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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12일
12일만에 3,000km 여정이다. 몸 상태가 너무 지쳐 있다. 어제 도착하여 시원한 맥주에 소주 한병을 집에서 먹었다. 조금 지나 배가 뒤틀리면서 아니 장이 꼬여든다고 할까. 화장실에 가서 20여분동안 속 앓이를 했다.
마지막으로 토하면서 어느정도 진정되어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지금까지도 속이 안 좋다. 아무튼 12일동안 3,000km 여정을 보낸다는 것이 무리였나 보다.
6월30일, 태백성아 소개로 파인밸리주중건을 하면서 양수손님을 삼척에서 9시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하였기에 답답함을 달래기 위해 동해바다와 일출을 볼 욕심으로 새벽2시에 출발하였다. 한강을 넘어 88도로를 타고 중부를 탈까하다. 춘천간 고속도로를 달렸다. 새벽녘 어둠속을 달리는 기분이 묘했다. 이번에 산 cd를 틀어 놓고 묵주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춘천을 지나 홍천에서 고속도로는 마감이되고 소양강을 지나 인제를 넘어 원통을 지나 동해바다로 가는 국도를 타기 시작했다. 인제를 넘어 내설악을 거치면서 희미하게 넘어가는 운무와 설악의 꼬부랑 길을 넘어갈 때에는 등이 오싹하는 기분이였다. 이런 곳에서 사람을 만난다면, 불의의 사고가 난다면, 아니면 짐승을 만나게 되면 어찌될까.
별의별 생각에 식은 땀이 흘러내린다. 새벽 3시30분경 어둠속에 한가락 불빛이 다가온다. 한계령 휴게소의 가로등이다. 쉬어갈까 하다 바로 양양으로 향했다. 그래도 내려가는 길은 올라가는 길 보다는 조금 편하다. 양양을 지나 바닷가로 향하니 철조망으로 다가 갈 수가 없다. 결국 하조대 해수욕장에서야 바닷가를 접할 수 있었다.
새벽 4시50분경, 주차장에 세우고 백사장을 가로질러 흰물결로 다가오는 바닷물을 만져보았다. 시원함이... 졸음이 달아나 버린다. 바위에 올라 지나가는 고깃배의 불빛을 보며 일출을 기다렸지만, 흐린 날씨 덕분에 일출은 볼 수 없었다. 어둠이 물러가면서 서서히 날이 밝아온다.
동해 고속도로가 주문진 현남에서 종점이였건만 하조대 ic.가 생겨 바로 동해 고속도로를 탈 수 있었다. 주문진을 지나 강릉에 다다르면서 영동고속도로 접하는 곳을 지나 옥계를 지나면서 망상 해수욕장을 지났다.
여전히 흐린 날씨 때문에 동해바다의 웅장함은 볼 수 가 없다. 그저 희미한 바다만을...
동해를 지나 삼척에 진입하기 전, 삼척mbc 앞으로 해서 해안도로에 접어 들었다. 내가 즐겨 찾는 해안도로이다. 바로 새천년도로이다. 천천히 창문을 열어 놓고 달리다. 조각공원이 들어선 마린테크에 잠시 주차하여 바닷가를 바라보았다. 잔잔한 바다에 투명하게 보이는 바닷물 속 바위까지 역시 동해안의 바다는 서해바다와는 완연히 다르다.
조금 더 가 소망의 탑에 들려 디카를 찍고 삼척항으로 내려가면서 보니 건어물 가게들이 문 연 곳이 없다.
너무 이른 시간이란 것은 알지만, 허름한 식당에 들어가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나오니 한 곳이 문을 열었다. 반 건조 오징어 한축과 마른 오징어 한축을 장만하니 마음이 흐믓해 진다. ㅋㅋㅋ
아직도 아침 7시 밖에 안 되었다. 약속시간까지는 2시간이 남아 삼척온천으로 향했다. 사우나에서 지친 몸의 피로를 풀고 9시 손님을 만나 서류작업을 마치고 근덕의 파인밸리 골프장으로 향하면서 바라다본 맹방 해수욕장의 기나긴 백사장도 오늘은 그리 아름답지가 않다.
