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배와 귀양의 의미
유배는 왕족이나 고위 관료들에 한해 유배 지역 내의 일정한 장소를 지정하고
그 곳에 유폐시키는 '안치'와 주위에 가시가 있는 탱자나무를 심고
이 곳밖에 나오지 못하도록 한 '위리안치(圍籬安置)'도 있었다.
유형(流刑)은 유배(流配)라고도 하며 매우 중한 죄를 범한 자를 차마 사형시키지 못하고,
먼 지방으로 귀양 보내어 죽을 때까지 살게 하는 것을 말한다.
유배 보내는 거리에 따라 2천리, 2천5백리, 3천리의 세 등급이 있었으며,
각각에 장100형을 집행하였다.
본래 유배지는 죄인의 거주지로부터 적어도 600리 이상 떨어지고
죄인의 집이 있는 도내(道內)가 아니어야 했다.
서울과 경기, 충청도를 제외한 곳이라는 일정한 규정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충청도에도 보내는 경우가 있었다.
귀양은 고려.조선시대에 죄인을 먼 시골이나 섬으로 보내어 일정한 기간 동안
제한된 곳에서만 살게 하던 형벌 중에 하나이다.
초기에는 방축향리[放逐鄕里] 즉 벼슬을 삭탈하고 제 고향으로 내쫓던 형벌의 뜻으로 쓰다가
후세에 와서는 도배(徒配), 유배(流配), 찬배(竄配), 정배(定配)의 뜻으로 쓰였다
유배지는 지역적으로 삼수갑산과 같은 함경도, 평안도 국경지역이 가장 많았고,
경상. 전라도의 거제도. 진도 추자도 등 섬 지방도 자주 이용되었다.
영조 때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흑산도와 같이 험한 곳이나 무인도에는 유배를
금지시켰다.
2. 조선시대 주요 유배지
강화도 - 죄인의 유배지로 특히 왕실의 유배지로 이용되던 곳이었다.
한양과 가까운 강화도에 왕실의 유배지였던 것은 역모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아
지속적으로 그 동정을 살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에 유배된 왕실의 인물로는 희종과 조선시대의 안평대군, 연산대군,
선조의 맏아들 임해군, 또한 선조의 손자이자 인조의 동생인 능창대군,
인조의 다섯째 아들 승선군, 이밖에도 광해군의 폐비 유씨와 상계군의 아들인 익평군,
철종의 아버지인 전계대원군과 할아버지인 은언군, 홍선대원군의 손자이며
고종의 조카인 영선군 등도 강화도로 유배를 당했다.
제주도 : 한양에서 가장 먼 곳으로 ‘유배 3천리’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광해군은 제주도에서 군사에게 안방까지 뺏겨가면서도 18년을 참고 살다가 일생을 마쳤다.
추사 김정희, 충암 긴정, 인목대비의 어머니 노씨부인, 광해군, 우암 송시열, 면암 최익현의 유배지
함경남도 삼수갑산(三水甲山) - 삼수(三水)는 함경도 북서쪽에 있는 지역으로,
날씨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춥다.
매우 구석지고 험해서 귀양갔던 많은 사람들이 추위에 얼어 죽거나 범에게 물려 죽었다.
삼수갑산은 죄인유배지로 유명했는데, 유배보내면 대부분 형기가 다하기전 사망한다하여
당시에도 악명높은 불모지였다. 고산 윤선도의 유배지 중 한곳.
함경남도 북청 - 백사 이항복은 광해군 때 북청으로 귀양 가서 그곳에서 죽었다.
고산 윤선도의 유배지 중 한곳.
경북 예천군 의성포 - 회룡 남쪽에 있는 마을로, 내성천이 감돌아 흐르면서 섬처럼 되어
조선시대에는 귀양지였다
강원 영월 청룡포 - 단종 유배지
강원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 - 고려 공양왕의 유배지
경남 남해 노도 -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
경남 거제도 - 거제도내 폐왕성은 고려 제18대 왕인 의종(毅宗)의 유배지.
경남 울주군 언양 - 포은 정몽주가 경남 울주군 언양의 ‘요도’라는 곳에 유배되어 1년간 살았다.
전남 신안군 도초면 도초도 -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귀양지
제주도 제주시 추자면 추자도 : 고려시대부터의 유배지로 한양에서 가장 먼 곳으로
'유배 3천리’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 정온선생, 고산 윤선도 유배지
전남 신안군 흑산도 : 제주, 거제, 진도 다음으로 고려시대 이후부터 중벌을 받은 죄인이
가는 유배지라 고한다. 특히 흑산도는 양반 뿐만 아니라 큰 죄를 진 서민들도 귀양살이를
했다고 한다
정약전(정약용의 형), 김귀주(정순왕후 오라버니), 최익현의 유배지
전남 강진 -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로 이곳에서 19년을 보냈다.
전남 나주 회진현 거평부옥 - 삼봉 정도전의 유배지로 나주의 회진현(會津縣)에 속한
‘거평부곡(居平部曲)’으로 지금은 나주시 다시면 운봉리의 ‘백동마을’이다.
전남 화순군 능주면 남정리‘적려유허지’ - 정암 조광조의 유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