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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랜 길 가게 하소서” |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초여름 오후2시. 푸른 녹음들도 지쳐 기운 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을 무렵, 도량 전체에 울려 퍼지는 발자국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리는가 싶더니 “선생님~” 하면서 반가운 마음으로 소리치며 큰법당을 향해 마구 뛰어 가는 개구쟁이 친구들. 올망졸망 그들의 모습에서 부처님의 미소를 느낀다. 가끔 만나는 고교동창들은 내 어깨를 어루만지면서 안쓰럽게 쳐다보곤 한다. “요즘 세상에 자식 한 두 명 키우기도 힘이 부친데, 고만고만한 아이를 수십명씩 상대하기가 얼마나 힘들겠니?” 하면서 말이다. 게다가 꾹꾹 눌러 참고 일하면 큰 ‘돈벌이’가 되는 것도 아니어서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는 표정들이다. 하지만 친구들은 모른다. 천진한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교우하다 보면 내가 그 아이들을 통해서 천금을 줘도 얻지 못할 순수한 사랑과 자비를 공짜로 배운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시 돌아가자. 주위를 둘러보니 오늘은 기연이가 보이지 않는다. 여동생 은지를 찾아 오빠소식을 물으니 “오빠 깁스 했어요”라고 말한다. 기구를 타다가 다쳐서 병원에 입원을 해 있다니 어린이법회를 마치고 병문안을 가려고 생각한다. 문득 기연이가 1학년일때 처음 만난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운영하는 피아노학원에 피아노를 배우러 와서 본 것이 처음이었지. 얼마나 개구쟁이였고 장난꾸러기였고 말썽쟁이였는지, 학원 온 구석을 헤집고 다니면서 난리법석을 만들고,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고 잠시라도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지 못했었다. 나의 수행이며 福田인 어린이포교 헌신 맹세 고민 끝에 엄마와 상담을 하고 어린이법회에 나오도록 설득해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법회에 와서도 기연이의 산만함은 멈추질 않았다. 법회 의식을 할 때도 장난치기 일쑤였고 몇 번씩 이름을 불러 주의를 줬지만 눈치를 살피면서 도량을 헤집고 다녔다. 여름캠프에서는 아이스박스에 넣어둔 음료수를 친구들과 몰래 꺼내 마시고 법당 뒤, 산신각 지붕과 같은 위험한 곳에서 뛰기도 하고 잠시라도 눈을 떼면 말썽 부리는 것이 생활이었다. 선생님들과 의논을 하였고 수업방식을 다양화 했다. 어린이법회를 2부로 나눠 1부는 부처님 말씀을 통해 친구들에게 불심을 심고 2부에서는 특별활동으로 다도반, 서예반, 풍물반, 중국어반(중국어노래배우기), 축구반, 영어회화반을 운영했다. 부처님께 기연이가 착한아이가 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인성을 키울 수 있는 수업을 병행했다. 기연이는 다도반에서 다도를 배우고 축구반에 가서는 야생마처럼 운동장을 뛰어 다녔다. 중국어반에 가서는 제법 중국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는 등 조금씩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루하게 느낄 수 있는 〈천수경〉을 바로 앉아서 끝까지 독경을 하더니 어느 날은 저학년 동생들에게 법요집을 챙겨주고 법당에 어지럽게 나뒹구는 방석을 정리하기도 했다. 고학년이 된 것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기연이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법회에 올 때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을 챙겨 오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법회 후 법당 정리정돈, 간식을 먹을 때는 맨 나중에 의젓하게 혼자서 먹는 모습을 보였다. 부처님! 기연이를 보면서 한번 더 발원합니다. 저희 어린이법회 지도자들은 이 땅의 새싹이며 미래의 불교 주역들의 가슴에 불심을 심고 가꾸고자 합니다. 문수보살님의 지혜와 보현보살님의 발을 빌어서 어린이 포교가 곧 자신의 수행이며 복전임을 깨달아 어린이 포교에 헌신할 것을 맹세합니다. 때로는 나태해지고 신심이 지쳐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어린이 포교의 절실함을 잘 알기에 포기하지 않고 왔던 길 만큼 더 오랜 길을 가게 하소서. 부처님! 저의 이 한마음이 큰 발원되어 세세생생 물러나지 아니하고 포기하지 않게 하시고 끝없이 이어져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참다운 지혜와 복덕 얻게 하소서.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윤 귀 숙 포항 죽림정사 어린이법회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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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