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도성은 고구려가 국내성에 수도를 둔 시기 평지성인 국내성과 함께 도성을 이룬 산성이다.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시[集安市]의 산성자산성(山城子山成)이 환도성으로 비정된다.
산성자산성은 국내성에서 서북으로 약 2.5㎞ 떨어진 해발 675m의 산상에 축조되어 유사시 왕성의 방어와 피란에 용이하였다.
환도성(丸都城)은 위나암성(尉那巖城) 으로도 불리우며
서기 3년(유리왕琉璃王 22년)에 고구려 2대국왕 유리명왕瑠璃明王이 국내성으로 천도하면서 쌓은 성이다.
현재의 중국 지린성 퉁화시의 지안시 산성자산성(山城子山城)으로 추정되며, 중국 지명으로는 환도산성(丸都山城)으로도 불린다.
서기 3년(유리왕 22년) 고구려가 국내성(國內城)으로 수도를 천도하면서 적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국내성에서 가까운 산에 축조한 산성이다.
처음 산성의 이름은 위나암성(尉那巖城)이라 불렀다.
《삼국사기》에는 위나암성(尉那巖城) 또는 위나야성(尉那也城)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 10대 산상왕(山上王) 원년인 197년에 요동태수 공손탁(公孫度)이 고구려를 침략하자,
이듬해인 198년에 위나암성을 전면적으로 증축하고, 환도성(丸都城)이라 하였다.
이후 산상왕(山上王) 13년(209년)에 환도(丸都)로 도읍을 옮겼다는 기록이 있다.
고구려 11대 동천왕(東川王) 20년(246년)에
위(魏) 유주자사(幽州刺史) 관구검(毋丘儉)이 군대를 이끌고 침공해 와, 환도성을 함락시켰다.
동천왕 21년(247년)에 왕이 환도성으로 전란을 겪고 다시 도읍으로 삼을 수 없다고 하여,
평양성(平壤城, 현재의 평양이 아니라 通溝 부근의 어느 곳)을 쌓고
백성과 종묘와 사직을 그곳으로 옮기며, 환도성을 떠났다.
고구려 16대 고국원왕(故國原王) 12년(342년)에 왕이 환도성(丸都城)으로 거처를 옮겼다는 기록이 있다.
그해 겨울에, 연나라(燕)의 모용황(慕容?)이 병력 4만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침략,
고국원왕의 어머니 주씨(周氏)와 왕비를 사로잡고,
고국원왕의 아버지 미천왕(美川王)의 무덤을 파서 그 시신을 싣고, 창고 안에 있던 수많은 보물을 약탈하고,
남녀 5만여 명을 사로잡고 궁실을 불태우고, 환도성을 파괴하고 돌아갔다.
연지유적蓮池遺蹟
연지유적蓮池遺蹟
연지는 일명 저수지로 불리우며 자연산세에 따라 만들어졌다.
동쪽의 길이는 35m, 서쪽과 남쪽과 북쪽의 길이는 37m 정도이며,
저수지의 벽은 돌로 쌓았다. 연지 발굴시 철기, 도자기, 수골 등 유물 등이 발굴 되었으며.
역사에 기록된 “잉어퇴병”이 이곳에서 기원되었다고 한다.
환도산성 전망대 丸都山城 展望臺
전망대는 환도산성 내에서 외적의 침입을 지켜볼 수 있는 시야가 넓은 건축물로서 외곽은석재로 축조되었다.
길이 6.7m에 너비 4.5m에 높이는 4.5m이다.
수졸거주지戍卒居住地
전망대에 근무하는 수졸들의 주둔지였다고 한다.
환도산성궁전유적 丸都山城宮殿遺蹟
환도산성의 궁전이 있던 자리이다.
환도산성 丸都山城 성벽
환도산성 丸都山城 성벽
환도산성의 산성에서 내려다 본 피라미드 고분군의 모습
만주 집안에 있는 피라미드들
만주, 길림성 집안, 고구려 환도산성(丸都山城) 아래 피라밋군락
만주 집안, 고구려 환도산성(丸都山城) 아래 피라밋군락
만주에 고조선때 축조된 피라미드가 있다. 실제로 엄청난 피라밋들이다. 피라미드는 이집트와 남미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중국에도 엄청나게 있다.
저 피라밋들은 아마도 고조선시대부터 고구려시대까지 수천년을 이어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즉 수천년 동안 만주와 중국대륙 북부는 실제적으로 동이족의 영토임을 말해주는 것이며, 동이족의 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훨씬 오래되었고 고도화된 것으로 보인다.
독일학자들이 계속적으로 피라미드 발굴을 요구하자, 중국정부측은 사진이 조작되었다고 거부하다가, 갑자기 고구려도 중국역사였다며 동북공정을 내밀고 있다. 결국 동북공정이 세상에 먹히면 저 피라미드들도 중국인이 세운 것이라고 둘러대며 세계에 공개할 것이다.
하루빨리 우리 고대사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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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 피라밋
북한이 발굴 복원한 제1단군릉(평양) 9층 계단식 돌각담 무덤, 한 변 50m, 높이 22m
고구려 피라밋
장군총, 길림성 집안(吉林省,集安), 12층 석단, 밑변 31.58m*31.58m*12.4m(높이)
광개토호태왕릉, 밑변길이 66m
환도산성(丸都山城)하 귀족묘지(下貴族墓地), 4세기 고분군,적석묘(積石墓),봉토벽화묘 등 수십기
장군총 뒤에 딸린 무덤(석분), 후궁묘..?
내가지석묘(內可支石墓),강화군 내가면 오상리, 높이 2.60m, 덮개돌 길이 7.1m, 너비 5.5m.
강화도 고인돌, 높이 2.6m, 덮개 돌의 길이 6.5m, 너비 5.2m
장군총,호태왕릉은 물론이려니와, 고구려,단군조선 이전시대로부터 내려오는 고인돌,돌무덤 등은
한민족의 석조고분들이 바로 전세계 모든 피라밋의 원형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지 않은가?
남한에 있는 적석총 역시 연대를 알 수 없는 피라미드형 적석총들이 상당수 분포되어 있다. 알자고 닷컴에서도 몇편의 답사기를 게제하고 있는데, 답사를 다녀온 결과 대부분 방치되어 있고 서울 석촌동 피라미드군은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는 편이었다. 세계 피라미드 역사를 다시 써야 할 귀중한 우리 문화유산을 우리 스스로가 더이상 방관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방관하고 있는 부분이 어디 피라미드 뿐이겠는가만은, 더이상 단군문화에 관해서는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어떠한 이유와도 타협해서는 안될 일이다. 단군을 외면하는 현실을 계속 이어간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속이는 일 뿐만아니라, 세계를 속이는 일이고, 세계의 역사가 진실된 역사를 접할 기회를 영원히 잃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처음 잘 못 끼운 단추를 끝단추 까지 끼워 옷을 입었다 한들 편한 옷차림이 될 수 없듯이 역사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관점을 뒤로 하고, 한국인의 눈으로 단군을 대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모든 일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부디 우리의 자손들에게 우리의 모습이 우매한 조상으로 남겨지지 않기를 바라며, 자손대대로 거짓의 금자탑 위에서 놀아나는 일이 더이상은 없기를 염원하고 염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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