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호부대 역전의 용사 ‘이기남(1944년생)’씨는 한쪽 다리가 없는 슬픈 사연인데도
오히려 이것 덕분이라며 의족으로 산속 누비는
“나는 자연이다. 노병은 살아있다”의 주인공입니다.
월남 전쟁으로 의족을 끼게 되었지만 오히려 산중생활의 동기 부여가 되다.
과연 그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강원도 진부령 고개를 의족으로 넘고 달려간 그의 고향집의 8남매 낳으신 어머니 힘일까요.
집안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한쪽 다리가 없는 당신이기에,
이 세상에서 내가 당신의 한쪽 다리가 되어 지켜줘야 한다는
순정의 사랑이야기 담긴 부인의 헌신적 사랑의 힘일까요.
6·25 전쟁통에 먹거리가 없어 미군이 원조해준 옥수수 힘일까요,
그 보다는 열식구가 먹기에 턱없이 부족한 밀가루를 가지고,
저 어린 것들이 배고파 칭얼대는 인고의 삶에서 슬기롭고 지혜로운 모성애는 위대하다.
무를 채판에 갈아 그 무즙에 밀가루를 혼합하니,
맛도 좋고 영양가도 높고 소화도 잘되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칼국수가 탄생하다.
나도 마누라 보고 해달래야지.
그런 가난한 집 셋째로 태어난 이기남 씨가 치른 전투는
아마 맹호부대 전설의 다냥 전투이리라.
채명신 장군 전술로 중대 전투 개념을 미육사 전술교범으로 채택된
이러한 중대 단위 전투는 극렬하다 못해 베트콩과 사활을 건 한판 싸움이다.
베트콩은 소대 단위로 사단 병력을 동원하는 전투에서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으로
한국군의 사망자가 나날로 늘어가는 때이리라.
이에 맞서 중대 단위 전투 전술 개념을 세계 최초로 개발 시도한 전쟁이고
한국군이 사상되면 지구 끝까지 쫓아가 끝장을 보는 맹호 청룡의 군인 위상을 세우다.
그래서 베트콩은 한국군과 접전을 피하게 되고,
우리를 건들지 않으면 우리도 너희를 건들지 않는다 라는 암묵적 의식이 통하여,
현재에도 월남인 대다수가 한국인에게 호의적이다.
물론 일부 선의의 조력자인 민간인이 억울한 사상자가 발생하였을 수 도 있으리라.
그러나 의도적이 아님에도 일부 판사는 한국군의 배상 논리를 펼치는
국제법인권주의를 떠들고 있음을, 이 기회에 들어 통탄하는 바 이다.
나 하나 희생으로
우리나라 대한민국 위대함을 세계평화를 만방에 떨치고,
조국이 살고,
나 하나 주검으로 우리 가족이 배불리 먹고 산다면,
나는 죽어도 좋다는 숭고하고 거룩한 정신 으로 참전하다.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젊은 영웅은 월남전에 자원하여 해외 파병 참여하고
그 전쟁으로 한쪽 다리를 잃었어도,
영웅은 지리산 정상을, 설악산 넘어 속초 까지 이 땅에 산이란 산을,
다 주름잡고 다녀 정상에 안오른 산이 없단다.
참고로 말이 ‘의족’이지.
한쪽 다리로 걷는 겁니다.
짤린 다리는 그냥 붙어 있는 거죠.
발을 교대로 땅을 디딜며 걷는 건데요.
짤린 아래 쪽에 고무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짤린 다리에 묶어 놓은 게 소위 의족입니다.
발을 내디딜 때에 의족과 내 살이 닿는 힘의 접촉으로 그 통증은 극심하여 머리가 터져 나갑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뼈를 한 번 짜르고 두 번 짜르고 수없이 짤라내어
살만 남기고 또한 신경이 둔화시키고,
짤린 뼈만큼 남은 살이 단단하게 뭉쳐 굳은 살이 되어야 합니다.
영웅은 작전 중에 12명의 전우가 죽음을 목도하고,
혼자서 지혈하며, 구조되나, 결국 다리를 잃고도,
지금 여든 살이 되어
“의족파병 자연생활” 인생을 즐기며 나보란 듯이 살고 있습니다.
바로 월남전 세대의 눈물겨운 인생 승부가 어디 이기남씨 한 분이겠는가요.
백년건강 카페지기 협원선생님 그리고 젊은 과부되어 자식키우며 살아가는 유가연 님의 인생역정 과정도
또한 그 당시의 인생의 선배님 모든 분이 우리나라 영웅이시다.
오늘 날 우리가 누리는 삶과 문화를 보시라.
인구 대비 차량 증가 댓수만 하나 열거해봅니다.(출처: 개인 경험과 지식)
1960년대 인구 2천만 동포/ 자동차 60만대.
1979년도 인구 3천만명 / 200만대 자동차.
2023년도 인구 5천만명 / 5000만대 자동차.
기적같은 풍요로움에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월남전 하니 생각난 한분....
이름도 사수 입니다
김사수..(전북 군산시 출신)
나보다 4~5년 아래 였으니...
그만큼 한창때 파병 됐겠지요
맹호부대 수색중대 수색1소대 선임였다는데...
매번 수색 나가는게 일상화 되여
선임을 선두에 세우는건 소대장 명령...
결론 말씀 드리면
고엽제 피해로 온갖 질병에 노출되여 힘들어 하더니
아들하나 부인 남겨놓고 10수년전 소천 하셨읍니다
아마 간신히 60넘겼던듯...
그이후
몇년동안 모임에 부인 참석 하더니 길게 가지 않읍니다
베트공 잡아 온같 짖 다했다는 ...
눈에 불 켜져 있어 보이는게 없었다는,...?
글로 옮기기엔 너무 잔인해서..어쨋던 ..
소 돼지 짐승도 그렇게 죽이지는 않았을터.....
극한 상황엔 사람의 정신까지 ~~~~
전우가 쓸어지고 피를 흘리는 모습 볼 때에,
눈알이 뒤집히고 헷까닥 광인이 된답니다.
피에는 피.
악마의 탈을 쓰고 광란의 춤을 추어
베트콩이 지레 겁먹고 먼저 도망가다
전쟁은 사람을 미치게하여
그 젊은 영웅은 정신질환으로 불운의 삶 살아
단명하였다고 합니다
초기 주월사령부는 집단 거주 외곽 보초 경계형태 중 자고나면
보초가 사라지고
수색 나가보면 사지가 짤려 이 곳 저 곳에 널려 걸어놔서 공포감과 적개심 일게됨
이에 일부 군인들이 비인간적인 포로 관리를 하였다고
자랑삼아 떠벌리다
특히 칠십년도 철수직전 파병 세력들이 뻥 심하다고 함
집안 네 분이 월남전 전투 직접 참여하고 육본 부관으로 계셨던
어른 이야기를 듣고 자라다 보니
월남전 형상을 많이 안다고나 할까요
어떤 경우에도 주월한국군
명예를 지커줘야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피를 발판으로 그분의 피값을 우리 모두 분배 나누어 가진 동료이자 후예이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