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288장)
※말씀: 시편 42: 1-11절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1절)
■ 주님의 뜻
"만족한 영혼" 히포의 어거스틴은 "그러므로 영혼의 완전한 만족, 즉 행복한 삶이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는 그분을 정확하고 완전하게 아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갈증이 나서 입이 바짝바짝 마를 때, 우리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은 물입니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물 없이 버틸 수 있는 것은 겨우 며칠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목마름은 물을 마실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따라서 목마름은 우리가 살아있도록 도와줍니다. 또 다른 목마름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살아있도록 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영혼의 목마름입니다. 우리가 생명의 근원을 멀리 떠나 삶을 무미건조한 사막이 되도록 방치할 때, 이 영혼의 목마름을 느끼게 됩니다. 주위가 온통 모래투성이일 때,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영혼의 갈급함을 만족시켜주는 오아시스를 찾게 됩니다. 예수님은 목마른 자들을 자신에게로 초청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7:37). 오직 그분 안에서 우리의 영혼은 완전한 만족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그분의 영을 통해서 우리는 영원한 만족의 근원이신 그분을 정확하고 완전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좀 더 높은 단계로 우리를 인도하기 위해 어둠을 통과시키시는데 여기서 믿음으로 순종하면 깊은 신앙을 체험합니다. 이 어두운 밤에 기쁨을 잃게 되는데 이것이 영혼을 깨끗게 하는 과정입니다. 그럼 “영혼을 깨끗하게 하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겠습니다.
□ 은밀한 교만까지도 버려야 합니다.
신자가 자신의 신앙적 활동에 만족할 때, 은밀한 교만이 자리잡기 시작하는데, 그러면 가르침을 받기보다는 가르치기 좋아하고, 자기보다 영적이지 못한 사람을 정죄하고 멸시하는 바리새인과 같습니다. 마귀는 그들의 열정에 종종 불을 지펴 더 교만하게 만듭니다. 그러면 신앙 활동은 존중 받기 위한 동기가 되어버리기 쉽습니다. 또 죄를 회개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기보다는 내적 평안을 파괴하는 것뿐입니다.
□ 감정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이 성숙치 못한 자들은 탐욕을 갖기 쉬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경험 못한 것은, 성령님보다 앞서기 때문입니다. 또 보이는 것들을 과대평가 하게 됩니다. 바른 신앙을 가진 자는 하나님만 바라고 신앙체험은 일부분에 그치고 오직 성경 말씀 중심으로 나갑니다.
□ 영적 사치를 금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유혹을 경험하고 그 유혹을 막을 힘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유혹의 원인은 영적인 일들에서 얻은 육체의 쾌락입니다. 또 영혼을 훼방하고 동요시킨 마귀의 불순한 생각이 있습니다. 또 그 생각들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입니다. 조금만 방해를 받아도 정신이 산란해지고 낙심하게 됩니다. 하루만에 성인이 되려고 하는 것, 즉 영적 분노를 버리시기 바랍니다. 영혼이 영적 삶의 유익을 누리기 시작할 때, 갑자기 그것을 빼앗기면 그 영혼은 화가 나고, 기쁨이 사라지며 좌절하게 되는데 이런 실망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방치하면 악이 될 수 있습니다. 절제의 한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영적인 과식입니다. 영적인 달콤한 맛에 도취하여 자신의 삶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자신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그들은 복종과 오랜 금식과 뼈아픈 고행을 통해서 육신적인 것을 이기려고 합니다. 이것은 자기의지를 앞세우기 때문에 선보다 악이 되기 쉽습니다. 영적인 나태함은 영적인 기쁨이 사라지면 찾아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척도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척도로 판단하고 하나님께서 멀어집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42:1절).
■ 주님께 기도
하나님,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주님을 갈망하는 깨끗한 영혼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