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합신을 다녀왔다. <팀 켈러와 함께 목회철학 세우기>라는 과목에서 특강을 했다. 신학교를 다니면서 '센터처치'를 함께 읽고 토론하고 목회철학에 대해 고민하는 수업이 있다는 것은 참 귀한 일이다.
센터처치의 내용보다, 좀 더 고민하고 몸으로 부딛쳐야 하는 신학적 비전을 통한 목회철학을 나누고 싶었다. .J.I.패커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존 멕케이의 '신학서문'에 나오는 짧막한 예화를 소개한다.
2.
기독교에 관심이 있는 두 유형이 있는데 먼저 스페인 풍 집의 발코니에 앉아서 길거리의 여행자를 내려다 보는 사람들이다. '발코니에 앉아 있는 사람'은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엿들을 수도 있고 그들과 대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그저 구경꾼일 뿐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그 길을 가는 여행자가 있다. 그들은 나름대로 이론적인 측면을 고려하고 지도도 보지만 결국 실제적인 문제와 부딛친다. '어떤 길로 갈 것인가?" , "어떻게 갈 것인가?" 또 여러가지 난관 앞에서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실제적인 문제는 이해와 지식이 아니라 결단과 행동을 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3.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발코니에 앉아서 하나님이 세분이니 한분이니 세 위격의 연합에 대해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구경꾼에 불과하다. 여행자는 삶으로 부딛치는 문제이다. 여행자는 자신을 죄에서 건져서 영광에 이르도록 역사하시는 세 위격에게 어떻게 하면 적절한 경배와 사랑과 신뢰를 표현할 수 있을지를 경험하며 알고 싶어한다.
신학교에서 잘못하면 발코니에 앉아서 이리 저리 대화만 하는 지적유희로 끝날 수도 있다. 우리는 발코니에서 신학적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신학을 어떻게 현장에서 접목시킬 수 있을지 몸으로 걸어가는 여행자들이 되어야 한다. 팀 켈러가 말하는 신학적 비전은 내가 배운 교리를 어떻게 현장에서 접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공부와 고민의 결과물이다.
4.
목회철학은 단순히 조직신학에서 배우는 교회론이 아니다. 우리의 현실에서 세워가야 하는 명확한 교회상이다. 이것은 이론적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오늘 내 삶에서 구현해야하는 하나님의 나라이며 지금 이 땅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구체적인 하나님 나라의 실천이다.
발코니에서 외치는 하나님의 나라가 많아지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이론도 중요하고, 신학도 중요하지만 그 신학은 현장에서 치열한 고민 속에서 다시 탄생해야 한다. 개척이라는 척박한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는 몸으로 배우는 하나님 나라이다.
5.
바쁜 직장 속에서 매몰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은 뜬 구름잡는 현학적 비전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루 하루 살아가는 삶의 현장 속에서 손에 잡히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 되어야 하고, 교회 공동체의 비전이 되어야 한다.
발코니에서 대화하는 수준의 목회철학이 아니라. 오늘 우리 삶의 현실에 뿌리내리는 목회철학이어야 한다. 신학을 현장과 연결하는 고민 속에서 신학적 비전은 탄생한다. 진지한 대화들과 여러가지 질문들이 많았다. 진지하게 목회와 교회를 고민하는 신학생들이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오랜만에 강의 후에 식사도 하고 차도 한잔 마시면서 여러가지 대화를 나누었다.
6.
신학교 시절에 제자훈련 동아리를 하면서, 밤 늦게까지 함께 토론하고 고민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여전히 목회는 무엇인지 잘 잡히지 않지만, 우리는 계속 기도하고 고민하며 현장 속에서 이루는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해야 한다. 땀 냄새나는, 먼지가 펄펄 날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필요하다. 강의를 들으면 이미와 아직의 세계가 가슴 벅차지만 내 삶의 현실과 동떨어진 비전은 교회안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신학으로 끝나고 만다.
조직신학의 이슈보다는 가볍지만, 현장의 프로그램보다는 무거운 신학과 현장 사이에 있는 신학적 비전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공부하고 고민하며, 기도하는 삶을 통해 성육신된 목회철학이 필요하다. 질문 중에 '엄밀한 개혁주의'라는 '엄개'라는 단어를 들었다. 신학에 함몰되면, 현장에서 생명력이 줄어들 수가 있다. 하나님의 영광에 너무 매몰되면 사람에게 매몰차게 대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께서 목숨을 버리신 사람들을 너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7.
조직신학 책 속의 교회론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현실 속에서 구동되는 교회론이 필요하다. 함께 고민하고 기도해야 함을 나누고 돌아왔다. 복음과 복음으로 형성되는 대안 공동체를 어떻게 세워갈 수 있을까 기도하고 있다. 복음도 잘 모르고, 복음의 공동체도 잘 모른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24년의 마무리하면서 다시금 복음과 공동체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든다. 목회적 고민이 있을 때는 늘 교리와 전통으로 돌아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인 것 같다. 옛적 길 그 선한 길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