흐린 날씨 덕분에 모처럼 찾은 동해 바다의 아름다움을 만끽 할 수 가없다. 내 어지러운 머리와 복잡한 마음을 동해바다에 털어 버리고 가려 이렇게 새벽에 고생을 하며 달려 왔건만 바다는 희미하게 나에게 다가온다.
파인밸리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정석대로 동해고속도로에서 강릉에 다다르며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호법까지 가 중부타고 돌아가려던 마음이 변해 원주에서 홍천으로 달렸다. 차가 막히는 것도 있었지만 그냥 다시 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싶었다. 새벽의 어둠을 지나쳐 왔기에 풍경 구경을 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고 싶었나 보다.
88에 진입하면서 동호대교를 넘어 사무실에 들어서 주차장에 파킹하니 890km의 거리를 달렸다. 새벽 2시 출발하여 사무실에 돌아온 오후 5시까지......
7월4일, 마리아의 학기말 시험 기간이 들어있어, 일요일 귀교시에 학교까지 데려다 주고나서 광천으로 향하는 계획을 리나에게 말하니 혼쾌히 ok한다.
집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고 하여 점심 먹고 나서 바로 출발하였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청주에서 빠져 조치원 방향으로 가다 청주역 쪽으로 우회전하여 옥산쪽으로 학교에 도착하니 3시가 조금 넘었다.
마리아를 학교에 내려주고 우린 오송단지를 거쳐 조치원으로 그리고 정치권으로 뜨거운 감자로 언론을 장식한 세종시 허허벌판을 지나 공주로 그리고 국도로 가기 싫어 대전 당진간 고속도로를 타고 예산에서 내려 홍성으로 향하는 국도를 타고 광천으로 향했다.
차안에서 내일 새벽 온천 가는 것보다 지금 가는 것이 좋겠다는 리나의 생각이지만 워낙 어머님은 남들이 들어가지 않은 깨끗한 탕이 좋다면서 항상 새벽에 가시는 것을 좋아하셔서 망설이고 있던 차에 집 근방에 도착 무렵 슈퍼 앞을 지팡이를 짚고 아주 천천히 걸어가시는 어머님의 뒷모습이 보인다.
리나에게 빨리 내려 어머님 모시고 바로 온천에 가자하고 리나를 내리게 하니, 어머님이 놀라셔서 차에 타신다. 어머님은 갑자기 내려온 우리 부부에게 할 말을 잊으시고 온천에 가자고 하시니 알아서 하시라고 한다.
그래서 우린 다시 덕산 온천으로 향했다.
3시간의 온천으로 나의 몸은 어느 정도 가벼워졌다. 광천집에 와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월요일 출근을 위해 새벽에 떠나야하기 때문에,...
어머님은 새벽에 떠나는 우릴 위해 새벽밥을 준비하시고 4시에 우릴 깨운다. 아무튼 대단하신 우리 어머님이시다. 96세에도 홀로 생활하시는 불쌍한 우리 어머님,
아침밥을 아니 새벽밥을 먹고 광천을 출발하여 서해안을 타고 집에 들려 리나와 어머님이 주신 마늘과 잡다한 양념을 내리고 사무실에 출근하니 7시30분이 되어간다.
나의 애마는 이번에도 510km의 여정 을 무리없이 잘 달렸다.
7월9일, 어제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걸려온 전화로 비상이 걸렸다. 중앙회에서 대출 받은 것이 내일로 만기가 되었으니 상환 하던가 연장하라는 전화였다.
평상시 같으면 보름 전에 안내 공문이 왔었는데, 그런 공문도 없이 나도 깜빡하고 잊어버리고 있던 차에 내일이 만기라니, 어이가 없어 한참을 망설이다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였다.
결국 저번처럼 전남 광주지점에서 보증인 자필 서명을 하고 월요일 나머지 서류를 제출하는 것으로 정하고 강진에 계신 형님에게 전화를 드렸다.
