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번 라인 꾸벅꾸벅 졸면서 남기는 글
나의 실수로 살짝의 손해를 보고 살짝의 피해를 주는 하루를 시작하면서
근간의 득과 실을 끼워 맞추어서 합리화시키던 와중에
문득 분별심을 생각한다.
도올, 인도를 만나다 강의를 보고,
1학년 다음 2학년, 3학년처럼 졸업을 향해 가는, 해탈을 향해서 가는 과정으로 알았던 아라한은
부처보다는 못하다는 꼴값을 표현한 말로 이해했다.
그 아라한이 생각나면서,
아라한이 되려 하는 자들은 지구에 묶이겠구나.
분별심의 가장 처음, 있는듯하기만 한 그것이
다른 내가 되려 하는 것 정도의 수준이라고 생각했었다.
오늘 보니, 더 나은 내가 되는 것이 그것이구나 싶다.
알렉산더 테크닉을 깨우치는 과정 중에 경험했다.
건강한 발을 지향했을 때, 어느 정도 좋아지고는 멈추었다.
있는 그대로를 허용해주었을 때, 나아질 수 있는 만큼까지 나아졌다.
건강한 사람이 되려는 마음,
똑똑한 사람이 되려는 마음,
착한 사람이 되려는 마음, 모두 분별하는 마음이다.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을 허용하고,
똑똑해지는 거 허용하고,
착해지는 거 허용하면 충분한 일이다.
그냥 가능태의 하나로 두고, 지금 처한 이곳을 관찰하는 것이 옳구나 싶다.
강의에서 부처의 죽음을 존재의 허용으로 이해했다.
부처 역시 그저 존재하는 것으로 탈을 벗었구나.
우주를 떠나려 했다면, 떠나지 못했을 것이나,
존재하려 했다면 떠남이 허용되었을 것이다.
창밖으로 잠자리가 난다.
존재의 기준은 휴먼디자인이구나!!
휴먼디자인 차트대로 존재하면 되는군.
생긴 대로 존재면 충분하군.
저항이 사라진다.
갈 길 가면, 그게 충분한 것이다.
지금의 사람들은 역대급으로 쉬운 지도를 만나, 다수가 깨달을 가능성이 있다.
휴먼디자인과 알렉산더 테크닉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쉽다고 생각한다.
밥따로, 입맛대로 먹고 있다면 가능!
무엇보다도 호흡으로 뇌가 필요한 만큼의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하고!!!