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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모든 것이 은혜였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여러분 추석 명절 잘 보내고 오셨죠?
여러분들 얼굴 보니까 많이 드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오늘은 거룩한 주일에 3부 예배 오신 여러분 한 분 한 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축복합니다. 오늘 예배가 여러분들 가장 큰 기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나를 바라볼 때 은혜가 임합니다. 누구를 바라볼 때, 나를 바라볼 때 여러분 오늘 교회 오기 전에 거울을 보고 오셨습니까?
우리는 거울을 봅니다. 얼굴에 왜 뭐가 묻고 묻었는지, 또 옷차림은 좀 단정한지, 또 머리가 헝클어지지 않았는지를 확인합니다. 저도 예배를 드리기 전에 꼭 거울 앞에서 제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이 거울의 목적은 단 한 가지입니다. 분명합니다. 나 자신을 비추어서 고치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때로 무서운 실수를 저지를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씀의 거울 앞에서 자신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그런 돋보기로 만들어 버릴 때도 있습니다. 나를 비추어서 회개하는 데 사용하지 않고 남의 허물과 잘못을 크게 확대해서 돋보기로 사용한다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빼지 말고 내 눈에 있는 뭐를 빼라 들보를 빼라고 하시면서 너를 바라보라 너 자신을 바라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남의 약점 잘못을 찾아내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결국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막는 일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도 마찬가지로 아주 우리에게 찔림을 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 오래 머물러 있고 또 성경 지식도 많이 있습니다만 정작 자신의 삶은 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향해서 자꾸만 지적하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무섭게 메시지를 던집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굳어진 마음이 깨어지고 다시 한 번 우리 각자가 십자가 앞에 십자가 앞에서 새롭게 되는 그런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먼저는 남의 눈에 있는 티는 빼지 말고 내 눈에 있는 들보를 빼라는 것입니다. 우리 1절 말씀을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1절의 말씀 시작.
그러므로 나를 사랑하는 사 주님을 만끽하고 내가 함께하지 못한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내가 너를 소개하니
아멘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내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내가 너를 뭐 한다고요?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니가 같은 이를 하느니라 행함이니라.
우리는 참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합니다.
저 사람 왜 저렇게 행동해?
저 사람 왜 저렇게 말하지? 저 사람 너무 이기적이지 않나?
저 집사님은 교회를 그렇게 오래 다녔으면서 왜 저렇게 저런 말밖에 못해
우리는 끊임없이 계속해서 남을 판단하는 그런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운전을 할 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저도 가끔 그런 실수를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어쩔 수 없이 차선을 급하게 바꾸게 되면 내가 초행길이라서 어쩔 수 없이 내가 그랬다. 그렇게 쉽게 잘 넘어갑니다. 그런데 남이 내 앞에서 갑자기 확 들어오면 10원짜리도 나오고 운전을 왜 저따구로 하느냐 별별 소리 다 하지 않습니까? 내 잘못에는 한없이 관대한데 다른 사람의 잘못에는 너무나 엄격한 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봅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에게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내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들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들보는 바로 이 지붕을 받치는 거대한 기둥과 같습니다. 내 눈에는 전봇대만한 기둥이 박혀 있는데 남의 눈에 들어간 그 티는 빼주려고 티를 빼려고 하는 우리의 모습, 남을 비판하는 잣대가 결국 나를 정죄하는 것이라고 오늘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투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투사 우리 마음속에 투사하는 마음이 각자가 있거든요. 내가 유독 꼴보기 싫어하는 다른 사람의 단점이 사실은 그 단점이 내 안에도 꽁꽁 숨어 있는 겁니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그것도 내 안에 다 숨어 있습니다. 내가 정직하지 못할 때 남의 거짓말에 굉장히 예민해지고요. 내가 교만할 때 남이 잘난 척하는 것을 참지를 못합니다. 그것이 내 안에 없는 게 아닌데 내 안에도 그보다 더 큰 게 있는데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사람에게 다 있습니다. 너무나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모습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위로 윗선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오래 참아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3절부터 5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니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혹 내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내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내게 삼는 도다.
