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오름, 곶자왈, 마을, 밭 등을 자연스레 넘어가듯 볼 수 있다
서우봉만 넘어나면 모든 구간이 평탄하고 대체로 완만한 편이다.
아름다운 모습들이 펼쳐지는 이 길에는 제주의 진면목이 담겨 있다
너븐숭이에서 애처롭고 슬픈 애기무덤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삼춘...나이든 남자 어른이나 여자 어른을 뜻하는 제주어
조천 만세동산을 시작으로 신흥, 함덕, 북촌, 동복을 거쳐 김녕으로 이어지는 19.4km의 길이다.
조천 만세동산
제주 항일운동의 현장인 조천만세동산 정문에 다시 섰다.
제주 근현대사의 아픈 역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관곶
조천포구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곶(串)이라 하여 ‘관곶’이라 했다.
제주의 울돌목이라고 할 만큼 파도가 거세 배가 뒤집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한반도의 끝자락인 해남 땅끝마을과 가장 가까운 곳이기도 하다.
그의 바닷가 등대에는 한 번씩
불이 켜지지 않을 때가 있다
캄캄한 그의 몸속은 앞뒤를 분간할 수 없는
무수한 어둠의 길들이 물결로 번지고
그 길은 이내 내게로 달려온다.
나는 나에게 상륙하여 출렁거리고 있는
그 길바닥에 우두커니 주저앉아 있거나
고독한 가로수처럼 그에게서 피어나는
파도의 숲 속을 헤치며 무작정 걷기도 한다.............................................배기환 <등대> 부분
신흥리 백사장
신흥리 마을에 오목하게 들어앉은 넓은 백사장이다.
썰물 때에는 백사장 전체에 물이 모두 빠져 장관을 이룬다.
만조 때는 어른 키보다 깊게 물이 들어와 맑고 투명한 물빛이 신비롭다.
신흥리 방사탑
신흥리 백사장에는 두 기의 방사탑이 세워져 있다.
방사탑은 마을의 액막이를 위해 쌓는 돌탑이다.
곶부리 쪽의 방사탑은 오다리답, 안쪽에 있는 것을 생이답이라고 부른다.
밀물 때에는 탑의 아랫부분이 물에 잠긴다.
제주대 해양과학연구소
신흥리 해변을 지나면 내륙으로 들어간다
제주대학교 수산학부 해양과학연구소를 지나간다.
우리나라 연근해의 해양 및 수산에 관한 기초연구를 하는 곳이다.
함덕해수욕장
바로 옆에 선 서우봉 덕분에 ‘함덕서우봉해변’이라고도 불린다.
제주공항에서 불과 20km 떨어져 있어 접근이 용이하다.
이곳에 도착하는 순간 다른 마치 나라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얼마나 아파야 꽃이 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순결해져야 울음이 될 수 있을까
그리움 하나로
새들은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강물은 뿌리까지도 남김없이 온몸
바다로 가 닿네
돌아오지 않는 사랑 앞에서 날마다 가난한 마음으로
푸른 등을 내거는 별들.......................................................................................................이상윤 <그리움> 부분
서우봉 가는 길
올레길은 함덕해수욕장에서 서우봉으로 이어진다.
물소가 뭍으로 올라오는 형상이라 하여 예부터 덕산으로 여겨져 왔다
그림 같은 함덕해수욕장을 내려다보며 오르는 길이 꿈길 같다.
서우봉 산책로
서우봉 산책로는 함덕리 청년들이 낫과 호미만을 가지고 조성한 길이다.
산책로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함덕해수욕장이 이국적이다.
서우봉(犀牛峰, 111m)
물소가 바다에서 올라가는 모습을 본떠 한자 표기인 서(犀)와 우(牛)를 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이 서우봉의 바다와 접한 절벽에 군기지를 세우기도 했다.
서우봉은 4.3사태 당시 군인들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곳이다
해동포구
조천읍 북촌리 해동마을에 위치해 있다.
함덕 서우봉 동편 해안가 기슭에 위치한 조그마한 포구다.
아늑하고 자리잡고 있는 소박한 어항이 지극히 편안해 보인다.
너븐숭이 4.3 기념관
북촌리는 4.3항쟁 당시 가장 큰 피해를 당한 마을이다.
1949년 1월 17일, 군인들이 가옥 대부분을 불태웠고 주민 300여 명이 학살당했다.
기념관은 이러한 마을의 아픈 역사를 전하고 있다.
'너븐숭이'는 참 예쁜 말이다.
'넓은 돌밭'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애기 무덤
너븐숭이에서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것은 길가에 있는 애기무덤들이다.
