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밥을 할 때 '뜸'을 들여야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밀당'을 하기도 합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흥정'을 합니다. 너무 싸게 사려하지 않으면 주인도, 손님도 적당한 가격으로 흥정합니다. '뜸, 밀당, 흥정'은 어쩌면 사람 사는 재미인지 모르겠습니다. 친한 사이에는 '농담'도 합니다. 가끔 농담을 진담으로 알아들여서 오해가 생기기도 하지만, 농담은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부부가 헤어지려고 이혼 법정으로 가면 판사가 이야기를 경청한 다음 판결 내리기 전에 '숙려기간'을 줍니다. 이제 헤어지면 남이 되기에 잠시 서로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시간을 줍니다. 이런 숙려기간을 통해서 서로 이해하고, 서로 용서하며 다시 부부의 인연을 이어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왜 단식하지 않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마치 흥정하듯이, 밀고 당기듯이, 뜸을 들이듯이, 숙려기간을 주듯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명쾌하게 정리하십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피아노를 배우면서 왼손과 오른손의 역할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른손은 마치 숨을 쉬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오른손은 멜로디이기에 숨을 쉬듯이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합니다. 왼손은 머리와 같다고 했습니다. 리듬을 맞추면서 오른손이 가는 길을 밀어주고, 보듬어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본당에는 두 개의 조직이 본당 사제를 도와서 공동체를 위해 봉사합니다. 하나는 사목 평의회입니다. 다른 하나는 재정 평의회입니다. 사목 평의회는 마치 오른손과 같습니다. 각 분과는 1년 동안 해야 할 행사를 기획합니다. 본당의 행사는 전례의 주기에 맞추어서 진행합니다. 멜로디와 같습니다. 한쪽에 지우쳐서도 안 되고, 너무 모자라서도 안 됩니다. 재정 평의회는 왼손과 같습니다. 본당의 행사가 잘 진행할 수 있도록 예산의 범위를 정합니다. 예산이 부족하면 행사를 줄이도록 요청하기도 합니다. 꼭 필요한 행사라면 필요한 재정을 충당할 수 있는 방법을 찾습니다. 사목자는 사목 평의회와 재정 평의회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도록 공동체를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삼위일체인 하느님께서 친교와 사랑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끄시듯이, 사목 평의회와 재정 평의회 그리고 사목자는 공동체에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합니다.
국가의 기능도 3개의 헌법기관이 있습니다. 사법부, 행정부, 입법부입니다. 사법부는 법과 원직에 따라서 공정하고 정의롭게 판단해야 합니다. 군사 독재 시절에 사법부가 행정부의 시녀처럼 판단했던 오욕의 역사가 있습니다. 억울한 사람이 법의 이름으로 감옥으로 갔고, 죽었습니다. 양심수가 생겼습니다. 행정부는 공정하게 법을 집행해야 합니다. 부정과 부패가 만연한 나라는 행정부가 소수의 이익을 대변합니다. 빈부의 격차가 심해집니다. 국가의 질서가 무너져 내립니다. 부실 공사로 아파트가 붕괴하기도 하고, 멀쩡하게 보이는 다리가 무너지기도 합니다.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인사말이 되기도 합니다. 입법부는 국민을 위한 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당리당락에 의해서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뒤로하는 법을 제정해서는 안 됩니다. 입법부는 토론과 대화를 충분히 거쳐야 합니다. 민주주의 사회는 다당제를 받아들입니다. 1당의 입법부는 소수의 이익을 대변하는 법을 만들 수 있습니다. 2025년 대한민국은 '뜸, 밀당, 흥정, 숙려기간'을 겪고 있습니다. 그 시작은 행정부에서 선포한 '비상계엄'입니다. 집단 지성이 발휘 되어서 헌정질서가 회복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국가와 국민을 위한 대한민국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영신수련'에서 신앙인들은 3가지 유형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깃발아래 있어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생활태도는 하나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가치와 세상의 즐거움이 가득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먼 훗날의 일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깃발 아래 왔다가, 금세 달콤한 유혹에 빠져서 세상의 것들에 빠져드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께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기준에 맞추어서 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가난과 겸손이 주는 기쁨을 알고, 세상의 가치보다 훨씬 소중한 주님을 따르는 즐거움을 알기에 언제나 주님의 깃발 아래 서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을 따르는 것이 힘들었기에 오늘 우리는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한 구원자가 되신 것은 고난을 겪으신 다음이라고 말합니다. 2025년 새해에는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겸손, 가난, 나눔, 봉사의 삶을 살아가도록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