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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부활의 증거
고린도전서 15:1~11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독교의 명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시되, 다시는 육체의 죽음이 범할 수 없는 불멸의 영광스러운 몸을 입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로써 죽은 자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그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도 예수님의 부활을 본받아 죽음에서 일어나 영원한 불멸의 몸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요한복음 5장 25절 이하에 기록된 바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장차 성취될 것이 확실히 보증이 됩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 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으니라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한복음 5:25~29)
예수님께서는 이천년 전에 그의 예고대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써 그를 믿는 자들의 구원자가 되셨으니, 이미 죽어 무덤에 그 몸이 썩었을지라도 믿음을 가진 자들은 주님이 재림하실 그 때에 부활의 영광으로 무덤에서 일어나고, 믿음을 거절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다시 일어나 그 앞에 서서 심판을 받게 됨이 명백하게 입증된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의 전 역사를 가르는 대 사건일진대, 과연 이 일은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인가요? 아니면 사람들이 꾸민 이야기인가요? 그 당시에 예수님의 부활 소식이 있던 즈음에 믿지 않는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묻힌 무덤에서 훔쳐갔다는 이야기가 퍼졌고 지금까지도 유대인들 가운데는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까지 모든 기독교회가 가장 중요한 신앙의 신조로 붙들고 있는 예수님의 부활이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라면, 과연 그것은 신뢰할 만한 증거들이 있는 것인가요? 예수님의 죽음은 그 당시의 로마 제국 내의 공문서에서도 등장하고 있으니만큼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때로 증명할 필요가 없지만,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사흘만에 불멸의 몸으로 부활하였다는 증거들은 과연 존재하는 것이며, 그 증거들은 무엇일까요? 그래서 부활절인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거들을 세 가지만 함께 살펴보도록 합시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이미 예고하셨던 예언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갑작스럽게 된 것이 아니고 충분히 오랫동안 미리 예고된 바가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신뢰할 만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구약 성경에 계신 여러 선지자들에 의하여 여러번에 걸쳐 예고된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가 죄인들을 위하여 대신 고난당할 것이라는 말씀은 시편 22편이나 이사야서 50장, 52장, 53장 등에 자세히 구체적으로 예고되었습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하여서도 예고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고들은 예수님의 고난 속에 다 이루어졌습니다. 한 예로 그리스도의 옷이 발가벗겨지고 겉옷은 조각 조각 나눠 가지고 속옷은 제비를 뽑아 한 사람이 가져갈 것이라는 예언조차 정확하게 예수님께서 골고다에 못박혔을 때에 로마 군병들에 의하여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악인들과 함께 죽을 것이고 그 무덤은 부자의 묘실이라고 한 예언대로 예수님은 좌우편에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리셨고 죽은 뒤 큰 아리마대 요셉의 돌무덤에 안치되셨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죽음만이 아니라 그의 부활도 구약 성경에 예고되었던 바입니다. 시편 16:9 이하에 보면 다윗이 영안이 열려서 미리 그리스도의 부활을 보고 자기도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는 은혜를 입게 될 것을 기뻐하는 고백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여기서 다윗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되, 자기 영혼을 무덤 혹은 죽음의 상태인 스올에 버리지 않으실 것과 주의 거룩한 자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가 멸망당하지 않는 것 곧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실 것 곧 죽음에서 살아나실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뿐 아니라 예수님 본인도 이 땅에 오셔서 사역하실 때에 자기의 죽음과 부활을 자기의 제자들에게 따로 여러번에 걸쳐 말씀하셨으며,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설교하실 때에도 계속적으로 자기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한 예로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표적을 보여주시기를 구하자, 예수님은 그들의 불신앙을 책망하시면서 이렇게 일러주셨습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의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누가복음 11:29,30,32)
요나는 예수님 오시기 700년 전에 북 이스라엘 왕국에서 사역하였던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앗수르 제국의 심장부였던 니느웨 성에 가서 회개를 외치라고 명하였는데 그는 불순종하고 반대편 땅으로 도망치고자 지중해 반대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무서운 풍랑으로 그 배를 막으니, 선원들이 배가 뒤집힐까봐 겁이나 나서 제비가 뽑은 그를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큰 물고기를 예비하여 그를 배에 삼켜서 요나는 삼일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삼일째에 비로소 회개하니 하나님께서 물고기를 명하여 그를 육지에 토하여 내니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외쳤는데, 니느웨 성 사람들은 왕으로부터 가축까지 금식하며 회개함으로써 멸망을 면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그 요나처럼 사흘 동안 땅속에 있다가 다시 살아나시는 위대한 표적을 보여주겠다고 예고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예고대로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그 날 돌무덤에 묻힌 지 사흘만에 다시 돌무덤을 여시고 살아나심으로 그의 예고하신 말씀을 그대로 성취하신 것입니다.
