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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 일리야 레핀
일리야 레핀은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 예술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인물화의 거장입니다.
레핀은 러시아 역사상 최고의 미술가로 꼽히며,
'안톤 체호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러시아 역사에서 예술가 딱 3명만 꼽는다면,
문학의 톨스토이, 음악의 차이콥스키, 미술의 레핀이다."
수도원에 감금된 황녀 소피아, 1879년
슬라브 작곡가들, 1872년
국무회의 창립 100주년 기념 제1차 회의, 1903년
일리야 레핀은 1864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러시아 황립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작품 제작 기법을 익혔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이동파(移動派)의 지도자였던 '이반 크람스코이'의 가르침을 받으며 예술이 사회 문제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체득하였습니다.
이동파는 미술계의 브나로드 운동(민중 속으로)으로 문화적 소양을 갖춘 민중을 양성하여 사회를 계몽할 수 있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조직되었고,
정기적 순회 전시를 개최하여 대도시 이외의 지역에 거주하는 민중이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습니다.
수중 왕국의 사드코, 1876년
욥과 그의 친구들, 1869년
야이로의 딸의 부활 (탈리다 쿰), 1871년
학창시절 레핀은 <욥과 그의 친구들> 과 <야이로의 딸의 부활>을 출품하여 아카데미 경연에서 금메달을 수상하였습니다.
초상화도 유명하여,
레프 톨스토이, 이반 투르게네프 등의 저명한 러시아 문학가들은 물론이고,
니콜라이 2세를 비롯하여 황족과 귀족, 상류사회 여성 등 문화계의 유명 인사들이 레핀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막심 고리키, 1899년
레프 톨스토이, 1887년
말년에는 핀란드 쿠오칼라에 있는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건축한 페나테스라는 집에서 살았습니다.
1917년 10월 혁명 이후 핀란드가 독립을 선언하자 레핀은 소련으로 돌아오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13년 후 사망할 때까지 핀란드에 머물렀습니다.
1940년 페나테스는 박물관으로 개관하여 일반에 공개되었습니다.
#작품감상
1. 볼가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 (1870~1873)
레핀이 미술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널리 인정받은 작품인 <볼가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은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뱃사공들이 처한 비인간적인 노동 환경을 명확하게 묘사한 이 작품은 러시아 사실주의 회화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유럽 전역에 전시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고, 러시아 전역에서 패러디되거나 정치 풍자 만화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러시아의 유명한 노래 "볼가강 뱃사공의 노래"의 영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2. 쿠르스크 지방의 종교 행렬 (1880~1883)
<쿠르스크 지방의 종교 행렬>은 레핀의 사회 비판과 이동파를 대표하는 그림 중 하나이며, 러시아 제국 시대의 사회적 계층과 종교적 열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합니다.
레핀은 자신이 목격한 세상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평화를 주지 않았기에, 그 세상을 캔버스에 담아내야만 했다고 말했습니다.
작품은 먼지가 자욱한 길을 따라 행진하는 행렬을 중심으로, 부유한 성직자부터 가난한 농민, 장애인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혼재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러시아 민중의 신앙심과 사회적 불평등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며, 레핀의 관찰력과 사회 비판적 시각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3. 이반 4세와 그의 아들 이반 (1883~1885)
이 그림은 16세기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이반 4세가 분노에 휩싸여 아들 이반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황제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있고, 아들은 아버지의 품에서 조용히 죽어가고 있으며, 피가 얼굴 옆으로 흘러내리고, 한 줄기 눈물이 뺨을 타고 흐릅니다.
레핀은 알렉산더 2세 암살 사건 이후 이 역사적 사건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레핀의 작품 중 심리적으로 가장 강렬한 이 그림은
러시아 역사의 한 장면을 통해, 폭력과 유혈 사태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4.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1884~1888)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는 오랜 유형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혁명가 남성과 그를 맞이하는 가족들의 복잡한 심리적 순간을 묘사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와 놀라움, 당혹감, 기쁨 등 다양한 감정을 보이는 가족 구성원들의 표정을 통해 당시 혁명 시대 개인들이 겪어야 했던 현실적인 일상을 보여줍니다.
레핀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멀지 않은 자신의 시골집에서 작업했는데, 그림 속 방은 바로 그의 거실이며, 모델은 아내, 장모, 그리고 딸입니다.
레핀은 4년 동안, 뜻밖의 귀국을 한 정치적 망명자인 젊은 남자의 얼굴을 적절한 표정을 찾기 위해 네 번이나 다시 그렸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젊은 남자의 가족들이 보이는 다양한 반응을 묘사함으로써, 당시 사회가 혁명 운동에 대해 보였던 다양하지만 대체로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주려 했다고 일반적으로 해석됩니다.
엄격한 검열이 시행되던 차르 러시아 시대에
일상적인 장르 장면으로 위장한 정치적 선언이었습니다.
5. 자포로지아 코사크족의 답장 (1889~1896)
<자포로지아 코사크의 답장>은 1676년을 배경으로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4세의 최후통첩에 대한 코사크족의 답장을 그린, 전설을 바탕으로 한 역사적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드니프로 강 하류 지역에 거주하던 자포로지아 코사크족이 오스만 제국군을 전투에서 물리쳤습니다.
그러나 메흐메드 2세는 코사크족에게 터키의 지배를 받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반 시르코가 이끄는 코사크족은 모욕과 욕설로 가득 찬 편지를 써서 응답했고, 이 그림은 코사크족이 욕설을 쏟아내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레핀 시대에 코사크족은 대중의 큰 호감을 샀으며, 레핀 또한 그들을 존경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4세에 대한 자포로지아 코사크의 답장>은 1880년에 제작을 시작하여 1891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알렉산더 3세는 이 그림을 3만 5천 루블에 구입했는데, 당시 러시아 회화 작품으로는 최고가였습니다.
끝.
※ 출처 : Wiki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