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滸誌), 혼돈의 시대를 이끌다
1권 일탈하는 군상 (13)
제 3 장 사가촌(史家村)
사진(史進)은 비렁뱅이 같은 장사꾼을 속으로 벼르며 마당으로 달려가 연습하던 막대를 집어 들었다.
"이리 오시오. 한번 덤벼 보란 말이오. 이제 겁이 난다면 당신은 사내도 아니오!"
사진(史進)이 막대를 풍차 돌리듯 휙휙 내돌리며 장(張)씨 성을 쓴다는 그 장사꾼을 향해 소리쳤다.
그래도 장사꾼 사내는 가만히 미소를 머금을 뿐 움직이지 않았다.
보기가 딱했던지 사진의 아버지가 그에게 말했다.
"손님, 기왕에 저 어린놈을 가르쳐 주시겠다 했으니 막대를 드시지요. 한 대 때려 철이 들게 해주시는데 안 될게 무어 있겠소이까?"
그러자 장사꾼이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아드님과 봉을 맞대다가 보기 좋지 않은 일이 생길까 두렵군요.“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설령 싸우다가 팔다리가 부러진다 해도 그건 저 녀석이 스스로 사서 한 일이 아니오?"
사진의 아버지가 그렇게 받았다.
그제야 장사꾼은 천천히 발을 떼어 놓으며 말했다.
"그럼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마당 한구석의 창칼을 걸어 두는 시렁 곁으로 간 장사꾼은 알맞은 막대 하나를 찾아 쥐고 마당으로 나갔다.
장사꾼이 막대를 엇비스듬히 걸어 놓은 듯 잡고 서자 그걸 본 사진(史進)은 자신의 막대를 휘두르며 그를 덮쳤다.
장사꾼은 땅을 박차며 막대를 휘둘러 막은 뒤 얼른 피했다.
사진이 막대를 휘두르며 그를 뒤쫓듯 다시 다가갔다.
그러자 몸을 돌린 장사꾼은 막대를 하늘로 높이 쳐들었다가 아래로 내리쳤다.
사진(史進)은 내리쳐 오는 상대의 막대를 자신의 막대로 막으려 했다.
그러나 상대는 막대를 끝까지 내려치지 않고 슬쩍 끌어당기더니 사진의 가슴께를 곧장 찔러 버렸다.
그 한 수에 쥐고 있던 막대는 날아가고 사진(史進)은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장사꾼 사내가 얼른 막대기를 내던지고 달려와 사진을 일으켜주며 미안한 듯 말했다.
"젊은이, 너무 언짢게 생각하지 마시오."
상대를 얕보고 함부로 덤볐다가 낭패를 본 사진(史進)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로소 상대가 예사 장사꾼이 아님을 깨닫고 가까이 있는 의자를 가져다 그를 앉히더니 그 앞에 엎드려 넙죽 절을 했다.
"저는 여태껏 여러 스승을 모시고 배웠습니다만, 반도 제대로 못 배운 듯합니다. 스승님, 아무쪼록 저를 버리지 마시고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어찌 보면 그런 사진(史進)도 예사가 아닌 장부였다.
젊은 오기로 한두 번쯤 더 억지를 써 봄 직도 하건만, 졌다 싶자 깨끗이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
그런 사진(史進)을 가만히 바라보던 손님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의 모자 두 사람이 여러 날 이 댁에서 폐를 끼쳤소. 그 은혜를 갚는 뜻에서라도 마땅히 힘을 다하겠소이다."
손님의 놀라운 솜씨를 본 사진(史進)의 아버지도 몹시 기뻐했다.
얼른 사진에게 옷을 입게 한 뒤 손님과 함께 안으로 데려갔다.
대청에 자리 잡은 사진의 아버지는 곧 머슴들에게 양 한 마리를 잡게 하고 부엌에는 술과 밥이며 과일까지 갖춰 한 상 떡 벌어지게 차리도록 시켰다.
모든 게 갖춰지자 사진의 아버지는 손님의 늙은 어머니까지 청해 들였다.
그리고 먼저 손님에게 술 한잔을 부어 올리며 말했다.
"선생의 무예가 그토록 고강(高强)하신 것을 보니 금군의 무술 사범으로도 모자람이 없겠습니다.