이 요나의 표적 말씀 외에도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에 자기의 십자가의 죽음과 삼일 후의 부활하심에 대하여 여러 차례 말씀하셨으며 자기 제자들에게는 다시 살아나신 후에 하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것 곧 그의 승천에 대한 이야기도 여러 차례 말씀해주셨습니다.
또한 한번은 예수님께서 죽으신 후에 입으실 부활의 영광의 몸에 대하여서는 제자들에게 직접 몸의 변화될 영광을 잠깐 일부 보여주신 적이 있으니, 곧 예수님께서 높은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실 때에 그의 몸이 홀연히 빛과 같이 빛나고 얼굴이 해처럼 빛나는 모습으로 변화된 적이 있습니다. 그 때에 그의 세 명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그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았습니다. 심지어 변화된 예수님 곁에 천 사백 년 전의 이스라엘의 영도자 모세와 불말과 불병거를 타고 천국에 들어간 8백년 전 선지자 엘리야가 빛이 충만한 옷과 얼굴로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그 제자들은 직접 목격한 바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입으실 몸의 영광을 제자들은 이렇게 미리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의 죽음과 그의 부활은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요 오랫동안 예고되었고 여러 차례 전조가 있었고 그 영광스런 몸의 변화도 일부 미리 보여준 바 된 예고된 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갑작스럽게 된 일이 아니요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하나님께서 예고하신 일이 성취된 일임이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 부활하신 일은 확실한 증거가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이루시겠다고 미리 약속하신 말씀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된 확실한 역사적 사실인 것입니다. 아멘.
둘째로, 제자들의 반전의 변화가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사도로써 부름받았던 제자들은 평범한 갈릴리 바다의 어부들이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들은 교묘하게 무엇을 꾸미고 이론화하기에는 너무 투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보고 들은 것이 있다면 그대로 믿고 말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가까이 두어 제자로 삼아 삼년 반 동안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의 영적 훈련을 받았지만 별로 달라지지 않았고 실수도 많고 약점 투성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서가 모두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욕심이 많고 분노도 많고 서로 다투고 시기심도 많고 세상 속의 성공을 추구하는 자들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가르쳐주시는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엉뚱한 말을 곧잘 하였고 예수님께서 죽으신 후에 삼일만에 부활할 것에 대하여 여러 차례 가르쳐주었으나 믿지 못하고 그 뜻을 자세하게 물어보기조차 겁내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잡히시는 날 예수님께서 자신이 대제사장과 유대인들에게 잡히고 괴로움을 당하고 이방인에게 넘겨져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것과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미리 다 말씀해주었으나, 못난 제자들은 예수님을 지키기는커녕 예수님을 잡으러 사람이 찾아오자 예수님을 놔두고 쏜살같이 다들 도망쳐 버리는 짓을 범하지 않았습니까? 그러한 제자들의 초라하고 부끄러운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네 복음서 모두가 낱낱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통 어떤 단체나 가문이나 국가건간에 자기들의 대표자들이나 가문의 창시자들이나 나라의 건국자들은 신성시하곤 합니다. 그들의 약점은 감추고 대신에 없는 이야기들까지 만들어 신화화하고 대단한 위인으로 바꾸어 추앙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약 교회를 세우는 일에 기초를 놓은 예수님의 제자들인 사도들은 실수투성이입니다. 예수님께 자주 책망을 받습니다. 그 중 제자 하나는 예수님을 은 삼십 량에 팔아넘겼고 나머지 제자들은 예수님이 체포될 때 다들 자기 살겠다고 도망쳐버립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날에도 열린 무덤에서 천사를 보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여인들의 증언을 듣고도 그들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도마와 같은 제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첫날에 보지 못했더니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자기는 예수님의 손에 자기 손가락을 넣어보고 예수님 옆구리에 자기 손을 넣어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믿겠다고 큰소리쳤습니다. 이렇게 선지자들의 말씀도 믿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말도 믿지 않고 고집 많은 자들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이렇듯 성경은 거짓말이 없습니다. 예수님이나 기독교회의 창설자 역할을 한 사도들이라고 없는 말을 지어 영웅시하지 않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기록합니다. 성경을 기록한 것은 사실 주의 종 마가와 사도 마태와 요한과 이방인 의사 출신인 평신도 누가였는데, 그들은 어떤 것도 과장하지 않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사실 그대로를 기록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경의 진실한 기록들을 살펴보면 그렇게 겁쟁이처럼 도망치고 숨기 바쁘던 제자들이 나중에는 놀라운 변화된 삶을 살았습니까? 그들은 전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는 데 최선을 다하다가 사도 요한을 제외하고는 전부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칼에 목이 베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도 하고 심지어 화형을 당하기도 하고 기름끓는 곳에 던져지기도 하는 고통을 당하면서 굴하지 않고 끝까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들이 이처럼 완전히 달라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그들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확실하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죽으셨다가 부활하여 자기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손과 발의 못자국을 보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 가운데서 말씀하시며 그들이 내어놓은 구운 생선을 자기들 앞에서 예수님이 친히 드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한두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사도들 전부가 모인 자리에도 몇 번이나 나타나 자기의 몸을 보여주셨으며 가르쳤습니다. 