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수당 보편화’ 왜 무산됐나
10명 중 7명까지 양육수당 지급 방안 물거품
저출산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벌써 10여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까지 30여년동안 가장 강력한 가족계획을 실시했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아들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시대별 표어는 지금 생각하면 씁쓸할 정도다. 어쨌든 이러한 정부의 가족계획사업은 ‘성공’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합계출산율이 세계 최저수준에 머물며 사회 각 분야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본지는 올 한해 저출산과 관련한 정책과 환경, 문제점과 대안을 연중 시리즈로 게재한다.
▲ 지난해 10월 25일 시민사회단체와 정당 관계자들이 정부중앙청사 후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마련한 제2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안이 부실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왜 우리 시대 젊은 부부들은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할까? 각종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소득과 고용이 불안정하고, 양육비용과 교육비용이 부담되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담을 덜어 주는 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가장 강력한 정책은 누가 뭐래도 현금을 지원해주는 것이다. 바로 양육수당 지원제도가 대안으로 제시돼 있다. 지난해 국회에서는 36개월 미만 영유아를 키우는 부모 10명 중 7명에 양육수당을 지급하기 위한 예산이 심의됐는데,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과연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짚어 봤다.
대상도 금액도 한정적인 양육수당
어린이집, 유치원 등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영유아에게 매월 현금으로 양육비용을 지급해주는 것이 바로 양육수당이다. 양육수당은 2008년 12월 19일 개정돼 2009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영유아보육법에 근거해 2009년 9월 1일부터 지급되기 시작했다. 제도가 시행된 지, 이제 만 1년 6개월이 된 것으로 아직까지 양육수당에 대한 국민들의 인지도는 높지 않은 실정이다.
그 대상도 매우 협소하다. 지난해까지 0~1세 영아를 둔 차상위계층에만 월 10만원씩이 지급되다가 올해 1월부터 0~2세로 영아의 대상 연령이 소폭 확대되고, 수당 금액이 최대 월 20만원까지 소폭 늘어났다. 차상위계층이란 최저생계비 120% 이하인 가구를 말하는 것으로 2011년 기준으로 3인가구라면 소득인정액이 140만4000원을 넘으면 받을 수 없고, 4인가구라면 172만6000원이하여야 한다.
대상 폭이 좁고, 금액이 적은 것도 문제지만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는 더욱 큰 문제라고 지적되고 있다. 국회 2011년도 예산안 심의자료에 담겨 있는 2009년 양육수당 예산집행실 적을 살펴보면, 323억 9000만원 중에서 34.6%인 112억 1300만원을 보육시설 종사자 인건비 지원으로 전용했다. 211억 7700만원만 집행된 것으로 집행률이 65.3%에 머물렀다.
그 이유는 양육수당 지원으로 인해 기존 보육료 지원아동이 양육수당을 선호할 것으로 보건복지부가 추정했는데, 실제로는 대체효과가 미미했기 때문인 것으로 국회 보건복지 위원회 전문위원실은 분석했다. 총 11만 4670명이 양육수당을 수령할 것으로 예상됐는데, 60%인 6만 8751명에 불과했던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예산 추계조차 아직 세밀히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이런 보건복지부에 양육수당 보편화를 바라는 것은 무리였을까? 보건복지부가 주축이 돼 만든 제2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2011년~2015년)에도 양육수당 보편화 방안은 담기지 않았다. 이는 국회에 제출된 2011년도 정부 예산안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정부의 계획은 지원 대상을 차상위계층 영유아 중 만 2세까지로, 지원 단가는 최대 20만원까지 늘리는 수준에 머물렀다. 올해 예산에도 딱 이 부분까지만 반영됐다.
양육수당 확대에 대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전개한 쪽은 정당과 국회였다. 특히 집권여당인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공식 석상에서 여러 차례 양육수당 보편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안 대표가 양육수당 보편화 약속을 처음 꺼낸 것은 지난해 9월 15일 한나라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다. 당시 안 대표는“중산층과 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육아수당제도 확대를 강력히 추진하겠다”며“양육부담을 완화하고 아이 갖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현재 차상위계층 아동 중에서 0세부터 1세에게만 지금 월 10만원씩 선별적으로 지원되고 있는 지원 대상과 지원 금액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육아정책 형평성 바로잡을 기회 날려
안 대표는 지난해 9월 29일 KBS 1라디오 국회교섭단체 정당대표 제24차 라디오 연설에서도 양육수당 보편화 이슈를 꺼내들었다. 지난 9월 15일 저출산 문제의 해결을 위해 ‘육아수당 확대’를 골자로 하는 개선안을 발표했다. 그 주요 내용은 보육료 전액지원 대상을 상위 30%를 제외한 전체 지원으로 확대한다는 것, 양육수당 대상을 0세에서 2세 영아로 확대하고, 상위 30%를 제외한 전체 영아에게 2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것, 그리고 평가인증을 받은 민간 보육시설 교사에 대해 보조금 지급을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양육수당 보편화에 대해서는 야당에서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이에 따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여야간 합의를 통해 36개월 미만 영·유아 10명 가운데 7명이 월 10만~20만원씩 양육수당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는 예산 증액안을 의결했다. 전년도 대비 2377억 7100만원을 증액하는 파격적인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부모들은 ‘이제 좀 실감할 수 있는 육아정책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며 크게 환영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12월 8일 새해 예산안을 단독 강행 처리하는 과정에서 양육수당 증액안은 예산결산특별위에서 제대로 심의조차 되지 못하고 물거품이 됐다. “다른 예산은 줄이더라도 꼭 양육수당 예산은 지키겠다”던 안상수 대표의 약속은 결국 거짓말로 판명되고 만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과 야당은 크게 반발했고, 결국 한나라당은 12월 12일자로 논평을 내어“최근 북한의 무력도발로 국방비 증액이 불가피한 상황인 만큼 안타깝지만 보육예산을 내년으로 넘기자고 양해를 구했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연평도 불똥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까지 떨어진 것이다.
양육수당 보편화 무산은 육아정책의 형평성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어서 더욱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올해 3월부터 보육비 전액 지원 대상이 소득하위 70%까지로 확대된다.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영유아 및 아동 10명 중 7명까지 보육비 전액(정부지원단가)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면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영유아를 위한 양육수당 확대는 무산되면서 육아정책의 형평성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겨져 있다. 영유아 283만 명 중 44%인 126만 명은 여전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이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 출처 복지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