인감도장은 영종도에 있고 형님은 강진에 계신 관계로 금요일 점심 무렵에 강진에 도착하여 형님을 모시고 광주에 가서 자필 서명하고 영종도 댁에 모셔다 드리고 인감도장을 가지고 와서 월요일 처리하는 것으로...
금요일 새벽 2시40분에 일어나 오징어를 준비하고 음료수를 준비하여 3시에 서울을 출발하였다.
전 날 오후에 지도를 보고 순천으로 향하는 고속도로가 공사 중이라 한 번도 안 가 본 해남의 땅끝 마을을 가기로 마음속으로 결정 하였다. 요즘 한가한 사무실일로 겸사하여 머리를 식힐 겸 울적한 마음도 풀겸 남해안 바닷가를 보기로 하였다.
서부간선도로를 타고 서해안 고속도로에 들어서 광천을 지나고 군산도 지날 무렵 쏟아지는 졸음이 감당이 안 된다.
결국 고창 가기 전 고인돌 휴게소에 들려 주차하고 잠을 청하였다. 아침 6시 울리는 손 폰에 잠을 깼다. 나올 때 잠자는 리나를 깨우지 않고 그냥 나왔는데 일어나 보니 내가 없다고 리나가 전화를 했다. 졸려서 휴게소에서 자고 있다고 하니 괜히 전화 했다고 하면서 잠을 더 자게 할 것, 하면서 미안해 한다. 화장실을 다녀와 고창에 가기 전에 상주간 고속도로 갈림길이 나온다.
아니, 분명 어제 지도상으로는 공사 중이라 개통이 안 된 걸로 알았는데 어느새 개통이 되었나 보다. 해남의 땅끝 마을은 어느새 달아나 버리고 순천행으로 자동적으로 핸들이 돌아 간다.
아기천사 수녀님이 계신 순천으로, 순천으로 가신지 6개월이 지났다.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순천, 담양 순천간 고속도로를 달리며 다시 쏟아지는 졸음에 순천 휴게소에서 20여분 잠을 청하였다. 순천에 도착하니 7시가 조금 넘었다.
병원 근무시간이 9시가 넘어야 하니, 무얼 할까 망설이다. 사우나 행을 포기하고 순천만 습지로 향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습지, 언론이나 티브이에서 보던 순천만 습지를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시내를 통과하여 생태공원 주차장에 주차하고 디카를 들고 갈대숲을 향했다. 어마어마한 갈대의 무리, 그리고 그 안에 생존하는 생물들, 갯벌의 바닷물을 따라 흐르는 누런 물결, 다듬어진 판자 나무 길, 초록으로 물들어진 갈대들이 바람결에 따라 소리 짓는 야릇한 소리에 울어대는 이름 모를 새들의 합창,
정말 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어찌 표현 하리, 남해의 바닷가 쪽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도중에 돌아서야 했다.
화장실을 가고픈 아픈 배와 시간 관계로..... 순천시내를 통과하면서 병원을 찾아보아도 도저히 찾질 못하였다. 겨우 시내 외곽의 병원을 찾아 주차하고 프론트에서 원무과를 찾으려고 하니 열린 문 사이로 하얀 수녀복의 수녀님이 눈에 들어온다.
수녀님 하고 부르니 돌아보시며 놀라운 표정의 수녀님을 보니 나 역시 무척이나 반가웠다. 어제 저녁기도 시간에 우리 가족을 생각했다는 수녀님 말씀에 더욱 반가운건 나만의 감정일까,
수녀님과 그동안의 이야기를 하다, 미국으로 이민 간 방지거 이야기가 나와 미국의 방지거에게 전화해 수녀님과 통화하게 하였다.
사무실에 퍼지는 수녀님의 큰 통화 목소리 때문에 수녀님께 조용 조용 이야기 하셔도 된다고 눈짓을 하니 그제서야 평상시 톤으로 통화를 하신다.
통화가 끝나고 수녀님 하신 말씀이 걸작이다. 미국이라 잘 안들 것 같아 일부러 큰소리로 통화 했다고 하시면서 근처에서 통화하는 것처럼 너무나 잘 들린다는 말에 한바탕 웃고 말았다.