심지어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인 고린도전서 15장 6절 말씀에서 사도 바울이 언급하듯이, 부활하신 예수님은 오백여 형제들에게 한 장소에서 일시에 나타나 보여주시고 말씀하신 적도 있었습니다. 그 오백여 성도들은 사도 바울이 그 편지를 쓸 당시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15년 내지 20년 지난 후인데 대부분이 살아 있었노라고 사도 바울이 증언합니다. 그렇듯 당시 증인들이 멀쩡한데 사도 바울이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과장하여 말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는 결코 꾸민 이야기가 아닌 진실한 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주님의 부활의 몸을 확실히 보고 만지고 체험했고 그의 가르침을 직접 들었고 자기들 눈앞에서 하늘로 구름을 타고 올라가는 것을 직접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겁쟁이였던 그들은 사자처럼 담대하게 모든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경우에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이단의 괴수로 알고서 얼마나 맹렬하고 거칠게 교회들을 핍박하였습니까? 얼마나 포악하게 핍박했던지 예루살렘의 수만 명의 성도들이 있었는데 사도 외에 다 흩어져 다른 성읍과 시골로 가야 했을 정도입니다. 그는 성도들 체포하여 잔인하게 때리고 감옥에 집어넣고 심지어 사람을 죽이는 일에도 책임자 노릇을 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다메섹이라는 곳까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러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를 대낮에 강렬한 빛 가운데 찾아오니까 길 바닥에 쓰러진 채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을 보고 그 음성을 듣고서 완전히 달라지고 맙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난 지 30년을 한결같이 전도자로 살다가 결국 로마에서 로마 황제 네로 때에 칼로 순교함으로 그의 증언을 충성스럽게 마쳤습니다.
이렇듯 사도들은 모두 잠깐 일시적으로 달라진 것이 아니고 그들의 평생을 변함없이 계속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그의 부활을 증거하다가 순교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어찌 한 순간의 감정 때문이거나 그들이 헛된 종교적 환상을 본 결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잠깐 심리적인 충격을 받아서 행했거나 어떤 이익을 위하여 조작된 말을 듣고 전한 것이라면 절대로 그렇게 순교를 당하면서까지 지속적으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증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들이 행한 일들을 볼진대 그들은 모두 예수님의 부활을 자신들이 직접 보고 듣고 만진 바 된 확실한 사실임이 분명합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겁쟁이 사도들의 극적 변화와 그들의 순교의 행적이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하게 입증하는 증거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타나는 기적과 이적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합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요한복음 14:13)
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가르치기를 자신이 성령을 보내어 제자들로 자기보다 더 큰 일을 행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정말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심으로 성령받은 제자들은 실제로 더 큰 일을 행하였습니다. 그들이 성령을 받은 오순절 명절에 사도 베드로가 여러 사도들과 함께 거리에서 설교하자 예루살렘에 올라온 순례자들이 그날 하루만에 삼천 명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나중에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갈 때에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향하여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사도행전 3:6)
고 명령하자 놀랍게도 한번도 걸어본 적 없는 그 걸인이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가 이처럼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허무하게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살아나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는 죄인에 불과하고 무력한 인간에 불과할 것이며 그의 이름으로 아무 힘도 없고 그의 이름으로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 영광 중에 부활하심으로 죄인들의 구원자요 만유의 주재요 만왕의 왕이요 만민의 심판장이요 모든 영들과 천사들의 머리가 되심이 확실하기에,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으로 죄가 사함받고 영혼이 구원받고 병이 고침받고 귀신이 떠나가며 기적이 일어나는 놀라운 일들이 계속하여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찾아오신 성령께서는 지금도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들의 기도 응답을 주십니다. 지금도 주의 이름으로 명령할 때에 지금도 귀신이 쫓겨나가고 여러 이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죽음으로 끝난 분이 아니요 다시 살아나 영원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통치하시는 세상의 대주재자이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많은 증거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저히 인간의 경험으로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지만 이렇게 명백한 증거들과 확실한 증인들이 있으니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역사적 사실을 믿고 이 믿음 위에 굳게 섭시다. 흔들리지 맙시다.
