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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만의 지리산 만남
지리산 노고단 2015. 4. 30
1980년대 지리산 등산 -1983년 10얼 어느 날
우리가 지리산 노고단에서 다시 만난 것이 30년만인 것 같다. 지난 4월 30일. 산들도 초록 옷을 입는 시기에 맞춰 일정을 잡은 것이다. 김용주 목사는 어렵게 잡은 일정이라며 약간은 흥분된 어조로 소식을 전해주었다. 서울 팀과 광주 팀 5명이 노고단 성삼재 주차장에서 만났다. 박영실 목사(총신 신대원), 김용주 목사(분당 두레교회), 김순철 목사(화순 서현교회), 등산을 잘했던 최정희 권사(동산교회)기 만났다.
노고단 오르는 길. 하얗게 핀 산벚꽃 말고는 아직도 겨울 색이다. 안개 덜 걷힌 노고단, 나이는 먹었어도 동산교회 청년시절 그대로다. 지리산 다니던 이야기, 궁금하고 듣고 싶었던 이야기, 아이들 자랑 등, 여름날 쏟아지는 지리산 소낙비처럼 기분 좋은 이야기가 요란하다. 우리가 야영했던 노고단산장 야영장은 나무가 심겨졌다. 생태복원 중이다.
그 시절과는 달리, 힘들어 올라간 노고단. 저 아래로 하얗게 흐르는 섬진강이나 동쪽으로 바라보는 반야봉도 안개에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임걸령, 삼도봉, 뱀사골, 세석평전, 장터목, 천황봉이 훤하게 열린다. 아내가 준비해준 김밥을 나눠 먹고는 하산하여 달궁계곡으로 갔다가, 곡성(최정희 권사 부친 댁)을 거쳐 광주로 돌아왔다. 서울의 두 분 목사님이 우리 집 손님이 되었고, 문영태 장로(옥과교회-당시 조선대학 재학), 황경수 집사(동산교회-당시 직장인)도 달려왔다. 점잖은 어른들이 아니다. 청년 그때로 돌아간 호들갑스러운 대화가 요란하다.
1981년에 내가 담임 전도사로 개척했던 광주동산교회(2009년 은퇴). 어른들 서너 가정 외에는 군에서 막 제대한 박영실을 비롯한 청년들이 교회의 주역이었다. 토요일이면 성경공부를 하고, 주일에는 찬양대와 주일학교 교사를 맡고, 금요일 심야기도회도 참석했다. 그때는 청소년 목회가 주된 사역이어서 교육에 정성을 쏟았다. 여름수련회는 밤낮으로 함께 지매며 성경공부를 하고 뜨거운 기도를 올렸다.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들 자취방에 찾아가서 기도하고 격려했다. 그 때는 대학생들과 신학생 그리고 청년들이 많았다. 예배당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일반인들이 오시는 것이 죄송했었다. 어쩌면 이것도 하나의 훈련이었다.
1980년대는 개척교회도 잘 되는 편이었고, 학생운동 단체들도 전도와 모임이 활발했었다. 광주.전남권의 교회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 부흥하고 활동이 왕성했던 시기였다.
여름방학 때면 지리산 등산을 했다. 1박2일로 백무동에서 천황봉으로 또는 화업사에서 출발해 뱀사골로 넘어 다녔다. 어느 해 초가을, 장터목산장에서 야영을 했다. 별빛 총총한 밤하늘이 환상이었다. 그러나 새벽 추위에 벌벌 떨었고, 우리는 한 덩이로 껴안고 잠을 설쳤다. 코가 땅에 닿는 가파른 산길을 걷다 지치면, 노랗게 핀 원추리 핀 산마루에 누어 뭉게구름 따라 하늘을 날고, 산자락 사이로 흘러가는 섬진강 바라보며 먼 여행을 꿈꾸기도 했다. 산행에 지쳐 처지는 사람의 짐을 나눠지고 조금만 더 가자며 손잡아 이끌어 함께 오르던 모습, 눈에 선하다.
박영실 목사의 미국 유학시절, 시카고에서 만나 교회가 준비한 작은 봉투를 내놓고 눈물로 기도하던 일, 김용주 목사의 독일 유학시절, 그가 섬기는 베르린반석교회 여름수양회를 인도하던 일, 윤난희 사모(순천 나누는교회 남기종 목사)가 섬기는 교회 설립예배와 설립20주년 설교를 하던 일, 내가 서울 가면 우리 교회 출신들이 모이던 일, 이렇게 우리의 만남이 이어졌다.
“그 때 나이에 30을 더하면 지금 몇인가?” 박영실 목사는 58세란다. 모두 50대가 된 것이다. 지금은 사방으로 흩어졌어도 서로 안부를 묻고 교제하는 믿음의 형제들. 못 잊을 사람들이다. 신학교 졸업하던 해에 전도사 신분으로 교회를 개척했던 내게는 고마운 동역 자들 아니었던가..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가운데 ‘변치 않는 아름다운 그 무엇’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의 만남을 인도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교회를 신실하게 섬기게 하시고, 믿음의 가정에 복을 내리소서. --형제들의 과분한 섬김에 많이많이 행복한 사람 황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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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은퇴 이후
황영준
뻐꾹 뻐꾹
재촉마라 약속 없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나니
<2015.5.19. 전남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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