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그친날 오후 서울의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내 대학병원에서 수술 날자를 잡았다는 것이었다.
그는 30년 넘게 연락이 없다가 올해들어 몇차례 전화를 주고받았다. 몸이 아픈데 수술은 해야겠고, 가정도 해체되어 생활도 어렵다고 하였다. 삶은 의무라지만 다짜고짜 준비안된 중생에게 책임만 지우는 것도 신이 원망스러울터다.
그는 연고없는 객지생활 외로움을 많이 타는 것 같았다. 너만 그러냐고? 나도 외롭다고...긴전화 싫어하는 나일망정 몸아픈 그에게 빨리 끝내자고 차마 그런 소릴 꺼내지 못하겠더라. 대신 나는 그의 목소리를 머릿솓에 담으며 지난 세월들의 추억을 들추어 곱씹었다.
한여름 비오는 날에도 우리들은 우산도 없이 자갈밭 신작로를 기러기 나르는 소릴내며 내달렸다. 대각선 맨 책보따리는 가는 허리가 휘청거리도록 중량감이 있었고, 때낀 검은 고무신에선 타는 타이어 냄새가 났다. 어머니가 손수 만드신 삼베 옷은 목과 사타구니를 깍아먹을 듯 드세었다.
식구는 많고, 우비는 없는 현실, 그렇다고 아버지의 도롱이나 삿갓을 쓰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운동장 구석에 책보따리 집어 던지고, 친구들과 놀이에 빠져들었다. 땅따먹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콩돌놀이, 고무줄놀이...
아침에 풀뜯기고 소매어 놓은 뒷산 정자나무 아래, 소꼬리 빼어 매미를 잡고, 아이들이 풀어놓은 소는 어린 주인 생각은 아랑곳 하지않고, 산과 골을 넘어 해저문 산을 헤매다 소꼬삐를 잡게 만들었다.
시냇가 버드나무 모래밭에서 나뭇가지 꺽어 고구려, 백제, 신라 편나누어 칼싸움을 하고, 더우면 물구나무를 서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곳은 또한 한겨울 꽁꽁언 얼음지치다 녹은 얼음구멍으로 빠져들어 모닥불에 옷을 말렸던 곳이다.
배고픔 고릿고개의 추억, 냇가에서 가재와 징거미를 잡고, 도랑에서 참게와 메기, 미꾸라지를 잡았다.
무더위속 매캐한 모깃불 연기속에 평상위 차려진 만찬상, 보리밥과 호박잎 된장국에 열무무침이면 진수성찬이다.
동네잔치 고깃덩이나 냇물에서 물고기라도 잡은날에는 그것들이 할아버지 턱밑 상 가까이에 차려졌다.
철드는가 싶더니 고향떠나 낯선 타향에 자리를 잡아야했다. 서툰 고난의 일자리, 서러움의 단칸방 셋방살이를 거쳐가며, 자식 많이 낳아 먹을게 부족했던 과거를 되뇌이며 내 자식만큼은 적게 두고 잘키우기로 다짐을 했다. 그게 결국엔 자식세대를 망치는 결과를 가져옴을 알리도 없었겠지만...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친구가 생각나서 술자리를 만들었고, 생활이 나아지니 고향산천과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도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맨바닥 인생, 비교되는 팍팍한 삶은 평생의 마음을 조리며 살아가야 했다.
나이가 들어가며 자식들 시집 장가보내고, 귀여운 손주들도 생겨났다. 하던일도 어째야할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술자석에서 안주 안먹던 친구들이 하나 둘 먼길을 서둘러 떠나갔다. 갈때는 순서 없다는 말이 수없이 귓전을 맴돈다.
100세 인생, 많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부모, 조부모로부터 들었던 자신을 위로하는 말 "내가 빨리 죽어야할텐데..."
꽃길만 걷는 신나는 삶이면 자식 귀거슬리게 뭔 그런소릴 하셨으랴?
열심히 살다보니 배꼬리는 늘어졌는데, 부모보다 못한 자식세대가 될까 그것이 또한 걱정이다. '부자 3대 못간다'는 말 개인은 아니어도 나라꼴은 그런가 싶다. 이상기후와 자원고갈이 거세게 앞길을 막아서고, 부른배 게으름을 재촉하니 말이다.
그래도 누구의 남긴 말처럼 (한세상) "잘 살다간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공수래공수거라고? 그러지 않아도 돌아보니 내것일랑 재산도 명예도 없다. 홀로 골방에 앉아 옛노래를 들으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인간이란 왜 이리 감정조차 풍부하게 만들어 놓았을까? 굼벵이 매미되듯 짧은 세월 악쓰다 사라지도록 않게시리...
남은 인생 정직하고 도우며 살잣더니, 이미 해는 서산향해 기우러진 형국이다.
부디 남은 세월 건강하여 자식에 짐지우지 말며, 한세상 티없이 살다감을 자랑스레 여기자.
그러나 서울의 친구는 병들어 홀로 외로움의 감옥에 갇혔고, 그래서 그에게 필요한건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주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여동생이 작년에 천국여행을 떠나신 어머니의 묘지 사진을 보내왔다. 잔디의 새싹이 돋고 있다나.
안그래도 낼모레쯤 아버지 산소에서 흙 한주먹 담아다 두분의 흙으로 섞을 예정이다.
살아계실제 못한 효도를 이제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마는 부모님을 향한 행동이 아니라,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짓임을 알고도 남는다.
종교에 심취하지 못하여 내세를 몰랐건만 이때쯤이니 내세가 있다면 인연 닫는대로 후회없이 열심이 살아보고 싶다.
이쯤해서 친구의 쾌유를 빌어야겠다. 부디 건강하게 살다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