그리고 죽은 뒤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장차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도 믿읍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친히 증거하신 말씀대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그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고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천국의 상속자가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읍시다. 그리고 장차 주님이 다시 재림하시는 그 날에 영광의 주님이 천사들과 함께 세상이 오실 터인데, 온 세상은 불로써 정화되고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썩은 몸까지도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어 다시는 병들거나 늙거나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과 주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친히 이르신 말씀 곧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태복음 13:43)
고 하신 말씀이 성취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죽어 썩어서 문드러져 흙으로 돌아간 사람이 다시 불멸의 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일어나겠는가 하고 의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청춘의 때에도 때로 병들고 아프고 곧 쇠약해져가는데 어떻게 그러한 놀라운 육체의 변화가 있을 것인가 도저히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자연 세계 속에서도 하나님은 부활의 예표가 되는 것들을 심어놓았습니다. 예를 들면 도토리 하나를 땅에 심었는데 그것이 나중에 20미터, 30미터의 참 나무와 상수리 나무로 놀라운 변신을 합니다. 물속에서 오랫동안 지내던 잠자리 유충은 어느날 변화하여 하늘을 나르는 잠자리가 되어 하루에도 몇십리를 날아다니는 창공의 왕자가 됩니다. 알이 변하여 독수리가 되고 알이 변하여 거대한 악어가 됩니다. 또한 작은 밀알이 땅에 썩은 뒤에 나중에 많은 알곡을 맺은 벼와 곡식으로 자라납니다. 이처럼 지극히 약하고 작은 것들을 심고 그것들이 죽고 썩은 뒤에는 그것이 다시 완전히 변화되어 거대하고 완전한 영광스러운 존재로 탈바꿈하는 일이 자연 세계 속에 많이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 주님께서 지극히 연약하여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으셨지만 삼일만에 무덤에서 일어나 불멸의 영광의 몸을 입은 모습으로 다시 일어나셨듯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자들은 그를 믿는 믿음을 따라 죽음 뒤에 장차 부활의 영광스러운 몸을 가지고 무덤에서 일어날 때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 일은 주님께서 천사들과 함께 세상을 심판하러 재림하실 때 일어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데살로니가전서 4:16 이하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데살로니가전서 4:16~18)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독교 신앙을 가진 자나 가지지 않은 자나 늙고 병들고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을 가지지 않은 세상 사람들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다들 그렇게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당연한 줄로 알고 세상을 떠나갑니다. 그리고 죽으면 한 줌 흙으로 돌아가고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천년 전에 이렇게 힘없이 죽음의 권세에 눌려 슬픔과 두려움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모든 사람들에게 죽음 뒤에 영원한 생명과 부활의 영광스러운 내세가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죽음 대신에 영생을, 영멸과 영벌 대신에 영광스러운 천국을, 썩고 흙으로 돌아가는 육체 대신에 다시는 사망과 썩음이 이길 수 없는 영광의 부활의 몸으로 살 확실한 소망을 몸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 이제 영원하고 불멸하는 영광의 삶이 있음을 소망하는 것은 결코 근거없는 희망 사항이 아닙니다. 너무나 많은 증거들이 보증하는, 근거가 분명한 그리스도인들의 미래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직접 본 목격자들은 주님의 죽음과 부활의 사실을 자기의 피로써 주님의 부활과 그를 믿는 자들의 부활의 진실함을 입증해보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영생 부활을 얻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이 확실한 부활의 증거들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이 부활의 주님을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는 구원자이자 영생의 선물을 주시는 왕이시자 죽음을 영원히 멸한 정복자로서 나의 주인으로서 모셔들여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로마서 10:9,10 말씀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9~10)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진심으로 믿고 그를 자기의 주님으로 입술로 분명히 시인하면 반드시 구원을 받는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그 놀라운 은혜를 다 받아누리게 됩니다. 죄로 말미암아 저주와 슬픔과 죽음과 영원한 지옥 형벌에서 구원받고 죄사함과 영생과 부활과 천국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불러주셔서 이 지극히 복된 말씀을 듣는 여러분이여, 죽으시고 영원한 불멸의 영광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님으로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입술로 예수님을 자기의 주님으로 고백하십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하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이 복된 부활 주일에 이 지극히 영광스러운 부르심에 응답하여 예비하신 놀라운 부활과 영생 천국의 축복을 다 받아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