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11일(화)
* 시작 기도
주님...
보슬비가 내리는 이 아침에 주님의 은혜의 보슬비를 기대하며 말씀 앞에 앉습니다.
매사에 결단력이 약하고 부족하며 인내심이 적은 이 종을 불쌍히 여기사 보슬비와 같이 주님의 잔잔한 은혜를 받아 누리기 원합니다.
그 비로 인하여 온 대지가 촉촉이 적시며 갈한 목을 축이면서 기뻐 춤을 춥니다.
주님, 이 종의 갈한 심령도 주의 은혜의 단비로 채워주시어 주님과 함께 손을 잡고 세레나데를 부르며 춤을 추게 하소서.
나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소서.
하오나 내 안에 주님이 주기 원하시는 그 은혜의 길을 막는 원수들이 있사오니 옛 사람으로 행하는 나의 본성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한 신부로 주님과 연합할 수 있도록 나를 이끄소서.
이 하루도 주의 날이오니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내 영혼이 소생하여 주님을 기뻐하는 이 날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을 빚어주사 조명해주시는 말씀의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출 15:22-27
제목 : 궁핍할 때나 풍부할 때나 일체의 비결을 배우다.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 새
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 나의 묵상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정하신 길로 인도하셨다.
바로의 군대와 홍해 사이의 갇힌 길에서 홍해를 가르셨다.
이스라엘은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넜으나 바로의 군대는 그 바닷물에 몰살 당하고 말았다.
이를 보고 모세와 이스라엘 그리고 미리암은 높고 영화로우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이제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은 수르 광야로 들어간다
수르 광야에서 사흘 동안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였다.
그런데 마라에 이르렀을 때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물이 있었다.
하지만 그 물은 써서 마실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쓰다는 뜻의 ‘마라’라고 하였다.
목이 말라 죽겠는데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며 말하기를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였다.
그 때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니까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지시하셨는데 모세가 그 나뭇가지를 물에 던지니까 쓴물이 단물로 변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쓴물이 단물로 변한 바로 그 자리에서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이스라엘을 시험하셨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쉐마하면 애굽 사람에게 내린 질병을 하나도 내리지 않고 지켜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치료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마라를 떠나 엘림에 도착한다.
거기는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70그루가 있었다.
이스라엘은 광야의 오아시스가 있는 엘림에서 장막을 치고 쉬었다.
홍해를 건너 광야로 들어선 이스라엘에게 생존에 가장 필요한 물이 없었다.
먹고 마시는 문제와 함께 궁핍이 따르는 광야의 비참한 삶이 시작된 것이다.
광야에서 3일 동안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10여 년 전에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갔을 때 이집트에서 광야를 걷는 체험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3시간을 걸으면서 한 손에 500ml 물병을 들고 걸었음에도 불과 한 시간도 채 되지 못하여 가진 물을 다 마시고 2시간 정도를 물 없이 걷는데도 목이 말라 죽을 것만 같았었다.
하물며 이들은 3일 동안 광야에서 물이 없었으니 그들이 겪는 고통과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후에 겨우 찾은 물이 써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물이었다.
그것이 그들을 더욱 화나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모세를 원망하며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마실 수 있느냐고 말이다.
광야의 인생길은 먹고 마시는 절박한 문제가 인생 전체를 참담하게 만든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홍해 기적의 기쁨도 잠시였을 뿐, 광야 길에서 겨우 얻었는데 먹지 못하는 물 앞에서 원망이 하늘을 찌른 것이다.
백성들의 원망을 듣고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는 그 쓴물을 단물로 바꾸시는 기적을 행하신다.
‘마라’는 쓰다는 뜻인데 그렇게 써서 도무지 먹지 못할 쓴물을 하나님께서 단물로 바꿔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쓴물이 단물로 변한 바로 그 자리에서 율례와 법도를 정하셨다.
이를 보면 마라의 기적은 단순히 단물로 바꾸는데 있지 않다.
이 기적을 통한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그 목적은 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쉐마에 있다.
말씀에 쉐마하면 애굽 사람에게 내린 질병을 하나도 그들에게 내리지 않으시겠다는 것이다.
사실 쓴물이 단물로 바뀐 기적 역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한 결과이다.