수녀님의 배웅을 받으며 병원을 뒤로 하고 강진으로 출발하였다.
벌교를 지나면서 꼬막을 생각하고 보성을 지나면서 초록무리의 녹차 밭을 그려보았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녹차 밭이 보고 싶었지만 이젠 지체할 시간이 없어 그냥 달리기 시작하였다.
11시50분 사무실에 도착하여 전화드리니 바로 올라갈 준비를 하신 모양이다. 가방을 들고 나오신다. 점심을 무얼 먹을 까 하시길래, 준비하고 나오셨으니 올라가면서 먹으면 안될까요. 하니 그러자고 하신다.
영암으로 해서 나주를 거치면서 영산강 뚝 먹거리촌에서 장어 먹은 기억이 나 그곳에 들리니, 장어가 아닌 홍어집 천지이다. 점심에 홍어를 먹기에는 이상해, 다시 광주를 향해 달리면서 도로 옆 식당들을 찾아 보아도 적당한 곳이 없다.
결국 광주에 들어서 형님에게 미안한 마음에 점심 먹을 식당을 찾았다. 장어구이집, 시간은 1시가 넘어서고 있다.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넘어가는 소주에 장어는 일품이다.
이곳이 인천이나, 서울이였으면 얼마나 좋을까나 타령하면서 소주를 3병이나 먹었다. 물론 형님이 나보다는 많이 드셨지만....
도천동 사무실에 들려 서류 확인을 마치고 봉인한 서류를 들고, 광산ic에 진입해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인천으로 향하였다. 형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오다보니 어느사이 형님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천안 논산간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조금 올라오다가 대전 당진간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졸음껌을 씹고 음악을 들으면서 쏟아지는 잠을 참아내면서 잘도 달린다. 서해안고속도로에 진입하여
서해대교를 넘어서니 차량 정체가 시작된다. 고속도로 안내 통화를 해보니 매송까지 정체가 이어진다. 워낙 정체가 심한 곳이라 생각을 하였지만, 이 정도인줄은 몰랐다. 정체가 이어지니 졸음이 날 더 괴롭힌다. 시원하게 달리면 졸음도 달아나지만 정체가 이어지니 졸음이 쏟아진다. 할 수 없이 화성 휴게소에 들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며 형님이 건네주는 커피 한 잔으로 잠을 털어버리고 다시 달리기 시작하였다.
비봉을 거쳐 매송까지 정체에 정체를 거듭하면서 서서울 톨케이트를 나서니 한결 흐름이 좋아진다. 목감ic에서 이번에 개통한 제3경인고속도로를 타니 바로 송도 신도시로 이어진다. 이어서 인천대교에 들어서게 된다.
인천대교 요금소를 나오면서 이번 버스사고 지점을 쳐다보니 바리케이트만 쳐저 있다. 고장 난 마티즈로 인한 인천대교에서 첫 사고가 대형사고로 이어진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사고 지점을 쳐다보다 내가 나갈 용유도 갈림길을 지나쳐 신도시 쪽으로 들어서며. 결국 형님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아파트에 도착하여 어머님께 인사드리고 베란다를 통해 내려다 보이는 인천대교와 송도 신도시는 그저 희미하게만 보인다. 차려준 저녁식사를 하고 다시 신공항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향하였다.
방화대교를 넘어 강북강변을 타고 마포대교로 해서 집으로 향하다가 리나 학원 끝날 시간이 되어 가길래 종로2가 학원 앞으로 향했다. 20여분정도 갓길에 주차하고 밤새 달려 범버와 헤드라이트와 백 밀러에 부딪혀 죽은 수 백 마리 벌레들의 뒤처리를 물티슈와 먹다 남은 생수로 닦아내면서 시간을 보냈다.
종로2가에서 리나를 태워 집으로 돌아오니 10시 되어간다.
새벽3시에 출발하여 밤 10시이니 19시간만의 귀환이다. 그리고 나의 애마는 이번에도 1,170km의 긴 여정을 무사히 마쳤다.
