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토니 스콧/출연: 덴절 워싱턴, 진 해크먼
미국과 소련의 핵미사일 경쟁 담아… 핵 잠수함 함장의 리더십 강조
1991년 소련 붕괴로 동서 냉전 끝났지만 강대국의 핵무기 경쟁 계속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등 서방 세계를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진영이 이념으로 극명하게 양극화된 상황에서 잠재적인 군사적 위협으로 긴장된 시기가 냉전(冷戰·Cold war) 시대다.
처칠의 반공 연설과 트루먼 선언 그 이후
1947년 ‘발트해로부터 아드리아해에 이르기까지 유럽을 둘러싸고 철의 장막이 드리워져 있다’는 윈스턴 처칠의 반공 연설과 미국의 상하 합동회의에서 행해진 ‘미국이 공산 세력을 저지하는 데 지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트루먼 선언 이후 미국과 소련은 전 세계에서 군사 및 외교, 경제 경쟁을 벌였다.
이 시기에 양 진영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핵무기를 경쟁적으로 개발했으며, 1962년 소련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을 비밀리에 쿠바에 배치하려 한 ‘쿠바 미사일 사태’로 3차 대전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다.
러시아 반군 저지하려는 美 핵잠수함
영화 ‘크림슨 타이드’는 핵미사일을 탈취해 미국을 공격하려는 러시아 반군을 저지하려는 미국 핵 잠수함 이야기다. 서방에서 가장 큰 미 전략 핵잠수함 오하이오급 6번 함 앨라배마를 배경으로 핵전쟁의 공포를 잘 표현하고 있다. 폐쇄된 공간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해가는 함장과 부함장 간의 불꽃 튀는 대립이 긴박감을 주며, 애국심과 군의 리더십을 가슴 뭉클하게 보여준다. 크림슨 타이드(Crimson Tide)는 ‘진홍색 조류’란 뜻으로 1급 위기 사태를 의미하는 군사 전문 용어다.
영화는 소련 강경파 군부가 내란을 틈타 러시아 핵미사일 기지를 장악하고 미국 본토를 공격하려 하자 미국 핵잠수함 앨라배마함이 출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함장 램지(진 해크먼)와 부함장 헌터(덴절 워싱턴) 지휘 하의 앨라배마함은 러시아 핵미사일 기지 근해로 접근하던 중 러시아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지만 가까스로 피한다. 적의 출현으로 앨라배마함은 수심 깊이 운항할 수밖에 없어 본국으로부터 통신 내용을 일부만 받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램지 함장은 선제공격을 해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핵미사일 발사를 명령하지만, 부함장 헌터는 통신 내용 전체를 받기 전엔 핵미사일을 발사해선 안 된다고 맞선다.
이어지는 논쟁 속에 헌터는 ‘함장과 부함장이 동시에 동의해야만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는 규정을 들어 명령을 거부하고 램지 함장의 지휘권을 박탈한다.
그러던 중 러시아 잠수함으로부터 두 번째 어뢰 공격을 받고 앨라배마함은 통신장비 등 동체 일부가 파괴되면서 심해로 가라앉는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함장의 뜻을 따르는 병사들은 감금된 함장을 풀어주고 오히려 헌터와 협조 세력을 감금한다. 함장과 부함장, 두 세력 간의 대립이 극에 달하는 사이 통신장비가 복구돼 마지막 통신 내용을 전달받는다.
최선의 선택은 최악을 막는 선택
영화는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세계를 움직이는 3명의 최고 실권자는 미합중국 대통령, 러시아 대통령, 그리고 미 핵탄두 잠수함의 함장이다”라는 자막으로 핵탄두 잠수함 함장의 군사전략적인 리더십을 강조한다.
영화는 핵전쟁은 한 번 벌어지면 모두가 끝장이기 때문에 ‘최악을 막는 방식’으로 다뤄야 하고, 잠수함이라는 폐쇄적인 시설에서 상대가 쏘면 우리도 반드시 쏴야 하는 핵탄두 잠수함 함장의 어려움을 잘 표현해 내고 있다.
영화는 상반된 두 캐릭터, 램지 함장과 헌터 부함장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램지는 군 경력 대부분을 잠수함에서만 근무한 베테랑에 독신인 반면, 헌터는 잠수함 승선은 처음이고 가정이 있으며 하버드대 출신이다.
문제는 리더십의 차이다. 램지는 어떤 상황이라도 실전에 준하는 훈련을 요구하며 작전을 중시한다. 화재가 발생한 상황에서도 훈련을 강행했고 그 과정에서 사망자가 나와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헌터는 그런 램지의 리더십에 이의를 제기한다. 화재가 났으면 우선 불을 끄고 훈련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핵미사일을 발사하라는 1차 명령 후 비상 통신문을 장비 고장으로 수신하지 못하면서 두 지휘관은 대립한다. 램지는 “우린 이미 선제공격 명령을 받았다. 러시아 반군이 우리에게 핵 위협을 했으니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아니면 저들이 먼저 우리를 공격할 것이다. 상부 지시대로, 규정대로 미사일을 쏠 것을 명령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헌터는 “명령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비상 통신을 재개한 후 미사일을 쏴야 한다”고 뜻을 굽히지 않는다.
영화 엔딩 부분, 두 지휘관은 조직을 붕괴시켰다는 이유로 군법회의에 회부된다. 법정은 말한다. “둘 다 옳았고, 둘 다 틀렸다. 이 딜레마는 우리 군에 오래 남을 것이다. 둘 다 엄청난 혼란을 야기했다. 폭동에 규정 위반까지…하지만 위원회의 결론은, 귀하들의 행동은 해군의 전통과 미국의 이익을 위한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1991년 소련 붕괴로 사실상 동서 냉전체제는 끝났다. 하지만 유독 한반도만은 오늘날까지 남북이 분단된 채 냉전의 고통을 겪고 있다. 45년 일본의 패망과 함께 미·소 양국이 각각 남한과 북한에 들어온 뒤 북한에는 김일성 일가에 의한 공산주의체제가, 남한에는 자본주의체제가 수립돼 첨예하게 대립 갈등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를 둘러싼 미국·러시아·중국 등 초강대국들은 핵무기 경쟁을 멈출 줄 모르고 신(新)냉전시대를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