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수백 명이 식중독으로 쓰러지자 새삼스럽게 ‘급식대란’이니 호들갑을 떨지만 사실 아이들은 날마다 ‘급식대란’을 치른다. 아이들 표현을 빌자면 ‘전쟁’이다. 식당이 있는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일찍 먹고 놀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반찬이 떨어지기 전에 허급지급 달려가 줄을 선다. 이미 먼저 와 먹고 있는 아이들이 스텐레스 식판을 숟가락으로 긁어대는 소리, 두드리는 소리, 국을 쏟고서 우는 소리, 떠드는 소리로 식당은 늘 아수라장이다. 그 난리통 속에서 아이들을 한 끼 음식을 제 몸속에 집어넣고서 서둘러 자리를 뜬다. 식중독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러한 급식문화가 아닐까. 다만 그 영향이 식중독처럼 즉각 나타나지 않을 뿐이다. 인과관계를 명확히 증명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갈수록 행동과잉장애 같은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데는 급식환경도 한몫 하지 않을까? 사는 게 곧 전쟁이라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 급식 시간이라면 학교는 참으로 사회화 교육을 제대로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전쟁통 속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힘을 길러주는 것이 진짜 교육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것은 ‘급식’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음식과 그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있는 환경이다. 무엇을 먹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먹느냐는 그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다. 급식파동은 늘 ‘무엇’에 초점이 가 있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만다. 물론 ‘무엇’을 먹느냐도 중요하긴 하다. 땅에서 나는 곡식과 야채, 바다에서 나는 생선으로 정성껏 차린 밥이 아니라 ‘식자재로 제조한 급식’을 먹고서 몸과 영혼이 건강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가당찮은 바람이다. 전남 남원에 있는 대안 중학교인 실상사작은학교 아이들은 날마다 실상사 공양간에서 스님들과 함께 점심 공양을 한다. ‘급식’이란 말과 ‘공양’이란 말은 같은 말이지만 그 바탕에 깔린 의미는 하늘과 땅 차이다. 공양할 때는 식사기도 같이 게송(偈頌)을 읊는데, 부처님께 음식을 공양하듯 자기 몸에 음식을 바치면서 진리에 다가가는 데 게으르지 않기를 다짐하는 것이다. 일반학교 식당이 수행도량 같이 진지한 공간이 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 적어도 음식을 귀하게 여기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먹을 수 있는 분위기는 필요하지 않을까?
급식 파동은 음식과 교육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잘못되어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식사를 그저 한 끼 때우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한, 급식환경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반찬이 좀더 먹음직스러워지고 국에 건더기가 더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아이들의 영혼은 여전히 허기질 것이다.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물질이 아니라는 것, 몸의 양식이 곧 영혼의 양식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교육은 껍데기를 돌보는 데 그칠 것이다. 물론 지금 학교는 껍데기도 제대로 돌보고 있지 못하지만. 식사는 단순히 영양학, 위생학 관점에서 다루어질 문제가 아니다.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떻게 먹느냐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지금의 학교 구조에서 ‘어떻게 먹을지’를 생각하자는 것은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2교대, 3교대로 밥을 먹이면서 날마다 급식대란을 치르는 교사와 교장 입장에서는 그저 별 탈 없이 밥을 먹이는 일이 가장 큰일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급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할지도 모른다.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그 문제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지금의 학교는 교육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아이들을 수용해서 시간을 때우도록 만드는 곳이고, 기껏 성적 따위로 아이들을 선별하는 기능을 하는 곳이다.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밥 먹는 일이 고역이 되어버린 학교. 거기에 시험공부라는 고역이 더해지고, 점수 따위로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무시당하는 곳. 세상이 살 만한 곳이 아님을 아이들은 일찍부터 깨닫는다. 교육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중고생이 462명에 이른다고 한다. 물론 삶의 가치, 삶의 경이로움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느끼고 깨달을 수 있게 뒤에서 슬쩍 밀어줄 수는 있겠지만. 교육의 근본은 무엇보다도 그렇게 삶이 살 만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 삶을 긍정하는 힘을 길러주기, 자기를 사랑하고 다른 존재들을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을 키워주기, 그런 교육에서 밥은 빠질 수 없는 재료다. 따뜻한 밥상을 받아보는 것, 누군가에게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는 것만큼 우리를 고양시키는 것이 있을까? | |
첫댓글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 공방 애들이 밥 먹을 때 하도 떠들어서 물어봤습니다. "야, 니들은 이렇게 시끄러운데 밥이 넘어가니?" "네" "학교에서도 이렇게 시끄럽게 먹니?" "네, 학교에선 더 시끄러워요." 아~~~ 그랬구나. 아이들이 밥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기본적으로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꼭 이렇게 대량으로 급식해야 하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