7월10일, 마리아 학교의 년 중 행사인 가족캠프에 참석하기 위해 오전 10시에는 떠나야 하는데, 도로 사정과 정체를 생각하여 리나에게 미리 떠나자고 졸랐다. 어제 19시간의 운전과 1,170km의 여정으로 몸은 피곤하지만 주말 정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떠나자고 한 것이다.
일찍 도착하여 보은에서 사우나하면서 쉬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면서 목욕 준비하라고 하니 순수히 따라 나선다.
이렇게 아침 8시에 출발하였다. 전날의 피로로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가족캠프는 1년 계획안에 있는 행사라 불참 할 수 도 없고, 전 날 10시 도착하여 바로 잠을 청해 잠을 잤기에 어느 정도 피로는 풀렸다.
아침시간이라 경부고속도로 차량 흐름은 원만하게 달려간다. 청주를 지나 남이분기점에서 상주간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처음 타보는 고속도로이다.
이번에 돌아다니면서 보니, 처음으로 접하는 고속도로가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보은ic에서 빠져나와 보은 읍내로 들어서니 아침 10시가 되어간다. 사우나를 찾으려 읍내를 한 바퀴 돌고 두 바퀴 돌면서 겨우 목욕탕을 찾았다. 12시에 만나기로 하고 사우나에서 잠을 청하려고 했던 마음은 달아나고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하며 시간을 보냈다.
30분 일찍 나와 아까 읍내를 돌며 본 보은 성당 간판을 찾아 성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성당에서 미사가 진행중이다. 아니 토요일 11시 미사가 있었나보다. 성당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을 돌면서 프란치스코 교육관을 돌아보고 성당을 나와 버렸다.
목욕탕 앞에서 리나를 만나 읍내에서 식사 하자는 것을 무시하고 속리산으로 향했다. 왜냐하면 분명 속리산으로 향하는 도로 변에 한적한 식당이 있을 것 같아 속리산으로 향한 것이다.
한가한 시골 풍경을 접하면서 속리산 입구까지 왔지만 찾던 식당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결국 국립공원 입구 주유소 부근 기사식당으로 들어갔다.
청국장과 올깽이 백반이란 메뉴판이 보이길래 그냥 들어선 것이다. 도투리묵과 올깽이 백반을 시키고 보은 특산물인 대추 막걸리 한 병을 시켜 리나와 푸짐한 점심을 해결 하였다. 식당의 겉 모습과는 다르게 음식이 맛이 있다. 리나와 나는 완전 배불리 먹었다.
식사 전, 후 기도 하는 모습을 보고 계산 할 때에 주인 아저씨가 자기들도 교우라고 하면서 반가운 표정을 지으신다. 읍내에서 보은 성당에 들렸다고 이야기 하니, 속리산 공소가 있다고 하신다. 당신들은 공소에 다니신다고 하신다.
정이품송을 지나 속리산 유스타운에 도착하니 오후 2시가 되어간다. 조그만 공터에서 미리 도착한 학생들이 앉아 숙소 배정을 받고 있다. 마리아의 도움으로 숙소에 짐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 입었다.
작년과는 달리 이번에 학생들은 학생끼리 부모들도 아버지는 아버지끼리, 어머니는 어머니끼리 숙소를 배정 하였다. 우리 방엔 9명이 배정되어 있다.
이젠 1년 반이 되었기에 얼굴들은 알지만 서로 대화의 장이 없었기에 난감하였다. 물론 1달에 한번 있는 학부모 회의와 5월 체육대회가 있지만 난, 거의 참석하지 않기에 그들과의 대화가 없었던 것이다.
서로 안면이 있고 서로 친한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이야기 하지만 난 참 어색한 분위기에서 난감했다. 이런 내 모습에 리나와 마리아의 지적을 받았지만
지쳐 있는 내 몸 상태에서 억지로 다가가 웃고 떠들고 이야기 하기엔 내 성격이 문제였다. 사람 사귀는 것이 좀 까다로운 나이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였다.
