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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정반 17번 유지수
롤 모델 인터뷰
-1정 17 유지수
1] 나의 꿈
나의 꿈은 궁극적으로 더불어 사랑하며 더불어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것 저것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꿈도 매우 다양했다. 그러나 커 가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 껏 하기 위해서는 물질적으로도 재능적으로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함을 깨달았다. 또한 인생을 멋있게 즐기며 살기 위해서는 매우 견고한 계획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나는 순전히 나의 힘으로 돈을 벌고 또 그 돈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만끽하며 살기 위한 꿈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나는 나의 ‘꿈’을 한 단어로 표현 할 수가 없다. 내가 원하는 삶은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미래를 단지 한 단어가 아닌 한‘이미지’로 표현하기를 원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또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와, 세계 각 나라를 여유롭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그 나라의 예술과 문화를 체험하고 우리나라의 춤을 세계에 알리는 예술인이 되고 싶다. 그 것이 나의 꿈이고 내 삶의 목표이다. [인생이 예술이다]라는 명언이 있듯이 나는 내 삶을 ‘예술’로 표현하며 살고 싶다. 또 당장 내가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은 그 예술인으로써 물질적인 것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살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회사 또한 단지 돈을 버는 공장과 같은 곳이 아닌 나의 꿈과 나의 인생을 한 층 더 다이나믹하고 멋있고 풍부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2] 인터뷰 대상자 소개
3] 인터뷰 성사 과정
이미현 안무가는 많고 다양한 분야의 안무가 중에서도 굉장히 아름다운 스토리 있는 안무를 짜는 안무가로 유명하다. 또한 자신이 직접 문화 봉사활동을 뛰면서 행복한 춤을 추는 분이시다. 이제는 단순 발레라는 분야에서 발전되어 퓨전 무용을 주로 이끌어나가시는 분이라 발레와 한국 무용이 결합된 굉장히 독창적인 분야의 선구자라 알려져 있다.
나는 전세계에서 평화를 이룩해 낼 수 있는 것은 ‘문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아름다운 문화를 아름다운 마음으로 모든 사람에게 전파할 수 있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고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혼자의 불굴의 의지로 결국 꿈을 이루어 낸 이미현 안무가를 인터뷰하고 싶었다.
평소 너무나 존경했던 분이셔서 이번 기회에 만나 뵙고 또 대화 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생각 했다. 그리하여 인터뷰 요청 편지를 이메일을 통해 보내드리며 가능하냐고 여쭈었는데 나의 꿈과 의지를 응원해주시는 말과 함께 인터뷰를 수락하셨고 직접 만나 뵈는 자리까지 만들어 주셨다.
4] 인터뷰 내용
① 꿈을 이루는 과정
질문1. 발레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대답1. 먼저 발레를 처음 시작한 건 순전히 제 의지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너무 어렸을 때라 잘 기억 나지는 않지만 딸인 저를 어머니가 발레 학원에 보내서 시작하게 됐죠. 그런데 발레를 점점 하다보니 어린 나이에도 그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됐고 결국 모든 공부는 뒷전이고 발레만 좋아하는 아이가 됬어요. 어머니도 맨 처음에는 어린 제가 발레에 재미를 붙이니 좋아라 하셨지만 너무 발레학원만 가려고 하니 나중에는 걱정도 정말 많이 하셨어요.
질문2. 부모님이 발레리나가 되는 선생님의 꿈을 말리시기도 하신 거에요?
대답2. 그죠. 많이 반대 하셨죠. 아무래도 발레리나가 매우 성공하기 힘들고, 예술인은 배고프다라는 말도 많이 있잖아요. 제가 어릴 때는 또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 쪽에 문외한 이시라서 접해본 적 없다는 두려움도 많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 예술 중학교에 발레 전공으로 정말 가고 싶어서 많이 노력하고 또 설득했는데 끝내 예술 중학교에 원서를 넣지 못했어요. 그 때는 마치 제 꿈이 꺾여 버린 느낌이어서 많이 울기도 하고 부모님을 많이 원망하기도 했죠. 근데 지금 와서 보면 그 반대가 어린 저에게 꿈에 대한 확신과 열망을 더 키워 준 원동력이 된 것도 같아요. 왜 주위 사람이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마음 있잖아요. 엄마 아빠 덕분에 그런 열정이 많이 생겼죠. 또 제가 얼마나 발레를 좋아하는지 제 마음과 목적에 확신을 가지게 해준 계기가 된 것 같아요. 크면서 무지막지한 연습과 입시 준비에 힘들 때도, 내가 이렇게 춤을 추고 싶어했을 때의 그 간절함과 절박함을 떠올리며 큰 힘을 얻을 수 있었거든요.
