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벳 사자의 서 §
어떤 임사 체험자는 우리가 지금 사는 것이 힘들고 고통이지, 죽음의 세계는 너무도 편하고 따스했다고 말했다.
티벳 사람들은 생일잔치를 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태어난 날을 기억하는 일보다 죽는 날을 알 수 있도록 명상을 하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스승들의 가르침을 따르기 때문이다.
《티벳 사자의 서의 의의》
〈“티벳 사자의 서”의 원제목의 뜻〉
『티벳 사자의 서』의 원제목은 『바르도 퇴돌』이다.
“바르도Bardo”는 ‘둘do 사이bar’ 이라는 뜻이다. 중간 상태를 말한다. 이 세계와 저 세계 사이의 틈새다. 그래서 티벳에서는 사람이 죽은 다음에 다시 환생하기 까지 머무는 사후의 중간상태를 바르도라고 부른다. 그 상태에 머무는 기간은 49일로 알려져 있다.
“퇴돌Thos-grol”은 ‘듣는 것으로thos 영원한 자유에 이르기grol'의 뜻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제목은 『사후 세계의 중간 상태에서 듣는 것만으로 영원한 자유에 이르는 가르침』이라고 번역된다.
〈“티벳 사자의 서”의 역사〉
『티벳 사자의 서』는 고대로부터 구전되어 내려오던 내용을 8세기에 파드마삼바바가 기록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근세에 와서 『티벳 사자의 서』가 알려지게 된 것은 티벳 사자의 서의 번역자 “라마 카지 디와삼둡”과 편집자 “에반스 웬츠” 덕분이다. 번역 작업은 1919년에 끝이 났고 1927년에 처음으로 출판되었다.
파드마삼바바다 짓고, 유가 성취녀 예세초겔이 기록한 『티벳 사자의 서』는 가르침이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비장秘藏하고, 제자들에게 전수되어 이어오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티벳 전역에 전승되어졌다. 그의 예언에 의하면 이 비전은 시절 인연이 될 때, 비장의 문헌을 꺼내는 사람, 즉 땔똔Tertons들이 문헌들을 하나씩 꺼내어, 세상에 그 가르침이 펼쳐질 것이라고 하였다.
〈라닥(Ladakh)〉
파드마삼바바가 『티벳 사자의 서』를 저술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인도 후기 중관파의 대가 빠담파라는 스승을 만나는 인연으로부터다. 스승 빠담파는 제자인 파드마삼바바를 지금은 인도 히말라야 북부의 고산지대에 위치해 있는 라닥Ladakh(역사적으로 라닥은 본래 티벳땅이었다.)으로 데리고 가서, 그곳의 장례의식절차를 지켜보도록 했다.
『티벳 사자의 서』는 파드마삼바바가 스승 빠담파와의 인연이 없었다면, 이 세상에 드러나지 못했을 것이다. 빠담파는 제자 중 가장 특출한 파드마삼바바를 라닥으로 데리고 갔다. 스승 빠담파는 왜 하필이면 제자를 라닥으로 데리고 갔을까?
라닥은 히말라야 북서쪽 끝에 위치해 있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하늘의 정거장’이라고도 한다. 파드마삼바바가 라닥에 도착했을 때 쉐이곰빠에만도 이미 100여명의 고승들과 많은 수행자들이 정진하고 있었고, 산스크리트어 원전의 경·율·론장들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파드마삼바바가 놀란 것은 인간이 수태에서부터 태어나 성장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그려져 있는 ‘인체도’가 있을 정도로 의학이 발달돼 있었다. 때문에 이러한 가르침의 보존과 의학의 발달은 육체에서 의식체를 분리시킬 정도로까지 발전해 영혼을 해탈게 하는 ‘포와 의식’까지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그대로 살아 실행되어 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고, ‘포와의식’을 체험시키고 그 비의를 전수코자 스승은 제자를 험한 산악지대까지 데려갔던 것이다. 스승 빠담파는 그곳에서 죽어가는 사람과 시신의 장례절차 등 고대로부터 행해지고 있는 현장을 제자에게 체험할 수 있는 기회와 함께 죽음과 환생의 과정을 통제할 수 있는 가르침을 전수했다.