이런 상태로 저녁 무렵 식사 후 만남의 장으로까지 이어지는 자리에서 휴식 시간에 잠시 차에서 물건을 꺼내러 주차장의 차에 오니 뒷좌석 바퀴가 주저 앉았다. 뻥쿠가 난 것 같다. 난감하다. 한번도 타이어를 교환해 보지 않은 나이기에 당황스럽다.
그렇다고 이 상태로 정비업소를 찾아 갈 수도 없다. 벌써 어두워졌고 이곳은 속리산 국립공원 안이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차 보험회사에 전화 하였다.
ARS로 넘어가는 답변 속에서 위치 파악을 자동적으로 하고 내 신상이 파악되고 조금 후에 모르는 핸드폰 전화가 울린다. 강의실을 빠져나와 전화를 받으니 보험사에서 전화가 왔다.
보은이라고 하면서 30분 안에 오겠다고 한다. 난 미안한 마음에 이곳에서 1박을 할거니 내일 오전에 오셔도 된다고 하니, 그래도 오겠다고 한다. 난 고맙다는 말을 하고 기다리니 25분이 지난 무렵 다시 전화가 온다.
모임에선 캠프화이어를 하기 위해 광장으로 몰려가고 난 주차장으로 향했다. 보험사 차량의 헤드라이트로 불을 밝히고 타이어를 점검하여 빵쿠 처리를 하였다. 그 사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빵쿠처리 비용을 드리고나니 마음이 이렇게 가벼워지며 안도의 긴 한숨이 흘러 나온다.
우산을 쓰고 캠프 화이어 장소로 가니 이미 흥이 넘치며 분위기는 최고조에 올라 있다. 도중에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주변에서 구경만 하였다. 마리아는 제일 신나 잘도 놀고 있다. 반면 리나는 주춤거리며 어색한 모습만 보이고 있다.
상대방과 엉덩이 부딪히는 장면에서 그냥 서 있다. 상대방 아버지는 신이나 부딪히려 하지만 리나는 그냥 서있다. 혼자 웃고 있는 사이 빗방울이 더 굵어진다. 그러자 사회자가 중지하면서 다음 장소인 식당의 만남의 시간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리나와 우산을 쓰고 식당에 가니 한쪽은 아버지무리가 어울리고 있고 한쪽은 아이들, 한쪽은 자매님들이 모여 있다.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고 평소 대화 했던 자매님이 리나를 불러 나도 그쪽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푸짐한 음식들이 있지만 내 자리는 어색하다. 어머니들과 어울려져 있는 이 자리에 혼자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앞에 놓인 족발에 치킨에 회무침에 과일과 막걸리가 나에겐 그림의 떡이다.
도저히 있기가 민망해 하던 차에 써빙하던 자매님이 서성거린다. 자리가 없어 난처한 자매님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난 숙소로 향했다.
나 홀로 숙소에 들어와 9명의 이부자리를 다 깔아 놓고 한 구석에서 홀로 잠을 청하였다.
주변의 떠드는 소음으로 쉽게 잠이 오질 않는다. 이렇게 밤 11시, 12시가 넘어가도 방에 들어오는 사람이 없다. 홀로 소외된, 아니 왕따된 분위기 속에서 앞 숙소에서는 떠드는 소리는 더 커지고, 새벽 1시가 넘어서니 한 두명이씩 들어온다. 이렇게 마지막 사람은 새벽4시가 되어서도 들어온다.
선 잠에 어렴풋이 잠을 잔 나는 새벽 5시 리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산책 가자고, 어제 일어나 문자를 달라고 하였기에 3번의 문자를 보내자 일어났다고 하며 조금 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다. 리나와 숙소를 나와 법주사를 향해 레이크힐스속리산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우산을 쓰고 법주사 입구에 가니 입장료 3천원을 받는다.
리나는 비님 때문인지 자꾸 춥다고 하고 망설이다. 포기하고 내려와 정이품송까지 갔다. 바로 건너편 연꽃이 만개한 인공 연못에서 사진을 찍고 숙소로 돌아왔다.