질문3. 그래서 결국 충남예고에 가셨네요?
대답3. 네, 사실 충남예고가 요즘 그리 유명한 곳은 아니라 훌륭한 프로필이라 할 순 없지만요. 저는 충남예고 때의 시절이 제 무용인생에 있어서는 가장 뜨겁고 행복했던 시절이라 기억해요. 들어갈 때부터 너무 그 학교를 가고 싶었던 마음이 강렬해서인지 친구들간의 불화와 솔로를 해서 받는 따돌림이나, 힘든 연습과정도 다 즐겁게 지낼 수 있었어요. 또 나중에는 인생에 정말 큰 힘이 되는 따뜻한 친구들도 많이 만들 수 있었던 좋은 학창시절이었죠.
질문4. 충남예고에서 굉장히 각광받았다는 목격담이 많아요.
대답4. 네... 좀 쑥스러운 기억이긴 하지만 그 때는 발레나 한국무용, 현대무용에서 실기 점수가 굉장히 높게 나왔어요. 그래서 교수님들이 학교 발표회나 콩클에서 픽업하시기도 했고 아이서칭하시며 따로 만나자고 연락이 오기도 했어요. 그랬는데, 그 때는 한 교수님 밑에서 그 분의 춤을 받는 것보다 저만의 춤을 찾고 싶었기에 모든 페이의 기회도 다 포기하고 열심히 춤에 매진한 기억이 있죠.
질문5. 그런데 결국 우리나라 발레의 최고지라 할 수 있는 이화여자 대학교에 당당히 합격 하셨죠.
대답5. 네. 이대 발레과를 전공했습니다.
질문6. 그 이후에 활동은 어떻게 하셨나요?
대답6. 활동은... 이제 이대랑 연결된 공연에 많이 나갔었어요. 아무래도 대학이랑 인연이 깊은 교수님들이 초청하는 공연에 많이 섰죠. 또 국립 서울 무용단에 오디션을 봐서 합격했고 그 이후에는 서울 무용단이 서는 작품에 올라가서 활발한 발레리나로서의 활동을 이어 간 것 같아요.
질문7. 그런데 유학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답7. 먼저 국립 서울 무용단에서 발레리나로 활동하면서 회의감 같은 게 들기 시작했어요. 그 때 까지, 정말 어렸을 때부터 제 모든 인생은 발레로 가득 차 있었거든요. 오직 제 인생에는 발레 뿐이었고 이대로 살면 앞으로도 발레 뿐일 것 같은 거에요. 예를 들면 김연아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후에 느껴진 허무감 같은 것이 저도 느껴진 것 같아요. 꿈을 이뤘다는 그 생각 하나로 안일해지고 그러다 보니 회의감이나 허무한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그 때부턴가 다른 무용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저는 무용이라고 하면 무의식적으로 발레만 떠올렸는데 그 때 한국무용의 멋과 현대무용의 느낌 같은 게 성큼 다가오더라구요. 또 다른 나라들의 무용도, 문화도 많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때 저는 이제 발레리나로서의 전성기는 지나갔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한 층 더 넓고 성숙한 ‘무용인’이 되기 위해 유학을 결심했어요. 유학에서 좀 더 넓고 다양한 생각, 시각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죠. 옛날부터 유학을 가고 싶어 했기도 했고요.
질문8. 그래서 결심한 유학 생활은 어떠셨나요?