지금도 라닥에 살고 있는 사람은 거의 대부분 티벳인들이며, 수행의 전통과 가르침이 가장 잘 보존돼 오고 있고,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수행자들이 스승을 찾기 위해, 무문관 수행 체험을 위해 그곳을 찾고 있다.
〈포와(Phowa) 의식〉
의식체(영혼, 중음식)를 분리하는 과정을 ‘포와Phowa’라고 하며, 이 의식을 거행할 수 있는 스승이 없을 경우, 3일반 내지 4일이 걸려야 의식이 육체로부터 떠난다고 하고 있다. 스승이 포와를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영가는 대게 3~4일이 지나야 자신이 몸으로부터 떠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이 기간 동안은 시신을 처리하지 않는다.
평소에 많은 수행을 하여, 임종의 순간 정광명을 만나 빛 속으로 들어간 영가에게는 『티벳 사자의 서』를 읽어줄 필요가 없고, 만약 의식 전이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티벳 사자의 서』를 영가의 시신 곁에서 발음이 분명하고 문장이 명확하게, 3번 또는 7번을 읽어 주도록 하고 있다.
〈티벳 사자의 서와 함께 이용하면 좋은 것들〉
1. 타돌(Btags-grol)
『바르도 퇴돌』과 함께 사용하는 티벳의 만트라 소책자이다. 만일 타톨 만트라들을 알고 죽으면, 그것들은 매우 강력한 부적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바르도를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해주며 나아가 행복하게 환생할 수 있게 해준다. 흔히 장례식 때 타돌의 사본을 시신에 붙여 같이 태우거나 매장한다. 아니면 조그만 종이쪽지에 몇 개의 만트라를 적거나 작은 두루말이에 말아서 그렇게 한다.
2. 습관과 성향의 힘을 이용해 대자유에 이르는 의식
이것은 《티벳 사자의 서》를 운문으로 간단하게 각색한 것이다. 기억하기가 쉽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외울 수가 있다. 이것은 사자의 입장에서 습관과 성향의 힘으로 해탈에 이르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 사자는 이 의식을 마음속에 새겨 놓았다가 사후에 누군가 읽어주면 그것을 기억하게 되고 따라서 해탈을 얻게 된다고 한다.
〈융의 이론〉
융은 『티벳 사자의 서』와 불교를 접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더욱 넓어졌다. 자기 자신의 무의식과 수많은 사람들의 심리분석 작업을 통해서 얻은 방대한 경험 자료를 토대로, 원시 종족의 심성과 여러 문화권의 신화, 민담, 동서양의 철학과 사상, 종교현상 등을 서로 비교 고찰하기도 했다. 그 결과 인간 심성에는 무의식과 자아의식, 집단적 무의식의 층이 존재함을 확인하게 됐다. 즉, 인간의 무의식에는 억압된 충동뿐 아니라, 인간의 행동을 유발하는 원초적이며 보편적인 원천이 있다고 보았다.
신들과 영들의 세계는 사실 내 안에 있는 ‘집단무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금강살타 백자명 진언》
『티벳 사자의 서』에 등장하는 금강살타 안에는 이 경전의 만다라 안에 나타나는 모든 평화의 신들과 분노의 신들이 녹아 들어가 있다. 그래서 ‘금강살타 백자 만트라’는 우리의 업력을 용해시키는데 그 위력이 가장 강력하다고 전해지고 있다.
『티벳 사자의 서』를 문자로 표현해 놓은 것이 백자 만트라이고, 그 확장이 능엄다라니이다.
※ 금강살타는 악쇼비아(아촉불)의 발현된 보살이다.
《6가지 의식 상태》
키에나 바르도(Skye-gnas) 삶에서의 의식 상태 미람 바르도(Rmi-lam) 꿈꾸는 동안의 상태 팅게진 삼탐 바르도(Ting-nge-hzin Bsam-gtam) 삼매 상태 치카이 바르도(Hchi-khahi) 임종 순간의 상태 초에니 바르도(Chos-nyid) 존재의 근원을 체험하는 동안의 상태 루용 시드파 바르도(Lugs-hbyung Srid-pahi) 환생을 찾는 상태
〈사후 49일간의 바르도 과정〉
죽음의 순간 : 해지절, 정광명 사후 3일까지 : 치카이 바르도 사후 4일 ~ 17일까지(14일간) : 초에니 바르도 사후 18일 ~ 49일까지(32일간) : 시드바 바르도
1. 임종 순간
죽음의 기술을 익힌 사람들은 은밀한 신호들, 연기나 신기루, 개똥벌레 같은 시각적 경험들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이것들에 주의를 집중하면서 섬광이 다가오면서 빛 속으로 들어간다.