아침 식사가 8시 이기애, 리나는 잠을 더 자겠다고 한다. 난, 방에 들어와 긴 바지와 긴 소매 옷으로 갈아 입고 다시 법주사로 향했다. 우산을 들고 고목들의 터널을 지나 법주사에 도착하여 운무에 가린 산들과 어우러진 법주사의 이모저모를 디카에 담고 숙소에 돌아오니 아침시간이 되어간다.
식당으로 향하니 리나는 아직 오지도 않고 마리아는 아침을 안 먹는다고 하고 아침 식사도 나 혼자 먹어야 했다. 다른 테이블은 대화하며 옹기종기 모여 식사 하건만, 참으로 내 모습이 어색한 분위기이다.
오전 프로그램을 마치고 교장신부님 주례로 주일미사를 드리고 나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니, 오후 3시에 출발한다고 한다. 가랑비는 여전히 내리고 삼삼오오 무리지어 개별 행동을 하고 한쪽에서는 축구가 시작되었다.
몇 몇 가족은 개별적으로 출발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리나와 마리아에게 의견을 물으니, 출발해도 좋다고 한다. 마리아는 반장이기에 부반장에게 이야기 하고 온다고 하고, 리나도 학부모 총무에게 인사하고 온다고 하며 숙소로 들어간다.
난 짐을 정리하고 차장의 빗방울들을 닦아내며 출발 준비를 하였다.
유스타운을 오후 1시에 출발하여 청원 상주간 고속도로 속리산 ic에 진입하였다. 일요일 오후 시간이지만 고속도로는 한적했다. 마리아 학교에 도착하여 다음 주 방학이기에 기숙사 짐들을 차에다 실었다.
학교에 혼자 남는 마리아 걱정을 하는 리나 때문에 잠시 학교에서 시진을 찍으면서 보내다. 출발하였다.
캠프에서 돌아오는 팀들이 이따 저녁 식사를 학교 근방에서 한다고 하니 친구에게 연락하여 택시타고 나가 저녁 먹고 들어오라고 당부 하고, 병천을 지나 목천ic에 들어서 조금 지나오니,
천안 논산 고속도로가 합치는 부근 가기 전에, 차가 그냥 서있다 싶이 한다. 고속도로 상황실에 전화해 보니 안성까지 정체란다. 그리고 수원에서도.......
그냥 포기하고 천천히 정체 흐름에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불안 해 하는 리나 때문에 마리아와 서 너 번 통화 하면서, 샤워하고 밀린 빨래하고 있다. 학교에 오신 다른 학생 부모님 차로 저녁 식사 장소에 도착 했다고 한다.
이제야 안심하는 리나를 보니 안심이 되지만, 심해지는 정체로 오산을 지나면서 동탄 봉담간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이 고속도로도 처음으로 타 보는 것이다. 봉담에서 과천으로 이어지는 고속화도로는 차량 흐름이 원만하다.
과천에서 남태령을 넘어 동작대교로 해서 집에 도착하니 오후 5시가 되어간다. 일요일 오후 시간대의 교통 상황으로는 그런데로 정체없이 잘 도착 한 것 같다.
마리아에게 아빠 도착 하였다고 전화하니 벌써요 하면서 놀라는 표정을 짓는 모습이 전화기 속에서 보이는 것 같다. 이렇게 마리아 학교 캠프 행사도 나의 애마는 420km의 여정을 무사히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6월30일부터 이어진 12일 동안 나의 애마는 무려 3,000km의 여정을 소화해 냈다. 내 몸도 몸이지만 믿음직한 나의 애마가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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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 읽어보기도 힘드는 곳을 다녔구만 젊음이 쭈우타 건강도 쭈우타.....
첫 날은 신나서 서소문님 뒤를 살살 따라 다녔어요~~ 눈도 한숨 붙이지 않고 ~~ 다음다음 부터~~ 아이고 ! 힘도 좋으셔라~~이 누님 지쳐버렷으라~~여행은 자다가 말다가 잘 따라다녔는데 혹시 몸살? 은 으메 기죽어!~~~
이 글 올린것 보고 바로 조금 읽다가 오늘에서야 보는데 오늘도 다 못보고 꼬리나 조금
고 낼을 약속해야지 하여튼 글솜씨며 체력이며 넘 대단해서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