아멘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우리가 착해서 의로워서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꼭 하시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때로는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는 내가 좀 맞다 그래도 내가 내가 그래도 좀 나은 그리스도인이다 그런 착각에 빠질 때가 참 많습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우리의 거대한 들보 같은 죄를 보시고도 오늘 하루 더 회개할 기회를 주셔서 참고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내가 의로운 것도 선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죠. 다만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 보호해 주시고 참고 기다려 주신다는 사실을 여러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뭘 보신다고요?
중심을 보신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화려한 이력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작은 중심을 보십니다. 6절에 보면 아주 분명한 원칙이 한 가지 있습니다. 6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하나 사람에게
아멘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뭐 한 대로 행한 대로 뭐 하신다고요?
동하시되 그리고 11절 말씀에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아멘 이는 하나님께서 무엇으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신다 이 외모라는 건 단순히 잘생기고 못생기고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외모라는 것은 굉장히 폭이 넓습니다. 학벌이나 재산, 또 사회적 지위, 때로는 모태 신앙, 장로, 목사 같은 교회 직분 등 모든 것을 다 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철저하게 외모 중심적인 세상을 우리가 살아갑니다. 어느 회사를 다니느냐 회사의 직책이 뭐냐 어느 학교를 다녔느냐 무슨 차를 몰고 있느냐 어느 아파트에 사느냐 철저하게 외모 지상주의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런 세상에 스펙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러분 아십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누리는 것들 것들이 하나님 앞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부자라고 해서 하나님 나라의 부자로 살 거다. 내가 세상에서 잘 나간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에서도 잘 나갈 것이다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로마 시대에는 이 귀족과 노예의 신분 차이가 하늘과 땅처럼 있었습니다. 귀족은 사람이고 노예는 물건이었습니다. 같은 물건인데 노예는 말하는 물건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 안에 놀라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귀족 주인과 노예가 함께 모여 같은 빵을 떼고 서로를 형제 자매라고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겉모습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아주 정확한 저울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 저울은 우리의 화려한 스펙이나 타이틀을 달아보지를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의 일상 속에서 살아오는 살아낸 이 순종의 무게를 달아보시는 겁니다. 무슨 무게를 본다고요?
순종의 무게라고 했습니다. 주일 예배 시간에 거룩한 표정이 나의 전부가 아닙니다. 오늘 내가 예배드리는 보여지는 이 시간 내 모습이 전부가 아닙니다. 평일에 아침 직장에서 까다로운 동료를 어떻게 내가 만나고 그분을 대할 것인가 하나님은 그걸 보십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집에서 네 가족에게 나는 어떤 말투로 나아가고 있는가를 보십니다. 때로는 손해를 볼 줄 알면서도 어떻게 정직을 선택하는가를 보시는 것입니다. 이런 순종의 모습을 하나님은 보시고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온 열매대로 정확하게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여러분 우리가 사람들을 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이 내게 무슨 말을 하든지 좀 내가 건의를 했는데 알아주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신다는데 섭섭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다 저울을 바라보고 계신다는 것을 여러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눈을 속일 수 있지만 불꽃 같은 하나님의 눈은 결코 속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성도는 우리의 중심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을 의식하며 우리의 마음을 올려드리는 삶, 그것이 굉장히 중요하리라고 봅니다.
세 번째는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것을 버려야 됩니다. 뭘 버려야 된다고요?
예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것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어느 글을 보니까 재미난 글이 있습니다. 진짜 명품 가방과 가짜 명품 가방을 구별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진짜 명품 가방, 가짜 명품 감을 어떻게 구별해내느냐 평소에는 똑같아서 잘 모릅니다. 명품인지 가짜인지 구분이 잘 안 됩니다. 하지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면 알 수가 있다는 겁니다.
