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역사문)

11월 2일과 3일, 양일간 계명대학교에서 시행된 국제학술대회는 ‘동아시아의 고대 수리시설 비교’라는 신선한 주제로 열려 주의를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특히 ‘고대의 수리’라는 전문적 주제만을 선정해 중점적인 학술대회를 시행하는 것은 국내 학계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의미가 남달랐다고 여겨집니다. 논의의 대상은 주로 안동 저전리 저수지 유적의 발굴 1차 보고 내용과 상주 공검지, 영천 청제, 김제 벽골제였고 부차적으로 중국 남북조시대의 수리시설과 일본 고대의 수리시설에 관련된 연구 성과가 소개되는 방식이었습니다. 아직 연구성과가 심화되지 않은 부분이고, 고고학적 자료 역시 풍성하지 못해 미흡한 감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처음 시도된 부분인 만큼 그 나름대로 적지 않은 성과가 도출된 것이라 생각되며, 특히 중국 및 일본과의 비교는 상당한 시사점을 안겨 주었습니다. 이틀간 조용히 앉아 대회 내용을 듣고, 필기하며 수렴하기만 한 제 입장에서 더 이상 왈가왈부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에 발표 내용을 아주 간단하게 소개해 보겠습니다. 먼저 안동 저전리의 청동기 시대 저수지 유적 발굴 1차 보고는, 보고 내용이 사실로 받아들여질 경우 한국 청동기 시대의 저수지 축조 사례로 꼽힌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제 전공 분야가 아니라 학술대회 내용을 들은 대로만 옮긴다면, 아직 이 시기에 수리시설로 손꼽을 수 있는 사례는 없다고 하는군요. 저전리의 경우 계곡에서 평지로 지형이 변화하는 지역에 일차적으로 집수하기 위한 웅덩이가 존재하고, 그것을 원하는 방향으로 끌어가기 위한 수로를 파낸 흔적이 역력해 수리시설로 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합니다. 더욱이 3~4곳에 집중적으로 출토되는 토기파편(평균 15기 분량씩) 및 탄화곡물은 그러한 추정에 힘을 실어주는 근거라 하더군요. 그 외에 몇 가지 근거가 더 소개되었지만, 그런 내용은 직접들 찾아보시길...^ㅡ^; 둘째는 김제 벽골제에 관한 논의였습니다. 먼저 일본인 학자들이 벽골제를 저수시설이라기 보다는 해수의 역류를 방지하기 위한 방조제가 아닌가 추정한 사실이 무리한 내용임을 반박하는 것으로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뒤이어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축조의 주체는 백제로 생각된다는 줄거리였습니다. 다만 일부 학자들의 견해와 달리 4세기로 축조 시기를 소급하는 것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며(기본적으로 한성시기 백제의 영향력이 이 지역까지 확대되었을지 여부도 불확실하기에), 웅진 및 사비시기(6세기 단계)는 확실히 논의될 수 있다는 분위기였습니다. 한편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벽골제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의가 있었습니다만 신라 곳곳에 일반 명사로서 ‘벽골제’가 있었을 수 있다는 견해가 제시되었습니다.(사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셋째 상주 공검지 1차 조사 보고에 관련된 거의 ‘브리핑’ 형식의 논의였습니다. 경북문화재연구원이신 박정화 선생님께서 발표하셨는데, 화려한 파워포인트 실력으로 현재의 상황 및 가상 복원모습을 일목요연하게 보여 모두의 감탄을 자아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역시 사람은 배워야 합니다...^ㅡ^) 주목할 점은 제방을 쌓은 못 안쪽 일정 지역까지 나무 말뚝을 박고, 자잘한 가지들로 세밀하게 말뚝들을 묶어 제방이 침해되지 않도록 조치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 단계에 신라의 제방축조 기술에 부엽공법이 활용되었다는 것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이것이 백제 전용의 기술이 아님을 과감히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공검지 역시 아직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일부 피트조사만이 시행되었기 때문에 많은 부분이 불확실하다는 사실은 아쉬운 점으로 남았습니다. 넷째 영천 청제에 관련된 논의는 주로 배수시설(배굴리) 및 농업용수로의 활용가치가 주로 논의 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제방을 축조해 집수한 것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수시로 집수된 물을 빼낼 수 있는 배수시설, 즉 배굴리(수통)이 필요했으며 이 시설은 시기별로 점차 발전된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 주된 논지였습니다. 한편 농업생산성과의 관련성에 있어서는 발표자인 전덕재 선생님(경주대)과 토론자인 이영호 선생님(상주대) 사이에 견해 차이가 확실했는데, 전덕재 선생님은 비록 수전농업이 전국적 농업규모에서 차지하던 비중이 크지 않았음에도 농업기술상의 발전양상이라는 측면에서는 높게 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영호 선생님은 18세기 무렵까지도 전국적으로 확대양상을 보이지 못하는 배굴리의 보급을 굳이 강조하기 보다는 저수시설 자체의 전국적 보급을 이야기 하는 것이 더 의미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하셨습니다. 뭐...개인적인 감상에서는 두 분 다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보입니다...^ㅡ^ 둘째 날은 영천 청제비의 병진명, 정원명 검토에 관련된 내용이 첫 발표였는데, 부끄럽게도 제가 지각을 해서 듣지 못했습니다...^ㅡ^ 차후에 시간이 나면 개인적으로 읽어봐야겠습니다. 다섯번째는 중국 남북조시대의 수리시설과 농업에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자못 의미심장한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중국 서북지역의 농업 변화와 8세기대 약간의 기후변화 및 정치변동에 따른 인구이동 등 다양한 측면에서 종합적인 고찰이 이루어져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당나라 이후 중국은 수리시설만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던 관료가 존재했을 만큼 물에 대한 통제가 국가적으로 상당히 엄격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모습은 사실 저 뿐만이 아니라 자리에 함께하던 많은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ㅋㅋ 여섯번째 일본고대의 수리시설은 수리시설 축조에 관련된 고대인들의 의식구조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준 논의였습니다. 강의 흐름을 신의 의지로 파악하고, 이것을 막아 인간의 생존에 유리하게 조작하는 행위가 신의 분노를 살 수 있는 반역으로 인식되었다는 이야기는 신선함 그 자체였습니다. 또한 이 신의 분노를 삭히기 위해 벌이는 의례행위의 의미와 고대에서 의례의 가치를 논한 부분은 제 식견을 터주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제가 상당히 신선하고 또 학계에서 크게 다룬 적이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애초 성황을 이룰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계명대 사학과 50주년 기념행사로 준비된 것이라 광고활동이 크게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덕분에 아주 차분한 분위기에서 한편으로는 지루하게, 한편으로는 진중하게 여러 선생님들의 논의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은 대구에서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계명대학교 여학생들의 미모를 만끽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과연 명불허전이더군요. 우와~ 아무튼 이래저래 유익한 행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