대답8. 사실 유학 시절 많이 힘들었어요. 그 때까지 살면서 유학에서 만큼 많은 시간 무용이라는 것에 제 모든 걸 쏟아 부은 때도 없었던 것 같아요. 대학 입시 준비할 때보다도 더 힘들고 더 빡세게 연습했는데요. 발레는 물론이고 러시아 전통 무용과 현대무용도 어마어마하게 했죠. 그 연습량은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무지막지 했어요. 지금도 그렇게 하라면 못할 것 같아요. 밥 먹는 시간도 30분이 채 넘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잦은 부상이 따랐죠. 그 중 제일 아팠던 게 골반 부상이었어요. 발목도 허리도 아픈 건 참을 수 있었는데 골반이 점프하다가 바닥에 부딪혀서 난 사고는 2달 정도 꼼짝 못하고 고통에 시달렸어요. 그러면서 인생의 아픔이 이렇게 클 수 있구나라고 생각도 되고 아픔이 더 큰 행복의 힘이 된 것 같아요. 그 골반의 부상을 딪고 일어난 힘은요. 보는 거였어요. 친구들이, 동료들이 춤추면서 흘리는 땀, 눈물, 피, 그런 거 다 보고 나니 제 아픔이 조금이나마 작게 느껴지고 또 그들의 열정 속에서 저도 얼른 하나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런 생각에 재활치료가 참 잘 되어 드문 케이스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었죠. 또 유학 생활 중에 정말 힘든 때가 생각 많이 났어요. 고등학교 때 돈이 없어 무용을 못하게 된 위기를 많이 생각했죠. 그러면서 내가 이제는 그 아이들을 도와줘야겠다. 나 혼자 춤을 잘 추는 것이 능사가 아니구나. 내 이 재능을 축복을 정말 감사히 받고 베풀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벼랑 끝에서 새 사람이 태어난 거죠. 그렇게 생각하면 제게 있어서 러시아 유학 생활은 힘들었지만 제 인생을 정말 가치 있게 살 수 있게 해준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질문9. 아, 그래서 지금 활발한 봉사활동을 하시는 거군요. 혹시 지금 하고 계신 봉사활동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대답9. 네, 저는 유학과 힘든 부상의 때를 보내며‘기부’와 ‘봉사’의 중요성에 대해 정말 간절히 느꼈고요. 또 제 옛날에 돈 없어 꿈을 이루지 못한 때를 생각하며 그 때의 돈이 없어 너무나 하고 싶은 무용을 못하는 아이들에게 무료로 발레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저는 돈 때문에 꿈이 꺾이는 일이 가장 비참하고 또 안타까운 일인 것 같아요. 특히 무용은 돈이 많이 들어가는 분야라서요. 제게 이런 귀한 재능과 작지만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준 재력에게 감사하고 이 재능을 베풀어야 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또한 지역 주민 분들은 무용과 예술을 즐기고 싶어도 문외한이라 가지는 두려움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누구든지 편하고 쉽고 재미있게 가치 높은 예술 생활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따뜻한 세상이라는 봉사단체중, ‘나린’무용팀의 팀장직을 맡게 되었구요. 지금 많은 곳곳에서 무료로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전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② 꿈을 이루고자
질문10. 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면 혹시 선생님께서는 특별히 꿈을 이루고자 한 노력에는 무엇을 했다고 생각하세요?
대답10. 저는 힘들었던 때를 버텨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추운 겨울일 수록 봄에 피는 꽃은 예쁘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꿈을 이루기 위한 길은 그 꿈이 어떤 것이든 무조건 장거리 마라톤이거든요. 그래서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자세가 제일 중요하죠. 그러기 위해서는요. 독한 마음이 필요해요. 그 독한 마음은 언제 먹어지냐 하면, 힘들었던 때를 무지막지하게 버텨낸 후에 생겨지는 눈물겨운 산물이라 할 수 있죠.
③ 시련과 갈등 극복
질문11. 네. 진짜 맞는 말인 것 같아요. 그러면 선생님께 독한 마음을 먹게 한 힘든 때는 어느 때세요? 그리고 또 그걸 버텨낸 힘은 무엇이었나요?
대답11. 음. 저는 유학생활보다도 오히려 입시 준비할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어렸을 때는 남 못 입는 거 입고, 못 먹는 거 먹을 정도로 부유하게 살았었는데요. 제가 중학교 입학 하자마자 부터 집안 사정이 좀 안 좋아져서, 많이 힘들었어요. 저는 그 때 무용이 너무 하고 싶었는데 집에 돈이 없으니 무용이 너무 부모님께 부담이 되는 거에요. 그래서 결국 무용을 잠시 쉴 수 밖에 없게 되고 예고도, 예대도 제 꿈이 날아가는 듯 했죠. 그래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나요. 근데 그 때 든 생각이 어떻게든 발레를 해야 겠는 거에요. 돈이 없어도 아무리 부모님이 힘들어 하셔도 저는 해야겠는 거에요. 그래서 부모님께 순전히 제 힘으로 무용을 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학생도 아시겠지만 무용하는 돈이 장난 아니게 비싸잖아요. 그 돈을 벌기 위해 저는 중 2,3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면서 돈을 열심히 벌고 또 그 돈으로 무용을 했죠. 학교와 무용학원,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것이 정말 힘들더라구요. 하루에 잠을 3시간 정도밖에 못 자고 3년 정도를 산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집념이었고, 엄청난 정신력이었죠. 그 때는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젊음이 열정이 참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④ 성공의 비결 + 해주신 덕담과 당부
질문12. 맞아요. 그 젊음은 그 때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을 많이 가능케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요, 선생님. 선생님은 발레리나로서, 무용가로서, 예술가로서, 문화봉사자로서, 현재까지 아직 어리신데도 정말 많은 성공을 하신 것 같아요. 그 성공에 비결이 있다면 무엇일 까요?