소나기가 쏟아질 때 가방을 머리 위로 올리면 가짜고 소나기가 올 때 가슴에 품고 있으면 진짜 여러분 우리의 신앙도 이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평안할 때 누구나 다 거룩한 성도 같고 다 잘 믿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말 내 삶에 억울한 비바람이 몰아치고 때로는 경제적인 어려운 위기가 찾아오고 때로 내 자존심이 짓밟힐 때 그 순간이 오면 나의 신앙의 민낯이 완전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으로 읽지 않았습니다만 24절에 보면 너무나 가슴 아픈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 24절의 말씀 보겠습니다. 시작
아멘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뭘 받는다고요?
모독을 받는다. 너무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되는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방인들에게 모독을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때로는 하나님을 내가 잘 믿는다. 교회 열심히 잘 다닌다. 그렇게 하시는 분들이 때로는 나의 모순된 행동 때문에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그런 하나님 영광을 가리우게 된다면 하나님 얼마나 마음이 아파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더 이상 말로 하는 시대는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모르는 곳이 아니고 또 교회를 다 알고요 또 예수를 믿는다는 것도 알고 다 모르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다 압니다. 그들이 우리의 앞모습을 보고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볼 때는 예배드리는 모습이 거룩하고 좋아 보일지 모르지만 예수 안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런 모습이 전혀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뭐가 은혜가 될까요?
바로 그리스도의 뒷모습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내 뒷모습이 세상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도 있지만, 내 뒷모습이 오히려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교회 안에서는 제법 잘 믿는 그리스도인 같은데 직장에 들어가면 갑질을 하고 기도할 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 정말 신실한 그리스도인 같은데, 돈 앞에서는 신앙의 양심을 쉽게 저버린다면 세상은 우리를 보면서 당신들이나 똑바로 예수 믿으라고 그래 말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교회를 다니는 것만으로 나를 구원하는 방패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껍데기 신앙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이제 말씀의 결론입니다. 오늘 바울은 너무나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만으로는 절대 의로울 수 없다는 겁니다. 즉 우리는 교회를 오래 다니고 설교를 많이 듣고 성경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하면 내 믿음이 좋아졌다라고 착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는 것이 많다고 해서 믿음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삶 속에서 부딪히며 넘어지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내가 말씀을 말씀대로 살아내려고 하는 작은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스펙 화려한 이력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몇 해째 내가 신앙의 집안인지 신앙의 족보에 하나님은 감동받지 않습니다. 내가 옛날에 은혜 많이 받았고 열심히 교회를 잘 섬기는 것으로 자랑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지금의 우리의 모습이 중진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은밀하고 숨겨진 모든 생각조차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듯이 다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내가 품고 있는 욕심, 미움, 거짓말까지도 하나님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이 두려우신가요?
여러분 두렵다고 말하신 분은 굉장한 은혜가 있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내 힘으로는 절대 어려워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비로소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간절히 붙잡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진짜 두려운 사실은 내가 그런 자신임을 모르고 사는 것이 진짜 두려움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사람은 성경에도 어떻게 어찌 할 방법도 없습니다.자신이 뭘 잘못한 것인지조차도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말씀의 거울, 말씀의 거울은 다른 사람을 바라보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려고 주신 하나님의 선물임을 여러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들려야 되지 이 말씀은 누구 들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신다면 그거는 말씀의 거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비추는 것과 똑같은 것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오늘부터 우리의 마음속에 어떤 말씀이든지 다른 사람이 들어야 할 말씀이 아니라 내가 들어야 할 말씀임을 여러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들었다면 여러분 한 말씀이라도 작은 순종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갈 때에 나중에 너 뭐 하다가 왔느냐라고 물으실 때 하나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많이 들었어요. 그걸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그래도 하나님 말씀을 제가 순종하라고 순종하라고 많이 힘들었습니다. 순종해 보려고 애 많이 썼습니다.
여러분 그거 하나님 기뻐하시지 않겠어요? 많이 말씀을 들은 것을 자랑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들었다면 한 말씀이라도 내가 하나님 순종하길 원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외식이 아니라 형식이 아니라 그리스도께로 점점 더 가까이 가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거룩한 성도인 줄을 믿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그러한 좋은 그리스도인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