만약 모세가 하나님이 지시하신 그 나뭇가지를 보고 생각하기를 ‘이게 도대체 뭐라고!’ 하면서 던지지 않았다면 단물로 변했을 리가 없다.
이 기적은 광야의 한 나무 안에 들어 있는 어떤 신비한 물질이나 마술적 힘 때문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이다.
마라의 기적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시험(테스트)하셨다.
쓴물 앞에서는 원망하다가 단물 앞에서 감격하는 그들을 시험하신 것이다.
궁핍의 상황과 풍부의 상황 사이에서 부화뇌동하는 이들로 하여금 그들의 눈과 귀를 하나님께 향하게 하고 말씀에 쉐마 하게 하는 것을 원하신 것이다.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 시험에 합격하면 앞으로 수시로 닥칠 광야의 장애물에서 동일하게 하나님이 도우실 것이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만이 그들을 지키시는 보호자요, 고치시는 의사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길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거하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이다.
(시 25:10)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궁핍에 처하거나 풍부에 처하거나 우리가 항상 주님을 바라보면 우리의 발이 그물에서 벗어날 것이다.
(시 25:15)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이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궁핍에도 또는 풍부에도 처하게 하시지만 그 생명을 바라보는 자에게는 궁핍도 풍부도 넉넉히 수용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신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오늘 우리들은 이제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우리를 구원하신 주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
(고후 5: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이처럼 아들의 생명을 얻은 자는 자기가 원하는 길 곧 블레셋 사람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길 곧 홍해의 광야길로 가는 자이다.
문제는, 하나님이 정하신 길에는 궁핍과 풍부가 서로 교차한다는 것이다.
사흘 길을 가는 동안 물이 없어 죽을 것 같다가도, 주님의 공급하심으로 또한 채움을 받기도 한다.
궁핍할 때는 원망과 불평을 하다가 풍부할 때는 감사와 찬송이 나오기도 한다.
홍해 앞에서는 ‘우리를 죽이려고 데리고 나왔느냐?’고 모세를 원망하지만, 홍해를 건너고 난 뒤에는 그 모세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진솔한 삶이요, 또한 모습이다.
그런데 이처럼 궁핍과 풍부, 원망과 감사가 교차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신다.
여기서 시험이란 우리를 죽이기 위한 ‘템테이션’이 아니라, 잠시 넘어질지라도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여 믿음이 온전케 되는 연단의 시험인 것이다.
그것은 궁핍할 때나 풍부할 때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쉐마하며 사느냐, 하는 것이다.
모든 상황 속에서 말씀에 복종하는 자, 곧 영생의 삶을 사는 자는 하나님이 정하신 길을 바르게 가는 것이다.
그 길이 비록 좁고 협착한 길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마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오늘 내가 걷는 길이 비록 좁고 험하며 견디기 힘든 길이라 할지라도 육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거나 원망을 쏟아내지 말고 먹구름 뒤에서 태양이 빛나듯,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먼저 먹구름을 주신 하나님의 그 크신 인자와 진리를 믿고 주님의 얼굴만 바라며 나아간다.
그 이유는 내가 풍부에 처하거나 궁핍에 처할지라도 내게 능력 주신 주님 안에서 일체의 비결 곧 자족을 배웠기 때문이다.
(빌 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님의 뜻인 영원한 생명 곧 영생을 알기 전에는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대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순간순간 원망과 감사가 교차하는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요?
이런 나는 주님 앞에서 부끄러운 자요, 무능한 자임을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철저히 수렁에 빠져 헤매며 헤어 나오지 못하던 나를 주님의 십자가로 대신 속량하여 주시고 구원하셨사오니 이제는 나를 위하여 사는 자가 아니라 나를 위하여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나의 주를 위하여 사는 자가 되었나이다.
나를 가장 비참한 자리까지 몰아넣으셨으나 그 자리에서 믿음을 견고하게 하시고 믿음의 눈을 들어 주를 보게 하시오니 이제 그 고난과 참담한 자리가 찬송의 자리가 되나이다.
이제는 이런 원망과 감사가 교차하는 자가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주님의 언약을 믿고 날마다 감사로 나아가는 주의 종이 되게 하옵소서.
나의 인자와 진리가 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