(1)해지절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의 순간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원소의 일부 또는 전체가 극도의 혼란을 일으킴으로써 해지절이라는 고통이 온다. 이는 마치 칼로 자른 것과 같은 심한 고통이다. 그러나 평소 선업의 종자를 쌓아 온 이들에게는 이러한 현상이 거의 없다. 불선不善한 마음으로 맞는 죽음은, 온갖 흉측한 모양들을 봄으로 인해 몸에서 큰 고통이 발생하고, 털끝이 곤두서며, 손발을 부들부들 떨고, 똥오줌을 싸고 허공을 움켜잡으려 버둥거리고, 눈알이 뒤집히며, 입에 거품을 품는 등 망측한 현상들이 일어나는 임종을 맞게 된다.
(2)정광명
『티벳 사자의 서』에서는 정광명이 나타나는 때가 실제의 죽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근원의 빛은 깨달음의 있고 없음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나타난다. 왜냐하면 이 빛은 모든 유정들의 본래 마음 상태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시작은 빛이다. 이 빛이 꺼짐(떠남)으로 해서 생명은 끝이 난다. 다시 말해 생명의 시작과 끝은 빛이 오고 간다. 우리가 죽음을 다른 말로 ‘혼불’이 나간다고 하는 것도 이와 같은 표현이다. 사람이 죽기 얼마 전에 몸에서 미리 혼불이 공중으로 빠져나간다고 하는데, 남자의 경우 대빗자루 모양의 길고 큰 불덩이가 나가고, 여자는 접시모양의 둥근 불덩이가 나간다고 한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은 가끔 이런 혼불을 보거나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이때 근본 빛을 깨닫게 되거나 ‘포와(의식전이)’에 성공하면, 빛과 화합한 사자의 의식이 중유(바르도)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장 정수리를 통과하면서 빛 속으로 녹아들어간다 즉, ‘니르바나(대자유, 해탈)’에 도달하게 된다고 『티벳 사자의 서』에서는 말하고 있다.
죽음의 순간 최초의 투명한 빛이 영가 앞에 나타나는데, 그 빛은 모든 존재의 근본 마음 상태(불성佛性)부터 밝아오는 순수한 빛이다. 그러나 영가는 그 밝고 순수한 빛을 두려워하거나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이 지은 업 때문에 흐릿한 빛을 선호한다. 이때 만약 영가가 흐릿한 빛 속으로 들어가면 육도에 윤회하게 된다. 그러므로 영가가 깨어 근원의 빛을 인식하고 그 섬광 속으로 들어가도록 인도한다.
2. 치카이 바르도 - 바르도체·유체의 탄생
생전에 육체적 장애가 있었을지라도 사후세계에서는 모든 기능이 완전해진다.
이 발광체를 바르도체(體)라고 한다. 사후에 갖는 몸이다. 이것을 흔히 유체(幽體)라고 한다. 이것은 생전에 갖고 있던 육체의 복제품과 같다. 바르도체의 솟아오름, 곧 바르도체의 탄생은 죽은지 약 사흘 반 뒤에 즉각적으로 일어난다고 한다.(이것은 인간 세상에서 잠을 자거나 꿈을 꾸거나 무의식 상태에서 사흘 반을 보내는 것과 같다) 바르도체가 솟아오르는 것에 대해 티벳 스승들은 ‘마치 물 속에서 송어가 튀어오르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쓴다. 인간 세상에서 탄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바르도 세계에서 태어나는 실제 탄생 과정이다.
죽었다가 깨어난 임사체험자들이 증언한 바에 의하면 죽음을 맞이한 순간부터 3~4일 동안 대부분의 경우 의식체는 자신이 육체로부터 분리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기절상태 또는 무의식(수면)상태에 빠져 있는다고 한다. 죽음을 맞이하는 이 기간이 첫 번째 바르도이며, 치카이 바르도 곧 ‘죽음의 순간 바르도’라고 부른다.
