없는 바, 이는 회개란 우리가 용서함을 위하여 간구할 수 있는 근거의 창시자 되시는, 그분께 대한 회개인 까닭이다. 사람들이 회개함에 이르게 되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서이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먼저 회개하게 하신다.(TMK 109.4)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옛 것을 변경하고 개량하는 것이 아니라 본성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자신과 죄에 대하여는 죽고 전적으로 새로운 생명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성령의 효과적인 역사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FLB 55.2) 사람의 마음은 날 때부터 냉랭하고 어둡고 사랑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비와 용서의 정신을 나타낼 때는, 언제나 자기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그의 마음에 역사하는 성령의 감화를 통해서 하게 된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 하셨음이라”(요일4:19).(MB 21 .3) 하늘나라는 느낄 수 있으며,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내적인 역사는, 효모와 비교된다.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마13:33). 그리고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고 하셨다.(2SAT 115.1)
성령의 역사에 굴복하는 사람 속에는 새로운 생명소가 심어져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이 다시 회복된다.(SD 34.3) 성령은 영혼들 속에 있는 영적 생명의 숨이시다. 성령을 나누어 주신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누어 주신다는 의미이다. 성령을 받는 자는 그리스도의 속성으로 물들여지게 된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고, 마음속에 성령의 역사를 지니며 그의 생애에 그리스도와 같은 삶이 나타나는 자만이, 대표자로 서서 교회를 위하여 봉사해야 한다.(DA 805.3)
우리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와 성령은 인간을 위하여 계속 중보하시지만, 성령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중보사역과 같지는 않다. 그리스도는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해서 흘리신 그의 피를 내어 놓고 중보하시지만, 성령은 우리의 마음에 역사하시고, 기도하게 하고, 회개와 찬양과 감사를 이끌어 내신다. 우리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감사는 성령께서 심금을 울리신 결과이며, 마음의 음악을 일깨우신 결과이다.(BLJ 333.3)
만일, 그대가 마음 가운데 어떤 부족을 느낀다면 또한,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면,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선물을 통하여 그대 스스로는 할 수 없는 것을 그대를 위하여 해 주시고자 그대의 마음에 역사하고 계신다는 증거이다.(BLJ 345.6) 하나님의 나라는 외부적 과시를 수반하여 임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부드러운 영감을 통하여, 성령의 내적역사(內的役事), 곧 생명 되시는 분과의 영혼의 교통을 통하여 오게 된다.
하나님 나라의 가장 위대한 능력의 표현은 그리스도의 품성의 완전함에 도달한 인간의 성품 속에 보여 진다.(MH 36.2)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심령의 성화는 그리스도의 본성을 사람 속에 심는 것이다. 복음에 대한 신앙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활 속에 거하시는 것이며 곧 살아 움직이는 원칙을 말한다.
이 신앙은 품성 속에 나타나 선한 일을 하도록 해주는 그리스도의 덕성인 것이다.(AG 244.6) 인간의 마음은 성령의 거하실 처소가 될 수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화평이 그대 영혼에 머물러 그분의 변화시키시는 은혜의 능력이 그대의 생애를 역사하시어 그대로 하여금 하늘 궁정에 적합한 인물이 되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만일 그대가 그대의 지력이나 신경, 근육을 그대 자신만을 위해 사용한다면 그대는 그대의 생애에서 제일 관심사를 하나님과 하늘나라에 두지 않고 있는 것이다.... (AG 251.3)
성령의 내주(內住:빛의 열매-하나님의 자녀)(엡5:9)— 성령의 감화는 영혼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고 그에게 말을 하지만, 그의 성령께서는 어떤 한 곳에서 우리 바로 곁에 계신 것과 꼭 같이, 다른 장소에서도 우리 바로 곁에 계신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 속에서, 그리고 그 모든 사람들을 통하여 역사하신다. 성령의 내주(內住:마음속에 임재)를 아는 사람들은 성령의 열매-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를 나타낸다.(6BC 1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