틀림없이 교두(敎頭)님일 것 같은데, 제 아들놈이 그만 두 눈 멀쩡히 뜨고도 태산 같은 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흉악하다 한들 어찌 차마 어르신을 속이겠습니까? 실은 제 성은 장(張)이 아니고, 밑천 털어먹은 장사꾼도 아닙니다.
어르신께서 바로 보셨듯이 팔십만 금군의 교두(敎頭)를 지낸 왕진이란 자가 바로 저올시다. 하루 종일 창칼과 봉만을 만지며 지내던 사람이지요."
손님이 껄껄 웃으며 마침내 바른대로 털어놓았다.
"그런데 교두님께서 어이하여 이 같은 행색으로.....“
사진의 아버지가 한편으로는 놀랍고 한편으로는 이상스러워 물었다.
왕진(王進)이 긴 한숨과 함께 거기까지 흘러온 경위를 이야기했다.
"새로 온 고구(高俅)라는 태위때문이외다. 그자는 전에 못된 짓을 하다가 돌아가신 제 아버님께 호되게 얻어맞은 적이 있지요.
이번에 어찌하여 전수부 태위가 되자 옛날의 앙심을 풀려고 나를 괴롭혔습니다.
그는 전수부로 부임하기 바쁘게 내가 한 보름 몸이 아파 쉬고 있는 것을 트집 잡아 매를 때리려 들었소이다.
그 자리는 좌우에서 말려 용케 욕을 면했지만 계속 그자 아래에 있다가는 목숨이 남아나지 못할 것 같아 이제 연안부의 노충(老种, 충악) 경략상공(經略相公)께로 달아나는 길입니다."
"그렇지만 무슨 큰 죄를 지으신 것도 아닌데 연로하신 자당(慈堂)까지 모시고 이렇게......“
"그게 우리 송나라도 다 돼 간다는 증좌외다. 태위라면 삼공의 하나인데 공 차는 재주 하나만으로 그 같은 장돌뱅이가 앉게 되었으니.......
그날 고구(高俅)는 여러 사람이 말려 나를 놓아 보냈지만, 병졸을 둘씩이나 붙여 제 집을 지켜보게 하는 것이 벌써 큰 죄인 취급을 하고 있소.
병이 다 나아 다시 끌려 나가게 되는 날이면 나는 틀림없이 매 아래서 죽게 될 것 같았소. 그래서 도망치려고 하니 어머님을 버리고 떠날 수가 없더구려.
처자야 원래 없으니 홀가분 하지만 그 악독한 인간이 늙으신 어머님께 무슨 짓을 잘지 어찌 알겠소?
그래서 이렇게 모시고 떠난 것이외다. 나는 성 밖 동악묘(東嶽廟)에 제사를 드린다는 핑계로 두 병졸을 따돌리고 어머님과 함께 살던 집을 빠져나왔소.
그러나 악착같은 고구(高俅)가 사방에 파발을 놓아 나를 잡으려 드는 바람에 큰길로는 못 가고 험한 샛길만을 골라 다니다 보니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오...."
왕진(王進)은 비분과 처량함에 얽힌 목소리로 거기까지 말해 놓고 문득 목소리를 가다듬어 말을 맺었다.
"다행히 어르신네 같은 분을 만나 이렇게 좋은 대접에다 어머님의 병환까지 보살핌을 받았으니 백번 절을 한들 어찌 이 은혜에 보답이 되겠소이까?
그러나 마침 아드님이 보잘것없는 이 몸의 재주를 배우겠다 하니 한번 힘을 다해 가르쳐 보겠소.
아드님은 화봉(花棒)은 배운 듯하고 솜씨도 있으나 뛰어난 상대를 만나면 어려울 것입니다. 제가 처음부터 제대로 가르쳐 보지요."
그 말을 들은 사진의 아버지가 그것 보라는 듯 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얘야, 이제 네가 진 까닭을 알겠느냐? 어서 스승님을 두 번 절하고 뵈어라."
이미 왕진의 솜씨를 맛본 사진(史進)은 두말없이 그 앞에 엎드려 스승을 맞는 예(禮)를 올렸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수호지 - 이문열 편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