사후 각 차크라의 에너지와 원소들이 우주 속으로 흡입되는 과정에서 빛과 소리 등이 나타난다. 때문에 만약 영가가 앞에 나타나는 현상들을 두려워하게 되면 몸의 각 에너지에 영향을 주게 되고, 소리나 색채 등이 더욱 어지럽고 무섭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때는 업력의 환영이 아직 등장하기 전이기 때문에 소중한 가르침이 그에게 잘 전달된다면 틀림없이 목적을 이룰 것이다. 이런 현상은 종교와 인종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나타난다. 단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뿐 그 본질은 같다.
3. 초에니 바르도 - 존재의 근원을 체험
첫 번째 바르도가 끝나면 영가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고, 이어 두 번째 바르도인 초에니 바르도, 즉 ‘존재의 근원을 체험하는 바르도’의 과정을 겪게 된다. 이 바르도에서는 영가가 기절 상태에서 깨어났을 때, 그의 앞에 상징적인 환영들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사후 3~4일 후부터 사후 10일까지 일주일 동안은 평화의 신(자비존)들이 밝아온다. 사후 11일부터 17일까지 일주일 동안은 분노의 신들이 나타난다. 평화의 신들과 분노의 신들의 성격은 같다. 단지 영가의 업력으로 인한 마음상태와 장소에 따라 모습을 바꿔 나타난 것일 뿐이다.
* 오선정불(五禪定佛) *
※회색,검은색 : 지옥계
4. 시드파 바르도 - 태어날 곳을 찾아서
사후 17일동안 최선을 다해 인도해도 이때까지 자신의 참 본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 영가는 두려움 속에 헤매면서 더 아래쪽으로 방황해 들어가고 육체를 소유하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히게 시작한다. 그리하여 몸을 찾게 되고 환생의 길을 찾는 세 번째 바르도의 상태로 흘러 들어간다. 그것은 시드파 바르도 ‘환생의 길을 찾는 바르도’이다.
「수태하는 것을 갈라람이라고 하나니 ,아버지의 정과 어머니의 피가 다른 것이 아니라, 부모의 정과 피가 화합하는 인연으로 식識의 인연하는바 의지가 되어 머무는 것이니, 비유하건대 우유병에 송곳을 넣고 인공으로 흔들어 돌리기를 마지않을 제, 타락이 나오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나오는 것처럼 부모의 깨끗하지 않은 정과 피와 갈라람 몸과의 관계도 역시 이와 같으니라.
난타야, 태아가 만약 남자이면 어머니의 오른쪽 옆구리에 쪼그리고 앉아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어머니의 등을 향하고 있으며, 만약 여자라면 어머니의 왼쪽 옆구리에 쪼그리고 앉아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어머니의 배를 향하고 있느니라.
-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 2권 중 -」
〈몽중 상태의 바르도〉
몽중의식夢中意識은 글자 그대로 꿈 가운데의 의식이다. 우리들이 잠을 깬 상태나 잠을 자고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항상 의식을 통하여 평소 익혔던 일들이 현재의 마음과 몸의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생에 익혔든 아니면 몇 년 전에 익혔든 관계없이 한 번 경험하고 체험한 것은 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다가, 의식을 통하여 다시 실천되기 때문에 꿈속에 실현된 것에 대한 의식도 몽중의 의식인 것이다.
바르도의 가르침에서는 우리가 잠을 잘 때 꿈속에서 벌어지는 상황들과 사후 바르도가 거의 흡사하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잠에 들 때 감각과 의식의 좀 더 거친 층은 해체되고, 점차적으로 근원적인 빛이 짧게 순간적으로나마 드러나게 된다. 이렇게 감각과 의식의 거친 수위가 가라앉는다는 것은 카르마의 에너지 활동이 줄어들다가 마침내 멈추게 되고, 짧은 순간 지혜의 에너지로 전환된 영향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죽음의 바르도 흐름과 비교해 볼 때 첫 번째인 ‘죽음의 순간 바르도’로 죽음을 맞이하면서 나타나는 마음의 본성인 정광명의 상태와 비교될 수 있다.