대야만한 크기로 동그랗게 현무암을 둘러놓은 것이 전부이다.
그 애처롭고 슬픈 풍경에 가슴이 미어진다
순이삼촌 문학비
현기영은 4·3 사건을 최초로 다룬 작품 <순이삼춘>을 썼다.
4·3 사건 언급 자체를 할 수 없었던 제4공화국 시절에 발표했다.
작가는 고문과 금서 조치를 당하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이 작품을 계기로 4·3사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소설의 문장들이 새겨진 수십 개의 장대석이 널부러져 있다.
마치 북촌리 학살 때 시신들이 쓰러져 있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유홍준 교수는 '제주도에서 본 가장 진정성이 살아있는 기념 설치물이다'라고 했다.
북촌리 환해장성
환해장성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축성했다.
바다로부터 오는 적의 침범을 막기 위한 시설이었다.
환해장성은 이곳과 동쪽으로 500여m 지점에 일부가 남아있다.
폭낭은 '팽나무'를 이르는 제주 말이다.
제주에서 폭낭은 마을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마을에서 가장 큰 나무일뿐만 아니라 마을의 신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가히 마을 공동체와 함께 해 온 마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북촌리 등명대(도댓불)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도댓불이다.
민간인들이 만들어 포구에 세웠던 등대를 말한다.
밤에 조업을 나간 어선들이 항구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세웠다.
불을 켜는 연료는 생선 기름이나 솔각을 쓰기도 했다.
다려도(달여도)
북촌포구에서 약 400m 정도 떨어진 이 무인도는 서너 개의 바위로 이루어졌다.
천연기념물 제327호 원앙이 해마다 겨울에 수천 마리가 찾아든다고 한다.
섬의 모양이 물개를 닮았다고 해서 한자로는 달서도(獺嶼島)라고 쓴다.
4.3 당시 일부 북촌 주민들이 토벌대를 피해 다려도에 숨기도 했다.
점심 식사
북촌포구 앞에 있는 <달마야 해물탕>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메뉴는 간장게장정식과 옥돔구이정식이었다.
제주의 손맛이 살아있는 토속적인 음식이 맛깔스러웠다.
북촌포구
식당에서 나와 작은 목책교를 건너면 북촌항이다.
제주 4.3사건의 아픈 기억과 해안의 고즈넉함이 공존하는 포구다.
북촌마을은 4.3당시 인명 피해가 가장 많았던 곳이라고 한다.
솔숲길을 걷다
이제부터 바다를 버리고 솔숲길로 들어간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우거진 길에는 솔향이 짙게 배어있었다.
벌러진동산
두 마을로 갈라지는 곳이라고 해서 '벌러진동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나무가 우거져 있고,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넓은 공터가 있다.
아름다운 옛길이 남아있는 아늑하고 편안한 지역이다.
무덤에서의 휴식
이름 모르는 누군가의 무덤에 앉아 쉬어갔다.
무덤 주위를 둘러쌓은 돌담을 '산담'이라고 한다.
무덤이 망자의 집이라면 산담은 망자의 집 울타리인 셈이다.
김녕 농로
김녕은 ‘넉넉하고 편안한 마을’이라는 뜻을 가졌다.
하늘에서 바라본 모습이 평(平) 자 모양을 하고 있어 ‘김녕’이라고 불리운다.
김녕 농로의 양쪽에는 양파가 풍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남흘동 폭낭
종점이 가까워지자 우리들은 점점 지쳐갔다.
남흘동의 폭낭 아래에서 마음껏 쉬었다.
거센 바람도 견디어내는 폭낭은 제주정신의 상징이다.
제돌이 방류 기념탑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는 제주 바다에서 포획돼 불법으로 쇼에 이용되었다.
제돌이는 2013년 7월 바다로 방류되었다.
이를 기념하는 탑이 19코스 종점 인근, 김녕항에 세워졌다.
제돌이의 방류는 한국 사회에 동물복지라는 화두를 던져주었다.
김녕서포구
김녕서포구에서 19코스가 끝나고 20코스가 시작된다.
김녕은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될 만큼 지질자원이 유명하다.
<늘봄흑돼지>로 이동하여 제주의 마지막 밤을 맘껏 즐기었다.
첫댓글 복자 김기량 펠릭스 순교 기념관이 있는 조천성당은 올레길에서 350m, 복자 김기량 펠릭스 순교 현양탑이 있는 성지는 함덕해수욕장 올레길에서 750m 거리에 있는데 들리지를 못했군요. 에구~ 안타깝습니다.
하루에 20km 가까이 걸어야 했으므로 코스에서 벗어나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나중에 성지순례는 따로 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