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소토, 아스파라거스 풍미 최대한 끌어내는 요리
한은형씨의 말처럼 아스파라거스는 끓는물에 소금 조금 넣고 살짝 데치거나, 여기에 버터를 녹여 버무리기만 해도 충분히 맛있습니다. 어쩌면 아스파라거스 본연의 풍미를 즐기기엔 이런 단순한 요리법이 최고일지 모릅니다.
보다 복잡한 요리 중에서는 리소토가 아스파라거스를 즐기기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리소토는 아스파라거스 풍미를 최대한 끌어내는 요리법 중 하나죠. 덤덤한 쌀이 아스파라거스의 감칠맛과 아삭한 식감을 도드라지도록 하는 흰 배경 역할을 합니다.
이탈리아 대표 쌀요리인 리소토(risotto)는 한국의 죽과 비슷해 보이지만 먹어보면 다릅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파스타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강조해 마지않는 ‘알덴테(al dente)’가 리소토에도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알덴테란 스파게티 등 이탈리아 파스타(면)을 삶을 때 국수 가운데 단단한 심이 남아서 씹히는 걸 의미합니다.
리소토에 있어서 알덴테는 파스타의 알덴테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고 음식칼럼니스트 정동현씨는 말합니다. 그가 말하는 리소토의 알덴테는 “파스타처럼 심이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쌀알 표면이 저항감을 가지고 이에 씹힐 정도의 탄성이 있어야 한다는 감각적 기준”이라고 합니다.
알덴테 식감을 제대로 살리는 법은 간단합니다. 조리 전 쌀을 불리지 않으면 되죠. 한국에서 밥 지을 때처럼 쌀을 불려서 사용하면 속까지 부드럽게 익은 리소토가 됩니다. 이런 리소토를 이탈리아 사람들은 “너무 퍼졌다”고 불평할 듯합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리소토를 조리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건 “쌀을 절대 씻지 말라”입니다. 이탈리아에서 일 년 연수하는 동안 요리사들에게 수없이 들은 말이 “리소토 만들 때는 절대 쌀을 씻지 말라”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라죠. 우리나라에서는 밥을 맛있게 지으려면 쌀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고 게 상식입니다. 심지어 “뿌연 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여러 번 씻어야 한다”는 음식 전문가들이 많으니 놀랄 만도 하겠죠.
리소토 만들 때 쌀을 씻지 말라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쌀알에는 아주 고운 쌀가루가 뭍어 있습니다. 리소토를 국자로 퍼서 접시에 담을 때 보면 한국의 쌀밥이나 죽처럼 뭉쳐 있지 않고 주르륵 흘러내려요. 그런데 먹기 위해 숟가락으로 떠보면 알덴테로 그러니까 한국 기준으로 보면 설익은 쌀알이 서로 달라붙어 쉬 떨어지지 않습니다. 쌀에 붙어있던 쌀가루 즉 쌀 전분이 소스에 섞여 들어가 끈적한 농도를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리소토를 정통 방식대로 만들어보겠다고 마음 먹었다면 의심을 접고 이탈리아인의 말을 따라보세요. 영 찜찜하다면 한 번 정도만 씻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쌀은 이탈리아에서 사용하는 카르나롤리(carnaroli)나 아르보리오(arborio) 품종을 사용하면 좋겠지만, 구하기 힘들면 밥 지을 때 사용하는 일반적인 쌀 품종을 사용해도 상관 없습니다. 카르나롤리와 아르보리오는 한국 쌀과 마찬가지로 자포니카(japonica) 계열. 미국이나 영국에서 즐겨 먹는, 길쭉하고 전분이 적어서 입으로 불면 풀풀 날리는 인디카(indica) 계열의 쌀과 전혀 다릅니다.
여기 소개하는 아스파라거스 리소토는 이탈리아 요리 바이블로 꼽히는 ‘실버 스푼(Silver Spoon)’에 나온 레시피를 기본으로 하되 국내 실정에 맞게 조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