우리들이 꿈을 꾸기 전 잠자는 기간을 의식할 수 있을까? 있다면 과연 얼마나 의식할 수 있을까. 꿈속에서 마음이 다시 활동하게 될 때 카르마의 에너지가 활동했음을 말한다. 우리는 대게 몸을 뒤척이며 움직이거나 아침에 잠에서 깨려 할 때 더욱 선명한 꿈을 꾸게 된다. 이는 카르마의 에너지가 활동을 한 것과 연관이 있다. 이때 우리가 의식하는 모든 것은 사후 두 번째 단계에 이어지는 ‘존재의 근원을 체험하는 바르도’ 상태와 유사하다.
꿈속에서 우리는 깨어 있을 때의 습관과 활동에 크게 영향을 받으면서 드라마를 펼친다.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은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꿈속에서 마주치는 것을 모두 견고하고 현실적인 것으로 믿게 된다. 그래서 꿈속에서 울고 웃고 두려움과 공포에 짓눌리고 이는 잠에서 깬 이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죽음의 바르도에서 세 번째에 해당하는 ‘환생(결과)의 바르도’와 비슷하다.
우리가 명상을 통해 영혼이 맑아지면 꿈이 없거나 꿈을 통해서도 자신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마찬가지로 사후에도 바르도를 겪지 않게 된다. 이런 현상은 지혜의 에너지가 우리의 몸을 점점 점유하게 되는 증거이다. 그래서 꿈을 보면 역으로 수행의 진보를 알 수 있다.
〈명상 상태의 바르도〉
호흡을 편안히 가다듬고 몸을 이완시킨 다음 자신이 하고 있는 명상의 대상에 집중해 보라. 그 대상은 호흡을 지켜보든 화두의 공안을 의심하든, 만트라든, 그것도 아니면 불빛이나 꽃 등 그 어떤 것도 잠시 집중할 수 있는 것이면 된다. 그렇게 집중의 대상을 지켜보면 심신 흐름의 과정이 꿈과 죽음에서 바르도의 전개 과정과 거의 같음을 알 수 있다.
잠시 움직임의 틈 사이를 살짝만 이라도 지켜볼 수 있다면, 지금도 끊임없이 당신의 삶 속에 흐르고 있는 바르도를 알아차릴 수 있다. 그 챙김의 노력을 지속해 간다면 깨어있는 삶을 영위하고, 죽음까지 이어져 윤회의 고통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 한국의 장례 풍습》
필자가 어릴 적에는 집안에 임종을 앞둔 사람이 있으면 가축들이 교배하지 못하도록 각각 나누어 가두었다. 이는 죽어가는 사람이 동물로 태어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또 어른들은 마을에서 사람이 죽으면 삼칠일 동안 부부가 동침하지 말 것을 권하였다. 인간일지라도 다시 태어남이 고통이라는 것을 모르고 어찌 이런 단속들을 할 수 있었겠는가. 사람이 죽어가는 순간 성욕이 가장 강하게 일어나는데, 이는 환생의 본능 때문이다. 그래서 영혼은 가까운 곳에 자궁이 보이면 그것이 동물이든 사람이든 어디든 들어가려 한다. 우리 선조들도 이런 지혜를 가지고 있었으며 수십 년 전만 해도 실천해 왔다는 증거이다. 거슬러 올라갈수록 함께 공유해 왔던 전통들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시대적 요구에 따라 역할이나 기간 등이 변하고 축소되어 온 형태라고 해야 더 맞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증거는 지금도 우리나라 사찰의 장례의식에서 대부분 나타나고 있다.
☞ 발췌 도서 ☜ 티벳 사자의 서(류시화 옮김) 체험으로 읽는 티벳 사자의 서(강선희) |
출처: 상민이의 불교 자료실, 법보시 원문보기 글쓴이: 상민
첫댓글 관세음보살_()_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_()_
나무아미타불_()_
잘봤습니다.
살아생전 기도수행 열심히 부지런히 해야겠습니다. 나무지장보살 마하살_()_
나무아미타불_()_
가르침 감사드립니다 관세음보살.._()_
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