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예수님께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하셨다.
“거룩하신 아버지, 20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21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
22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23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또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24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도 제가 있는 곳에 저와 함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 창조 이전부터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시어 저에게 주신 영광을 그들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25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지만 저는 아버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6 저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 주었고 앞으로도 알려 주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미국 프로야구 선수인 유격수 라파엘 퍼칼이 FA 시장에 나오자 많은 구단이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습니다. 그렇다면 라파엘 퍼칼은 어떤 구단과 계약을 했을까요?
돈을 많이 제시한 구단이 아니었습니다. 집이나 자동차 등의 편의 시설을 제공하는 구단도 아니었습니다. 사실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조건을 제시했던 LA다저스 구단이 선택되었습니다.
퍼칼의 고향에 그의 이름이 새겨진 소방차 한 대를 보내주겠다고 구단주가 제안한 것입니다. 도미니카 공화국의 가난한 마을이었던 퍼칼의 고향에서는 소방차가 없어서 불이 났을 때 마을 전체에 큰 피해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늘 퍼칼의 짐이었는데 이를 구단주가 해결할 수 있는 제안을 한 것이지요.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줄 때 상대는 비로소 변화합니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만을 채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을 알아주고 함께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늘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시고 안아주십니다. 비록 돈도 안 주시고 높은 지위를 허락해 주시지도 않지만, 사랑을 통해 당신과 하나를 이룰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세상을 힘차게 살아갈 수 있으며, 큰 기쁨과 행복을 갖게 됩니다.
문제는 이 주님의 사랑을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돈이 좋고 물질이 좋다면서 세상의 기준에서 높고 큰 것만을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마음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믿는 이들의 일치를 위해 기도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일치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아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를 충실히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 주었고, 아버지의 뜻을 세상에 알려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사랑 안에서 믿는 이들이 하나를 이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이 나를 알아야 한다고만 외칠 것이 아니라(물론 우리의 머리카락 숫자까지 세워 두고 계실 정도로 모든 것을 당연히 알고 계십니다), 주님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주님의 뜻인 사랑을 세상에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나’를 벗어나, ‘우리’에 집중할 때 진정한 일치를 이룰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를 보면 ‘나’라는 단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신 ‘우리’만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안에서 일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만의 욕심과 이기심 채우는 데 집중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으로 하나 이루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가장 큰 행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비록 환경이 어둡고 괴롭더라도 항상 마음의 눈을 넓게 뜨고 있어라(명심보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어느 꼬마 아이가 장난감 블록을 정성껏 쌓고 있었습니다. 온 정신을 블록 쌓기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지나가다가 실수로 이 블록을 쓰러뜨렸다면 어떻게 될까요? 긴장의 순간입니다. 아이의 반응은 과연 어떠할까요?
정성을 쏟아 쌓고 있는 블록을 쓰러뜨렸다고 펑펑 울고불고 난리가 날 것 같지만, 뜻밖에도 아이는 오히려 좋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이가 블록을 쌓는 목적이 블록을 쓰러뜨리는 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블록 쓰러뜨리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으니, 누가 쓰러뜨려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놀이에 함께 하는 줄 알고 더 좋아했던 것입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 아이의 반응을 떠올리며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모든 사람이 돈을 좋아하기 때문에 재정적 손실을 보면 큰 상처를 받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목적에 ‘돈’이 들어있지 않다면, 재정적 손실은 중요한 걸림돌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세상 삶 안에서만 필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늘 나라에서 필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지 않을까요?
첫댓글 하늘 나라에서 필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라고 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