대답12. 글쎄요. 저는 성공이라고까지 제 삶을 평가해 주실 줄 몰랐는데요. 감사합니다.
저는 제 삶이 이렇게 된 이유가 또 비결이라 할 수 있다면 크게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먼저는 넓은 시야를 가지는 거에요. 제가 러시아에 유학을 다녀와서 정말 더 큰 삶을 살 수 있었던 이유도요. 그 곳에서 배운 것이 ‘넓은 시야, 넓은 시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넓은 시야는요. 사람이 혼자가 아니라 다함께 더불어 살게 해주고요.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상황과 형편을 보게 해주고요. 또 개인적으로 내 스스로에게 있어서는 작은 꿈이 아닌 더 큰 꿈, 더 큰 소망을 품게 해주는 정말 중요한 것인 것 같아요. 또 두 번째 비결이라 함은요. ‘베푸는 마음’이에요. 생각해보세요. 정말 훌륭하고 멋있는 성공을 거두었는데 혼자 몇 십억에 가까운 수익을 다 거둬드리는 대기업 CEO가 멋있을 까요. 아니면 맛있는 국수집을 운영하면서 혼자 사시는 노인분들께 또 고아원에게 후원해주며 무료로 음식과 희망을 주는 작은 자영업자 국수집 사장이 멋있는 걸까요. 물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저는 무조건 후자가 더 멋있고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거둔 성공의 대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유 중 남는 부분을 남에게 ‘베풀 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실천하는 사람이 진정한 성공을 거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친구도요. 앞으로 정말 훌륭하고 멋있는 사람이 되면 남에게 먼저 베풀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어요.
질문13. 네, 선생님. 명심할게요.
너무나 길고 긴 시간 이렇게 성심 성의 껏 말해주시리라 정말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요. 정말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요. 혹시 제게, 또 제 학교 친구들에게 덕담 한 마디, 또는 격려의 말씀 부탁드릴께요.
대답13. 네. 친구들, 꿈은요. 지금 꾸는 꿈이 다가 아닐 가능성이 커요. 살면서 경험하면서 느끼면서 꿈은 계속 바뀔 거에요. 저는 그 때마다 여러분의 꿈이 더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커지길 바라고요. 또 더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넓어지길 바래요. 꿈이 바뀌는 것에 혼란스러워 하지 말구요. 즐기세요. 노력하시구요 포기는 절대 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꿈이 무엇이든, 그 건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중요한 점, 잊지 말아야 하는 점은 여러분의 인생 자체가 꿈이 되어야 진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거죠.
아직 어린 저에게 이런 귀한 인터뷰의 자리를 주심에 진정으로 감사드리고요. 저도 앞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꿈을 꾸고 이루기 위해 노력할 테니 여러분도 함께 저보다 더 큰 무궁무진한 미래를 아름답게 살아가세요!
여러분의 미래를 응원합니다. 감사해요!
5] 인터뷰 소감
정말 내가 생각지도 못할 만큼, 기대도 못할 만큼 긴 시간, 친절하게 답변해주심에 감사했다. 인터뷰를 다 하고 나니 2시간이 훌쩍 지날 정도로 오래 인터뷰와 대화를 한 것인데 지치는 기색하나 없이 친절히 말해주시는 그 모습에 감동받았다. 또 계속 긍정적인 에너지와 희망을 내게 심어주시면서 응원해 주시는 것이 너무 좋았고 꿈에 대해 확실한 개념을 잡게 된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연락하자며 전화번호도 교환했는데 그 시간이 내게는 너무 꿈 같고 영광이었던 시간이었다. 같이 커피 마시며 2~3시간을 이야기 하며 인터뷰가 끝난 후에는 내 꿈 이야기도 했고 학교 이야기도 했고 여러 담소와 수다도 떨며 선생님과 정말 친해졌다. 믿지 못할 정도 좋은 시간이었고 내가 항상 바라고 존경하는 롤 모델과 친해진 것은 다시 없을 영광이었다고 생각한다. 좋은 추억을 넘어선 정말 행복한 추억이었고 또 잊지 못할 소중한 만남이었다. 이런 기회를 갖게 해주심에 감사했고 인터뷰에 이렇게 응해주시고 또 귀한 말씀과 함께 나를 소중한 인연으로 여겨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내 꿈을 더 아름답고 소중한 꿈으로 만들어 나가는, 내 꿈의 시간이었다.
소중한 경험, 소중한 만남, 잊지 못할 여름방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