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 산책길에서 까치도 만나고...
서두르지 말고, 화내지 말고, 반말하지 말고!
15년 전 뉴욕 주 롱 아일랜드 그레이트 넥 성당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오후 사무실 2층 사제 집무실로 들어섰을 때
전혀 뜻밖의 ‘팻말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글귀는 전혀 본 적도 없었고
따라서 그런 경험은 내겐 정말 예상 밖의 생소한 것이었다.
솔직히 그런 경험은 상식을 벗어난, 의외적인 것이었고
내겐 그저 놀라움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세상의 어떤 신부가 집무실 책상 위,
그것도 문 앞에서 가장 잘 보이는 책상 위 한 귀퉁이에
“서두르지 말고! 화내지 말고! 반말하지 말고!”라고 써놓고 있겠는가….
난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야! 이게 뭐냐? 치워버리자!” 하고 말하니
그 친구는“안돼! 그냥 놔둬!”라고 결연한 자세를 보이며
그것을 절대로 건드리지 못하게 하였다.
지금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다시 말해 그 글귀는 그 자신에게
아주 확실한 반성과 결심을 촉구하는 뜻으로 써 붙인 것이었겠지만
사실상 이런 그의 행동은 은연중에 그곳 성당의 모든 신자들에게
결과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쳤음이 틀림없었을 것이다.
어느덧 나도 불혹을 넘어서서 오십대 중반에 접어드는 나이가 되었다.
공자가 일컫기를 ‘나이 사십이면 불혹(不惑)한다’고 하였다.
이 말의 참뜻은 나이 ‘마흔살 정도가 되면 어지간한 유혹에는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일 것이고 한편으로 그 나이쯤이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경험의 연륜도 함께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공자의 ‘불혹’(不惑)을 맹자는 ‘부동심’(不動心)에 비유하였다.
부동심의 성취는 내면의 수양을 통해
호연지기(浩然之氣)1)를 닦아나감으로서얻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부동심으로 가는 과정에 있어 가장 강조한 것은
‘내면의 수양을 닦음’이었고 또한 이를 수행해 나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은 ‘서두르지 않아야 할 것’,‘침착할 것’,
그리고 ‘여유 있어야할 것’ 등이었다.
이와 연관된 이야기를 맹자는 자신의 제자인 공손추(公孫丑)에게
다음 ‘발묘조장’(拔錨助長)의 고사를 통해 재미있게 전하고 있다.
발拔(뺄) 묘 錨(싹) 조助(도울) 장 長(길)
빨리 자라게 하기 위해 싹을 뽑아 올리다
맹자가 송나라의 어떤 농부의 경우를 예로 들면서
공손추에게 전해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옛날’(以前) 송나라에 ‘성질이 매우 급한’(急性子) 한 농민이 살고 있었다.
‘남의 손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옛 속담처럼
그는 자기 논의 벼가 다른 논의 벼들보다 늘 더디 자란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급한 마음으로 온종일 논밭을 왔다 갔다 하면서
어떻게 하면 모를 빨리 자라게 할 수 있을까 이궁리 저궁리를 하였다.
성급한 마음이 앞선 나머지 손뼘을 펴서
이 모 저 모를 재어보며 크기를 비교해 보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싹이 거의 자란 것이 없다고 불평을 터뜨렸다.
“어떻게 하면 모를 빨리 자라게 할 수 있을까?”
골똘히 궁리하던 끝에 드디어 한 가지 묘안을 찾아냈다.
“싹을 높게 뽑아 올리면 한꺼번에 크게 자랄 것이 아닌가?”
그는 이런 생각을 곧바로 실천에 옮겼다.
그리고 한낮부터 해가 질 때까지 한 모씩 한 모씩 높이 뽑아 올렸다.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린 농부는 거의 마비되다시피한
두 다리를 끌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허리를
몇 번 두드리고 나서 대문을 들어서며 큰 소리로 외쳤다.
“오늘은 정말로 힘들어 죽겠다!”
아들이 서둘러 무슨 일인가 물었다.
“아버지! 오늘 무슨 중노동을 하셨기에 이토록 힘드셨습니까?”
농부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내가 밭의 새싹들을 모두 크게 자라게 했다.”
이 말에 이상한 예감이 스친 아들이 재빠르게 논밭으로 뛰쳐나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큰 일이 벌어져 있었다. 일찍 뽑아 올렸던 새싹들은
이미 시들어버렸고 후에 뽑아 올린 싹들도 생기를 잃고 축 쳐져 있었다.
‘발묘조장’의 본뜻은
‘성급히 서둘러 일을 끝내려다 오히려 일을 망치게 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이 말의 뜻을 오늘날 우리 삶의 모습에 비추어 본다면 구체적으로,
교육문제, 정치현안, 경제정책이나 개인 사업들, 건축 사업들, 그밖에
정신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예컨대 공동체의 일치 내지는 인격완성에 이르는
폭넓은 영역에 걸쳐서까지 보다 신중히 생각하고 또 보다 정성되이
공과 수고를 들일 필요가 있음을 본질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에 묶어서는 사용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공자 또한 이르시길 ‘욕속부달’(欲速不達: 일을 서둘러 마치려 하다가
오히려 목적을 이루지 못함)을 강조한 바 있다.
모든 일을 수행해나감에 있어 무엇보다 서두르지 말아야할 것이며,
언제나 숙고와 침착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사회 안에 만연되어 있는 ‘빨리! 빨리!’의 사고방식과
행동들을 우리는 다시금 깊이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빨리빨리’의 서두름 때문에 얼마나 많은 피해와 손해를 초래하고 있는가!
그래서 앞서 소개한 친구의 말이 새삼 새로워지는지도 모른다.
팻말에 새겨진 그 말,
“서두르지 말고! 화내지 말고! 반말하지 말고!….”
- 「철학은 빵을 굽지 않는다」中에서 - 홍승식 아우구스티노 신부님(수원교구)
달팽이도 만나고...
첫댓글 사회풍조가 빨리 빨리라는 것에 익숙하다보니 서두르고 실수하고 화내고 결국 상대에게 너 탓이라하니^^~달팽이처럼 나무늘보처럼 음미하며 인생을 천천히 걸어가도 손해보는건 없을 듯한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