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밤 사이 강풍으로 날아간 비닐을 다시 덮어야 했습니다.
봄 농사를 시작할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작년에 덮었던 비닐을 걷고, 다음에 로타리를 치고 그리고 다시 둑을 만들어 비닐을 씌우는 일입니다.
혹자는, 비닐을 씌우는 것은 환경 때문에 안된다고 하는데, 그 말은 맞는 말이지만, 대단히 철 없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특히, 영동지역의 봄 날씨는 다른 지방과 조금 다릅니다. 푄 현상으로 편서풍이 영서 지방에서 백두대간을 오를 때는 100미터 올라갈 때마다 0.6 도 씨 온도가 낮아지지만, 백두대간을 넘어온 바람이 영동지방으로 하강 할때는 100 미터 내려갈 때마다 1도씨 온도가 올라갑니다. 게다가, 바람에 품어져 있던 습기를 백두대간에 전부 내려놓고 내려옵니다.
그래서 매년 4월 5월에서 영동지방에서 부는 바람은 고온 건조 할 수 밖에 없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그 바람은 예로부터 襄江之風(양양과 강릉의 바람이 세기로 유명하다는 고사성어)이라 불리울 정도로 강풍입니다.
그리고, 그 시기의 날씨는 비가 오지 않기로도 유명합니다.
집 앞의 작은 텃밭이야 비닐을 씌우지 않고도 물조리개로 물을 주면서 키울 수 있지만, 본격적인 농사에 있어서는 사람의 힘으로 물을 주기는 불가능 합니다. 또, 비닐을 씌우는 일은 잡초를 막는 일이기도 합니다.
비닐은 수분 증발을 막아주고 잡초를 막아주는 대단히 고마운 존재인 거죠. 특히, 이곳 영동지방에서는 농업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몹시도 비닐 덮기에 신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새벽에 밭에 나가보니 몇 고랑이의 비닐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기계로 비닐을 칠 때는, 양쪽에서 비닐을 잡아주고 흙만 덮어 씌우면 그만이지만, 전체를 덮는 일은 고욕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온 밭을 기어서 다니면서 몇 시간에 걸쳐서 비닐 덮기를 완료 하였습니다.
이렇게 첫 농사 부터 짜증으로 시작되었답니다.
아침부터 땀은 비오듯이 하였고, 땅의 열기가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였습니다. 눈 과 코에는 꽃가루 알레르기로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즐거웠습니다. 오히려 땅의 열기가 온 몸으로 파고 들어 뒤집어질 정도가 될 수록 마음은 들뜨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농부가 되다니!"
참으로 먼길을 돌아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 오늘 아침의 그 자리는 내가 그토록 열망하던 자리였습니다. 축산학도로서, 경제학자로서, 건설업자로서, 농수산물 인터넷 쇼핑몰 업자로서, 시민단체회원으로서 그리고 진보정당원으로서, 그렇게 고민하던 모든 것들이 오늘 아침의 그 자리로 마무리 되었던 겁니다.
그 동안 거쳐왔던 것은 전부 거짓말이었습니다. 땅은 솔직합니다. 땅으로 먹고 사는 일은 그래서 최고의 선입니다.
저가 농부가 된 것은, 현실적으로, 경제적으로, 철학적으로, 문학적으로, 낭만적으로 정당한 일입니다.
현실적으로 경제적으로 전 농사를 지어서 팔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좌파 경제학자로서의 아나키스트인 저는 필연적으로 농부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가 마지막으로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땅과 만나는 순간, 저의 문학 또한 솔직해 질겁니다. 뚜꺼운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농부 일 수 밖에 없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